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만남 (3)
말없이 유지한을 노려보던 김현태는 유지한 파티의 카메라를 힐끗거렸다.
“카메라부터 꺼.”
“왜?”
“내부 회의는 촬영 금지야.”
김현태의 요구에 유지한은 결국 바디캠의 전원을 껐다.
다른 파티원들이 다루던 카메라도 촬영을 잠시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감동적인 재회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대화가 이런 흐름이라니.
유지한은 자신과 김현태가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구나 싶었다.
하긴, 매일 같이 불만을 던져오는 사람과 어떻게 사이가 좋을 수 있겠느냐마는.
“됐다. 내가 너희랑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해남 원정대와 정보를 공유하는 건 한국의 모두를 위한 일.
유지한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김현태를 무시하고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수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무엇 때문에 고흥을 거쳐 해남까지 도착했는지.
이세계인들이 지구로 쳐들어온 배경은 물론이고 그들의 목적과 수단들.
해남군청까지 오게 된 간략한 과정을 풀어내며 김현태 파티의 반응을 살폈다.
“이세계인들이 배후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IUPC가 원인이 아니었던 건가.”
“정확히는 원인 제공자 중 하나지. 다만 이 사태를 일으킨 건 이세계인들의 지분이 더 크다고 봐.”
황준호나 이미아는 유지한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대강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는 것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는 걸 어떻게 믿지?”
“너무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반면 김현태와 김강우는 유지한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의심했다.
그에 유지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냐?”
“그런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무슨 근거로?”
“너야말로 무슨 근거로 지금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거지?”
중요한 정보를 전해 줘도 이런 반응이라니.
김현태의 반응에 김시후와 민유리조차 눈살을 찌푸렸다.
뒤이어 유지한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뭘 얻겠다고 거짓말을 해?”
“네가 이세계인들에게 붙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뭐?”
유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짜고짜 적과의 연합을 의심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또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이야?”
“유지한, 너야말로 놈들과 한패가 아니라는 근거를 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어.”
해남 원정대 또한 해남으로 내려오는 동안 이세계인들을 마주쳤고 그들과 몇 차례의 전투를 벌였지만.
그들로부터 딱히 의미 있는 정보를 얻어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한 그들과 다르게 유지한 파티는 적의 목적은 물론이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까지 파악해 냈으니.
너무 자세한 정보를 들고 온 그를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김현태 네 말은 즉, 네가 못한 걸 내가 해내서 믿지 못하겠다는 거냐?”
“개소리하지 마. 그저 네가 배신자로 의심될 뿐이니까.”
유지한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태도로 보아 해남 원정대와 정보를 교류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인 듯싶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고흥에서 넘어온 엘리트들을 마주친 것 같지도 않았고.
“정보를 알아낸 건 내가 계약한 정령의 능력 덕분이야.”
“정령이라고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어.”
“당연히 들어본 적 없겠지. 이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능력이니까.”
“…….”
“정령을 다루는 연구자들조차 정령을 연구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고 하는데, 대체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단정해?”
김현태는 입을 다물었다.
유지한의 말대로 정령사도 아닌 그가 정령의 능력을 단정 짓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현태야. 이건 항상 하고 싶었던 충고인데……. 부디 네 좁은 시야로 남을 쉽게 평가하지 마라. 설령 마음속으로 평가를 하더라도 입 밖으로는 내뱉지 마.”
“너야말로 별것도 아닌 주제에 말 함부로 뱉지 마라, 유지한.”
유지한과 김현태는 서로의 눈을 노려보았다.
7년을 함께했던 옛 동료 간의 대치.
교차하는 그들의 강렬한 시선을 따라 마치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이 같은 파티에 있었던 시절, 충돌이 일어날 때 항상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건 파티원인 유지한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찍찍……!”
그런 파티장들의 분위기에 이끌린 동료들마저.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상대측 인원을 주시했다.
*****
“집어치워, 그럼.”
대화가 잘 풀리지 않겠다고 판단한 유지한은 파티원들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반대로 자리에 남은 김현태 파티는 서로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주로 유지한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유지한이 다른 길드에 들어가더니 사람이 변해 버렸어.”
“아니! 원래부터 저런 놈이었어. 영화도 찍고 정령도 계약하고……. 아주 제 세상이 되니까 멋모르고 날뛰는 거지.”
김현태 파티를 떠나 이전과는 태도가 달라져 버린 유지한.
그와 함께했던 옛 동료들은 그의 변화를 크게 체감하고 있었다.
특히 김현태는 자신에게 맞서는 유지한의 행동에 몹시 불쾌했다.
‘네 주제에 어떻게 감히 나한테…….’
항상 내 밑이라고 생각했던 녀석이었다.
같은 파티에 있어도 언제나 서포터였던 그와의 격차를 체감할 수 있었다.
가끔 반항할 때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비난을 듣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이던 파티원.
그랬던 그가 결국 파티를 떠나고, 조금 시간이 흘러 마주친 뒤에야 깨달았다.
같은 조직에 있었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버렸다는 걸.
“이미아는 어디 갔어?”
“유지한을 따라가는 거 같던데.”
“왜?”
“글쎄. 따로 할 말이라도 있나 봐.”
“쯧, 그 새끼가 그렇게 좋으면 아예 따라가던지…….”
같은 시각.
유지한을 뒤따라 나온 이미아는 그의 파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또 뭡니까?”
민유리는 다가오는 이미아를 경계했다.
조금 직전까지 김현태 파티원들과 서로 노려봤기에.
그들 중 하나인 그녀를 그리 곱게 대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괜찮아요.”
다만 유지한이 민유리를 제지했다.
이내 그가 무표정인 이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그냥.”
“응?”
이미아는 가만히 유지한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저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사무실에서는 김현태가 만들어 낸 분위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 이쪽은 제 옛 동료인 이미아에요.”
“알고 있어요.”
“피의 유령…….”
“피의, 유령?”
김시후가 뱉은 말에 이미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터넷에서 이미아 씨를 부르는 별명이에요.”
“그런 게 있었구나. 인터넷은 잘 안 해서…….”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민유리였다.
그 맹한 모습에 김시후는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크게 위험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은 덕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대화 도중에 다른 사람들처럼 시비를 걸지도 않았고.
“찍찍.”
“…….”
칠라는 조심스럽게 이미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서 머리 냄새를 맡기도 하며 조금은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악수.”
“찍?”
그러다가 이미아가 손을 앞으로 뻗자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가만히 칠라를 살펴보는 이미아의 눈은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에 칠라와 민유리도 경계심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유지한. 아까 들려준 이야기는 진짜야?”
“전부 다 사실이야.”
“김현태는 네 말을 믿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
“그렇겠지.”
“나라도 참고할게.”
“그래. 고맙다.”
유지한은 안도했다.
그나마 김현태 파티에서 이미아라도 이렇게 나서 준다면.
필요한 순간에 나서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환각에서 봤던 건……. 모른 셈 쳐야겠지.’
유지한이 환각에서 본 이미아는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실제 이미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꿀밤을 때려달라는 가짜 이미아의 요청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케로즈에 있을 때보다 얼굴이 훨씬 편해 보여.”
“아무래도 그렇지.”
지금의 유지한은 서포터였던 때와 전혀 다른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와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
“너는 생각 없어?”
“어떤?”
“파티에서 나오는 거.”
“……글쎄.”
“한번 고민해 봐. 내가 나와 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어차피 케로즈에 아쉬워진 것도 없어진 입장.
유지한은 자신에 이어 이미아의 탈퇴를 부추겼다.
지금처럼 꽉 막힌 김현태 파티라면, 그녀가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오면 네가 데려가 줄 거야?”
“내가? 널?”
“…….”
“조건을 아예 못 맞춰 줄 거 같은데.”
2급 영웅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이미아의 연봉은.
현재 김시후와 유지한, 민유리가 전부 연봉을 전부 합한 것보다 많을 터였다.
마음만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길드를 가도 반겨 줄 테고, 그냥 네가 만들어도 되잖아.”
“생각은 해볼게.”
유지한과 잡담을 나누던 이미아는 이내 다시 자신의 파티가 있는 장소로 되돌아갔다.
내심 아쉬워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민유리가 유지한에게 말했다.
“저분이랑은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서로 신세를 많이 졌어요.”
유지한은 파티에서 항상 이미아를 챙겼고.
이미아 또한 김현태 파티에서 유일하게 유지한을 동료로서 챙겨 주었다.
파티를 나오라는 제안을 건넨 것도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했던 덕분이었다.
“그보다 형, 이제 어쩌죠?”
“우리끼리라도 쫓아야지.”
가지고 있던 정보는 대부분 공유했지만.
엘리트들을 쫓기 위해 해남 원정대의 도움을 구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세계인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다행히 현재 놈들의 위치로 예상되는 장소는 10곳 미만으로 좁혀진 상황.
유지한은 서로 떨어져 있는 장소 간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짜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2일 정도 고생하면 되려나.’
해남군청과 가까운 은신처부터 해남 땅끝마을에 존재하는 곳까지.
휴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행군을 이어 간다면.
어림잡아 2일 내로 은신처 따위를 전부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 넉넉한 일정은 아니지만 파티원들이 따라와 줄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따라올 수 있겠어?”
“가능해.”
힐러인 이동길도 그 일정에 따라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생각을 마친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계획을 세웠다면 더 지체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준비하자.”
유지한 파티는 해남군청을 떠날 채비를 했다.
여기에 더 남아있어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이미아가 그에게 다시 찾아왔다.
“또 무슨 일이야?”
“김현태가 너희에게 협력하겠대.”
“……갑자기?”
그렇게도 의심을 하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김현태가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단, 유지한 파티는 해남을 떠날 때까지 김현태 파티와 계속 동행한다는 조건이야.”
“그 정도야 뭐.”
유지한은 그들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나쁠 것 없는 조건이었기에.
‘이게 몇 달 만인지.’
옛 동료들과의 오랜만의 동행.
하지만 과거와는 부쩍 달라진 자신의 처지에 유지한은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