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트라우마 (5)
실프가 김시후의 꿈속에 유지한의 의식을 강제로 밀어 넣은 때.
“왜 자꾸 내쫓겨 나오는 거야.”
꿈에 들어오고 약 30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유지한은 학교에 제대로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김시후의 무의식이 생성한 영웅 학원이라는 장소가 그를 자꾸 학원 밖으로 튕겨 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학생처럼 행동해야지!
“끄응…….”
현실에 남아 있는 실프는 유지한에게 번번이 조언을 건넸다.
꿈속에서 흐르는 시간과 현실에서 흐르는 시간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몰랐다면 미칠듯한 조급함을 느꼈으리라.
그런 와중에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듯 말을 걸어오는 실프를 보면서 유지한은 놀라워했다.
—꿈의 주인인 시후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등장인물을 연기해야 해.
“등장인물이라면……. 나보고 학생이 되라는 건가.”
실프의 조언을 들으며 온갖 방법을 사용해도 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유지한은 결국 학교 정문에서 계속 대기하다가 늦게 등교하는 학생을 납치하여 교복을 뺏어 입었다.
“됐다!”
신기하게도 교복을 착용한 뒤에는 학교에 들어서는 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 이후에 김시후를 찾아서 달려가던 도중 또다시 밖으로 튕겨 나갔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듣고 있어야지!
‘수업 시간에 수업을 받지 않고 복도를 서성이는 학생.’은 꿈의 등장인물로 적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려면 학생으로서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옷까지 원상태로 돌아와 버린 유지한은 별수 없이 학교 정문을 서성이며 새로운 학생들을 기다렸다.
영원히 수업 시간이 반복되는 김시후의 꿈속에서는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하교를 하는 장면 따위는 없었기에.
교복을 얻기 위해서 인내를 가지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 방식으로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길 31번.
꿈속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32번째 공략법을 만들었던 유지한은.
마침내 김시후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어우, 장난 아니네요.”
“이 정도로 끝나길 다행이지. 잘못됐으면 나도 여기에 갇힐 뻔했어.”
모든 사정을 전해 들은 김시후는 혀를 내둘렀다.
하필이면 김시후의 교실이 가장 위층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어서 찾는 데 시간이 오래 소요된 면도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나가는 건데요?”
“쟤들한테 한 방 먹여.”
유지한은 아직도 김시후를 욕하는 학생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옛날에는 그냥 참고 넘겼지?”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김시후의 머릿속에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건.
잘 극복했다고 생각하여 한동안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
지금 보이는 것들은 기억보다 훨씬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그는 이 꿈속에서 과거 트라우마의 재발을 느꼈다.
“참지 말고 반격해.”
“알겠어요.”
“아주 세게.”
유지한의 조언을 들은 김시후는.
다짐한 표정으로 한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넌 어디 가서 자기가 엘프라고 하지 마. 진짜 못생겼으니까!”
엘프를 강조하면서 김시후의 생김새나 키 따위를 비하하던 학생.
김시후는 반대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화장실 가서 거울이나 보고 와.”
“뭐?”
“누가 누구 얼굴을 지적해?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이, 이게……!”
사륵—
김시후의 공격에 그 여학생은 발끈하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의 몸이 교실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 이런 거구나!’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김시후는 반격을 개시했다.
“이종족은 싹 다 죽여 버려야 해.”
“네가 대신 죽는 건 어떨까?”
“엘프는 뾰족한 귀에서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난다니까.”
“네 똥냄새보다는 못할걸.”
“쟨 누가 봐도 가정교육 못 받은 것처럼 보여.”
“넌 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냐?”
…….
…….
강하게 반박을 할 때마다 연이어 사라지는 같은 반 학생들.
유지한은 아주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몸과 머리가 분리된 남학생마저도 자취를 감췄을 때.
“캬!”
김시후는 후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지한이 옆에서 소리 나게 손뼉을 치는 찰나.
두 사람은 동시에 현실에서 깨어났다.
“성공이다.”
“오오! 방금 제 옆에 있던 거 형 맞죠?”
“맞아.”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킨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말했다.
“내가 나머지 사람들 깨울 테니까 넌 실프랑 같이 우릴 보호해 줘.”
“넵!”
유지한은 김시후에 이어서 2번째로 꿈속에 들어간 인물은.
그의 영웅 학원 동기이기도 한 힐러 이동길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인생에 별다른 굴곡이 없었는지.
마력을 깨닫기도 전의 어린 시절, 패싸움에 말려든 꿈을 꾸고 있었다.
악몽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퍽! 퍽!
“꾸에에엑!”
“끄악!”
이동길 진영이 밀리던 패싸움은 유지한이 멀리서 돌을 던져서 해결되는 수준으로 그쳤다.
순식간에 이동길을 현실로 데려온 유지한은 곧바로 칠라의 꿈으로 뛰어들었다.
“찍찍! 찍찍찍!!”
“미안하다.”
“찍—!”
칠라가 꾸고 있는 꿈도 비교적 단순했다.
바로 녀석이 전 주인에게 파양 당하는 악몽이었다.
털이 너무 날린다, 배변을 조절하지 못한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린 새끼 때 전주인에게 파양 당한 기억.
칠라는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경험하고 있었다.
“찍…….”
늦은 저녁, 어느 동물병원 입구 앞에 놓인 커다란 케이지.
케이지 위에 테이프로 붙여진 종이에는 좋은 주인이 데려가길 원한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그 안에서 한동안 난동을 부리던 칠라는 체력이 떨어진 나머지 바닥으로 힘없이 축 늘어졌다.
“네 주인은 저 사람이 아니잖아.”
“찍찍?!”
그때 병원 앞에 등장한 유지한은 단단한 케이지 안에 갇힌 칠라를 풀어 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를 알아보는 분위기였다.
뒤이어 유지한은 차에 탑승하는 전 주인을 칠라가 바라보게끔 해 주었다.
“찍…….”
케이지에 갇혀 있을 때는 풀어달라며 난리를 치더니.
막상 풀려난 칠라는 생각보다 훨씬 얌전했다.
전 주인을 쫓아가려 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찍!”
떠나가는 전 주인을 무시하고 가만히 유지한을 바라보는 칠라.
유지한은 그 녀석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진짜 주인이 있다는 걸 아는 거겠지.’
그렇게 칠라를 현실로 데려온 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민유리뿐이었다.
*****
타다다다닷—!
민유리는 온 힘을 다해 좁은 길가를 빠르게 달렸다.
차도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량보다도 그녀가 달리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맞은 편에서 걷는 시민들과 부딪힌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
“하아, 하아……!”
점점 숨이 가빠지는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이내 그녀가 도착한 장소는 낯익은 병원.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훔친 그녀는 접수대에서 소리쳤다.
“민소연! 내 동생 소연이 지금 어디 있어요?!”
응급 환자들 사이로 안내받은 그녀는.
병상이 나열되어 있는 장소에서 미친 듯이 자신의 동생을 찾아다녔다.
“……!”
마침내 찾아낸 동생은 기절한 채 하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몬스터가 나왔다고 들었지만, 긁힌 상처를 제외하면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간호사는 보호자를 자처한 민유리에게 말했다.
“놀라셔서 잠깐 기절하신 거니까 금방 깨어날 거예요.”
보호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발언이었다.
허나 민유리는 그것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민소연은 몇 시간이 지나도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민유리가 실수로 민소연의 몸을 만졌을 때.
해당 부위는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처럼 검게 변해 버렸다.
“아, 안 돼!”
살을 만지면 검게 변색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에 이미 실수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접촉을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의식하고 있었거늘.
민유리는 동생의 몸과 닿는 미래를 바꿀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시도해 봐도.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민소연의 몸을 만진 상황이 되어 있었다.
“으흐흑……!”
살이 까맣게 변해버린 뒤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는 동생.
정밀 검사를 통해 마력 변색 증후군이 선언된 직후.
의사의 입에서는 냉정한 대답만이 흘러나왔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말.
민유리는 자신의 기억과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답변을 무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그때 심부름만 시키지 않았더라면…….’
용돈을 줄 테니까 음료수를 사두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집에서 편히 쉬고 있던 소연이가 이렇게 병원에 누워 있지는 않았을 텐데.
민유리는 동생에게 심부름을 시킨 스스로에게 혐오감마저 들었다.
‘……침착하자. 이건 이미 다 겪었던 거잖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기억들은 모두 지나온 과거의 것임을.
현실에서는 이미 민소연이 기절한 지 4년이 넘게 흘렀다는 것도.
따라서 그녀는 안정을 되찾고자,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다시 눈을 떠보니…….
그녀는 동생에게 심부름을 시킨 직후의 시간대로 이동해 있었다.
언제나 후회가 되는 그 순간으로 말이다.
억지로라도 다시 눈을 감아보려고 해도.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동생과의 메시지 기록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막아야 해.’
항상 후회로 남아 있는 순간이었다.
모든 게 허상임을 알고 있어도 이 순간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동생이 발견된 장소는 알고 있기에, 그녀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동생을 실은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나고 있었다.
민유리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 순간.
그녀의 몸은 다시 동생이 입원한 병원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렇게 동생이 갑자기 쓰러지는 끔찍한 경험은.
40번이고 50번이고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됐다.
잠든 동생을 마주하는 건 몇 번을 반복해도 무덤덤해지거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저 매번 새로운 고통으로 다가올 뿐.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인생에서 가장 기분 나쁜 순간만을 반복하다 보니.
이 허구의 세계 속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시종일관 마르지도 않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몸의 모든 수분을 다 내보낸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
그리고 또다시 같은 병원에서 쓰러진 동생을 마주한 민유리는.
동생의 침대 앞에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아, 아……!”
그녀는 미칠듯한 답답함으로 인해.
손바닥으로 자기 뺨을 때려댔다.
짝! 짝! 짝! 짝!
1대, 2대, 3대, 4대…….
뺨을 때릴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병원 내부의 사람들은 자해하는 그녀를 말리기는커녕 곁눈질하며 손가락질했다.
모두가 동생을 지키지 못한 그녀를 비난하고 있었다.
“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이야…….”
자기 비하의 반복.
양쪽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뒤에도 그녀는 뺨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을까.
뺨을 때리는 손바닥에서도 저릿한 감각이 느껴질 무렵.
콱!
또 뺨을 때리려는 그녀의 손을 누군가가 강제로 낚아챘다.
민유리는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로 그 사람을 바라봤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 유지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