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술자리
손에 마이크를 든 기자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는 여수입니다. 대한민국을 충격 속으로 빠뜨렸던 테러가 어느덧 마무리된 현재…….”
기자가 한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커다란 카메라가 그를 따라 천천히 회전했다.
망가진 건물과 도로가 가득한 지역이 그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혈흔과 몬스터의 흔적들은 그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짐작게 했다.
아직까진 지역 곳곳이 통제되고 있지만.
언론사의 기자들과 해당 지역 거주민들을 포함한 이들의 출입이 가능해질 정도로는 안전이 확보된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이번 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을 위해 생활비와 보급품 따위를 지급하며 사후 처리에 힘썼다.
“여기 맞죠?”
“맞네.”
한편, 오랜만에 정장을 착용한 유지한은 파티원들과 함께 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원정 도중에 사망한 영웅들의 합동 장례식이 치러지는 곳이었다.
“여기서는 떠들면 안 돼.”
“찍! 얌전히 있겠다.”
칠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녀석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은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게!
실프와 칠라에게 주의사항을 전한 유지한은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가장 커다란 분향소 앞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어? 유지한 파티다.”
“카메라! 카메라!”
모습을 드러낸 유지한 파티의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기자들.
원정에서의 활약과 여전히 높은 조회수를 유지 중인 영웅 영화 덕분에 주목받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아직 어느 곳에서도 공식적인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은 탓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다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들에게 사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생각한 것보다 사망자가 많았어.’
영웅들의 사진 앞에 하얀 꽃을 올려둔 유지한은 그들의 사진을 살폈다.
듣기로는 대부분이 여수 외의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했던가.
그가 원정대장으로 참여했던 여수에서만 유독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헌화를 마친 유지한은 사람이 적은 구석으로 빠진 뒤 박재경을 바라봤다.
그녀는 사망한 길드원의 유족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부 다 제 불찰입니다.”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며 사과하는 박재경.
울먹거리던 유족이 자리를 뜨자 한숨을 길게 내쉬던 그녀는 이내 유지한을 발견했다.
“아! 와주셨군요.”
“재경 씨가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 자리니까요.”
거대 길드의 부길드장이라는 자리.
길드장 윤도하가 자리를 비워버린 지금.
그녀는 조직의 가장 윗사람으로서 행동하고 있었다.
“유지한 파티다.”
“유지한 씨!”
그때 한곳에 모여있던 남녀 무리가 유지한 파티를 향해 다가왔다.
유지한은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여수 원정대에서 함께했던 원정대원들이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유지한 씨.”
“정말로 시후 씨 마법 덕분에 살았습니다!”
“유리 씨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쯤…….”
그들은 유지한 파티에게 도움받았던 순간을 언급하며 감사를 전했다.
정말로 죽을 뻔했던 상황에서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았던 건 겨우 1번에서 2번 정도였지만.
그 작은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이 장례식장에서 꽃을 받는 처지가 되었으리라.
“뭐야? 누가 왔나?”
“유지한 파티구나.”
유지한의 근처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전부 다 유지한 파티를 알아보는 모양새였다.
사실상 이번 원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파티가 되어버렸으니.
합동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 중 그들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별로 좋지 않은데.’
유명세를 얻은 파티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장소에 어울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에 유지한은 주변의 양해를 구하며 밖으로 나섰다.
“유지한 파티!”
“좀 봐주세요!”
장례식장 건물을 빠져나오는 유지한 파티에게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하지만 힘으로 영웅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으니.
차를 타고 떠나는 유지한 파티를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시후야.”
“네, 형.”
보조석에 앉은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말했다.
“네 종족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이제껏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김시후의 종족.
하지만 그와 같은 영웅 학원에 다녔던 동창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종족과 관련된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곧 공개해야죠.”
김시후의 태도는 의연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공개할 정보였으니까.
이미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찍찍! 나도 마음껏 말하고 싶다!”
“그건 고민 좀 해보고.”
*****
케로즈의 대표, 박중섭이 머무는 사장실.
그의 책상 위에 하얀색 편지 봉투가 놓였다.
업무 처리를 위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박중섭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정지했다.
“이게 뭐야?”
“사직서예요.”
“……!”
“길드에서 탈퇴하겠습니다.”
편지 봉투에 들어있는 것은 사직서.
박중섭에게 그 사직서를 제출한 인물은 이미아였다.
“미아야. 이게 무슨…….”
“사무실은 어젯밤에 깔끔하게 정리했어요. 대여한 장비는 전부 맡겨뒀으니 알아서 회수하시면 되겠고요.”
“진심이냐?”
“네.”
편지 봉투를 내려다보던 박중섭은 고개를 들어 이미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전히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예상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지금 입으로 뱉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내가 단 한 번도 너한테 못 해준 적은 없을 텐데.”
박중섭은 이미아를 우대했다.
길드의 대표 영웅인 김현태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거대 길드에서 그녀에게 제시할 금액보다 항상 더 큰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길드에서 지낼 때 다른 편의들도 많이 봐주었으니 계약 조건을 따지자면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터.
“돈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계약을 조정해주마.”
“필요 없어요. 이미 파티원들과도 이야기 끝냈으니까.”
“…….”
“원정까지 끝났으니 나가려면 지금이 적기인 것 같아요.”
이미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박중섭은 깨달았다.
그녀가 계약 조건 따위를 바꿔 달라고 시위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케로즈를 떠나겠다 말하는 것이라고.
“왜 케로즈를 떠나겠다는 거야?”
“마음에 안 들어요.”
“뭐?”
“파티도, 길드도 전부 마음에 안 든다고요.”
“남부럽지 않은 조건이었잖아?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데?”
“항상 멋대로 행동하는 김현태도 마음에 안 들고, 새로 들어온 김강우도 별로고…….”
“강우는 줄곧 잘 하잖아?”
“아뇨. 줄곧 못했죠.”
박중섭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내 앞으로 올라온 보고서에는 분명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결국 서류일 뿐이죠. 현장에서 함께했던 제 눈보다 정확할 수 없어요.”
아무리 보고서 따위를 상세하게 작성한다고 한들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 못하다.
그렇게 말하는 이미아를 보며 박중섭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뭘 모르고 하는 말이야. 강우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똑똑했는데? 현태도 나한테 아주 쓸만한 놈이라고 말했어.”
“그건 제 알 바 아니고요.”
“후우…….”
시니컬한 이미아의 태도.
한숨을 내쉰 박중섭은 활짝 펼쳐져 있던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는 편지 봉투에서 사직서를 꺼내며 말했다.
“미아야.”
“네.”
“너 내가 너희 아버님 치료해드린 건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해요.”
이미아가 케로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추락 사고로 큰 상처를 입어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박중섭은 그를 치료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서 그 당시 아주 유명했던 힐러를 섭외했었고.
신체 회복에 효과가 좋다는 영약들을 구해 전문가들의 조언까지 구해가며 그의 몸에 투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그녀의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집안 형편이 아주 넉넉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돈을 벌기 전이었던 과거의 이미아로서는 아주 큰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그때의 은혜를 저버릴 셈이냐?”
“길드장님은 제가 은혜를 저버렸다고 생각하세요?”
“…….”
“케로즈의 성장에 들어간 제 기여도는 결코 적지 않아요.”
박중섭은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도시 외곽의 작은 사무실을 임대해서 사용하던 길드가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중견 길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단연코 김현태 파티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 파티에서 활동한 이미아라면 충분히 저런 말을 뱉을 자격이 있었다.
“……하나 물어보자.”
“말씀하세요.”
“유지한이 부추긴 거야?”
원정 도중에 마주쳤다던 유지한 파티.
먼저 케로즈에서 떠났던 그놈이라면.
친분이 있는 이미아의 탈퇴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전혀 관계없어요.”
“…….”
“다른 사람의 말 듣고 이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아요.”
박중섭은 사직서를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미아의 탈퇴를 막을 수는 없을 듯싶었다.
“알다시피 너와의 계약 기간은 4년이 더 넘게 남아 있어.”
“알아요.”
“나로서는 널 보내주고 싶지 않으니까……. 네가 정말로 떠나길 원한다면 몇 가지 조건을 달아야겠다.”
*****
유지한은 실프와 함께 꿀잼의 공방을 찾았다.
공방에서 상주하는 남호열은 여전히 드리미움 연구에 한창이었다.
“오늘은 좀 어때요?”
“똑같습니다.”
“흐음.”
유지한은 오늘도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 드리미움을 바라봤다.
겉모양은 처음 받았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 내부에 깃든 마력의 양은 분명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우히! 간식 먹을 시간인가?
실프가 드리미움의 신비한 마력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양은 많지 않아도 며칠에 걸쳐서 계속 방문하고 있는 만큼.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분명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걸로도 실프가 성장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드리미움의 마력을 흡수하는 행위는 드리미움의 변화 이전에 실프의 변화를 가져왔다.
실프의 몸을 구성하는 마력의 농도가 진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결정을 흡수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현상.
작은 구슬 정도로 몸을 작게 줄일 수 있었던 실프는 이제 완두콩보다 작은 크기가 될 수 있었다.
—칠라보다 커질 수도 있다고!
“그래서?”
—이제 내가 파티에서 가장 크다! 우히히!
“적에게 공격당할 부위가 더 커진다는 거지?”
—엥?
둥글둥글한 몸을 크게 부풀리던 실프가 멈칫했다.
—하, 하지만 칠라보다 커질 수 있는데!
“공격당하고 싶어? 역소환 맛 좀 볼래?”
—따흐흑…….
힘없이 탁자로 내려간 실프가 드리미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금속에 잠재된 마력이 천천히 실프에게 흘러가던 그 순간.
유지한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나야.
전화를 건 사람은 이미아였다.
인사를 건네고 머뭇거리던 그녀가 유지한에게 말했다.
—오늘 밤에 술 한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