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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97화 (197/300)

197화. 땅끝에서 (3)

철퍼덕!

한 이세계인이 깊숙하게 베인 복부를 붙잡으며 차가운 바닥과 키스했다.

그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이세계인들이 약 40명이 넘어갈 무렵.

공간 왜곡의 입구에서는 줄어든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몬스터와 또 다른 이세계인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리우스는 입구에서 막 빠져나온 남자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아직 멀었나?”

“조금만 더…….”

“젠장.”

으득!

이를 악문 리우스가 유지한과 김현태를 노려봤다.

막아서는 이세계인들을 서로 경쟁하듯 베어버리는 2명의 영웅.

그들의 공격 때문에 리우스와 지구에서 함께했던 오랜 동료들이 살해당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기 전까지는 넘어갈 수 없다!”

“아제시아에 영광을!”

“아제시아여, 영원하라!”

그런 와중에도 이세계인들은 태어난 고향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들었다.

개개인의 전투력만 따지면 지구에서 태어난 영웅들의 수준이 더 높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그 앞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리우스는 죽어가는 동료들에게 소리 없는 사과를 전했다.

이 현장의 지휘자로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은신처를 숨겨두었다면 어땠을까.

무리해서라도 바다 위에 은신처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마음속으로 많은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들어 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일이 꼬였어.’

IUPC를 앞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움직이려고 했던 초기의 계획이 무너진 뒤.

존재가 드러난 이세계인들은 더 과감한 행동을 보였다.

IUPC와는 별개로 선공격을 감행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하는 원정대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으로 위장한 스파이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실패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터였다.

‘다 저놈 때문이다.’

리우스는 전장에서 가장 현란하게 움직이는 유지한에게 강한 적의심을 드러냈다.

오래도록 준비했던 이 모든 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 바로 환각 마법이었다.

지구인들과 비교했을 때 모자란 전투력의 격차를 단번에 뒤집고도 남는 아제시아의 전통 마법!

한국에서 1급 영웅들을 치워버렸기에 위협이 될 요소는 없다고 판단했거늘.

생각지도 못한 유지한의 등장으로 그들의 노림수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빡!

유지한이 환각에 씐 김현태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김현태는 곧바로 정신을 되찾았다.

어지러운 환각 사이에서 진실을 꿰뚫다 보다 못해.

이제는 손짓 한 번으로 타인에게 쓰인 환각을 없애버리는 그의 존재란.

리우스에게 있어서 살아 움직이는 악몽과도 다름없었다.

‘정령들을 더 경계했어야 했다!’

정령이라는 존재는 아제시아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에서조차 미지의 존재로 여겨지는 만큼 이세계인들은 정령사에 관해 별도의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정령사의 명단을 만들어둘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와서 막심한 후회가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

빡!

유지한의 손바닥이 또다시 김현태의 뒤통수를 때렸다.

총 20번을 넘도록 얻어맞고 뒤통수에서 열기를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김현태는 유지한이 자신을 때리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힘 조절 좀 하지?”

“충분히 한 거야. 이게 싫으면 계속 환각에 빠져 있던가.”

“……큭!”

“싫으면 언제든지 말해. 더 개입하지 않을 테니.”

유지한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환각 때문에 제자리에서 아예 움직이지 못할 터.

뒷머리를 손으로 거칠게 털어낸 김현태가 눈앞의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유지한으로 인해 발생한 짜증을 이세계인에게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의 화풀이 용도로 죽어버리는 적들은 참 운이 없었다.

‘마력은 아직 충분해.’

유지한은 체내의 마력과 실프의 마력을 동시에 살폈다.

이제 정령과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서로의 마력을 공유할 정도로 성장한 덕분에.

지금 같은 전투를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체력만 있다면 현 상태로 1시간은 더 싸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몬스터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고.’

전선에서 한 발 물러난 파티원들도 무난하게 잘 버텨내고 있는 상황.

IUPC 회원들을 비롯한 병력들을 죄다 서울 쪽으로 올려보낸 것인지.

땅끝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잘 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수가 적었다.

이전에 봤던 모기떼가 다시 등장한다면 몰라도 당장으로서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버티기만 할 셈이지?’

리우스는 전투 내내 유지한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거리 조절을 유지하며 서로 간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했다.

누가 보더라도 시간을 끌려는 것처럼 보였다.

“너희 대장을 기다리는 거냐?”

“네가 그걸 어떻게……!”

대장이 언급되자 화들짝 놀란 리우스가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이윽고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떠보는 식으로 접근해오는 유지한에게 정보를 고백해버린 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리가 네게 알려준 건가?”

“아니.”

“거짓말하지 마!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수로…….”

자신의 계획을 간파당하고 유지한을 추궁하려던 리우스는.

아주 여유로운 그의 미소를 보며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쿠궁!

리우스의 머리 위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한줄기 벼락이 내려쳤다.

유지한이 이 자리에서 대장을 언급하는 이유.

같은 이세계인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은신처가 영웅들에게 발견된 이유.

겉으로는 평범한 시민과 전혀 다를 게 없었던 파라스가 발각된 이유.

그리고 이세계인들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난 이유까지.

“……너였구나.”

리우스는 그 모든 일의 중심에 유지한이 있다고 믿었다.

그와 관련된 자세한 사정을 알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 외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죄다 너 때문이었어.”

“글쎄.”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유지한.

허나 그 모습은 리우스에게는 기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제시아시여!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어떻게 세상에 저리 성가신 영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저런 말도 안 되는 인간이 한국에 존재하는 줄 알았다면.

다른 1급 영웅보다도 먼저, 최우선으로 제거해버렸을 것이었다.

“읍! 읍읍읍~”

두 사람의 대화에 입에서 침을 뚝뚝 흘리는 제리는 뭐라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자리의 그 누구도 무서우리만치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뭘 알아낸다고 달라질 건 없다.”

“유지한, 널 진작에 없애버렸어야 했어.”

“그러지 못했으니까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참으로 안타깝다, 안타까워……!”

[윈드 커터]

유지한은 한탄하며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는 리우스를 향해 마법을 날렸다.

마법 발현에 필요한 연산 따위의 모든 과정을 실프에게 맡기고, 마지막에 나온 결과물만을 다루는 사용 구조 덕분에 보다 신속하고 강력해진 마법.

허나 리우스의 주변에 있던 이세계인들은 몸을 날려 마법을 막아냈다.

그에 유지한이 말했다.

“널 따르는 똥개들이 많군.”

“또, 똥개?”

“우릴 감히 똥개로 취급해?!”

이세계인들이 앞으로 급발진하듯 달려나갔다.

그때 어디선가 등장한 대검이 그들의 상반신을 덮쳤다.

콰드드득!

“컥!”

“수, 숨이……!”

그나마 엘리트에 해당하는 이세계인들이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검날에 몸통이 2개로 쪼개지는 것만 간신히 막아낼 뿐.

실려있는 힘은 그대로 몸으로 전해져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건방지긴.”

김현태는 공격이 막힌 것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내 그가 리우스를 향해 말했다.

“네가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놈인 거 같은데.”

“…….”

“이런 쓰레기들은 꺼지고 빨리 앞으로 나와라.”

“내가 왜 네 요청을 받아줘야 하지?”

“훗! 겁나는 건가?”

넌지시 카메라를 힐끗거리며 준비해둔 대사를 읊는 김현태.

그가 보낸 은밀한 신호에 카메라맨이 각을 잡고 촬영에 나서는 가운데.

리우스는 소리 나게 혀를 찼다.

“쯧쯧! 무식한 놈.”

“뭐라고?”

“넌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줄도 모를 테지.”

“그건…….”

해남군청부터 유지한 파티를 졸졸 따라오기만 한 입장.

그나마도 유지한을 의심하고 티격태격하면서 동행했던 김현태는 침묵했다.

“김현태. 난 너 같은 영웅들을 제일 좋아해. 왜인지 아나?”

“……?”

“세상에 너처럼 힘만 믿고 설치는 놈들만 있었다면, 일이 아주 편하게 돌아갔을 테니까!”

“저게 돌았나……!”

“하필 저런 놈이 등장해서는! 계획이 죄다 망가져 버렸어!”

리우스는 씩씩대며 유지한에게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그러자 김현태의 미간에도 작은 주름이 잡혔다.

맞서 싸우는 적들조차도 유지한을 찾는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유지한보다 김현태라는 영웅의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었다.

‘지금!’

김현태와 리우스가 또 다른 대화를 나누려던 때.

유지한이 기습적으로 높게 뛰어올랐다.

[윈드 밤]

후우웅—!

한점으로 응축된 바람이 그의 넓은 등을 앞쪽으로 밀어냈다.

몬스터와 이세계인 머리 위에서 [윈드 밤]을 연속 사용.

날아다니는 새를 피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향하는 목표 지점은.

이세계인들이 은연중에 가로막던 공간 왜곡의 입구였다.

“안 돼!!”

“막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세계인들은 황급히 유지한을 쫓았다.

그렇게 입구 근처에서 몸을 전혀 아끼지 않는 격렬한 저항이 이어지고.

뒤늦게 이미아의 조력까지 더해졌지만, 입구를 둘러싼 인간 방벽이 세워지자 유지한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시간 끌기는 적당히 해라.”

지금쯤 왜곡된 공간 안쪽에서 그들의 대장을 회복시키기 위해 힘을 쏟고 있을 터.

유지한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리우스의 행동 또한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후…….”

마지노선까지 다다른 영웅들의 위협.

동료들을 쭉 훑어본 리우스는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이다.’

이곳에 자리한 모든 이세계인이 희생되더라도.

대장님만 회복된다면 한국에 남은 이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쿵!

“……!”

유지한은 갑자기 몸이 지나치게 무거워진 느낌을 받았다.

머리와 어깨, 심지어 팔다리까지 전신이 아래로 당겨지는 듯한 감각.

중력이나 몸무게가 몇 배로 불어난 듯 몸에 강제적인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이건, 마력?’

위에서부터 아래로 짙은 마력의 힘이 짓누르고 있었다.

김현태와 다른 영웅들 또한 같은 힘을 받고 있는지.

굽어지려는 무릎과 허리를 어떻게든 강제로 펴고 있었다.

다만 리우스를 비롯한 이세계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요호호!”

이윽고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는 독특한 웃음.

“아아……!”

“마침내!”

이세계인들은 하나같이 기대 어린 목소리를 냈다.

유지한은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는.

검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기다리셨습니까?”

붉은 중절모를 착용한 중년의 신사.

1급 영웅을 사라지게 만들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흉.

그들의 대장이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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