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추격 (2)
“찍찍…….”
“괜찮아. 올라가 봐.”
“찍!”
출렁!
칠라가 배에 올라타자 무게로 인해 배가 크게 출렁거렸다.
다행히 위에서 요란하게 뛰어다니는 정도가 아니라면 탑승에 큰 문제는 없었다.
유지한은 무게중심을 위해 칠라를 배의 중앙에 앉힌 뒤에 말했다.
“출발하죠.”
“속도는요?”
“당연히 최대로.”
부릉!
엔진에서 오토바이와 비슷한 소리가 들리며 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남호열은 마법이 밝히는 빛을 따라 서서히 배의 속도를 높였다.
바닷물에서 올라오는 짠내음에 유지한은 코를 매만졌다.
허나 그의 눈만큼은 이세계인들의 배를 쫓고 있었다.
‘저쪽도 속도를 올리는군.’
이세계인들은 영웅들이 바다까지 따라오는 모습을 보고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조금 더 큰 배에 타고 있는 덕분인지, 아니면 좋은 엔진이 달렸기 때문인지.
남호열이 속도를 최대로 올려도 이세계인들의 배를 따라잡지 못했다.
“제가 도울게요.”
“할 수 있겠어?”
“안 되면 되게 해야죠.”
[매직 프로펠러]
김시후는 배의 후방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프로펠러를 생성했다.
그것이 한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며 바람을 뒤로 밀어냈다.
강력한 바람 마법을 사용한다는 방안도 있었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훌륭한 마법이었다.
“이런 마법도 있었구나.”
“공용 마법은 아니고, 제가 어릴 때 호수 위에 종이배를 띄우고 놀 때 사용하던 마법이에요.”
“이렇게 무식한 걸 종이배에 달았다고?”
“당연히 그때와 마법의 규모는 다르죠. ……호수 관리인한테 몇 번 혼나긴 했지만요.”
“혼날 만하네.”
장난감 용도로 개발했던 마법을 이곳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개발 당시에 목적과 용도는 달라졌으나 성능은 확실했다.
쏴아아아아——!
추진력이 한껏 더해진 낚싯배는 엔진이 허락하는 속도의 한계를 뚫고 바다를 가로질렀다.
“우어어어어……!”
세상 처음 느껴 보는 속도감에 남호열은 오금이 저려 왔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핸들에서 절대로 손을 놓지 않았다.
원정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매번 크고 작은 부담을 지고 있으니.
이럴 때라도 도움이 되어야 여기까지 따라온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쪽이 더 빨라!’
바람 마법의 효과로 유지한 일행의 배는 이세계인들이 탑승한 배의 속도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점차 좁혀져만 가는 배와 배 사이의 거리.
그런데 그때 민유리가 외쳤다.
“조심해요!”
“……!”
이세계인들이 앞에서 뒤로 공격을 가해 왔기 때문이었다.
촥! 촤악!
선두에 있는 유지한은 배의 정면으로 날아오는 마법들을 오러가 실린 검으로 찢어냈다.
오러로 마법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상대의 마법을 집어삼킬 정도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
유지한은 그 타이밍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바람의 오러를 흩뿌렸다.
수면에서 솟아오르는 김시후의 지원 마법까지 더해지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위에서도 옵니다!”
“찍찍!”
민유리를 비롯한 딜러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새들의 날카로운 깃털을 하나씩 저격했다.
칠라 또한 커다란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배를 안전하게 보호했다.
윤도하 파티의 노련한 지원까지 더해지자 배로 들어오는 피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거의 다 따라잡았다.’
어둠 속에서 일렁거리는 배의 형체가 유지한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도 보였다.
유지한은 배와 배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계산해 가며 이동기로 먼저 뛰어오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지금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를 하던 이세계인들이.
막상 거리가 가까워지자 노려만 볼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었다.
‘뭐야?’
쟤들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유지한은 얌전해진 그들의 태도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던 도중 배의 갑판에 서 있는 리우스를 발견했다.
리우스의 눈동자는 유지한의 얼굴과 바다 아래쪽을 빠르게 번갈아 가며 훑고 있었다.
‘……설마.’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정을 떠올린 유지한이 숨을 집어삼켰다.
뒤이어 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속도 조금만 더 올려!”
“지금보다 더 빨라지면 배가 뒤집힐 수도 있어요!”
“호열 씨! 지금 방향 바꿀 수 있겠어요?”
“할 수는 있는데…….”
출렁!
그때 배의 아래에서 흔들림이 느껴졌다.
이변을 감지한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뒤늦게 바다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유지한은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유리 씨, 그걸 쏴요!”
피융!
민유리의 화살이 이세계인들의 배의 몸체를 뚫어내며 깊게 박혔다.
마력 화살 안에 장거리 추적용 아티팩트를 심어 둔 것이었다.
“다들 뭐든 꽉 붙잡고 있어요.”
“뿌우우우우우——!”
고막을 파고드는 울음소리와 함께 배 밑바닥에서 등장한 것은 거대한 고래.
그것도 몬스터로 변해 버린 괴래였다.
터업!
유지한 일행의 낚싯배는 그렇게 괴래의 입에 통째로 집어 삼켜졌다.
*****
“골 때리네…….”
영웅부에서 현재 24시간으로 운영 중인 위기대응실.
이토록 중요한 시기에 위기대응팀의 본부장이 스파이로 잡혀감에 따라.
윗선의 지시로 인해 위기대응팀은 양지철이 임시로 관리하고 있었다.
눈 밑에 아주 진한 다크서클이 내려온 그가 한 직원에게 말했다.
“영웅들 배치 상황 보고해 주세요.”
“MA 쪽 담당 인원을 최저 기준으로만 맞추고 전부 영웅부 지부로 불러모으는 중입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으니까, 어느 지역에 어떤 수준의 파티가 얼마나 투입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20분 전에 정보 들어온 거 그쪽에 놓여 있잖아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시를 받은 직원은 조금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그 서투른 일 처리를 본 양지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대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정보를 취합하는 일조차 제때 처리하지 못하다니.
스파이가 숨어있었던 조직답게 이곳은 제대로 된 업무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철 씨.”
“아! 오셨군요!”
양지철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문으로 들어온 한 여성을 맞이했다.
여러 외국어에 유창한 그녀는 영웅부에서 주로 해외의 영웅 조직들과 교류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1급 영웅들이 실종된 한국에서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진 지금, 다른 국가들의 협조를 요청하는 건 필수적인 일.
그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몹시 어두웠다.
“듣자 하니 다른 나라에서도 뭔가 급한 일이 터진 모양이에요.”
“미국은요?”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베트남……. 여러 나라에 전부 다 연락을 돌려 봤지만, 최상위 영웅들의 협조를 구할 수는 없었어요.”
서울에서는 아직 통신 기능이 작동하는 상황.
세계 각지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다들 내부에서 터진 일들을 수습하기에 바쁜 모양이었다.
주로 몬스터나 자연재해 따위로 한국에서 벌어진 것과는 다른 종류의 사고인 듯했다.
“그렇다면 UN! UN은요?!”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답변이…….”
“이런 썩을 놈들!”
양지철은 UN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이념 아래 자체적으로 강력한 영웅 조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UN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IUPC 회원들이 구속되었을 때, UN 측에서 보내온 입장문 따위도 고려해 주는 등 영웅부에서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 줬었는데.
그 대가는 지금 같은 위기에서 외면받는 것으로 돌아왔다.
“평소에 IUPC를 그렇게 옹호하더니만! 그놈들이 큰 사고를 쳤는데도 안 도와주겠다고요?”
“후, 다시 한번 연락은 해볼게요.”
“이번에는 조금 강경한 태도로 나서 주세요. 따지고 보면 지금 그쪽에서 먼저 달려와도 모자란 거잖아요.”
여성이 위기대응실을 빠져나가고.
양지철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생각했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절묘한데.’
여러 나라에서 서로 협조를 구하기 힘들 정도의 사고가 벌어지다니.
과연 이것을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누군가가 미리 설계해 둔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일이었다.
“지한 씨가 계신 여수 쪽은 소식도 없고……. 미쳐 버리겠네.”
“진정 좀 하지?”
“니로치. 어떻게 지금 진정할 수가 있겠어요.?”
“오빠가 진정하지 않으면 여기 모두가 더 혼란스러워질걸.”
“…….”
니로치의 조언에 양지철은 입을 다물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지한은 원정대장까지 맡아서 잘나간다며?”
“그거랑 별개로 소통이 어려우니 답답한 거죠. 그쪽 상황을 모르니까…….”
“이쪽이나 걱정해. 걘 알아서 잘할 거야.”
후릅—
여유 있게 대답한 니로치는 커피를 마시며 향을 음미했다.
그러자 양지철이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요?”
“그런 힘을 가지고 쉽게 당해 버리는 멍청이는 아닐 테니까.”
유지한에 관하여 유지한 본인보다 더 자신감을 내보이는 니로치였다.
*****
“으아악!”
“괴래! 괴래다!”
“부길드장님을 지켜!”
“불 좀 켜주세요!”
바닷물과 함께 괴래의 몸속으로 들어온 일행은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마력으로 생성된 빛이 어둠을 밝히자 괴래의 붉은 살이 눈에 들어왔다.
콰직!
낚싯배는 괴래의 살에 강하게 충돌한 뒤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찍찍!”
“고, 고마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칠라가 남호열을 챙기는 한편.
유지한은 김시후를 향해 지시했다.
“어떻게든 입을 틀어막아!”
[버블링]
괴래의 입가로 김시후가 생성한 작은 거품들이 퍼져 나갔다.
생각보다 두껍고 양이 풍부한 거품들은 괴래의 입 전체를 커버하기에 충분했다.
밖에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유지한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설마 괴래가 나타날 줄은.’
적들이 해양생물을 조종할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지만.
설마 괴래를 이용해서 통째로 집어삼킬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괴래가 등장한 건 약 10년 전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지한조차 과거에 촬영되었던 영상을 확인한 것이 전부였다.
“다들 괜찮아요?”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괴래는 핏물에 독이 있습니다.”
유지한 일행을 삼켜 버린 괴래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세계인들과의 거리가 크게 벌어질 터.
하지만 문제는 괴래의 핏물에 숨겨진 독이었다.
‘혼자 빠져나가려면 얼마든지 가능했겠지만…….’
아주 강력한 독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산성으로 피부가 까지고 몸이 매우 무거워지는 정도.
그러나 바닷속이라는 환경과 일반인인 남호열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괴래를 섣부르게 건드릴 수 없었다.
“어우, 냄새!”
“콜록!”
그때 갑자기 유지한 일행은 톡 쏘는 듯한 냄새를 맡았다.
괴래의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냄새인 듯했다.
모두가 그것을 느끼고 매우 불쾌해하는 가운데.
드드드드!
실프가 갑자기 몸을 진동하며 위로 날아올랐다.
이내 녀석이 홀로 괴래의 몸속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쟤 지금 어딜 가는 거야.’
밖으로 나가도 모자랄 판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 하다니.
유지한은 어쩔 수 없이 실프의 뒤를 쫓았다.
물컹거리면서도 굴곡진 괴래의 식도를 밟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그렇지 않아도 불쾌하던 냄새가 더욱 심해졌다.
그에 기분이 나빠진 유지한이 코를 매만지는 순간이었다.
“……?!”
유지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괴래의 위장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 속.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와 죽은 물고기가 가득한 그곳에.
어째서인지 반짝거리는 마결정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마결정이 이런 곳에?”
유지한은 그제야 자신의 발치에서도 마결정을 발견했다.
붉은색 마결정이었기에 붉은 살과 겹쳐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우우웅!
실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마결정의 산에서 신나게 헤엄쳤다.
녀석이 지나가는 자리에 있던 마결정들은 모두 회색의 가루로 변해 버렸다.
——한 번에 많이 먹인다고 해서 급격하게 강해지지는 않으니까 주의해.
윤도하의 조언을 떠올리고 퍼뜩 놀란 유지한이 말했다.
“야! 그만 처먹어!”
우웅!
실프는 그의 지시를 듣지도 않고 허겁지겁 마결정을 먹어치웠다.
유지한이 뒤늦게나마 손을 쓰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두근!
순식간에 마결정을 100개 넘게 먹어치운 실프의 몸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