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습격 (4)
“끼룩! 끼룩!”
이세계인을 태운 채 하늘을 유유히 날아가는 갈매기들.
유지한 일행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녀석들을 쫓았다.
‘추적은 저놈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갈매기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었지만.
놈들이 가져가는 주사기들 사이에 장거리 추적이 가능한 아티팩트를 심어 둔 덕분에 꾸준히 쫓아가면 놓칠 염려는 없었다.
박재경이 제공한 아티팩트에 추적 마법을 사용 중인 김시후가 말했다.
“현재 갈매기들과의 거리 약 1.1km입니다.”
“확실해?”
“오차범위 15m 이내에요.”
정확한 거리를 계산하여 실시간으로 갈매기의 위치를 알려 주는 김시후.
난생처음 사용해 보는 추적 아티팩트일 텐데도 상당히 안정적인 마력 운용이었다.
그는 거리가 1km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매우 약해지는 아티팩트의 신호에 당황하지도 않고, 마치 노련한 마법사처럼 일행에게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자진해서 추적에 나선 건 객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까 흩어졌던 분들이 조금 걱정되네요.”
“찍찍…….”
“그분들 덕에 지금 저희가 안전한 거겠죠? 다들 괜찮을까요?”
민유리는 흩어진 원정대원들을 걱정했다.
인원이 뿔뿔이 나뉨에 따라 대부분의 공격은 추적을 받는 인원들을 향해서 가해질 터.
지금처럼 조용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이유가 모두 그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상황이 나빠지거든 여수를 벗어나라고 말해 뒀으니 괜찮습니다. 그러다가 내려오는 후발대와 만나게 된다면 저희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거고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순천역에서의 장면이 자꾸 눈에 아른거리네요.”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우리만 잘하면 돼요.”
“넷. 죄송합니다.”
민유리는 박재경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행동을 본 박재경은 싱긋 미소 지었다.
‘상냥한 사람이네.’
이번 원정에는 승급이나 본인들의 이득만을 바라보고 참여한 부류가 적지 않은데.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의 상냥한 마음씨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영웅같이 위험한 직업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착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디까지 움직이는 거지?’
한편, 유지한은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상태로 지도를 꺼내어 살폈다.
순천부터 시작하여 어느덧 여수의 절반을 넘는 거리를 뛰어서 이동해 온 상황.
현재 그의 일행은 섬과 섬을 잇는 대교를 뛰어넘어 쉬지 않고 아래로 쭉 달리고 있었다.
——물건을 가지러 올 때마다 발치에 모래의 흔적이 있었어.
협력자가 된 아뎀의 말에 따르면.
완성된 약물을 가지러 온 사람들의 신발에는 항상 모래가 묻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래사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근처에서 모래가 가득한 지형이라면…….’
놀이터, 혹은 바닷가 근처의 해변 같은 공간이 유력했다.
그때 김시후가 말했다.
“고도가 낮아지고 있어요.”
“도착한 건가.”
“위치로 안내할게요.”
일행이 속도를 높이자 땅으로 내려앉은 갈매기들과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유지한은 고개를 내밀어 해변 쪽을 바라봤다.
바닷가 앞 황색 모래가 가득한 구역 위에 그가 쫓던 갈매기가 서 있었다.
등에 타고 있던 이세계인들은 주사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침투해야 하는데.’
IUPC 회원들이 우유를 몸에 주입하는 행위는 의식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사용할 약물이 준비되었으니 합동 의식이 시작되는 건 못해도 1시간 이내.
“찾았다! 저기에요.”
모래사장에 숨겨져 있는 공간 왜곡을 감지한 직후.
김시후와 윤도하 파티의 마법사는 각자의 지팡이를 통해 천천히 마력을 내뿜었다.
[사일런스]
마치 안개처럼 스멀스멀 퍼져 나온 그들의 마력은.
갈매기들 모르게 녀석들의 주위를 뒤덮어 그 안의 모든 소리들을 가둬 놓았다.
“유리 씨!”
이어지는 유지한의 지시에 민유리가 마력 화살을 쏘아 냈다.
[형태 변화 - 로프]
어두운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갈매기와 닿기 전 기다란 밧줄처럼 변했다.
유지한이 처음 보는 화살의 형태에 놀라는 사이, 그것이 놈들의 몸을 빙빙 휘감았다.
퍼득! 퍼드득!
당황한 갈매기들은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끈적한 거미줄의 효과까지 부여된 화살은 녀석들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울음소리를 내더라도 멀리서 보면 입을 뻥긋거리는 것처럼 보일 뿐.
이내 유지한을 포함한 모든 영웅들이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가 놈들을 제압했다.
‘수준은 3급 정도인가.’
처음 마주친 몬스터이기에 걱정했지만 제압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목숨이 끊어지게 되면 몬스터를 조종하는 자가 먼 거리에서도 눈치챌 염려가 있었기에.
유지한은 녀석들의 다리와 날개에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내어 움직이지 못하도록만 했다.
“유리 씨!”
“네?”
“밧줄은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민유리에게 요청한 건 거미줄로 발을 묶어 달라는 것뿐이었는데.
그녀는 짧은 화살을 기다란 밧줄의 형태로 바꿔 버렸다.
기대한 것 이상의 기술을 보여 준 것이었다.
“그, 그냥요?”
“예?”
“이렇게 하면 좋겠다 싶어서…….”
그녀는 그저 밧줄의 형태가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다시금 마력으로 밧줄을 만들어서 팔에 휘감는 그녀를 보며.
유지한은 물론이고 김시후마저 작게 감탄했다.
“누나! 그거 잠깐 만져 봐도 돼요?”
“그래.”
김시후는 민유리에게서 새로운 밧줄을 건네받았다.
단순해 보이는 이 밧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복잡한 연산이 사용되었음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연산을 하나하나 계산적으로 처리하는 마법사 김시후와 다르게.
민유리는 자신의 감으로, 본능적으로 해내는 것이었다.
꽈아악!
물리력이 부여된 밧줄은 양쪽으로 세게 잡아당겨도 잘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억셌다.
마력이 얼마나 압축되어 있으면 이런 강도가 부여된 것일까.
‘참 무서운 재능이야.’
원정대에서의 활동이 재능이 충만한 그녀에게 빠른 변화를 안겨 주는 모양이었다.
파티장으로서는 매우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잘 하셨습니다.”
슥슥.
유지한은 민유리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녀를 칭찬하듯 머리칼을 조금 헝클어트렸다.
“……?!”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머리를 이렇게 건드렸던 적이 있던가?
처음 겪어보는 행동에 당황한 민유리는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앞으로 스킬을 어떤 형태로 개발시키는 게 좋을지도 같이 고민해 보죠.”
“……넵.”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밌겠는데요?”
“그, 그런가요……?”
민유리의 스킬을 개발할 생각으로 들뜬 유지한과 달리.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찍찍…….”
“오호……?”
칠라와 그 등에 업힌 남호열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
“받아라.”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들이 한 여성에게 주사기가 가득 든 봉투를 건넸다.
여성은 아주 공손한 태도로 봉투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의식에는 참관하실 건가요?”
“그래. 빠르게 확인만 하고 가겠다.”
“가장 편한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저벅저벅.
3층 복도를 쭉 걸어간 그들은 이내 밝은 조명이 비치는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난간으로 다가가서 1층을 내려다보자 좁은 간격으로 빽빽하게 서 있는 인간들이 있었다.
모두 각성을 위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모인 IUPC 회원들이었다.
“여러분!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우오오오!”
“왔다!”
3층의 여성은 들고 있던 주사기 봉투를 아래로 뒤집어서 1층으로 탈탈 털어 버렸다.
“전부 다 비켜!”
“내꺼야!”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주사기들을 황급히 손으로 줍는 사람들.
천 명이 넘는 인간들이 서로의 몸을 크게 밀쳐가며 주사기에 달려드는 그 모습은 가히 광기에 가까웠다.
바닥에 넘어진 사람이 구두에 짓밟히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정도.
그들을 구경하던 로브의 남성 중 하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가 조금 지나치지 않아? 마법 스크롤은 강도를 조절해서 사용하라고 했을 텐데.”
“이게 적당히 조절해서 사용한 결과입니다.”
“켁! 어지간히 밑바닥 인생들만 모였나 보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 중에는 이름난 재벌가의 자제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여성의 말에 누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하여간 지구인들은 정신이 약해빠졌어. 전부 다 우리의 인도가 필요하다니까!”
“후후! 크리처와 인간이 함께하는 뛰어노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암! 우리가 너희를 새로운 아제시아로 인도해 주마.”
주사기가 하나씩 분배됨에 따라 1층에서 벌어진 소란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한 손에 주사기를 움켜쥐고 대기하는 사람들은 위를 올려다봤다.
어서 빨리 새로운 세계에 몸을 들여놓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서걱!
유지한 일행은 2층에서 대기 중인 적들을 은밀하게 처리한 뒤.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한동안 이곳에서 대기하던 모양입니다.”
이 공간에는 여러 개의 화장실과 침실,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 따위가 줄지어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모여든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때 민유리가 말했다.
“저기……. 저 남자 얼굴은 알 것 같아요.”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아뇨. 그건 아니고, 최근에 실종 신고가 올라왔던 사람들 사진에서 봤어요. 가끔 찾아보거든요.”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은 어지간해서는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민유리.
그녀는 주사기를 집어 든 사람 중에서 실종 목록에 올라온 이들을 찾아냈다.
“2명이나 있다고요?”
“확실해요.”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는 각도에서 실종된 사람을 2명이나 찾아냈으니.
제대로 살펴본다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짝짝짝!
위층에서 이목을 끄는 박수 소리가 들리고.
주사기를 떨어뜨렸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모두 준비되셨나요?”
“네!”
“구호와 함께 갑시다!”
건물 전체에 우렁찬 대답 소리가 울려 퍼지고.
주사기를 나눠준 여성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외쳤다.
“주입!”
“주입!!”
모두의 팔뚝에 주사기가 꽂혔다.
그대로 밀대가 누르자 하얀 액체의 사람들의 몸속으로 주입되었다.
텅! 텅! 텅!
그 뒤로 이어지는 의식은 구속되어 있던 몬스터들의 해방.
여기서 각성에 실패한 자는 죽고, 성공한 자는 살아남을 것이었다.
하지만.
“……억!”
“으윽!”
IUPC 회원들은 각성을 겪는 대신.
마비독으로 인해 전신이 마비되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파바밧!
그와 동시에 박재경을 필두로 한 윤도하 파티가 2층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니?!”
“왜 영웅들이 여기에……!”
3층에서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찰나.
유지한이 실프와 함께 거친 바람을 타고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섰다.
“꺄아악!”
“찍찍!”
주사기를 1층으로 떨어뜨린 여성을 가볍게 제압하고.
잽싸게 벽을 타고 위로 올라온 칠라와 함께 이세계인들을 막아섰다.
당황한 그들은 앞으로 무기를 겨누며 말했다.
“누, 누구냐!”
“알기 싫어도 곧 알게 될 거야.”
유지한의 눈이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처럼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