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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71화 (171/300)

171화. 습격 (5)

유지한은 슬쩍 시선을 돌려 1층을 내려다봤다.

박재경과 윤도하 파티가 온몸이 마비된 IUPC 회원들을 대신하여 철창에서 풀려나온 몬스터를 퇴치하고 있었다.

‘이 자식!’

‘감히 한눈을 팔다니!’

누군가가 크게 화를 내며 유지한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로브 속에서 기다란 레이피어의 날이 번뜩였다.

챙!

심장을 노린 찌르기.

검이 기다란 로브 사이로 빠져나오며 기습적으로 가한 공격이었지만.

유지한은 상대의 검이 자신의 몸에서 멀어지게끔 튕겨 냈다.

슉! 슉!

이어지는 2번째, 3번째 찌르기.

절대로 아마추어의 솜씨는 아니다.

빠르고 절도있는 움직임으로 보아 상대는 썩 괜찮은 솜씨를 가진 검사.

하지만 유지한의 눈동자와 팔은 정확히 그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있었다.

‘이걸 눈으로 보고 막는다고?!’

자신 있는 찌르기가 연속으로 막힌 것에 당황한 남자는 후속 공격을 넣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상대의 수준 파악을 끝낸 유지한이 그를 쫓으려 하자, 그의 동료가 지팡이를 꺼내 보였다.

[미스틱 일루전]

솨아아악!

유지한은 3층의 공간이 잠시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잠시 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3층에서는 로브를 착용한 이세계인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흡사 단체로 공간을 이동해 버린 듯한 광경이었다.

“찍찍?!”

눈을 동그랗게 뜬 칠라는 털을 바짝 세운 채 주변을 경계했다.

동물의 감각은 분명 무언가가 바로 근처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흠.”

다만 유지한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칠라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다가.

무엇 하나 없는 허공을 향해 무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스걱!

“끄아아악!!”

검의 궤적에 있던 건 환각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

그의 팔이 어깻죽지부터 뼈째로 잘려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시전자의 부상으로 불안정해진 그의 마법은 금세 깨져 버리고 말았다.

“전부 다 멈춰!”

“움직이면 쏜다!”

뒤이어 김시후와 민유리까지 3층으로 넘어왔다.

이세계인들은 등을 보이지 않으며 구석까지 계속 물러났지만, 그들에게 더 도망칠 공간은 없었다.

앞으로 지팡이를 겨눈 김시후가 선언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잡혀라!”

“……살려 준다는 뜻인가?”

“그건 생각 좀 해보고!”

“…….”

*****

IUPC의 의식이 진행되는 공간을 습격하는 계획은 몹시 성공적이었다.

풀려나온 몬스터의 수는 상당했지만, 가짜 약물을 퍼트린 것으로 몬스터 조종을 맡을 사람이 없어졌기에 녀석들은 패닉을 겪다가 쓰러져갔다.

전투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사후처리뿐.

“차라리 죽여라.”

팔이 잘려나간 마법사의 태도는 완고했다.

외모와 매우 떫은 표정에서부터 느껴지는 고집불통의 성격.

그를 심문하려던 박재경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검으로 반대쪽 팔을 잘라냈다.

촥!

“크억!”

양팔이 잘린 마법사는 힐러의 치료를 받았다.

출혈이 빠르게 멎을 즈음에 박재경이 차갑게 말했다.

“대답을 거부할 때마다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겠다.”

“으으…….”

“이 사람 대신 대답을 하고 싶으면 먼저 나서도 좋아. 빠르게 협조해준다면 선처를 고려해 보지.”

이세계인들의 대답을 강요하는 협박.

박재경이 팔짱을 끼자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지원자가 나올 법한 분위기.

째릿!

그러나 2개의 팔을 잃고도 충혈된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마법사 때문에 그들은 계속 입을 열지 않았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마법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저 마법사가 가장 높은 사람인가.’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달라질 기미가 없었기에.

박재경은 결국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유지한을 돌아보았다.

“미안해요, 지한 씨.”

“저는 괜찮습니다. 시후야!”

“네!”

“뽑아.”

손바닥을 모기처럼 싹싹 비비며 마법사에게 다가간 김시후는 그에게서 마력을 뽑아냈다.

유지한은 순식간에 탄생한 마석을 실프에게 먹였다.

곧 그의 시야에 낯익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음?’

유지한에게 가장 먼저 보인 장면은 지구가 아닌 아제시아였다.

아직은 멸망하지 않은 세계에서 아내, 그리고 어린 딸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마법사.

그때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 내리며 그의 주변을 휩쓸었다.

—쾅!

세상이 뒤흔들리는 충격과 함께 영상이 끊어지고.

두 번째로 보이는 장면은 턱수염이 길게 자라난 마법사였다.

가족과 함께하던 시간대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듯한 시기.

그는 웃음이 가득했던 과거와는 달리 마치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듯한 폐인처럼 보였다.

‘저 사고로 가족을 잃은 거군. ……그런데 왜 이런걸?’

유지한은 의문을 가졌다.

샘플링으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능력에 익숙해지면서 실프가 상대의 특정한 기억만을 골라서 보여 준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건 이세계인들이 숨기는 계획과 관련된 정보이거늘.

왜 이런 암울하고도 사적인 기억을 먼저 보여 주는 것일까?

‘설마 이 사람한테 동정심을 느끼라는 건가?’

유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세계가 멸망해 버린 그들에겐 선택지가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한국을 먼저 공격한 놈들을 동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실프! 이런 건 굳이 보여 주지 않아도 돼.”

뚝!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에 보이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특수한 공간에서도 실프와의 소통이 가능한 것이었다.

뒤이어 유지한이 말했다.

“이 마법사보다 순천이나 여수에서 죽은 시민들이 몇 배는 더 불쌍하고 억울해.”

운석이라는 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불쌍하지만.

그보다 억울한 건 이세계인의 행보로 살해당한 시민들이었다.

지구의 인간으로서 어느 쪽에 더 감정이 실리는지는 명확했다.

그의 뜻을 이해한 것인지 곧 재생되는 영상이 바뀌었다.

‘그래, 이런 걸 원했다고.’

대장님이라고 불리는 이세계인들의 리더.

공항에서 맞붙었던 제리나 그 외 엘리트들이 나오는 기억들.

“아주 잘했어, 실프.”

실프에게 짧게 칭찬을 건넨 유지한은 무엇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눈앞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히히! 나 진짜 잘했어?

“……?!”

재생되는 영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정컨대 성격이 매우 밝은 10대 소녀 같았다.

그것이 마치 칭찬에 응답하는 실프의 음성처럼 들렸기에.

화들짝 놀란 유지한이 말했다.

“실프. 너 말을 할 수가 있었어?”

—…….

“대답해!”

기다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의 목소리가 절대로 환청은 아니었다고 확신하는 그였다.

‘이거 조만간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유지한은 속으로 은근한 기대감을 품었다.

*****

거북선 모형 속에 숨겨진 공간 왜곡.

그 안에서 파티원들과 대기 중인 정영욱은 눈을 감고 있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고민에 빠질 줄이야.’

유지한 파티.

영화를 촬영하여 외부에 이름을 알리고, 빛처럼 빠른 속도로 3급에 올라선 파티.

아주 이례적인 행보를 이어 가는 그들은 파티장 유지한을 중심으로 이번 지방 원정에서도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정영욱이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은데.’

같은 등급에 놓여 있다고는 해도 유지한 파티와 정영욱 파티를 비교한다면?

이 원정대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유지한 파티의 손을 들어줄 것이었다.

정영욱 파티는 그들만큼 보여 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파티장으로서의 격차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유지한은 거대 길드의 부길드장인 박재경과 정기준의 인정을 얻어 낸 영웅!

이번 원정대의 그 누구를 비교 대상으로 두더라도 그가 기여한 공로는 압도적일 것이었다.

유지한이 3급이라는 것은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

‘청영사 동기는 거의 다 병신들이라니까.’

청영사에서 유지한을 얕잡아보던 영웅들이 호되게 당했다는 소식은 몇 번 접했다.

그의 소속이나 부족한 인지도를 이유로 눈에 빤히 보이는 실력마저 부정하려 드는 동기들을 병신 취급하는 그였다.

그만큼 유지한을 크게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시후는 아니야.”

으득!

김시후를 떠올린 정영욱이 이를 악물었다.

푸른 달 영웅 학원의 수석 입학생이었던 정영욱을 단 1학기 만에 뛰어넘은 마법사 김시후.

정영욱과 그의 관계는 영웅 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졸업 이후까지도 이어지는 악연이었다.

‘파티장만 아니었다면 금방 묻혀 버렸을 놈이잖아!’

김시후는 1인 길드로서는 인상적인 활동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하지만 유지한이 합류한 뒤에는 모든 게 달라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바로 꿀잼이라는 길드가 살아난 것은 오로지 유지한 덕분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었다.

‘사람 하나 잘 물어서 성공한 반쪽짜리.’

정영욱은 김시후가 주목받는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랴, 거기엔 김시후의 구원자인 유지한이 있고.

정영욱 파티에는 그런 존재가 없었다.

“영욱아! 간식 먹을래?”

“아, 네! 거기 두세요!”

정영욱 파티의 전사가 식사를 하지 못한 정영욱을 챙기고자 초코바 하나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 행동을 본 정영욱은 입으로 감사를 전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를 조금 원망했다.

‘더 뛰어난 파티원을 영입했다면……. 지금의 김시후와 내 입장이 달라졌을텐데.’

저런 초코바 따위를 나눠주는 전사가 아니라 유지한 같은 파티원이 있었다면.

그는 박재경의 옆에 서 있는 건 자신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시후가 오로지 운빨로 지금 같은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정영욱은 그 하프 엘프가 너무 얄밉고 질투가 났다.

“이봐! 우리에게도 음식을 줘!”

“뭐?”

“어차피 이제 도망도 못 가잖아. 먹을 거라도 달라고.”

음식을 본 이세계인들은 자기들에게도 음식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을 감시하던 영웅들은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어졌지만.

잠자코 있던 정영욱은 직접 초코바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면 음식을 줄게.”

“질문?”

“아주 간단한 질문이야.”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이세계인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말해봐. 듣고 판단할게.”

“아까 전 머리에 검은색 모자를 쓴 마법사 기억하지?”

“어. 기억하고 있어.”

“그 마법사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뛰어난 마법사 같아?”

김시후와 정영욱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난 마법사인가.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이세계인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정영욱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한 여성이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당신이 더 뛰어난 마법사 같아.”

“그 이유는?”

“뭐, 뭐랄까, 마력도 그렇지만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나는 당신의 분위기가 그 모자 쓴 마법사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껴져.”

“……아주 솔직한 대답 듣기 좋았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정영욱이 여성에게 초코바를 지급했다.

그에 다른 이세계인들도 한목소리로 정영욱이 더 뛰어난 마법사라고 소리 질렀다.

아부성 대답에 만족한 정영욱이 간식을 하나씩 나눠주는 가운데.

그 광경이 조금 한심해 보였던 아뎀은 말했다.

“난 그 모자 쓴 마법사에 한 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이유는?”

“정말 뛰어난 마법사라면 우리한테 굳이 이런 질문은 안 할 것 같거든.”

“하! 지랄하네.”

표정을 굳힌 정영욱이 아뎀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잠시 후, 그가 같은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형들! 지금 바로 이동하죠.”

“뭐? 유지한 씨와 약속한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딱히 상관없잖아요! 그것보다 이 새끼들한테 제 실력을 보여 줘야겠어요.”

예정된 시간을 훨씬 앞당겨 장소를 옮기려는 정영욱.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를 힐끔거리며.

아뎀은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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