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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00화 (200/300)

200화. 땅끝에서 (6)

10분이 지나도, 15분이 지나도.

차원의 경계로 떠난 대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리우스 님! 뭔가 이상합니다!”

“뭔가 일이 잘못된 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영웅들이 아니라 이세계인들이었다.

“얌전히 기다려!”

“하지만 대장님이!”

계속되는 대장의 부재에 한 여성이 입술을 덜덜 떨었다.

그녀는 여수를 비롯해 각 지역에서 유지한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작디작은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혹시라도 대장이 유지한에게 당해버린다면.

그때는 이 모든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대장님, 대체 언제쯤 돌아오시는 겁니까!’

1초가 무려 1분처럼 느껴지는 인고의 시간.

주변의 동료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리우스마저 조금씩 침착함을 잃었다.

‘고작 그놈에게 대장님이 질 리는 없어.’

대장을 빠르게 회복시키기 위해 제물로 희생된 몬스터의 수만 해도 커다란 운동장을 꽉 채울 만큼 많았다.

상당한 손실을 각오한 베팅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가 대장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아무래도 직접 확인하러 가봐야겠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좋아. 너와 나만 이동하자.”

차원의 경계는 입장 인원이 늘어날수록 내부가 불안정해진다.

정밀한 마력 제어가 필요한 차원 이동에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에 대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빠져 있던 리우스였지만.

예상대로라면 그가 이미 돌아왔어야 하는 시간대를 훌쩍 넘기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슉! 슈욱!

그리하여 입장한 정육면체의 공간.

리우스와 그의 동료는 고개를 돌려가며 대장을 찾았다.

“유, 유지한?!”

“……!”

도착하자마자 찾아낸 것은 대장이 아닌 유지한이었다.

그는 각진 공간의 구석에 서서 리우스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제야 왔군.”

“왜 유지한이 아직도 이곳에……!”

“네, 네 앞에 있는 건 설마!”

리우스는 구석에 처박혀있는 물체를 발견하고서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이 다름 아닌 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장님!!”

“이미 늦었어.”

멀쩡한 곳 하나 없이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힘없이 바닥에 늘어진 몸.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는 이미 살아있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멍든 왼쪽 가슴, 심장 부근에는 선명한 주먹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자국의 크기는 정확히 유지한의 손과 일치했다.

‘대장님이 죽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뜩 구겨져 버린 붉은 중절모.

1급 영웅조차 압도했던 이세계인들의 대장은.

어느새 인간이었던 것으로 변해있었다.

털썩!

리우스의 동료는 그가 죽었다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대장의 죽음에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얼굴이었다.

“네가 어떻게 대장님을…….”

“그러게 평소에 착하게 살았어야지.”

“……제길!”

슉!

리우스는 충격에 빠진 동료를 자리에 남겨놓고 황급히 공간에서 빠져나갔다.

차원의 경계와 지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통로가 뚫렸다는 증거였다.

유지한은 무릎을 꿇은 남자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잡았다.

“히익!”

“너도 여기서 나가는 방법 알고 있지?”

“모, 모르겠는데?”

“몰라도 알아야 할 거야.”

꽈아악!

어깨를 잡은 유지한의 손에 힘이 잔뜩 실리고.

붙잡힌 남자의 표정은 새하얗게 질려갔다.

*****

슉!

“리우스 님!”

“어떻게 됐습니까?!”

“…….”

다시 해남으로 돌아온 리우스는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모두가 대장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차원의 경계로 이동했던 게 리우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리우스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어지럽다.’

머릿속으로 밀려오는 현기증은 그의 착각이 아니리라.

그렇지만 리우스는 최대한 멀쩡한 척 연기하며 영웅들을 노려봤다.

리우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모든 이세계인들의 리더.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아제시아 재건 계획의 대장에 올랐던 남자는 유지한에게 죽었다.

어떻게든 그가 죽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대장이 죽었다는 걸 알려야 하나?’

여기서 대장의 죽음을 인정해버린다면 영웅들의 완승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지구를 이용하여 아제시아를 재건한다는 방대한 계획이.

고작 이렇게도 작은 나라, 한국조차 점령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군.’

리우스가 입에서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어떻게든 참아냈다.

그리고는 유일하게 서 있는 영웅, 이미아를 향해 말했다.

“유지한은 죽었다.”

“……!!”

유지한이 죽었다는 소식에 이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굳게 다문 입술마저 살짝 벌어지는 것이.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역시 대장님이야!”

“거 봐! 기다리면 된다고 했지!”

그와 반대로 이세계인들이 연신 환호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실프가 그야말로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우히히! 우히히히힛!!

“……정령. 왜 웃는 거지?”

—이 멍청아! 내가 계약자의 상태도 모를 것 같아?

절대적인 계약 관계에 놓여있는 실프와 유지한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의 생사를 알 수밖에 없었다.

기존 계약자가 죽으면 정령과의 계약은 자동으로 해지되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이구나.”

—시뻘건 거짓말이래요!

“다행이네.”

실프의 당찬 대답에 이미아는 크게 안도했다.

이내 그녀가 무척 화난 얼굴로 리우스를 쳐다봤다.

“너, 가만 안 둬.”

“…….”

단번에 거짓말이 들통나버린 상황.

리우스의 곁에 있던 이세계인들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움찔! 움찔!

김현태를 비롯해 아직 환각에 빠져 있던 영웅들의 몸은 조금씩 움직였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더라도 사용자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는 법.

대장의 부재로 인해 마법의 효력이 다해가는 것이었다.

“리우스!”

“리우스 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서 대기해!”

리우스는 공중으로 몸을 던져 공간 왜곡의 입구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가 사라지자마자 높은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왔다!

[윈드 밤]

후웅!

땅에 충돌하기 전 마법을 사용하여 안전하게 착륙한 것은.

리우스가 죽었다고 말한 유지한과 그의 손에 붙잡힌 이세계인이었다.

“후우! 좌표 설정을 잘못했네.”

“히이익!”

“유지한이 살아있어!”

“그렇다면 대장님은 대체……?”

유지한은 돌아오자마자 검을 챙긴 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어디에도 리우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아! 그놈 어디 갔어?”

“저쪽으로 들어갔어.”

“오케이. 여긴 부탁한다!”

“맡겨둬.”

슉!

유지한은 리우스를 뒤쫓아 공간 왜곡의 입구로 들어섰다.

하늘로 높게 날아오른 실프도 그와 함께였다.

—지한! 날 두고 가면 어떡해!

“말 안 해도 따라올 거였잖아.”

—그건 그래. 에헤헤!

“이미아는 언제 환각에서 벗어난 거야?”

—내가 도와준 건데?

“호오! 아주 탁월한 선택이네.”

실프가 홀로 남은 상황에 굳이 이미아를 깨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녀만큼 협조적이면서도 단독으로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웅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유지한과 실프가 도착한 장소는 땅끝에 위치한 은신처.

유지한이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서 본 것과 완전히 동일한 구조였다.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는 대충 알 것 같군.’

유지한은 의심이 가는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상당히 복잡하게 지어진 은신처였지만.

‘저기서 왼쪽으로 돌고, 다음은 직진 후 오른쪽.’

그는 아주 잠깐이라도 자리에 멈춰서는 법이 없었다.

*****

리우스는 커다란 벽 앞에서 멈춰섰다.

그 벽 전체에는 난해한 모양의 마법진들이 수없이 새겨져 있었다.

“큭! 예전에는 이걸 우스갯소리로 취급했었는데.”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두루마리 종이들.

전부 벽에 새겨진 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마법 스크롤이었다.

쿵!

리우스는 책장을 무너뜨려 스크롤을 전부 바닥에 늘어놓았다.

“다 해서 1013개쯤인가.”

벽에 새겨진 마법진은 차원 마법과 연결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은 지구에서 이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세계에서 지구로 넘어오게끔 하는 마법들.

지구에서 침입자라고 부르는 이종족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었다.

——지구를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아제시아처럼 멸망시켜버립시다!

과거, 광기에 물들었던 어느 이세계인이 준비해둔 공간.

이 모든 준비를 했던 남자가 어이없게도 병으로 죽어버린 뒤.

리우스는 설마 자신이 그걸 직접 사용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로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전부, 전부 다 부서져라……!”

리우스가 묶여있는 스크롤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푸욱!

그의 등으로 길고도 날카로운 물체가 파고들었다.

“꺼어억!”

등부터 복부를 뚫고 나오는 칼날.

몸이 꿰뚫린 리우스는 삐걱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유지한……?”

투명화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유지한이 보였다.

“어쩐지 여기에 올 것 같더라니.”

“네놈이 끝까지 나를……. 끄아아악!”

칼날에 담긴 오러는 리우스의 모든 것을 잘게 쪼개버리고 있었다.

리우스는 목구멍으로 넘어온 핏물을 유지한을 향해 뱉어냈다.

—호잇!

그러나 실프에 의해 작은 핏방울마저 그를 스치지 못했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리우스는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내 실성한 듯 웃어 재끼던 그가 말했다.

“큭큭! 큭큭큭! 너희라고 계속 멀쩡할 수 있을 것 같아?”

“……?”

“언젠가는 이 지구도 우리의 아제시아처럼 멸망한다! 아니, 세상이 온통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이곳은 우리보다 훨씬 더 처참한 멸망이 일어날 것이야!”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닐걸.”

“유지한, 유지한, 유지한!! 한국에 너라는 인간 한 명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는!”

“있는 걸 어떡하겠냐.”

“이 썩을 놈…….”

촤악!

리우스의 몸에서 피 묻은 칼날이 뽑혀 나왔다.

바닥에 드러누운 그는 스크롤을 향해 팔을 뻗었지만, 거리가 닿지 않았다.

“아, 아제시아여…….”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리우스.

마지막까지 자신의 세계를 부르짖던 그의 숨은 곧 끊어져 버렸다.

땡그랑!

검을 아래로 떨어뜨린 유지한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쉬지 않고 체력을 소모한 덕분에 입에서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거의 다 왔나.’

이세계로 보내진 1급 영웅들은 돌아오지 못했지만.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았던 원정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

타닥! 타다닥!

“완성이다.”

하성태는 피곤해진 눈을 감으며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유지한 파티의 이번 원정을 담아낸 영웅 영화.

2편의 시리즈물로 기획된 그 영화의 트레일러가 완성된 덕분이었다.

이미 판매 예정 상품으로 등록된 1편은 온라인에서 공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흐흐……. 이건 흥행과는 별개로 내 역작이 될 거야.”

아직 대중에게 영화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하성태는 알 수 있었다.

이번 영웅 영화가 자신의 터닝 포인트가 되리라는 것을.

CG 따위의 작업 없이 생생한 현장을 담아낸 이번 작품은.

짧은 작업 기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영상이 되어버렸다.

“어디, 간 좀 봐볼까.”

하성태는 약 1분짜리 영화 트레일러를 자신의 뷰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다.

그러자 그의 후속작만을 기다리던 열혈팬들은 곧바로 반응하며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티티 : HST 신작 떴다!]

[성태짱 : 이런 시기에도 신작을 내주시다니! 할렐루야!]

[코코아 : 또 유지한 파티랑 찍었나 봐.]

[포리코사 : 어? 이거 이번 원정대 이야기인데?]

그리고 영화가 이번 원정을 다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트레일러의 조회수는 단 몇 분 만에 하늘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뭐, 뭐야?!”

하성태가 잠시 밥을 먹고 온 컴퓨터 앞으로 돌아온 사이.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관심이 영화에 집중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영어나 일본어 따위로 작성되는 수많은 댓글은 해외에서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걸 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하성태가 영웅 영화 시장에 들어온 이래, 가장 높은 주목도였다.

“……오늘 풀어버리는 게 낫겠는데?”

하성태는 예정되어 있던 영화 공개 일정을 크게 앞당겼다.

주목도가 이렇게나 높다면 굳이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딸칵!

마우스를 조작하여 버튼을 누르자.

그가 제작한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제 곧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

세상은 유지한 파티를 기억할 수밖에 없으리라.

덤으로 감독도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하성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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