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땅끝으로 (5)
“후우우…….”
민유리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마지막에는 호흡을 멈춘 채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촉이 날카롭게 벼려진 마력 화살로 노리는 건 임민수, 혹은 제리.
퉁!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자.
발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퀴에에엑!”
몬스터들은 날아가는 화살을 막으려 들었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화살을 차단하는 시도가 많았다.
그 때문에 적지 않은 화살들이 중간에 막혀 버렸지만…….
파바바바박!
파바바바박!
파바바바박!!
쉬지 않고 연속으로 쏘아 내는 화살을 전부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기름이 넘쳐나는 자동차가 부품이 고장 나기 전까지 계속 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마력이 넘쳐나는 민유리는 상대를 향해 아낌없이 마력을 투자했다.
[형태 변화 - 로프]
[형태 변화 - 로프]
[형태 변화 - 로프]
…….
…….
임민수와 제리를 노리고 그물망처럼 쏟아지는 밧줄들.
제리는 밧줄을 피하면서도 하품을 할 정도로 여유를 부렸지만.
새의 등 위에서 탭댄스를 추듯 요란하게 움직이던 임민수는 확 짜증을 냈다.
“거 참 거슬리네요!”
주인의 감정 변화에 반응한 많은 몬스터들이 민유리를 노려봤다.
원거리 딜러에게 많은 주의가 끌리는 구도.
유지한으로서는 썩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현태 파티가 몬스터와 힘껏 대치 중이기 때문에 여유가 느껴지기도 했다.
“찍……!”
텅! 텅!
카앙!
칠라는 파티원들의 앞을 막아섰다.
방패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조정하며 다각도로 날아오는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했다.
“키이이잇!”
“찍찍!!”
투웅!
가까이 접근해 오는 몬스터는 힘을 주고 멀리 밀어냈다.
몬스터로 변해 버린 하마처럼 칠라보다 덩치가 큰 놈들도 많았지만.
어느새 힘이 강해진 건지, 방패를 들고서 뒤로 쉽게 밀려나는 법이 없었다.
“멋지다!”
“찍, 찍찍!”
김시후의 칭찬에 호응하듯 울어 재끼는 칠라.
황준호처럼 탱커들이 사용하는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움직임은 그것을 많이 보완해 주었다.
“칠라! 대포로 간다!”
“찍!”
버프를 두른 채 한참 몬스터를 상대하던 유지한은 칠라를 향해 점프했다.
칠라는 날아오는 그를 향해 방패를 내보였다.
이윽고 유지한의 발이 방패의 표면에 닿는 순간.
“찍!!”
몸을 굽힌 채 무게중심을 뒤에 싣고 있던 칠라가.
귀여운 기합과 함께 방패를 앞으로 확 밀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유지한은 방패와 자신의 몸 사이로 [윈드 밤]까지 사용하며 날아올랐다.
파아아앙—!
민유리의 화살과 비교될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는 유지한의 몸.
유지한은 옷이 바람에 펄럭이는 걸 무시하며.
비행 중인 제리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꺄아아! 왔다아!”
박쥐 위에 탑승한 제리는 유지한이 날아오는 걸 보며 소리를 질러 댔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듯한 10대 소녀의 반응이었다.
적을 마주하고도 싫어하긴커녕 기뻐하다니.
‘역시 정상이 아니군.’
제리는 유지한을 피하지도 않고 되레 양팔을 뻗어서 그를 반겨주었다.
순간적으로 팔뚝에 소름이 돋아난 유지한은 몸을 뒤로 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도 나랑 빨리 만나고 싶었던 거지? 그렇지?”
착!
티셔츠의 양쪽 소매에서 밖으로 빠져나온 2개의 단검이 제리의 손에 잡혔다.
뒤이어 앞으로 내밀어진 쌍단검이 유지한의 검격을 쳐냈다.
카앙!
강한 추진력까지 더해진 유지한의 검격은 제리를 뒤로 크게 밀어냈다.
하지만 그녀는 박쥐의 등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텼다.
마찬가지로 박쥐의 등에 올라탄 유지한은 그녀를 경계했다.
“왜 태워 준 거지? 쉽게 떨어뜨릴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재미없잖아.”
“…….”
“내가 얼마나 자기를 걱정했는지 알아? 응? 자기는 왜 이렇게 날 걱정시키는 거야!”
유지한을 향해 잔뜩 토라진 표정을 짓는 제리.
흡사 남자친구에게 삐진 여자친구의 태도와도 같았다.
“네가 왜 날 걱정해.”
“왜냐하면 자기는 내 거니까!”
“꺼져.”
제리의 일방적인 주장을 딱 잘라 거절하는 유지한이었지만.
그녀는 되레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딱 하루만 나한테 몸을 맡겨 봐. 그날부터 자기 취향은 곧 나로 변할 테니까…….”
“그런 끔찍한 경험은 하고 싶지 않네.”
“끔찍하다니! 아직 나 같은 여자를 만나 보지 못해서 그래. 한번 겪어 보면 생각이 변할걸?”
“딱히 변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야.”
“그래……. 자기라면 그렇게 튕기는 맛도 있어야, 지!”
쒜애애액!
제리는 대답을 끝냄과 동시에 유지한에게 달려들었다.
유지한은 기습처럼 날아드는 단검을 아주 침착하게 쳐냈다.
캉! 캉! 캉!
“으핫! 으하하핫!”
오러가 실린 쌍단검으로 유지한을 내리치면서 미친년마냥 웃어 재끼는 제리.
검이 충돌할 때마다 손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웃음소리는 더 크고 경쾌해지기만 했다.
카강! 카강! 카가강!!
박쥐의 등 위에서 빠르게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유지한은 제리의 왼손만을 집중적으로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팍!
연이은 공격 시도 끝에 제리가 단검 하나를 놓쳐 버렸을 때.
유지한은 발차기로 단검을 쳐내며 무방비가 된 왼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제리는 오른손에 든 단검으로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핫!
그 타이밍만을 기다리고 있던 실프가.
폭발적인 바람으로 유지한의 검을 밀어내어 검의 궤적을 크게 비틀었다.
스걱!
정령과의 연계 공격으로 팔뚝을 베인 제리는 멈칫하는가 싶더니.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유지한에게 달라붙었다.
“뭐야, 뭐야? 방금 거 뭐야? 한 번만 더 보여 주라!”
“……!”
몸에 생긴 상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이어 가는 제리였다.
그녀의 집요함에 유지한은 표정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래!
그때 실프가 경고의 목소리를 전했다.
푸욱!
유지한이 밟고 있던 박쥐의 등을 뚫고 솟아오르는 단검.
제리가 아래로 떨어진 단검을 조종하여 박쥐의 배부터 등까지 한 번에 뚫어 버린 것이었다.
황급히 뒤로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서 있었다면 발바닥이 두 쪽으로 갈라졌으리라.
“와, 이걸 피해?”
“삐이이…….”
배에 구멍이 뚫린 박쥐는 작게 울더니 날갯짓을 멈췄다.
그에 따라 제리와 유지한의 몸은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갔다.
캉! 캉! 캉!
공중에서 추락하는 와중에도 제리는 단검을 조종하여 유지한을 공격했다.
허공에 떠오른 쌍단검은 제리가 손으로 휘두르는 것처럼 움직이며 유지한을 압박했다.
제리를 쫓아가려던 유지한은 결국 가볍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읏차!”
추락하던 제리는 또 다른 박쥐의 등에 올라탔다.
그녀의 뒤로 늘어선 박쥐 떼들은 언제들이 갈아탈 수 있는 탑승 수단과도 같았다.
제리의 옆으로 날아간 임민수는 말했다.
“또 다치셨네요.”
“앗, 돌아가서 이르면 안 돼요!”
“제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혼나실 겁니다.”
“에잉…….”
제리는 다른 동료들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에 걱정했다.
또 유지한에게 다친 게 알려지면 지금 같은 자유가 사라져 버릴 터.
한편, 임민수는 위에서 영웅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저항이 거칠군요.”
10명 정도는 가뿐하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늘.
제리는 또 부상을 입었을 뿐더러 아직 1명의 영웅도 쓰러지지 않았다.
유명세마저 가진 영웅들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일까.
“벌써 돌아가시려고요?”
“아뇨. 여기서 그걸 사용할 테니 도와주십시오.”
“엇! ……그러면 우리 자기는 절대로 죽이면 안 돼요!”
“후후, 명심하죠.”
제리와 임민수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찰나.
다시금 그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엿보던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두 사람이 오른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뭐지? 무슨 신호인가?’
갑자기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불안감.
그런 불안감을 증명하듯, 민유리가 소리쳤다.
“저쪽에서 뭐가 오고 있어요!”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하늘이었다.
하늘에는 이상할 정도로 짙은 검은색의 구름이 있었다.
그 구름은 다른 구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속도로 그들을 향해 빠르게 접근해 왔다.
“……?”
유지한은 눈을 크게 뜨고 검은색 구름을 주시했다.
잠시 후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니까 알 수 있었다.
“모기다.”
“히이익!”
그것이 평범한 구름 따위가 아니라.
수많은 모기들이 하나로 뭉쳐져 있는 모기 구름이라는 것을.
‘모기도 조종할 수 있다고?!’
여름철 현대인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프리카나 중남미 지역에서는 매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시무시한 해충.
어쩌면 몬스터를 뛰어넘어 지구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이지만.
아직 몬스터로 변한 기록이 없는 동물이기도 했다.
“저게 대체 몇 마리야……!”
눈대중으로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모기떼.
유지한은 적잖게 당황한 김시후를 향해 말했다.
“전부 태워 버려!”
화르륵!
김시후는 즉시 모기떼를 향해서 커다란 불덩이를 쏘아 냈다.
김현태 파티의 임시연도 그에 지지 않고 불마법으로 모기떼를 공격했다.
위이잉!
하지만 불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기떼는 불길을 쉽게 뚫어내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던 모기가 바로 근처에 도달했을 때.
파아아앗—
한데 뭉쳐 있던 모기들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내리쬐는 햇빛 위에 녀석들의 자글거리는 그림자가 비쳐 조금 어두워졌다.
“자기야! 미안해!”
“……?”
“적어도 나는 이런 식으로 이기고 싶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줘!”
승리를 확신하는 제리의 사과.
마치 본인은 이 방법을 사용하기 싫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위잉! 위잉! 위이잉!
특유의 날갯짓 소리를 내며 귀를 괴롭히는 모기들.
일반적인 모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크기였지만.
녀석들은 하나같이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워터 블래스트]
[라이트닝 댄스]
그 위로 물을 끼얹고 전기 마법을 뿌려 대도 끄떡없었다.
민유리의 마력 화살마저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에 유지한은 깨달았다.
저놈들이 몇 가지 속성에만 강한 게 아니라 아주 강력한 마법 저항력을 가진 놈들이라는 걸.
‘어쩐지 여유가 가득하더라니.’
저만한 마법 저항력을 가진 몬스터는 유지한의 인생에서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놈들의 한 가지 공통적인 약점이라면 하나같이 물리력에 약하다는 것.
직접 때려잡는 게 답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작고 많은 모기들을 하나하나 때려잡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 임시연! 어떤 마법이든 좋으니까 공격해!”
“아잇! 잠깐 기다려!”
“저 망할 모기 좀 없애 버리라고!”
김현태 파티에서도 뚜렷한 대응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가운데.
유지한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가며 주변을 살폈다.
마력 의존도가 높은 파티원들을 데리고 정면 싸움은 불리하기에.
이 자리에서 빠르게 벗어날 생각이었다.
“형! 제가 해볼게요.”
“……?”
그때 칠라의 방패 뒤에 있던 김시후가 옆으로 빠져나왔다.
무언가를 굳게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유지한이 말했다.
“뭘 하려고?”
“보고 계세요. ……실패하면 바로 형의 뜻에 따를게요.”
스윽.
김시후의 지팡이가 모기로 가득한 하늘을 가리켰다.
“Gra, ete, sio.”
“……!”
이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그가 백화점의 영화관에서 바바리안을 물리쳤던 때 읊었던 주문이었다.
그것을 알아본 유지한은 눈을 크게 떴다.
슈우우우——
펄펄 끓는 물처럼 요동치기 시작한 김시후의 마력.
자그마한 변화를 감지한 이들의 시선은 점점 하늘로 향했다.
“아.”
모기들이 뒤덮은 하늘 위.
얇은 나뭇가지와 초록색 풀 따위로 엮인 얇은 곡선이 그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