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트라우마 (3)
유지한이 내뱉은 짧은 한마디에 김현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술마저 동그랗게 벌린 것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너, 너 미쳤구나?”
“안타깝게도 난 지금 제정신이다.”
“지랄하지 마! 제정신이라면 네가 나한테 그딴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왜 없어?”
“……뭐?”
“너는 매일 같이 내 욕을 했는데 나는 널 욕하면 안 되냐?”
유지한은 어이가 없다는 눈길로 김현태를 바라보았다.
케로즈에 있었을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김현태에게 핀잔과 비난을 받았던 그였다.
불만을 토로했던 적도 있지만, 개선되는 것이라고는 월급에 쥐꼬리만 한 보너스가 더해지는 정도.
그럼에도 유지한은 파티에 계속 남아 있었다.
사실 ‘남았다’라는 표현보다는 ‘버텼다’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참아왔던 사람으로서는 김현태와 대립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현태야.”
“……?”
“입에서 냄새나니까 좀 닥쳐라.”
유지한은 자신의 코앞에서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마치 김현태를 놀리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 모습에 김현태는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유지한! 너 진짜 돌았냐?”
“빨리 우리한테 사과 안 해?”
황준호와 임시연은 유지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지한은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라졌군.’
주변에 가득하던 블러드 스네이크는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는데도 전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게 정답인가.’
스스로도 믿기 힘들지만.
그는 자신과 파티원들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 주변 환경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판단했다.
주위에서 단 1마리의 몬스터도 찾아내지 못한 그는 황준호와 임시연을 노려보았다.
이 환각을 빠져나가려면 이놈들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황준호.”
“왜?”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하냐?”
“……처음 만난 날?”
“내가 사무실에서 혼자 쭈뼛거리고 있으니까 네가 먼저 나한테 말을 걸었잖아. 앞으로 파티에서 오랫동안 함께 하자면서 악수도 요청했었고.”
케로즈에 들어간 유지한이 김현태 파티에 합류하는 것이 결정된 날.
신입 영웅 유지한을 처음으로 맞이해 줬던 건 같은 신입 영웅이었던 탱커 황준호였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황준호는 유지한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처음부터 유지한을 배척하는 입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 갑자기 그 얘기는 왜…….”
“넌 김현태 때문에 많이 변했지.”
“현태 때문이라니?”
“네가 항상 김현태 눈치 보면서 행동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
파티에서 최고 권력자인 파티장 김현태.
황준호는 매번 그의 눈치를 보면서 그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했다.
전투에서 전체적인 움직임과 판단 따위를 김현태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진행하는 건 기본이고.
평소 유지한을 대하는 태도마저도 조금씩 김현태를 따라갔다.
황준호라는 인물은 김현태의 동료이자 친구이지만, 동시에 그의 열렬한 추종자인 셈이었다.
“그리고 임시연 너도 크게 다르지 않아.”
“하, 웃기시네!”
임시연은 유지한의 말을 듣고서 코웃음을 쳤다.
이내 그녀가 유지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난 너 처음 봤을 때부터 별로였거든?”
“그랬겠지. 넌 여기 있는 전부를 다 싫어했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예전에 네가 친구랑 통화하는 걸 우연히 엿들었거든. 친구 이름이 아마 지민이었나?”
“……!”
임시연은 경악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분명 과거에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김현태 파티에 관한 불평을 했었다.
그 대상에는 유지한과 황준호, 이미아와 심지어 김현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파티원 모두에게 만족하지 못한 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불만을 드러냈던 셈이었다.
“네가 그때 뭐라고 말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거짓말하지 마!”
“들으면 기억날걸. 황준호 보고 ‘몸집만 커다란 깡통 새끼’라고 했잖아.”
“……나,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네가 김현태한테 했던 말도 들려줄까? 아, 참고로 이걸 말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김현태 파티가 깨져 버릴 수도…….”
“닥쳐!!”
불안함을 감지한 임시연이 꽥 소리를 질렀다.
그에 유지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인다면 여기서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
한편, 이미아는 유지한을 바라만 볼 뿐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른 파티원들처럼 유지한을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서서 감싸주지도 않았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듯한 태도.
‘차라리 저게 낫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에 유지한은 슬그머니 웃었다.
마법이 만들어낸 이미아조차도 현실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원하는 거라…….”
유지한은 말끝을 흘리며 김현태를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처럼 바짝 화가 난 김현태.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그에 맞서 검을 겨눌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유지한은 검 끝을 바닥을 늘어트렸다.
“내가 이제 와서 너희한테 뭘 바라겠냐. 어차피 말한다고 한들 지지리도 안 들을 텐데.”
“…….”
“현실에서 마주치거든 지금처럼 구질구질한 말싸움도 안 할 거야. 그러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깝거든. 그러니까…….”
유지한은 자신의 검을 바닥에 던져 버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전부 다 꺼져.”
마지막 말을 내뱉은 순간.
주변에 보이던 모든 풍경이 하얗게 물들었다.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하얀색 도화지처럼.
사륵—
뒤이어 임시연과 황준호의 몸이 물 속에 들어가 버린 솜사탕처럼 녹아 버리듯이 사라졌다.
분노한 얼굴로 유지한을 노려보던 김현태도 마찬가지였다.
투명해지는 마법 따위를 쓴 게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 완벽하게 삭제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미아뿐.
“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
가만히 유지한의 눈을 바라보는 가짜 이미아.
유지한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나는.”
“……?”
“네가 김현태 파티를 떠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왜?”
“넌 진작에 파티를 떠나야 했어. 유지한이라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눈앞의 이미아는 그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그렇다면 지금 그녀의 태도는 ‘유지한이 생각하는 이미아’라고 볼 수 있을까.
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떠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너 덕분이기도 한데.”
“내 덕분이라고?”
“파티에서 너 혼자만이라도 얌전했으니까 7년이나 있었지. 아니면 진절머리 치고 나갔을걸.”
파티에서 사실상 유지한의 유일한 말동무였던 이미아.
대화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녀는 은연중에 유지한이 기댈 수 있는 기둥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녀마저 다른 파티원들처럼 유지한을 깎아내렸다면 진작에 포기하고 파티를 뛰쳐나왔으리라.
그런 생각을 전하자 이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확실히 내 잘못이네.”
“잘못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아니. 잘못이야. 그러니까 현실에서 진짜 ‘나’를 마주치거든 꿀밤 1대만 때려 줘.”
“……그랬다간 반대로 내가 얻어맞을 거 같은데.”
“우리가 지금 나눴던 대화를 전하면 그럴 수 없을 거야.”
“흐음.”
유지한은 무척 신기한 눈으로 가짜 이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현재 자신이 진짜 이미아가 아니라는 걸 자각한 채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이 현상을 가지고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보고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일.
그때 가짜 이미아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어떤?”
“잠깐 이쪽으로 와 봐.”
유지한의 그녀의 부탁에 따라 그녀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조금 걱정했다.
‘갑자기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가짜 파티원들과는 태도가 전혀 다른 가짜 이미아.
그럼에도 이것은 이세계인들이 쳐 놓은 함정이었으니.
유지한은 공격이 날아온다면 반격할 기세로 그녀를 경계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서 있어.”
그 순간.
가짜 이미아는 기습적으로 유지한의 몸을 와락 껴안았다.
“뭣……!”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놀란 유지한은 그녀와 살이 맞닿은 부분을 확인했다.
날카로운 암기를 들고서 기습 공격을 시도한 건 아닐까.
계속해서 의심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단지 세게 껴안았을 뿐.
“내가 진짜 ‘나’였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못했겠지. 이미아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부끄럼을 많이 타거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네가 이해할 필요는 없어. 이건 내 개인적인 욕심일 뿐이니까.”
뜨거운 숨결이 상대방의 살에 닿는 거리.
유지한이 가짜 이미아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그녀는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잘 있어.”
가짜 이미아는 끝까지 유지한을 껴안은 상태로 사라져 버렸다.
순백의 공간에 홀로 남은 유지한은 그녀의 숨결이 닿았던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분명 모든 게 환각이었음에도.
그녀가 내뱉은 숨결의 온도만큼은 현실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
“……도통 알 수가 없네.”
과거의 기억을 기반으로 생성된 환각.
그 안에서 갑자기 포옹을 시도한 이미아.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의미인지는 알아낼 수는 없었다.
이내 아무것도 담기지 않던 그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
“……!”
유지한은 굳게 감겨 있던 눈을 떴다.
바닥에 아주 편하게 대자로 뻗어 있는 그의 몸.
재빨리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자 그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누워 있는 파티원들이 보였다.
—일어났다!
“실프!”
실프는 홀로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최상급 마석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저기서 마력이 파바밧! 하더니 다들 정신을 잃었어!
현실에서는 환각에서 체감한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유지한은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마석을 경계하며 주변 사람들의 상태를 살폈다.
다들 눈에 띄는 외상은 없고 호흡이 고른 걸 보니 건강 문제는 없어 보였다.
‘어떻게 깨우지?’
특정한 마법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기본 방법 중 하나는 그 마법이 펼쳐진 장소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티원들의 몸을 챙겨서 최상급 마석과 거리를 벌린다면 파티원들을 잠에서 깨울 수 있을까.
지극히 정석에 따르는 방법이었지만, 유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이들이 깨어날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거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게 정답인 것 같은데.’
유지한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가짜임을 알아보고 김현태 파티와 말싸움까지 벌여서 환각을 깨뜨렸다.
파티원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잠에 든 사람들에겐 이 내용을 전해 줄 수가 없으니.
그가 조금 답답함을 느끼던 그때였다.
—지한! 친구들을 깨우고 싶은 거지?
“그렇지.”
—내가 조금 도와줄 수는 있는데!
“방법이 있다고?”
—대신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 ……그래도 할 거야?
“뭘 물어? 당연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