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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69화 (169/300)

169화. 습격 (3)

머뭇거리던 여성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기는 거북선. 여기는 거북선.”

—제인! 몬스터 생산 라인이 습격당했다!

유지한은 반지를 통해 들려오는 작은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살짝 다급하고도 명령조로 내뱉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

최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듯했다.

‘아! 그놈이군.’

해당 목소리의 주인은 무무와 파라스의 기억 속에서 동시에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이세계인 중에서도 나름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그는 흩어진 영웅들에게 습격당한 장소를 언급하며 거북선에 숨어 있는 이들의 보고를 요구했다.

여성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유지한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이쪽은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알고 있겠지만 그쪽 주방의 물건들은 어떻게든 지켜 내야 해.

“……!”

주방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반지를 착용한 여성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함께 통화를 듣고 있던 이세계인들도 마찬가지.

꼭 감추던 무언가를 들킨 사람마냥 당황한 자들의 얼굴이었다.

—파라스는 결국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다. 제리도 부상을 입었어.

“……네.”

—물건은 저녁에 가지러 갈 테니 너희는 당분간 절대로 거기서 나오지 마.

다급하게 진행된 통화가 끝나고.

유지한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성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뭐해? 어서 주방으로 안내하지 않고?”

“제기랄!”

영웅들은 이세계인들을 자리에서 강제로 일으켰다.

그들은 속박에서 벗어날 기회를 계속 엿봤지만 숙련된 영웅들 앞에서 그런 저항은 무의미했다.

결국, 그들은 이곳에서 특별히 감춰진 공간을 공개해야만 했다.

‘연구실 같네.’

그들이 주방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아주 넓었다.

세균 하나 없을 것 같은 하얀색 공간에 놓인 투명한 비커들과 현미경, 이름 모를 기계들.

커다란 화이트 보드에는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글자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이건?”

그곳의 중앙에는 국물을 끓이는 식당에서나 사용할법한 원통형의 들통이 있었다.

들통의 뚜껑을 열어 보자 매우 하얗거나 새까만 액체가 가득 담긴 게 보였다.

내용물을 살피던 박재경이 소리쳤다.

“이거 전부 다 그 약물이군요.”

“주사기에 들어 있던 것 말이죠?”

“맞아요.”

평범한 동물을 몬스터나 돌연변이로 바꾸고 IUPC 회원들의 머리칼을 하얀색으로 탈색시키는 약물.

그것들이 이곳에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었다.

“주방이라는 건 약물을 제조하는 장소였군요.”

“이제 그만 입을 열어 줘야겠다.”

“큭!”

다시금 목에 검이 겨눠지자 이세계인들은 한 명씩 입을 열었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이곳은 동물들과 IUPC 회원들에게 사용되는 약물을 생산하는 주방.

이들은 대담하게도 시내 한가운데서 연구 및 약물 생산을 위한 설비까지 갖춰 놓은 것이었다.

유지한은 하얀 액체가 가득 담긴 들통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정도면 몇 명이 사용할 분량이지?”

“2천 명.”

“……많기도 하군.”

상대의 대답에 유지한은 혀를 내둘렀다.

무려 2천 명의 하얀 머리 인간들을 양산할 수 있는 약물이 눈앞에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들이 조종할 몬스터의 수를 생각해 보면 저 약물로 탄생하는 생물 병기의 규모는 만 단위를 훌쩍 넘길지도 몰랐다.

“주방이란 건 한국에 총 몇 개나 있지?”

“5개. 여수에는 여기뿐이야.”

“거짓말 말고 똑바로 대답해!”

“5개라고! 정말로!”

“현재까지 생산된 약물의 양은?”

“아마 그 용기로 따져 보면 20개쯤 될 거야.”

“2천 명의 20배……. 단순 계산으로도 4만 명인가.”

4만에 달하는 하얀 머리들이 이끄는 몬스터 군단.

유지한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숫자에 침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현재까지 집계된 각성 실패 확률은 약 35%.”

“……?”

“적응하지 못한 인원을 따져 보면 4만 명까지도 되지 않을걸. 잘해야 3만, 끽해야 2만을 넘겠지.”

“2만?”

“그래.”

처음에 유지한에게 제압당하고 기절했었던 남성은.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묻지도 않은 내부 정보를 들려주었다.

그에 같은 이세계인들은 분노했다.

“아뎀! 너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장 닥치지 못해?!”

“너희나 전부 닥치고 있어! 난 처음부터 이딴 망할 계획 돕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이 배신자가……!”

“어쩌라고? 아제시아 출신이라고 해서 다 너희 같은 과격파인 줄 알아?”

남성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씩씩거렸다.

반발하는 이들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하는 사이.

유지한은 선뜻 정보를 들려준 남성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잘하면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알려 줄 수 있는 건 전부 알려 줄게.”

무언가를 다짐한 표정으로 유지한을 바라보는 그였다.

*****

원정대는 협조적인 자세가 된 남성 아뎀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멸망한 아제시아와 관련된 사정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당사자로부터 직접 듣는 내용은 또 느낌이 달랐다.

화르륵!

“빨리빨리 끓여!”

납품이 예정되어 있던 약물은 불마법까지 동원하여 전부 증발시키는 것으로 처리했다.

수분이 날아간 뒤에 남은 찌꺼기는 재활용할 수 없는 돌처럼 변해서 버리기만 하면 되었다.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하여 민유리는 칠라를 데리고 주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쾅! 쾅! 콰앙—!

“아…….”

“저게 얼마나 구하기 힘들었던 건데!”

이세계인들은 부서지는 연구시설을 보며 절규했다.

민간에서 구하기 힘든 기계를 망가뜨릴 때는 눈물을 흘리는 인원도 있었다.

다시금 이와 같은 규모의 시설을 만들려거든 어림잡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터.

적어도 이 사태가 끝나기 전까지는 새로운 주방을 꾸리는 게 불가능했다.

‘운이 좋았군.’

다른 지역의 주방보다 거북선에 숨겨진 주방이 가장 많은 생산량을 담당하고 있다니.

이곳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적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 셈이다.

“아주 잘 부서지네.”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나 봐.”

“어차피 내 것도 아니니까.”

이세계인 중에서도 가장 협조적인 남성.

마법사 아뎀은 망가지는 주방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바로 옆에서 동료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부르짖는 와중에도 콧방귀를 뀌는 걸 보면 약한 전투력에 비교해 정신력은 대단하다 싶었다.

아뎀은 유지한을 보며 말했다.

“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처벌을 받겠지.”

“제발 목숨만큼은 살려 줘.”

“말했잖아. 너 하는 거 봐서 선처해 달라고 말이라도 해 준다니까.”

“…….”

“이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네가 알아야 할 거야.”

주변의 요청에 떠밀려 약물 개발에 앞장선 마법사.

그는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었다.

유지한은 그가 보여 주는 태도에 따라 목숨을 살려 주겠다는 제안을 던졌다.

“정말로 내부 계획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주방에서는 ‘우유’와 ‘초코우유’를 만들기만 할 뿐, IUPC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윗분들의 몫이야. 그들이 현재 어디에 모여 있고 언제 공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몰라.”

“오늘 저녁에 약물을 넘긴다고 했었지.”

“우유를 넘길 계획이었지. 이젠 불가능하겠지만.”

아까 전 반지로 이뤄진 통화에서 늦은 저녁 즈음에 이곳으로 물건을 가지러 오겠다는 전언이 있었다.

상대방은 아직 이곳이 함락당한 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지한은 비어버린 들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우유라는 약물, 색깔만 바꿔서 평범한 물로 만들 수도 있어?”

“아마 가능은 할 텐데…….”

“지금부터 가짜 약물을 만들어 줘야겠다.”

유지한은 아뎀에게 진짜 약물과 색깔만 똑같은 가짜 약물 제작을 요청했다.

그 약물에 추가될 것은 강력한 마비독을 가진 몬스터의 체액.

사실상 마비독이 포함된 독극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

“끼룩!”

“끼룩끼룩!”

늦은 저녁.

아주 커다란 갈매기 10마리가 거북선 모형 앞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그 위에 타고 있던 건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들.

그들 중 누군가가 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앞에 도착했다. 물건만 들고나와.”

그리고 약 5분쯤 지났을까.

거북선의 감춰진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아뎀이 커다란 카트를 밀며 걸어 나왔다.

그를 본 로브의 남성이 말했다.

“아뎀? 웬일로 네가 직접 나오는 거지?”

“……온종일 저 안에 박혀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서요.”

“미안하지만 산책은 안 돼.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

“알고 있으니까 이거나 받으세요.”

아뎀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카트를 밀었다.

로브의 남성은 카트에 실린 검은 봉투를 열며 하얀 약물이 들어간 주사기들을 확인했다.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다행히 가짜 약물은 육안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그에 안도하는 아뎀이었다.

“누가 만든 건데 문제가 있겠어요.”

“푸핫! 알았다. 평소 너희 노고는 우리도 잘 알고 있지.”

“한국을 차지한 뒤에는 좋은 자리 하나씩 챙겨 주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갈매기들은 발톱으로 여러 개의 봉투를 잡았다.

다시 사람을 태운 녀석들은 이내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갈매기가 이동을 시작하고 아뎀마저 다시 왜곡된 공간으로 돌아가자.

거북선 근처에 숨어 있던 영웅들은 한 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추적 마법 잘 작동합니다.”

“바로 쫓아가죠.”

유지한이 날아가는 사람들을 쫓아가려던 때였다.

“잠깐만요!”

정영욱 파티가 공간 왜곡 밖으로 튀어나왔다.

파티장 정영욱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듯했다.

박재경이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저희도 여러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역할 분배는 진작에 끝났을 텐데요?”

원정대의 핵심인 윤도하 파티와 새로운 리더가 된 유지한 파티가 주된 행동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

그들과 함께하는 정영욱 파티는 앞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다른 파티를 받쳐 주는 역할을 맡았다.

본인들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을 터.

“저것들은 어차피 쓸모도 없어졌는데……. 전부 죽여 버리고 이동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정영욱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쓸모가 다한 이세계인들을 여기서 처리하고 같이 이동하자는 뜻이었다.

“지한 씨! 승급 대련에서 제 실력 보셨잖아요.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확실히, 승급 대련에서 정영욱과 함께했던 유지한은 그의 상당한 실력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에게 말했다.

“그걸 알고 있기에 정영욱 파티를 믿고 지원팀과 이세계인들을 맡기는 겁니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더 지체할 시간 없습니다. 내일 약속했던 장소에서 합류하기로 하죠.”

여기서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적들을 놓쳐 버릴 것이기에.

말을 마친 유지한 일행은 갈매기를 쫓아 어디론가 달려갔다.

“영욱아! 이따가 보자!”

“…….”

정영욱은 김시후의 밝은 인사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볼 뿐.

“슬슬 들어가자 영욱아.”

“우리가 활약할 기회는 많이 남았잖아?”

파티원들이 정영욱을 위로했지만.

그의 눈은 점점 멀어지는 김시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저 새끼보다 내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날 무시해?’

감정이 잔뜩 실린 눈으로 김시후를 바라보는 정영욱.

그 눈동자에는 그가 몬스터나 이세계인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커다란 분노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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