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땅끝에서 (5)
“자, 잠깐만요!”
“딱 대!”
퍽! 퍽! 퍽! 퍽!
유지한은 주먹으로 대장의 몸을 구타했다.
턱과 목, 심장과 생식기 등 상대의 약점만을 노리는 현란한 주먹질!
“사라져! 사라지라고!”
짝! 짝! 짝!
어떻게든 치명적인 공격만을 막아내며 박수를 치던 대장은 일이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구타를 참다못한 그가 마력을 폭발시키며 유지한과의 거리를 벌렸다.
기본적으로 마법사에 해당하는 그는 접근전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가까워!’
하지만 공간이 너무 좁은 나머지.
유지한을 최대로 밀어내도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또다시 달려들려는 유지한을 보며 대장은 손바닥을 쫙 펼쳤다.
“움직이지 마세요!”
꽈악!
펼쳤던 손바닥을 오므리며 마력으로 유지한의 몸을 속박했다.
그제야 야생마처럼 폭주하던 유지한은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대장에게 꽂혀 있었다.
“이거 풀어라.”
“풀면 때릴 거잖아요!”
“아니. 죽일 거야.”
“난폭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건 네가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닥치세요!”
대장은 열분을 토하며 자신의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감쌌다.
코뼈가 내려앉은 것에 더해 갈비뼈까지 부러진 듯했다.
아제시아에서 지구에 넘어온 이래 가장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이를 깍 깨물면서도, 대장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왜 저 남자에게는 차원 마법이 먹히지 않는 거지?’
갑자기 사라져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노숙자부터 시작하여.
거대 길드를 운영하는 1급 영웅에 이르기까지.
차원 이동 마법은 지구에서 각종 인간들에게 실험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여왔다.
이제 와서 실패한다는 것에 커다란 의문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
그때 대장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그거였어.”
“뭐?”
“당신, 지구의 인간이 아니었군요.”
“뭐? 네 눈에는 내가 이종족으로 보이냐?”
“이종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 인간들의 자식이겠죠.”
지구에서 다른 차원, 또는 이세계라고 부르는 곳으로 넘어가는 건.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거의 비슷한 아제시아와 지구의 인간을 대상으로만 사용되어온 마법.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존재를 지구로 불러들인 적은 있어도.
다른 차원으로 보내버린 적은 없었다.
“헛소리.”
유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과거 MA에서 실종된 그의 두 부모님은 엄연히 한국에서 태어난 인간들.
교류는 적지만 피로 이어진 친척들 또한 존재했기에.
대장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가정이었다.
“됐습니다. 어차피 이해를 바라지 않았으니까요. 이곳에서 강제로 쫓겨나기 전까지 얌전하게 계시죠.”
“……쫓겨나가는 건 얼마나 걸리는 거지?”
“밖에서 들어오지 않는 한 1시간은 필요합니다. 제가 그렇게 설정해뒀거든요.”
“꽤 오래 걸리는군.”
“당신이 얌전히 사라지기만 했어도 금방 나갔을 텐데 말이죠.”
차원의 경계에 입장하여 차원 이동이 벌어지지 않는 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유지한은 되레 미소 지었다.
“마침 잘 됐어.”
“네?”
“흐읍!”
유지한은 몸을 구속하는 마력에 저항하며 강제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에 대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미련한 짓 하지 마세요. 마력을 이용한 속박은 제 전문 분야입니다.”
“공격은 하지 않는 건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제시아에는 공격 마법이 잘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지구와는 다르게 자연의 몬스터를 조종하여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일이 흔했던 아제시아.
전쟁이나 몬스터와 격하게 싸울 기회 따위가 없었으니 공격 마법은 연구가 더딘 편이었다.
정신 계열의 마법이 발달한 건 본래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몬스터의 교육과 훈련을 위한 것.
몬스터가 활개 치는 나머지 결계까지 만들어 낸 지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 세상이었다.
“그것도 잘 됐군.”
“대체 뭐가 잘 됐다는 겁니까?”
“큰 방해 없이 널 패버릴 수 있으니까!”
“요호호! 이렇게도 미련한 사람일 줄이야!”
“거기서 계속 웃고 있어라.”
꽈드드득!
덜덜덜 떨려오는 유지한의 팔과 다리.
붉게 달아오르는 피부는 그가 몸에 얼마나 큰 힘을 주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멍청하군.’
유지한이 몸에 힘을 줄수록 대장에게는 여유가 생겨났다.
저건 마법이라는 형태를 벗어나 순수한 마력으로만 이루어낸 속박!
단순히 신체의 힘으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유독 당신에게만 환각이 통하지 않는 건 신기한 일이네요. 어쩌면 당신의 출신과도 관련이 있을 수도? 아, 역시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하고…….”
시간만 충분하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조사를 진행해보고 싶은 흥미로운 인간.
하지만 유지한을 죽여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장은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꼈다.
“흡!”
“소용없다니까요?”
“흐읍!”
“미련한 짓은 그만…….”
그런데 대장이 유지한에게 충고를 날리던 그때였다.
쩍!
유지한의 왼쪽 다리를 꽁꽁 감싸고 있던 대장의 마력에 금이 갔다.
“헛!”
금이 가다 못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다리.
대장은 기겁하며 다시 그의 다리를 새로운 마력으로 감쌌다.
쩌적!
뒤이어 유지한의 오른쪽 다리를 감싼 마력에도 커다란 금이 생겨났다.
연달아 벌어지는 이상 현상에 대장은 표정을 싹 굳힌 뒤, 자세를 잡고 마력을 제어했다.
“으아아압!”
“흐으으읍!!”
속박이 깨지는가 싶으면 곧바로 새로운 마력이 유지한의 몸을 압박해왔다.
막으려는 자, 그리고 그걸 뚫으려는 자.
좁은 공간에 들어간 두 사람 사이에서 창과 방패의 싸움이 벌어졌다.
툭.
대장이 쓰고 있던 붉은 중절모가 땅으로 떨어졌다.
아끼는 모자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이라도 방심한다면 유지한이라는 날카로운 창에게 모든 게 뚫려버릴 터.
“제발 그만하고 멈추세요!!”
“너 같으면 멈추겠냐!”
스르륵—
유지한은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신발을 미끄러뜨리듯 발을 내밀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었다.
“아, 안 돼!”
대장은 속박을 뛰어넘어 유지한의 다리를 조종하고자 했다.
앞걸음이 아니라 뒷걸음질을 치도록.
하지만 유지한은 그것마저 저항했다.
‘정령이 없는데도 어떻게 이런……!’
실프가 차원의 경계에 함께 입장하지 못했음에도.
유지한은 아주 놀라울 정도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가 정령에게만 의지하는 영웅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후우!”
자리에 멈춰선 유지한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답답해했다.
하지만 속박을 여러 번 깨뜨리면서 마력에 대항하는 요령을 점점 터득해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전부 다 보인다.’
몸을 속박하는 마력의 구조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었다.
벌집과도 비슷하게 작은 육각형의 패턴으로 이루어진 마력이 전신의 피부를 둘러싸고 있고.
힘을 주는 방법과 그 세기에 따라 그것이 어떤 형태로 뒤틀리는지 또한 아주 자세하게 보였다.
‘이것도 샘플링에서 파생된 능력이구나!’
고유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는 충만한 감각이 몸을 감쌌다.
대체 하나뿐인 고유 스킬에서 얼마나 많은 부가 효과가 제공되는 것인지!
니로치를 만나서 들려줄 얘깃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었다.
‘힘을 줬다가, 뺐다가, 다시 힘을 준 뒤에……!’
유지한은 대장의 마력이 가장 요란하게 뒤틀리는 방식으로 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양쪽 손바닥을 뒤덮은 마력에 또다시 금이 갔을 때.
샤락!
재빠르게 손바닥으로 오러를 뿜어냈다.
자주 사용하는 실프의 마력이 아닌 유지한 본연의 마력으로 생성된 오러였다.
‘퍼트린다!’
매우 단조로운 형태의 오러가 팔을 타고 다른 부위로 퍼져나갔다.
초록빛 오러와는 다르게 아주 느리고 뻑뻑하게 움직였지만.
그럼에도 오러 전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쩌저저적!
점차 갈라지고 찢어져 버리는 육각형의 마력들.
전신으로 퍼지는 유지한의 오러는 신체의 모든 속박을 빠른 속도로 깨뜨렸다.
대장의 속박에 대항하는 올바른 선택지를 고른 것이었다.
“……!”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처럼 뻣뻣한 유지한의 움직임.
그러나 오러를 두르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빨랐다.
대장이 황급히 상대의 오감을 지배하는 환각을 사용했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팬텀 클론]
그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대장이 선택한 마법은 자신의 분신을 생성하는 마법이었다.
단순히 가짜가 아니라 물리적인 접촉 또한 가능해진 실체화된 환각.
현실의 것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세밀하게 다듬어진 분신에 유지한 또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진짜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진짜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진짜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요호호!”
“요호호!”
“요호호!”
…….
…….
똑같은 외형과 똑같은 목소리로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대장의 분신은 50명을 넘겼다.
바닥에 드러눕는 녀석부터 벽에 기대는 놈, 하늘에 떠 있는 놈들까지.
정육면체의 공간은 정신이 요란한 대장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
유지한은 그 사이에서 모든 대장들을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땅에 드러누운 놈에게 다가갔다.
“요호호! 아쉽지만 그건 가짜입니다!”
“가짜 아닌데.”
“……!”
텁!
거짓말을 하다가 걸려버린 대장은 유지한에게 목덜미를 붙잡혔다.
끝까지 그를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뒤늦게 다른 분신들이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부우우웅!
유지한은 대장의 몸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분신을 처치했다.
“흐악! 흐아아악!!”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그, 그만두세요!”
“싫어!”
모든 분신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유지한은 행동을 멈췄다.
이내 그가 대장의 목을 세게 움켜쥐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켁! 케엑!”
“어서 준비해.”
“갑자기 무슨 준비를……!”
“처맞을 준비! 이 개새끼야!”
퍼어억!
*****
이세계인들의 대장이 유지한을 데리고 이동한 시각.
“네 계약자는 이제 지구에 없어. 포기하고 얌전히 항복해라.”
—뿡이다! 똥이나 먹어라!
“……멍청한 정령이 감히!”
“이럴 땐 똑똑한 정령이라고 하는 거야.”
“입 닥쳐.”
리우스는 속박된 영웅들을 보호하는 이미아에게 짜증을 냈다.
사실상 다 잡아놓은 물고기들이 바닥에 널려있는데.
고작 바람의 정령과 그 정령의 도움으로 유일하게 깨어난 이미아 때문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제리. 넌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야?”
“…….”
영웅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세계인은 제리뿐.
그러나 제리는 영웅들을 공격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실프와 이미아마저 제리를 막아서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다면 진작에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녀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리는 그저 입으로 웅얼거렸다.
“우리 자기를 돌려줘.”
“저, 저 남자에 미친년 같으니라고!”
“배신자!”
“쓸모없는 년!”
“대장님이 돌아오면 너희는 끝이야!”
누군가의 외침에 이미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들의 말대로 유지한을 납치해간 그자가 다시 돌아온다면.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망갈 수는 없어.’
이미아는 실프를 바라봤다.
계약자를 남겨두고서는 절대로 도망가지 않을 것 같은 정령이었다.
실프의 조력으로 간신히 환각에서 벗어나는 상황인 만큼.
사라진 그의 계약자를 버리는 건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아 개인적으로도 유지한을 홀로 남겨두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슬슬 오실 때가 됐군.’
리우스가 정영욱으로부터 빼앗은 손목시계를 살폈다.
차원의 경계에서 대장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약 5분이 흘러도.
그는 무너진 전망대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안 오시네?”
“왜 안 오시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