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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08화 (208/300)

208화. 술자리 (2)

유지한은 예약해둔 술집으로 찾아갔다.

“유지한 씨 되십니까?”

“맞습니다.”

“이쪽입니다.”

유지한을 안내하는 여직원은 뒤따라오는 그를 힐끔거렸다.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이름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약된 방에 도달하자 그녀가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벨을 눌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기, 그리고…….”

“예?”

“실례가 아니라면 사인 한 장만…….”

유지한은 여직원이 조심스럽게 건네준 종이와 볼펜을 받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여직원은 사인이 적힌 종이를 돌려받고서 매우 기뻐하며 허리를 숙였다.

예약자 명단에 유지한이 있다는 게 알려지자 직원들은 너도나도 그를 직접 안내하겠다고 했지만.

가위바위보로 승자를 정한 끝에 그녀가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적었을 뿐인데.’

고작 볼펜으로 이름을 적은 종이에 불과한 물건.

그걸 소중한 물건처럼 품에 안고 떠나는 사람을 보며 유지한은 참 묘한 기분이 되었다.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음식 메뉴를 살펴보며 5분쯤 지났을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면서 연분홍색 셔츠를 입은 이미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왔구나. 여기 앉아.”

이미아는 유지한의 앞쪽에 앉았다.

유지한은 그녀가 입은 셔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선물했던 옷이네?”

“처음으로 입어 봤어.”

“그래?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아니. 아끼는 옷이라서.”

이미아는 손바닥으로 소매를 쓸어내렸다.

매우 비싼 가격의 셔츠는 아니었지만.

유지한에게 선물 받은 순간부터 그것은 그녀의 옷장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네가 먼저 술자리를 제안할 줄은 몰랐네.”

“나도 누구한테 먼저 술 마시자고 한 건 처음이야.”

영웅으로서 활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만 생활하는 이미아였다.

그런 그녀가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술이나 식사를 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뭐 마실래?”

“아무거나.”

“그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주문인데.”

유지한은 직원을 불러서 간단한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날 불렀겠지.”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그녀가 먼저 술을 먹자고 불렀으니 분명 다른 이유가 존재하리라.

“나, 케로즈에서 나왔어.”

“……정말로?”

“응.”

유지한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접하고 놀랐다.

김현태 파티에서 아주 막중한 역할을 담당했던 전사 이미아.

꾸준하게 명성을 쌓았던 그녀가 파티와 길드를 완전히 떠나버렸다는 건.

당장 뉴스에 오른다면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김현태의 행동에 질린 나머지 한 차례 탈퇴를 권하긴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금방 떠날 줄이야.

“혹시 나 때문인가?”

“아니야. 예전부터 혼자 생각은 했었으니까.”

“박중섭 길드장은 뭐래?”

“반대하더라.”

능력 있는 영웅이 나가겠다는 걸 박중섭이 가만두고 볼 리는 없었다.

뭐든 간에 막으려고 시도했을 터.

“그래서 조건을 달고 나오기로 했어.”

“어떤 조건?”

“계약금의 절반은 반납하고, 4년 동안 다른 길드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거.”

“……!”

케로즈를 제외한 다른 길드에서의 활동을 아예 막아버리는 조건.

남은 계약 기간만큼이라도 이미아가 케로즈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그걸 받아들였어?”

“응.”

이미아는 그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만큼 케로즈를 떠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었다.

유지한은 테이블로 도착한 술을 그녀에게 따라주며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있고?”

“…….”

“뒷일은 전혀 생각 안 하고 나왔구나.”

한번 결정한 이상 그 후의 일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하여간 앞만 보고 돌진하는 성격다웠다.

그게 조금 부끄러웠는지 이미아는 말없이 술잔에 든 술을 들이켰다.

“달다.”

“과실주야. 너 단 거 좋아하잖아.”

“응. 마음에 들어.”

유지한은 술을 홀짝이는 이미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가 이미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이상 결정을 뒤엎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4년간 다른 길드에 들어갈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니.

이미아가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직접 길드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얘가 길드 관리를 할 수 있을까.’

길드장에게는 생각보다 주어지는 잡일이 많다.

길드 창설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서류 업무들을.

이미아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한 병 더.”

“벌써 다 마셨어?”

추가 주문으로 테이블 위에 여러 개의 술병이 놓였다.

의외로 음식보다 술에 더 집중하는 이미아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며 2시간쯤 흘렀을 때.

“나 안 취했어.”

“그래.”

“나 안 취했어.”

“알았어.”

“나 안 취해더.”

“……왜 벽을 보고 얘기하냐.”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미아와 함께 유지한이 술집을 나섰다.

그는 나오기 직전에 자신을 수상하게 쳐다보던 직원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름이 알려진 남자 영웅이 홀로 술에 취한 여성을 데리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신기해서 시켜본 술이었는데.’

오직 3급 이상의 영웅들만 주문할 수 있다는 술.

마력 때문에 잘 취하지 않는 영웅들을 위해 몬스터에게서 추출한 독을 소량 첨가했다는 술이었다.

그걸 혼자서 7병 정도 마시자 이미아에게 취기가 올라왔다.

“그만 가자.”

“더 마시고 싶어.”

“다음에 마셔.”

“다음에도 만나줄 거야?”

“네가 원한다면.”

다음을 기약하는 말에 조금 얌전해졌다.

유지한은 그녀를 부축하며 택시에 탑승했다.

혼자 보내려니 마음에 조금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 근처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렸을 때.

탁!

유지한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넘어질 뻔한 이미아를 붙잡았다.

이미아라는 대단한 영웅이 이 정도로 무력해지다니.

술에 포함된 독의 농도가 상당히 진했던 모양이었다.

“업혀.”

유지한은 쭈그려 앉아 이미아에게 등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얌전히 유지한의 등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터벅터벅.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작은 조명들이 비추는 가운데.

유지한은 이미아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유지한.”

이미아가 유지한의 귀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나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7년 넘게 영웅으로서 앞만 보며 달려온 입장.

하지만 아직 30살조차 되지 않은 젊은 나이.

길드를 뛰쳐나온 이미아는 앞으로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유지한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네가 계속 활동하려면 길드를 만드는 방법밖에 없겠지.”

“…….”

“길드를 만들 거면 서류 업무는 사람을 고용해서라도 맡겨둬. 여러모로 귀찮아질 테니까.”

유지한은 고민하는 이미아에게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여러 조언을 건넸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도 꿀잼으로 가고 싶어.”

“진심이야?”

“응. 필요하다면 몸값을 낮춰서라도.”

“……!”

같은 길드로 들어가고 싶다는 말을 듣고 유지한은 자리에 멈춰섰다.

스스로 몸값까지 낮추겠다면 장난삼아 던지는 말은 아닐 테지.

어쩌면 인재가 넝쿨째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

술자리에서 그녀의 계약 해제 조건을 전해 들었던 유지한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일단 1인 길드를 만들어.”

“하지만…….”

“그 뒤에 꿀잼에서 네 길드의 지분을 조금씩 인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

쿵!

현관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온 이미아는 신발을 가볍게 벗어 던졌다.

이내 거실로 이동하는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단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 넘어질 뻔한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든 모습.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빠진 적이 없었다.

“……들켰으려나?”

술에 취해있던 건 딱 술집을 나서기 직전까지였다.

유지한이라면 미숙한 연기를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미아였다.

아무리 그와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다지만 배우처럼 연기를 할 줄이야.

술의 힘을 빌렸다지만, 홧김에 나온 행동치고는 과감했다.

‘나도 백수구나.’

몇 년 만에 백수가 되어버린 그녀였다.

그녀는 유지한을 위해서 유지한을 포기했었지만.

그가 떠난 김현태 파티는 성장은 정체되고 전에 없던 실수만 늘어나는 조직이 돼버렸으니.

다소 무리한 조건을 감수하더라도 나오게 된 것이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일이 잘 풀려 그녀가 유지한의 동료가 된다고 한들.

모든 것이 과거와 같아질 수는 없을 터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으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이미아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의 근처에 유지한이 있다는 것.

단지 그거 하나면 되었다.

그 외의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

다음 날.

이미아가 김현태 파티를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그녀는 자신만의 1인 길드를 설립했다.

유명 파티에서 이탈자가 나오는 건 드문 일인 만큼 그녀가 탈퇴하게 된 배경에 상당한 관심이 모여들었지만…….

[저희 케로즈에서는 영웅 이미아 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케로즈는 이미아의 탈퇴가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걸 강조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미아는 그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동맹이 생겼군.’

동맹은 길드와 길드 사이에 아주 긴밀한 교류를 약속하며 맺는 협약.

김시후의 꿀잼과 이미아의 길드 ‘미아’는 서로 동맹 계약을 맺기로 했다.

이로써 두 길드가 함께 행동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될 리는 없을 터.

‘케로즈는 이 동맹을 막지 못해.’

케로즈가 두 길드의 동맹에 간섭할 가능성은 적었다.

계약 해제 조건을 위반한 것이 아닐뿐더러 평소 길드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박중섭이라면.

떠나간 길드원을 핍박한다는 이미지가 생기는 걸 원하지 않을 테니까.

“좋은 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건 별거 아니죠.

이미아의 서류 업무를 대신할 사람은 몬스터 처리 업체 몽땅의 소개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일은 어떠세요?”

—어휴, 일일 알바까지 고용하며 처리 중입니다.

몽땅의 장사임은 유지한 파티가 참여했던 원정의 뒷수습에 참여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수도 많고 새롭게 등장한 개체도 있는 덕분에 처리가 쉽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유지한 파티가 워낙 여러 지역을 많이 오간 덕분에.

그들의 대리인을 맡은 장사임은 쉴 새 없이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꿀잼의 대리인이라는 걸 알리니까 세상 편하더라고요! 다들 좋은 물건만 넘겨주시고.

급격하게 상승한 인지도는 몬스터 처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같은 몬스터 사체를 수거하더라도 상태가 좋은 것만을 가져가도록 주변에서 배려해주는 것이었다.

“한동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맡겨두세요.

장사임과의 연락을 끊은 유지한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영웅부의 양지철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승급할 수도 있을 것 같네.’

원정에 참여해서 활약했던 파티에게 주어질 보상안.

그중에는 몇몇 파티의 파격적인 승급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양지철이 그런 소식을 직접 전해준 것을 보면 유지한 파티 또한 그 후보군에 들어가 있을 터.

‘원정의 여파가 크긴 크다.’

파티의 인지도가 대폭 상승하고 드리미움을 손에 얻었을뿐더러.

김현태 파티에서 탈퇴한 이미아와 동맹을 맺기까지.

이번 원정이 끝나자 그의 주변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음?”

그때 유지한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연락처에 저장하지 않은 번호는 수신을 거부해두었기에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보낸 것일 터.

“기자님이구나.”

이따금 인터뷰를 진행하며 인연을 맺었던 기자 이완이 보낸 메시지였다.

그런데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했을 때.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한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김현태 파티에 계셨던 유지한 씨.]

유지한은 석고상처럼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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