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땅끝으로 (3)
유지한 파티가 해남에서 이동 중일 무렵.
하성태는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눈 아파.”
손으로 눈을 비비던 그가 책상에 놓여 있던 안약을 양쪽 눈에 한 방울씩 투여했다.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 안구건조증을 달고 사는 그였다.
안약으로 눈가가 촉촉해진 뒤에는 다시금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영웅 커뮤니티 게시판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방으로 내려간 원정대와 통신이 두절된 현재, 수도권으로 피난 온 시민들이 직접 들려주는 생생한 정보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피 타임과 주작이 고흥에서 몬스터와 교전을 시작했고, 레드홀은 후발대와도 연락이 끊겼나.”
현장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오기까지는 다소 느린 감이 있었지만.
기자들이 작성하는 뉴스 속보를 확인하는 것보다 지금같이 소셜 미디어 따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유지한 파티는 아직도 소식이 없네.”
하성태가 가장 걱정하는 건 촬영 계약을 맺은 꿀잼의 유지한 파티.
거대 길드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주사위의 원정에 따라간 것이니만큼.
그들과 관련된 소식을 접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기에 작은 소식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모니터에서 더욱 눈을 떼지 못하는 하성태였다.
“하아, 괜히 촬영을 하자고 한 건가…….”
이런 중요한 사태에 촬영을 제안한 것이 유지한 파티에게 방해가 된 건 아닐까.
괜스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여나 촬영을 신경 쓰느라 그들의 전투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는데.
그런 불안함을 이기지 못한 하성태는 이빨로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딱! 딱! 딱!
조용한 방 안에서 손톱을 씹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하얗게 자라난 엄지손톱을 모조리 깨물고, 손톱 끝이 이빨 자국으로 울퉁불퉁해진 뒤에야 그는 행동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오!”
영웅 커뮤니티에 주사위 길드를 언급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황급히 마우스로 그 게시물을 클릭하자, 자신을 주사위의 2급 영웅이라고 부르는 게시물 작성자에게서 놀라운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지한 씨가 레드홀의 정기준을 대신해서 원정대를 이끌었다고?!”
무려 레드홀의 부길드장인 정기준이 유지한을 직접 지목하여 원정대장으로 추대하고.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어 그가 박재경과 함께 공동 리더가 되었다는 소식.
심지어 구출한 시민들을 데리고 통신이 가능한 수도권으로 대피해서 게시물을 작성한 영웅은.
자신과 함께했던 유지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떼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혼자서 유인하기도 하고, 환각 마법을 꿰뚫어 보면서 원정대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 주기도 했어.]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유지한이라는 정령사는 훌륭했다. 내가 친분도 없는 영웅을 이렇게 올려치는 건 처음이야. 정말 대단한 담력을 가진 친구라니까.]
[부길드장 님이 외부인들을 왜 계속 옆에 끼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아…….]
현장에 있던 영웅의 생생한 경험담이 기록된 게시물은 순식간에 많은 수의 추천을 받고 오늘의 인기 게시물로 등록되었다.
하성태가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댓글들은 최소 5개씩 늘어났는데.
대부분의 댓글은 유지한 파티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들의 활약이 진짜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부터.
이런 위급한 상황에 거짓 정보를 퍼트리지 말라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반응이 오가는 가운데, 하성태는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여기에 적힌 게 전부 사실이라면……. 대박인데?’
유지한 파티가 이번 사태에서 어느 정도 제 몫을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만큼이나 커다란 활약을 펼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들과 전혀 친분이 없다는 영웅이 이런 글을 적어 줄 정도라면.
대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광경이 펼쳐졌을까.
‘직접 보고 싶다!’
조금 전까지 유지한 파티에게 촬영을 제안했던 걸 후회한 하성태는.
이제 그들의 카메라에 담긴 기록들이 몹시 궁금해졌다.
띠리링! 띠리링!
게시물의 댓글 반응을 계속해서 살피던 순간.
책상에 놓여 있던 하성태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상황에도 스팸 전화가 오네.”
매번 비슷한 시간대에 걸려 오는 스팸 전화.
시간을 보니까 그 전화가 걸려 올 때가 되기도 했다.
그가 이내 심드렁한 얼굴로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엉?”
발신인의 이름에 유지한이 적힌 걸 보고서 자기 눈을 의심했다.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를 귀로 가져갔다.
—성태 씨.
“헉! 지한 씨?!”
진짜 유지한의 목소리였다.
하성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쪽은 전화가 안 되는 거 아니었어요?”
—여긴 통신이 닿는 것 같아요.
“세상에! 몸은 괜찮으신 거죠?”
—건강합니다. 다친 곳도 없어요.
“휴우, 다행이다…….”
하성태가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순간.
유지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보다 당장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한테요? 뭐든 말씀하세요.”
—제공해 주신 카메라의 원격 업로드 기능을 통해 저희가 지금까지 촬영한 분량을 미리 서버에 올려놨습니다.
“저, 정말로요?”
—예. 그 영상을 가지고 미리 편집을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촬영본을 미리 편집하여 사태가 끝나갈 즈음 세상에 공개하자는 의견이었다.
원정이 끝난 뒤에는 많은 영웅들이 찍어 둔 영상을 공개하게 될 텐데.
보기 좋게 편집된 영상을 누구보다 빠르게 공개한다면 상당한 주목을 끌 수 있을 터였다.
그러한 계획을 전달받은 하성태는 흥분하여 코에서 콧김을 내뿜었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죠?
“통화가 끝나는 즉시 바로 작업 진행하겠습니다.”
—영상이 완성되면 저희가 확인하는 절차 없이 바로 공개해 주세요.
“정말로요?”
—어차피 이 자리를 떠나면 다시 통신이 끊길 테니까요. 성태 씨 실력을 믿고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를 최소 2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기획하여…….”
영상 기획 과정을 간략하게 전달하고 통화가 마무리된 뒤.
하성태는 마우스를 조작하여 유지한 파티가 보냈다던 영상을 확인했다.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 파일들이 모두 서버에 올라가 있었다.
잠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성태는 냉장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 안에 보관된 건 고카페인 커피와 각종 에너지 음료들.
그것들을 한가득 집어서 컴퓨터 책상 위로 쏟아부었다.
“가즈아!”
오늘 밤.
그는 절대로 잠에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나머지는 성태 씨에게 맡겨 두면 되겠어.’
하성태와의 통화를 끝낸 유지한은.
영웅부의 양지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어어억! 지한 씨!!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양지철이 난리를 치는 탓에.
유지한은 휴대폰을 잠시 귀에서 떼고 있었다.
“저희는 지금 해남에 있습니다. 김현태 파티와 같이 움직이는 중입니다.”
—해남군청의 핫라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어쩌다 거기까지 가신 겁니까?
“하나하나 설명하긴 좀 길고, 이세계인들을 쫓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떻습니까?”
—각 지역에서 후발대가 교전을 시작한 건 확실해 보이는데……. 전투 양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조직 내부의 스파이를 축출하던 영웅부는 다른 정부 부처와 함께 각 지역에서 찾아온 피난민을 관리하고, 연락이 끊긴 원정대를 돕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망가진 통신망을 복구하고자 여러 전문가 및 기업들과 협동 작전에 나섰지만 아직은 어려움이 많은 상황.
지금은 영웅들을 직접 지방으로 보내는 것으로 현장 정보를 얻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이곳에서 놈들을 처단할 수 있을 겁니다.”
—무리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겠죠.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예.”
등급을 지적하며 유지한을 만류하기에는 이미 그가 너무 멀리 가 버렸기에.
양지철은 그저 유지한 파티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통화를 끝낸 유지한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가 반드시 이세계인들을 물리치겠습니다! 시민들께서는 부디 응원해 주십시오!”
김현태는 어느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를 하는지, 당찬 목소리로 자신의 포부를 내뱉고 있었다.
유지한은 그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꽤 머물렀으니, 곧 출발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현태. 그거 언제쯤 끝나?”
“기다려.”
잠깐이면 된다는 듯한 김현태의 말투.
그러나 그들은 20분이 흐른 후에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찰칵!
카메라맨에게 휴대폰을 넘겨준 뒤 멋진 자세를 취하는 김현태.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했다.
“호오! 마이유가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줬군.”
“그 여자 가수 마이유 말이야?”
“어? 나 그 사람 팬인데!”
이번 지방 원정에는 정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었다.
사진을 1장 올릴 때마다 박수갈채와 함께 쏟아지는 관심들.
그 현장에 뛰어든 유명 인물이 직접 사진을 올리면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김현태의 자기 자랑으로 인해 체류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길어졌다.
다른 일행은 모두 볼일을 마친 가운데 그 하나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가 새로운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는 걸 보다 못한 유지한이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대체 언제 출발할 건데?”
“전화 인터뷰 하나만 더 하면 끝나.”
“인터뷰는 아까 한 거 아니었어?”
“이건 다른 신문사 인터뷰니까.”
또 다른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유지한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쯤하고 슬슬 가자. 많이 기다렸다.”
“쯧! 유지한, 쓸데없이 재촉하지 마.”
“너야말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마. 인터뷰는 원정이 끝난 뒤에 해도 되잖아.”
“그건 지금 진행하는 인터뷰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 없지.”
그들을 잠자코 지켜보던 이미아도 입을 열었다.
“나도 이동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이미아! 네 친구라고 편드는 거냐?”
“그런 거 아니야.”
“전화 왔으니까 5분만 더 기다려.”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김현태가 새로운 인터뷰를 진행하는 탓에 유지한은 결국 뒤로 물러났다.
옆에서는 황준호와 임시연이 휴대폰으로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김현태를 말릴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한심해 보이지?’
놀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는 김현태.
대체 나는 7년간 이런 사람을 어떻게 파티장으로 모셨던 것인지.
케로즈를 나와서 외부인이 되어 보니, 과거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미안해.’
이미아는 무척 미안한 얼굴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그 마음을 알고 있는 유지한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내 파티원들에게 돌아간 그가 말했다.
“5분 뒤에는 무조건 출발하자.”
“김현태 파티는요?”
“저긴 무시하고 우리만이라도 간다.”
“알겠어요.”
유지한은 김현태 파티를 자리에 남겨두고서라도 먼저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4분쯤 흘렀을까.
쿠웅!
땅을 타고 울려 퍼진 굉음에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췄다.
유지한의 손이 자연스럽게 검이 있는 허리춤으로 향했다.
“자기? 우리 자기 맞지?!”
“……?!”
“으핫! 역시 살아있을 줄 알았다니까!”
하늘에서 들려온 하이톤의 목소리는 제리의 것이었다.
거대한 박쥐에 탑승한 그녀는 유지한을 내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자기야, 나 이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뭐?”
“나랑 같이 가자. 거부권은 없는 거 알지?”
쪽!
입술 위로 올렸던 손바닥을 유지한에게 뻗는 제리.
“저 아줌마 진짜 끈질기네.”
“그러니까요.”
기묘한 애정 공세에 민유리와 김시후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치명적인 표정을 한 제리의 손이 유지한을 가리킨다는 걸 알아본 김현태가 말했다.
“유지한! 역시 넌 배신자가 맞았군.”
“…….”
쟤는 또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