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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05화 (205/300)

205화. 귀환 (5)

“거의 20년 만이군.”

“벌써 그렇게 됐네요.”

조두진과 한서인.

한때 현역 영웅과 군인이라는 관계로 마주했던 그들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이 자리에서 재회했다.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어.”

조두진은 한서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코 옆에 선명한 팔자주름과 약간의 목주름.

군데군데 하얗게 물든 머리칼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노화의 증거였다.

다만 특수부대의 군인이었던 그녀의 강렬한 기백만은 그대로였기에.

기억 속의 여군과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뉴스에서 보던 것보다 더 늙으셨어요.”

“너도 많이 늙었어.”

“저와 달리 그쪽은 영웅이잖아요.”

“보다시피 몸 상태가 처참해서 말이야.”

영웅들은 나이가 들더라도 육체의 노화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40대의 나이에 20대의 육체와 외모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조두진은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혹은 더 노화된 외모를 보유했다.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훌륭한 조카를 뒀어. 내 앞에서 전혀 떨지도 않고.”

“제 연락처는 지한이를 통해 알아낸 건가요?”

“아니. 이번에 그의 신상을 알아보다가 가족 중에 네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

조두진이 한서인을 발견한 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아주 당돌한 요청을 했던 유지한을 조사하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네가 은퇴를 한 이유는 유지한을 키우기 위해서였나?”

“……부정하진 않을게요.”

주변 동료나 상관으로부터 신임받는 군인이었던 한서인.

그녀는 평소 파견이나 출장이 매우 잦은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아이를 기른다는 건 다소 어려운 일에 속했다.

심지어 그 아이가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면.

여러 방면에서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의 곁을 너무 오래 비워둘 수 없었다.

“천직에 가까운 직업을 버리면서까지 부모를 잃은 조카를 거둔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어.”

“지한이를 보육원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마력을 가졌으니 입양을 원하는 이들이 꽤 많았을 텐데?”

“그것도 싫었어요. 오빠랑 약속한 게 있었으니까.”

한서인의 이복 오빠이자 유지한의 아버지였던 남자.

서로 어머니가 달랐음에도 어릴 때부터 한서인을 친동생처럼 아껴주었던 그가 평소 습관처럼 했던 말.

——혹시 내가 나중에 잘못되면 네가 지한이를 지켜줘.

그의 말은 그가 실제로 부인과 함께 MA에서 사라져버린 뒤.

한서인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지?”

“농산물 유통하는 쪽에서 일해요. 그전에는 다른 일도 했었지만, 자세히 들어봤자 재미는 없을 거고요.”

“그 쌀쌀맞던 여자와는 어울리지 않는군.”

“뭘 해도 군인보다는 편하더라고요.”

“…….”

조두진은 한서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 듯하면서도, 어떤 면으로는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때 일은 미안하다.”

“뭐가요.”

“네 오빠 부부를 구하지 못해서.”

“……또 그 이야기다.”

한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때도 사과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사실이니까.”

“됐어요. 그쪽이 저지른 잘못도 아니고.”

유지한의 부모님이 휘말린 MA에는 예외적으로 조두진이 직접 나섰었다.

하지만 끝내 그들의 혈흔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고작 그거 이야기하려고 절 불렀어요?”

“아니야. 오랜만에 이름을 보고서 반가웠던 거지.”

“…….”

“아들 같은 조카가 유명인이 된 기분은 어때?”

“글쎄요. 딱히 달라질 건 없어요.”

지금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유지한 파티의 뉴스들.

그들이 공개한 영웅 영화는 글로벌 인기 순위 1위에 올라 세계적으로도 얼굴과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영웅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인지도를 보유하게 된 셈이었다.

“네가 직접 훈련시킨 건가?”

“기본적인 것들은 어릴 때부터 가르쳤죠. 뭐, 엄밀히 따지자면 지한이가 유명해진 건 제 덕도 있겠네요.”

평범한 군인의 몸으로도 몬스터를 수없이 사냥했었던 한서인.

유지한이 지금의 전투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녀의 노력도 있었다.

“나중에 책이라도 한번 써보는 게 어때? 조카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적는다면 상당히 잘 팔릴 거 같구만.”

“돈이 궁해지면 고려해볼게요.”

한서인은 오랜만에 만난 조두진과 잡담을 나누다가 응접실을 떠났다.

조두진은 한동안 그녀가 닫고 나간 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그에게 말했다.

“장관님. 실례지만 저분과 어떤 관계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 사람, 한때 내 경호를 맡았던 사람이야.”

“평범한 여군이 장관님의 경호를요?”

“과거의 영웅들은 군인과 자주 함께해야 하는 규칙 같은 게 있었거든. 아마 지금도 비슷한 규칙이 몇 개는 남아있을 거야. 그리고 저 한서인이라는 여자는 마력이 없어도 아주 잘 싸웠어. 어지간한 영웅들의 뺨을 때리는 수준이었지. 듣기로는 특수부대에서도 손꼽히던 인재라고 했었나.”

“그렇군요.”

“그리고…….”

조두진은 마지막에 말끝을 흐렸다.

다른 이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좋아했던 여자였는데 말이야.’

오빠를 잃어버린 그녀가 눈물을 흘리게 되었을 때.

나만 믿으라며 자신 있게 나섰음에도 그를 구하지 못했던 조두진은 죄책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녀를 안아주었다면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유지한의 어머니와 관련된 정보는 알아냈나?”

“찾긴 찾았습니다만…….”

“왜 그러지?”

“유지한 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조두진은 비서가 들려주는 내용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

“호오……!”

김시후는 상자를 열어서 드리미움을 구경했다.

수많은 국가에서 한국 측에 값비싼 금액으로 구매 요청을 걸어오더라도 전부 무시했던 특수한 금속.

공식적으로는 세계에 단 5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 눈앞에 있었다.

“무생물에게서 이렇게 고밀도의 마력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에요.”

“플로른과 비교하면 어때?”

최고의 아티팩트 소재로 꼽히는 플로른.

김시후는 그 플로른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보유하고 있으니 차이점을 더 잘 알 수 있을 터.

“플로른과는 느낌이 전혀 달라요!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건 아니고, 드리미움이 훨씬 더 차갑고 묵직함이 있달까…….”

“아무래도 금속이니까 그렇겠지.”

“재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에요.”

“나도 만져볼래.”

민유리는 손바닥으로 드리미움을 쓰다듬었다.

드리미움의 외형은 눈으로 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 같은 매력이 있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 같은 장소에 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무게가 있긴 한 건가?”

김시후는 드리미움이 담긴 상자를 위로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대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상자의 무게 외에는 전혀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런데 괴력의 영웅이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으로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여러모로 신비한 물건이었다.

“형. 이걸로 뭘 만드시려고요?”

“내 검과 유리 씨의 활. 그리고 네가 쓸 장신구도 있으면 좋겠지.”

부러져버린 민유리의 활은 어차피 새로 제작해야 할 테고.

횟수가 제한된 스킬을 모두 사용한 유지한의 아티팩트도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김현태와의 대립에서 장비의 수준 차이를 체감했던 것도 한몫했다.

칼날에 오러를 두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민유리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호열 씨가 정말로 이걸 다룰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네?”

민유리는 조금 황당해했다.

대놓고 드리미움을 요청했던 유지한이 자신 없는 대답을 하다니.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온 김에 제일 좋은 보상으로 받고 싶었거든요.”

“흠…….”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천천히 생각해보죠.”

“알겠어요.”

김시후에게 상자를 맡긴 유지한은 동료들과 헤어져 다른 길로 향했다.

“아, 지한 씨.”

“오셨습니까.”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서 영웅부의 영웅 방윤식과 양지철이 그를 맞이했다.

“함께 오신 동료분들은요?”

“데려올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먼저 보냈습니다. 저 혼자 이동할게요.”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유지한은 두 사람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만 입장할 수 있게끔 설계된 그곳은.

영웅부에 존재하는 구금 시설이었다.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이래 보여도 최신 기술로 지어진 시설입니다. 공기도 바깥보다 훨씬 깨끗하게 관리되고요.”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복도를 가로질러.

세 사람은 제리와 아뎀이 구금된 방에 도달했다.

지잉!

양지철이 버튼을 누르자 한순간에 벽 전체가 유리처럼 투명해지며 내부를 비췄다.

“우앗! 자기 왔어?”

쿵!

죄수 같은 복장을 한 제리는 투명해진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손목에 억제력이 강한 마력 수갑이 달려 있어 난동을 부리지는 못할듯했다.

실실 웃는 그녀를 지켜보던 유지한은 그 뒤에 있는 아뎀에게 말했다.

“아뎀. 살아있었구나.”

“덕분에.”

아뎀은 유지한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제리와 함께 선처를 내려준 것에 감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이들과는 별도로 갇혀 있는 이세계인들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함께 잡힌 사람 중에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나?”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줄 건가?”

“가족이라도 있다면 말은 해볼 수 있지.”

“배려는 고맙지만 딱히 그런 사람은 없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일 뿐.

개인적인 친분 관계는 없다시피 한 그들이었다.

“지철 씨. 앞으로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죠?”

“평생 영웅부의 감시를 받긴 할 텐데……. 당장 따로 결정된 사안은 없습니다.”

“연구소로 보내는 걸 검토해주세요.”

“연구소요?”

“아뎀은 몬스터를 조종하는 약물을 제조했었던 이세계인입니다.”

“으음, 한번 검토해보겠습니다.”

아뎀과 더불어 제리도 혼자서 수많은 몬스터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뱀파이어인 카지미르가 연구원이 된 선례가 있는 것처럼.

기존의 연구들에 이세계의 지식이 더해지면 새로운 결과가 만들어지리라.

“제리. 앞으로 사고 치지 말고 살아.”

“그럼 키스해 줄 거야?”

“아직도 그 소리야?”

“츄릅!”

입맛을 다시는 제리를 보며 유지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내가 두 사람한테 듣고 싶은 게 있어.”

“어떤?”

“아제시아의 멸망에 관하여.”

“……!”

아제시아의 멸망이 언급되자 아뎀은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직전까지 여유를 부렸던 제리도 입가에서 웃음을 싹 지우는 모양새였다.

*****

한편, 유지한이 구금소를 방문한 그 시각.

덜그럭!

민유리는 앉고 있던 의자를 뒤로 강하게 밀쳐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눈을 뜬 칠라를 가리켰다.

“찍찍! 그 나쁜 놈들은 다 어딨냐!”

“……왜 네가 말을 해?”

“말이라고? 찍?”

“칠라! 너 지금 한국어를 하잖아!”

“주인이 내 말에 대답하는 건가?”

“세상에……!”

자기 주인과 말이 통한다는 걸 알아챈 칠라가 손을 파닥거렸다.

“찍, 찍찍?! 내가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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