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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85화 (185/300)

185화. 만남

유지한은 발견한 민유리는 크게 놀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김시후와는 다르게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했다.

모든 게 허구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반복되는 이 상황이 그녀의 정신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이었다.

‘유리 씨의 상태가 좋지 않다.’

유지한이 민유리의 안색을 살피는 찰나.

그녀가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소연이가 저렇게 됐어요!”

“그게 왜 유리 씨 때문입니까?”

“그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민소연이 쓰러진 걸 모두 자기 탓으로 여기는 민유리.

그에 유지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생을 습격한 몬스터들이 문제지, 절대로 유리 씨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콱!

이대로 둔다면 뻔한 대화가 끝날 것 같지 않았기에.

유지한은 민유리의 어깨를 손으로 세게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나머지 그녀는 몸을 크게 움츠렸다.

“내가 유리 씨를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

“…….”

“여기서 울고 있으면 나아질 게 하나도 없습니다.”

현실에서 동생은 이미 쓰러진 지 오래고, 이곳에서 보이는 건 전부 환각이었다.

후회하고 슬퍼한다고 한들 하등 의미가 없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언니가 자기 앞에서 자책하는 걸 보면 동생이 좋아할 것 같아요?”

“……아뇨.”

“태연하고 당당해지세요. 제가 유리 씨 동생이었다면 그러길 원했을 겁니다.”

어깨를 붙잡혀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눈을 돌려 유지한의 시선을 계속해서 피하던 민유리는.

끝내 그와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소연이가 깨어난다면……. 날 크게 원망하지 않을까요?”

“그땐 제가 직접 나서서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네?”

“고생한 것도 알아주지 않는 동생에게는 성별과 나이 불문하고 예절 교육이 필수죠.”

올바른 예절을 언급하며 천천히 주먹을 쓰다듬는 유지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동생을 때릴 거예요?”

“글쎄요. 다른 건 몰라도 언니를 무척 존경하는 동생으로는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거 참……. 든든하네요.”

민유리는 유지한을 바라보며 우는지 웃는 모를 표정을 지었다.

급박했던 처음과는 달리 훨씬 여유가 생긴 얼굴이었다.

*****

“아, 일어났다.”

—지한!

바닥에 누워 있던 유지한은 천천히 감긴 눈을 떴다.

먼저 일어났던 힐러 이동길은 실프와 함께 유지한과 민유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상체를 일으킨 유지한이 민유리를 내려다봤다.

눈가가 살짝 붉어진 그녀 또한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큰 문제는……. 없군.’

김시후가 나서서 주변 안전 확보는 끝냈고, 잠들어 있던 모든 파티원들은 현실로 돌아왔다.

마법진 위에서 한참 밝게 빛을 내뿜던 최상급 마석은 이제 촛불만 한 밝기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법의 타겟이 전부 사라져서 휴식기에 접어든 것이었다.

“유리 씨.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긴 한데.”

잠에서 깨어난 민유리는 재빨리 양손을 모아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꿈속에서처럼 자기 뺨을 때린 것도 아닌데 그녀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기가 그 안에서 저지른 일들이 하나같이 부끄럽게 여겨진 탓이었다.

“형, 일어나셨네요!”

“바깥은 좀 어때?”

“조용해요.”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한은 밖에서 돌아온 김시후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았다.

마석에서 터져 나온 마법이 공간 왜곡을 뛰어넘어 주변 전체를 휩쓸었다는 것과.

마법에 직접 말려든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1시간 정도 걸렸구나.’

김시후부터 민유리까지 구해내는 데 소요된 총 시간은 약 1시간 가량.

체감 시간으로는 한 달을 훌쩍 넘긴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훨씬 짧아서 유지한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쉬었으니까 다시 쫓아가야지.’

의도치 않은 휴식이었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조금 느껴지는 걸 제외하면 자면서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시 이세계인들을 쫓아가기에는 무리가 없을 터.

‘하지만 그 전에!’

유지한은 몸을 돌려 최상급 마석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마석을 심어놓은 건 틀림없는 이세계인들.

그렇다면 저 마석에서 그들의 기억을 꺼내오는 것도 가능하겠지.

딸깍!

마법진에서 마석을 떼넨 유지한이 그것을 실프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먹어치워.”

—냠!

실프는 몸의 크기를 한껏 부풀려서 최상급 마석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러자 마석을 설치하는 데 참여했던 이세계인의 기억이 그의 시야에 출력되었다.

—여기에 당하면 아무리 영웅들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테지.

—감히 우릴 건드린 대가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마법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이세계인들.

이미 그 함정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해남으로 가는 건가.’

배를 타고 넓은 남해로 나아가는 이세계인들.

마석을 설치하고 떠난 그들은 전부 고흥에서 해남으로 옮겨 가는 모양이었다.

—대장님은 깨어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들이 지역을 계속 옮기는 이유는 이번 기억을 통해 확실히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흩어진 엘리트들을 한데 모으고 우두머리인 ‘대장님’이 회복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영웅들의 신속한 개입으로 계획에 크고 작은 차질을 빚고 있었지만.

이세계인들은 1급 영웅마저 무력화시킨 대장이라면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IUPC는 시간 벌이에 불과할지도…….’

몬스터를 이용한 IUPC의 모든 활동들마저도.

이세계인들이 외부의 시선과 시간을 끌기 위한 요소에 불과한 듯 보였다.

—으윽!

그들은 챙겨온 짐들을 여전히 들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어느 보따리에서는 정영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질로서 쓸모가 있다는 여긴 것인지 아직 그의 목숨을 살려 둔 것이었다.

마석에서 모든 기억을 읽어 낸 유지한은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해남으로 가자.”

공간 왜곡을 빠져나온 유지한 파티는 이세계인들이 버리고 간 배에 탑승했다.

남호열로부터 배의 조종 방법을 간략하게 배워 놓은 덕분에 어설프게나마 배를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배를 이용하여 전남 고흥군으로부터 전남 보성군에 도달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남까지 약 40km 정도인가.’

녹차가 특산물로 알려진 보성에서 목적지인 해남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40km.

이제껏 뛰어서 이동해온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멀다고 볼 수 없는 거리.

유지한 파티는 해남을 향해서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중간에 마주친 마트나 편의점 따위에서는 물과 음식을 적당량 챙겨 이동했다.

“도착했어요!”

그리고 약 5시간의 끊임없는 이동 끝에.

그들은 큰 사고 없이 해남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도 사고를 겪었다 보니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서 끝나겠구나.’

의도치 않게 전라남도 지역을 순회하게 된 유지한은 해남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바라봤다.

이제 이세계인들이 옮겨 갈 무대는 이곳에서 서울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장이 깨어나기 전까지 직접 서울로 올라가지 않을 예정이었으니.

그는 이번 원정이 이곳에서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레드홀과 주사위가 원정대로 참여한 전라남도 여수.

해피 타임과 주작이 원정대로 참여한 전라남도 고흥.

마찬가지로 전라남도 해남에도 지역을 담당하는 원정대가 존재했다.

스노우볼과 그림자 길드가 그 주인공이었다.

유지한은 해남 지역으로 들어와서 먼저 그 원정대를 찾아다녔다.

현황과 이세계인들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끼룩!”

“캬오오오!”

“크르르……!”

해남에서 원정대가 모여 있는 것으로 예상하는 장소는 해남군청.

일반적으로 그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산을 깎아서 만들어 놓은 길을 넘어가야만 하는데.

하필이면 그 주위에는 몬스터로 가득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길을 막아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죠?”

“여기서 돌아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해남군청이 위치한 도심은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경로를 통해 돌아가거나 산을 뛰어넘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이렇게 입구부터 대놓고 틀어막았다면 다른 장소에도 몬스터가 숨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제가 따돌리겠습니다.”

방법을 두고 의견을 나누던 중 유지한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이 홀로 미끼가 되는 것이었다.

“안 돼요!”

“저도 반대에요.”

당연히 파티원들은 안전을 이유로 그에 반대했다.

그러나 유지한은 남호열이 만들어 준 팔찌를 보여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게 있으면 혼자 달아날 수 있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반대를 반대한다.”

“…….”

결국, 대화의 흐름은 파티장의 의견을 따르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결정권자가 어떻게든 직접 나서겠다는데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간다.’

해남군청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하고 파티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유지한은.

몬스터들의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서걱!

그곳에서 홀로 요란한 움직임으로 몬스터를 죽이기까지 하자.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저건 뭐야?”

“영웅이다!”

“저놈을 죽여!!”

몬스터를 조종하는 IUPC 회원들은 하나같이 유지한을 쫓아 이동했다.

정말 많은 수의 몬스터가 한 번에 움직이는 탓에 땅이 흔들려 지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너무 느린데!”

“저 자식이……!”

유지한은 꾸준히 그들을 도발하면서 길에서 몬스터들을 치워 나갔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공격이 쏟아졌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맞서 싸울 생각은 없었기에 공격을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제발 잘 좀 해봐!”

“왜 영웅 하나 제대로 못 잡는 거야?”

“저, 저 쥐새끼 같은!”

그렇게 한 30분을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뛰어다니는 것으로.

그는 딱 원하는 만큼의 적들을 자신에게 주목시킬 수 있었다.

‘이쯤이면 다들 넘어갔겠지.’

유지한은 파티원들이 산을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거친 산길에도 불구하고 적들을 여전히 뒤를 쫓아오고 있었으나.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른팔에 착용한 팔찌를 매만졌다.

파앗!

팔찌를 뒤집어버리는 것으로 그의 몸은 손목부터 시작하여 전신이 투명하게 변해 버렸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살펴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투명화] 스킬이었다.

“어엇?!”

“가, 갑자기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코앞에서 유지한을 놓쳐버리고 당황하는 적들.

유지한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손에 쥐고 있던 돌덩이들을 보이지 않게끔 하늘 높이 던져 버렸다.

“저쪽! 저쪽이다!”

“놓칠 거 같으냐!”

“캬아아오!!”

땅으로 떨어지는 돌을 인기척으로 착각하고 달려가는 IUPC 회원들.

청각이나 후각이 발달한 몬스터들은 [투명화] 스킬을 써도 알아보는 경우가 있을 테지만.

‘적이 멍청해서 편하군.’

조종하는 인간의 능력이 모자란 탓에.

유지한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편하게 달아날 수 있었다.

—우히히! 멍청한 것들!

“조용히 해.”

—으갹!

옆에서 재잘거리는 실프에게 꿀밤을 먹인 뒤.

유지한은 자신의 팔찌를 살폈다.

“이 팔찌는 진짜 쓸 만하네.”

스킬의 지속시간은 어림잡아 5분, 재사용 대기시간은 1시간 정도.

남호열이 급하게 만든 것치고는 매우 준수한 성능을 보여주는 아티팩트였다.

무엇보다 입고 있는 옷까지 투명하게 변하는 게 만족스러웠다.

가끔 보면 피부만 투명해지는 탓에 아티팩트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옷을 다 벗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도 슬슬 가야겠군.’

유지한은 산길에서 벗어나 원래 이동할 예정이었던 길목으로 돌아왔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남아 있는 잔당이 있었지만, 가뿐하게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구나.’

군청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남아 있는 버스는 보이지 않고 영웅들이 곳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유지한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유지한이라고 합니다. 제 파티원들이 여기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저희의 원정대장님께서 유지한 씨를 찾고 계십니다.”

고흥 원정대의 대장이 유지한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유지한은 경계병에게 물었다.

“원정대장이 누구죠?”

그는 질문을 던지면서 스노우볼과 그림자 길드의 부길드장을 떠올렸다.

가끔 2급 MA에서 얼굴을 보기도 했었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경계병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은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김현태 파티의 김현태 님이십니다.”

“……케로즈의 영웅 김현태를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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