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귀환 (6)
연락을 받은 유지한과 김시후는 황급히 칠라가 치료 중인 곳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귀를 쫑긋거리는 칠라가 그들을 반겼다.
“찍! 우리의 친구들이 왔다!”
“정말로 말을 하네?”
“유리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찍찍!”
눈을 뜨자마자 고개를 돌려가며 적들을 찾아다녔다는 칠라.
녀석이 쓰러졌던 순간이 해남에서 이세계인들과 대치하던 중이었던 만큼 거기까지는 이해가 갔지만.
그 직후 칠라의 입에서 한국어가 들려온 바람에 민유리는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하다니.’
과거를 통틀어 아예 전례가 없는 사례였다.
게다가 녀석의 발음은 교육받은 초등학생의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능숙했다.
주인인 민유리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의사소통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것이었다.
어색한 발걸음으로 칠라에게 다가간 김시후가 말했다.
“칠라. 날 알아보겠어?”
“이상한 나뭇가지를 들고 다니는 친구!”
“이, 이상한 나뭇가지라고?”
“맞다! 찍!”
칠라는 플로른을 가리켜 이상한 나뭇가지라고 불렀다.
그에 김시후는 조금 발끈했다.
“야! 이게 얼마나 좋은 건데.”
“더 좋은 게 필요하면 말해라. 내가 저기 있는 산에서도 주워올 수 있으니!”
“유리 누나……. 안타깝지만 지능은 전혀 상승하지 않았나 봐요.”
“찍찍? 지금 날 모욕하는 건가?”
유지한은 김시후와 칠라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봤다.
말문이 활짝 트인 칠라는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의사소통을 할 수 없던 때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그 약물을 흡수한 덕분인가.’
몬스터를 돌연변이로 바꿀 수 있다는 초코우유.
호흡을 통해 소량의 약물을 흡수한 칠라가 돌연변이로 변해버렸다면.
지금 같은 극적인 변화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다만 일반적인 돌연변이처럼 신체의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고.
언어 능력만 더해졌다는 게 특이한 점이었다.
“나도 알아볼 수 있겠네.”
“찍! 우리의 대장!”
“……대장?”
“언제나 앞장서는 대장이다! 찍찍!”
은근히 신경 쓰이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칠라는 확실히 유지한을 이 그룹의 우두머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장은 고기를 맛있게 구워준다!”
“그것도 기억하고 있어?”
“찍찍! 아주 맛있었다!”
“다음에 더 구워줄게.”
리조트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던 때의 기억.
그다지 강렬한 순간이 아니었음에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칠라는 장기 기억력도 은근히 뛰어난 편인 것 같았다.
‘기본 상식부터 가르칠 필요는 없겠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유아보다는 다루기가 훨씬 편해 보였다.
“시후야. 칠라 몸 한번 체크해봐.”
“네.”
김시후는 칠라의 배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원정에 나가 있던 탓인지 조금은 뻣뻣해진 털의 감촉이 그의 손을 감쌌다.
“찍찍. 뭐 하는 거냐?”
“가만히 있어 봐.”
눈을 감고 손바닥에 마력을 집중하는 김시후.
잠시 후 그가 눈을 뜨며 말했다.
“몸에 마력이 자리 잡았어요.”
“역시 그렇구나.”
“그것도 덩치가 커서 그런지 양이 상당해요.”
“어느 정도로?”
“제가 영웅 학원을 막 졸업했을 때보다 더 많아요.”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력이 아예 없거나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양이 적었던 과거와 달리.
칠라의 몸에는 어지간한 영웅과 비슷한 마력이 존재하게 되었다.
약물이 흡수되었다는 가정이 확실해진 것이었다.
—칠라! 축하해!
“찍! 너도 축하한다!”
—널 내 동생으로 인정할게.
“왜 내가 동생이냐? 찍?”
—나보다 말을 늦게 했으니까!
“찍찍! 분하다!”
실프와 칠라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서로를 축하했다.
이로써 유지한 파티에서 말 못 하는 생명체는 없어진 셈이었다.
앞으로는 더 복잡하고도 긴밀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 터.
“이거 아무래도 숨길 수는 없겠죠.”
“무리지. 저 덩치와 말투는 티가 너무 많이 나잖아.”
“찍찍?”
“더 시끄러워지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목이 쏠리는 상황에 말하는 펫까지 등장했으니.
기자들에게 더 많이 시달릴 위기에 처할 듯싶었다.
*****
유지한은 드리미움이 든 상자를 들고 꿀잼의 공방으로 향했다.
품속 주머니에는 크기를 줄인 실프가 숨어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지?”
—없어.
“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줘.”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야.”
유지한은 상자를 보물단지처럼 껴안고 있었다.
누구든 드리미움을 건드리려거든 사악한 적으로 간주할 것이었다.
땅! 땅! 땅!
공방과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망치 소리.
공방으로 출근한 남호열이 그곳에서 개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호열 씨!”
“어이쿠! 굉장한 유명인이 오셨군요.”
“호열 씨까지 그럴 거예요?”
“하하……. 지한 씨 얼굴이 뉴스 1면에 나오니까 괜히 낯설어져서요.”
남호열은 손등으로 코를 문질렀다.
그는 유지한 파티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유명한 파티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유명세를 얻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호열 씨도 언급되는 거 알고는 있어요?”
“어? 제가요?”
“그럼요. 엄연히 길드원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길드원 명단은 아직 외부에 공개된 적 없잖아요.”
“유독 그런 정보만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기한 사람들일세.”
“주사위의 박재경 씨에게는 인사드렸다고 했죠?”
“네! 보호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잠시 남호열과 잡담을 나누던 유지한은 책상에 상자를 올려두었다.
남호열은 그것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게 말씀하신 물건인가요? 영웅부에서 선물로 줬다는?”
“맞아요.”
“대체 뭘 받으신 건가요? 전화로는 말씀도 안 해주시고.”
“뭘 받았을 것 같아요?”
“귀한 소재라고 하셨으니까, 원가가 아무리 못해도 억은 넘어가는 거겠죠.”
“글쎄요.”
드리미움은 아직 경매장에 출품된 적이 없었다.
정확한 가격을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번 보시죠.”
“네.”
남호열이 상자의 덮개를 열어 재꼈다.
뒤이어 드리미움의 신비로운 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건 뭡니까?”
남호열은 손으로 덮개를 들어 올린 채 몸이 굳어버렸다.
딱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장장이의 직감이라고 말해도 좋았다.
“평소에 소재들을 많이 찾아보신다고 하셨죠.”
“그렇긴 한데…….”
“그러면 이게 뭔지 알고 있겠네요.”
“제가 알기로 이런 건 드리미움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정답.”
“히이이이익—!!”
꿈의 금속이 바로 눈앞에 있다니!
숨을 집어삼킨 남호열은 저도 모르게 상자의 덮개를 닫아버렸다.
그의 등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이, 이게 드리미움이라고요? 대체 어떻게 가져오신 겁니까?!”
“말했잖아요. 받았다고.”
“훔쳐오신 게 아니고요?”
“그걸 어떻게 훔쳐와요.”
“하지만……!”
“싫으면 주세요. 도로 반납하게.”
탁!
유지한이 상자 쪽으로 팔을 뻗자 남호열은 상자를 자기 몸쪽으로 잡아당겼다.
그에 유지한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좋으면서 괜히 그러시네.”
“크흠흠!”
“드리미움으로 1년 안에 장비를 만든다면 소유권을 온전히 가져가도 좋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정말로요?”
“예. 그런데 잘난 척하면서 가져오긴 했지만 다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저도 말로만 들어봤던 터라…….”
실력이 정점에 달하는 대장장이들도 양손 들고 포기해버린 금속.
남호열은 유지한의 요청에 머뭇머뭇하며 다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드리미움을 꺼내는데.
“제법 묵직하군요.”
“어? 그럴 리가요.”
고개를 갸웃거린 유지한은 다시 드리미움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정말로 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크기의 강철보다 더 무거운 정도였다.
‘무게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금속인가?’
유지한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드리미움을 내려놓았다.
이내 남호열이 망치를 들고서 드리미움을 가리켰다.
“잠깐 테스트 좀 해보겠습니다.”
말로만 듣던 소문을 확인해보고자 드리미움을 향해 힘차게 휘둘러지는 망치.
잠시 후 놀라운 결과가 펼쳐졌다.
까앙—!!
“억!”
망치를 휘두른 힘 이상으로 돌아온 반발력에 남호열의 팔이 뒤로 확 꺾여버리는 것이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지한은 그가 다치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괜찮으세요?”
“이, 이럴 수가.”
남호열은 끝까지 쥐고 있던 망치를 놓았다.
단단한 나무로 제작된 망치의 손잡이에는 자그마한 균열이 생겨 있었다.
반면 망치로 때린 드리미움에는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에 유지한은 실눈을 뜨며 말했다.
“쉽지 않겠군요.”
“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인지…….”
아주 높은 열로 달군다고 해도 약간의 변형조차 일어나지 않는다고 알려지니.
평범한 장비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저 까탈스러운 금속을 다룰 수 없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저걸 포기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호열 씨가 다칠 수도 있다면 그만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고 한들.
남호열의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장비 제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뇨!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해볼게요.”
“괜찮겠어요?”
“믿어주세요! 나중에 또 어디서 이런 기회를 얻겠어요?”
남호열은 드리미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소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한, 지한.
“왜?”
—나 부탁이 있어.
“갑자기 부탁이라니?”
실프는 드리미움 위쪽으로 날아갔다.
—이거 내가 먹으면 안 될까?
“야! 그건 마석 같은 게 아니잖아.”
지금까지 실프가 흡수함으로써 유지한에게 기억을 보여주었던 건.
전부 누군가의 마력이 담긴 마석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금속 덩어리는 다르다.
마력을 품고 있긴 하나 용도가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쓰으읍, 아주 군침이 도는 마력이야.
“네가 침도 흘릴 줄 알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간들이 자주 쓰는 표현 아니야?
드리미움에 담긴 마력을 탐내는 실프.
하지만 유지한은 단번에 허락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두 번 다시 얻지 못하는 물건일 수도 있었으니까.
—이 드리미움이라는 게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원하는 건 마력뿐이니까!
드리미움에 깃든 마력만을 가져가겠다는 실프였다.
팔짱을 낀 유지한이 남호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지한도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건이 사라지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것에 합의한 것이었다.
“허락한다.”
—정말? 정말로?
“먹어치워.”
—우히! 잘 먹겠습니다!
*****
“그러니까, 케로즈의 박중섭 대표가 내린 지시라는 거죠?”
“네. 그것도 뇌물이었죠.”
“흐음…….”
“초기에는 돈을 엄청 뿌렸어요. 케로즈의 검은돈 중 절반 이상은 그런 용도로 나갔을걸요.”
작은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폐쇄된 공간.
영웅일보의 기자 이완은 볼펜으로 메모지에 인터뷰 내용을 기록했다.
그걸 지켜보던 맞은편의 남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진짜 익명으로 나오는 거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신상 밝혀지면 정말 큰일 나요! 박중섭 대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
“만에 하나라도 정보가 새어나간다면, 저희 영웅일보에서 철저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이완은 불안해하는 남자를 최대한 안심시켰다.
오늘의 인터뷰 대상인 그는 케로즈에서 4년 정도 일하다가 퇴사한 직원.
아는 지인의 지인의 지인으로 정말 우연히 연락이 닿은 사람이었다.
계속 만남을 거절하는 걸 우여곡절 끝에 데려와서 익명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구린내가 많이 나는군.’
같은 시기에 창설됐던 길드와 비교해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했던 케로즈.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외부에는 밝혀지지 않은 케로즈의 뒷얘기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었다.
정부 기관과 몇몇 언론사에 뇌물을 제공했던 것은 기본이고.
케로즈와 비교 대상에 오르는 다른 길드가 평가 절하되도록 손을 쓴 정황도 적지 않았다.
“김현태 파티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할 말은 꽤 있죠. 김현태의 더러운 성격이라든지,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알려진 임시연이 얼마나 문란한 사람인지…….”
“그런 가십거리도 좋긴 한데, 저는 그들과 자주 함께했던 한 인물이 궁금합니다.”`
“혹시 맨날 가방 메고 얼굴 가리고 다녔던 그 사람이요?”
“맞아요! 그 사람!”
쿵!
이완은 책상을 내려치며 말했다.
“혹시 그 사람……. 꿀잼의 유지한이 아닙니까?”
원정으로 유지한 파티에게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이 의문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참으로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