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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83화 (183/300)

183화. 트라우마 (4)

“다들 꿈속에 갇혀 있다고?”

—응! 지한도 조금 전까지 그랬어!

실프는 모종의 마법에 당한 파티원들을 두고 꿈속에 갇혀 버렸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도 단순한 꿈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구성된 악몽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굉장히 낯선 표현이었지만, 유지한은 그게 조금 전에 겪은 일을 설명하기에는 꽤 나쁘지 않은 비유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가 다시 김현태 파티에서 핍박받는 생활로 돌아가는 건 악몽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내가 좀 대단해!

“…….”

—우히히!

유지한은 퍽 놀란 표정으로 실프를 바라봤다.

정령은 무척 신비한 존재이긴 하지만, 세상 모든 걸 알고 있는 완벽한 생명체는 아니다.

그런데 실프는 대체 뭐 하는 녀석이길래 처음 본 마법조차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실프 자신조차도 그 이유나 방법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나로서는 도움을 받아서 좋지만 말이지.’

정령이 뛰어나면 이득을 보는 건 결국 정령사였다.

파티에 보탬이 될지언정 절대로 손해가 되지는 않으리라.

몇 가지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유지한은 일단 실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지한이 친구들 꿈에 들어가서 도와줘.

“나보고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라고.”

—응.

실프는 유지한에게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기를 요청했다.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료들을 직접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그래. 해보자.”

—마음의 준비는 됐어?

“준비까지 해야 해?”

—잘못하면 지한도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걸.

자신의 꿈도 아니고 타인의 꿈에 갇혀버리는 것.

그것으로 인생을 마감한다면, 그보다 더 허무한 일은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시간 아까우니까 준비됐다고 치자.”

—그러면 시후부터 깨우자! 마법사니까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오케이.”

유지한은 실프의 지시에 따라 김시후와 정수리를 서로 맞대는 형태로 누웠다.

“혹시 외부인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네가 대신 처리해 줘.”

—에헴! 나만 믿으라구!

*****

푸른 달 영웅 학원의 수업 시간.

투명한 창문으로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창가 바로 옆에 나열된 책상 중에서도 가장 맨 앞에 앉아 있는 김시후는 불마법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래. 이런 수업을 했었지.’

지팡이 끝에 손톱만큼 작은 불꽃을 피워 내는 수업.

지금 와서 보면 정말이지 기초적인 마법이지만.

이제 막 영웅 학원 1학년에 올라온 학생들이 보여주는 결과물은 대부분 평범한 라이터를 사용하는 것보다 화력이 부족했다.

학생 중 대다수가 재능은 가졌으나 마법에 미숙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몇몇 학생들은 조금 달랐다.

남들보다 재능을 일찍 깨우치고 틈틈이 연습해온 학생들은.

비록 1학년이라도 2학년만큼이나 능숙하게 마법을 사용하곤 했다.

과거 김시후도 그런 부류였다.

화륵!

김시후의 지팡이의 끝에 생성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손톱이 아니라 손가락 3마디를 훨씬 더 넘기는 크기.

같은 학년의 학생들이 만들어낸 불꽃 중에서 가장 불꽃다운 불꽃이었다.

‘이걸 사용하려던 게 아닌데.’

이 교실의 모든 걸 다 태워 버릴 정도로 커다란 불기둥을 소환하려고 했던 김시후였지만.

어째서인지 이곳에서는 마법을 마음대로 펼칠 수가 없었다.

마치 진짜로 영웅 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 김시후가 된 느낌이었다.

한편, 그의 책상으로 다가온 교관은 그 불꽃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이거이거, 아주 훌륭하군요! 제가 여태껏 1학년 수업을 진행하면서 본 불꽃 중 가장 멋진 불꽃입니다!”

불마법 교관은 김시후를 극찬했다.

그만큼 김시후의 마법이 1학년치고 아주 능숙하다는 증거였다.

2학년과 비교하더라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내가 여기서 어떻게 반응했더라.’

김시후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실제로 교사로부터 이와 비슷한 칭찬을 처음 받았을 때.

그는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은근히 기뻐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마법사가 아니라 낯선 마법사에게 그런 칭찬을 받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지금의 김시후는 그저 기뻐하기보단 주변 학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자 역시나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몇 개 발견할 수 있었다.

대놓고 질투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김시후가 홀로 교사의 관심을 차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딩동댕동!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김시후는 뒤에 벌어질 일을 직감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교관이 교실을 빠져나가자, 수업 시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학생들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야! 너 뭐야?”

“네가 그렇게 마법을 잘 해?”

“이종족 주제에…….”

대놓고 종족을 언급하면서 김시후를 깔보는 학생들.

분명히 이 시기에도 종족 차별이 나쁘다는 인식이 퍼지던 시기였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여럿이기 때문인지.

학원 내부에서 김시후를 표적으로 한 차별은 암암리에 이뤄졌었다.

‘또 이런 걸 겪게 될 줄은.’

김시후는 주변의 물음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꼬투리를 잡으며 늘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말 씹는 거 봐라.”

“역시 엘프들은 싸가지가 없어요.”

“지 애미 닮은 거겠지. 하나같이 인간 사회를 좀 먹는 새끼들.”

“……닥쳐.”

어머니가 언급되자 김시후는 결국 입을 열었다.

시간을 되돌아온 것처럼 연출된 이 상황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여기서 대화를 해봤자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족을 욕보이는 건 그냥 넘겨 버릴 수가 없었다.

“킥킥! 꼴에 엄마 욕하는 건 싫나 보네?”

“이종족들도 가족을 아끼긴 하나 봐.”

“괴물 놈들이 서로 아껴봤자지.”

“좀 닥치라고!”

김시후는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를 욕하던 학생들은 입가에 비웃음을 띄운 채 제자리로 돌아갔다.

끝까지 김시후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죽여 버릴까?’

어차피 가짜에 불과한 사람들.

기분 나쁘게 심기를 건드리는 놈들을 죽여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참자, 참아…….’

김시후는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어차피 이 모든 건 가짜에 불과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여기서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희망적인 생각만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차라리 더 옛날 일을 보여주면 좋았을 텐데.’

김시후의 어머니, 에르나 하스가 아직 살아 있을 때의 과거.

그때로 간다면 살아 있는 부모님을 만나볼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의 시간대였다.

김시후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

“……?!”

책가방을 싸던 김시후는 어느새 다시금 수업을 받는 것처럼 책상에 반듯하게 앉은 자세가 되어 있었다.

당황하여 벽시계를 바라보니 1교시 수업이 진행되는 시간대였다.

그러면서도 날짜는 처음과 달라져 있었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싹 엎어버리자.”

결국, 김시후는 모든 걸 망가뜨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작은 자신을 욕보이던 학생들을 죽이는 것.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공격 마법은 사람들의 몸을 그냥 통과해 버렸고.

볼펜으로 누군가의 머리를 찍어 버리려고 해도 그 볼펜이 다시 필통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이게 뭐야……!”

그제야 김시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직감했다.

그렇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등교도 없고, 하교도 없는 영웅 학원에서의 생활이 도돌이표같이 반복되었다.

그와 함께 주변 학생들의 차별 또한 계속됐다.

“쟨 엄마가 이종족이라지? 진짜 존나 불쌍하다.”

“드워프인 타타이라 교관이 김시후한테 되게 높은 점수 주더라?”

“다 끼리끼리 뭉치는 거지. 같은 이종족이라고 감싼다니까.”

“어휴, 왜 우리 학원에는 뭣 같은 이종족들이 묻어서…….”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불편한 시선들.

의미 없는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김시후는 고통받았다.

과거의 그는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며 주변의 인정을 따냈다.

멀쩡한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고, 몇몇 학생들로부터는 차별적인 행동에 먼저 사과를 받기도 했다.

그 뒤로는 대체로 원만한 교유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비난의 정도가 실제로 기억하는 것보다도 훨씬 심했을뿐더러.

교우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촤악!

김시후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머리 위에서 물벼락이 쏟아졌다.

누군가가 문 위에 물마법을 심어 둔 것이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본 학생들은 소리 내 웃었다.

“푸흡!”

“으하하하! 걸렸다, 걸렸어!”

“내가 저거 맞을 거랬지? 빨리 5천 원 내놔.”

김시후가 물벼락에 맞을지 안 맞을지를 두고 돈 내기를 벌이는 학생들.

분명 과거에 이와 비슷한 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는 마법에 당하지도 않았고 돈내기가 벌어지지도 않았거늘.

“아이 씨발, 김시후! 너 때문에 돈 날렸잖아!”

심지어 돈을 날린 학생은 김시후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김시후는 침묵했다.

‘내가 잘못한 건가?’

체감 시간으로 3주일은 넘었을까.

욕을 듣는 것은 어느새 매우 익숙해졌다.

변화를 위해 발버둥 쳐도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갔고.

현재를 바꿀 수 없다는 경험이 계속 누적되어 온몸이 무기력해졌다.

학습된 무기력은 뒤이어 그의 행동을 지배했다.

‘……내가 잘못인 거구나.’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일은 기본.

누군가가 선을 넘어 가족을 욕하더라도 이제는 발끈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조용하고 평화로워지니까.

홀로 모든 걸 감내하는 것이었다.

“하여간 쓸모없는 새끼.”

그런데 돈을 잃은 남학생이 김시후를 두고 빈정거리던 그때였다.

서걱!

갑자기 그 학생의 머리가 앞쪽으로 기울어지더니.

곧이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거 참 쓸모없는 머리네.”

“……형?!”

머리가 잘린 학생의 뒤에서 교복을 입은 유지한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이 같은 교복을 입고 나타나다니?

김시후가 커다란 혼란을 느끼는 사이.

유지한은 바닥에 떨어진 남학생의 머리를 살폈다.

“김시후, 너 같은 놈은 한국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재잘재잘 시끄럽구만.”

남학생은 머리가 잘려나간 뒤에도 입으로 계속 말을 내뱉었다.

피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은 남학생의 몸은 아직도 머리가 붙어있는 것처럼 팔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괴이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다.

콰직!

신발로 머리를 짓밟은 유지한은 몸을 돌려 다른 학생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불청객인 유지한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짝!

유지한은 손바닥으로 김시후의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찾느라 고생했다. 몸은 괜찮아?”

“네!”

반쯤 감겨 있던 김시후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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