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68화 (168/300)

168화. 습격 (2)

정기준의 합류 덕분인지 원정대에 감돌던 불안감은 크게 줄어든 상황.

그에게서 리더 자리를 넘겨받은 유지한은 앞으로의 방향성을 놓고 생각에 빠졌다.

그 끝에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IUPC나 몬스터보다도 이세계인을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사태를 끝낼 수 있어요.”

원정대의 본래 목적은 여수 지역의 안정화 및 실종된 영웅들의 수색이었지만.

이세계인의 목적을 알아낸 이상,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들을 제거하는 걸 1순위로 둬야만 했다.

“그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고요?”

“짐작 가는 곳은 있습니다.”

“네?”

“아마 이쯤에…….”

유지한은 파라스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세계인이 숨어 있을 만한 위치를 특정했다.

그들이 숨겨진 은신처에서 커다란 지도를 놓고 대화를 나누던 때.

지도 위에 유독 특별한 표식이 있던 덕분이었다.

“몬스터 생산 라인에는 광범위 공격이 가능한 딜러들을 보내죠. 여수 공항을 기준으로 뒀을 때, 화력이 높은 습격팀을 꾸려서 공격을 한 번에 쏟아 낸다면 궤멸까지는 몰라도 섣부르게 행동하기 어려울 정도로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흠…….”

“추적을 당하고 있으니 저희 중 일부는 먼저 공격을 당하겠죠. 그때는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멀어지는 것으로 하여…….”

지도의 정확한 지점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가는 유지한을 보며 정기준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꽤 효과적인 계획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지한 씨에게 자리를 넘길 걸 그랬군요.”

“정말로요.”

놀라운 건 몇백에 달하는 원정대의 전력을 유지한이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줬던 영웅들을 한 명씩 언급하며 각 장소마다 어떤 영웅을 투입하면 좋을지까지도 계산을 끝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이다.’

자신의 싸움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원정대 전체를 살펴보고 있던 그였다.

“이것과는 별개로 레드홀과 주사위의 영웅들을 제어하려면 반드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건 저희한테 맡겨 두세요.”

아무리 리더라는 직함을 달았다고 한들.

유지한이 저보다 잘나가는 영웅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길드의 사람을 부리는 역할은 정기준과 박재경에게 맡겨졌다.

*****

회의를 마친 유지한은 남호열에게 장비 점검을 맡겼다.

“날이 생각보다 빨리 닳았네요.”

“갑옷도 손을 봐야 할 것 같죠?”

짧은 시간 내에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날이 조금 상한 모양이었다.

오러가 실린 공격과 방어가 수도 없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럴 때를 위해서 제가 여기 온 거죠!”

땅! 땅! 땅!

남호열의 정성 어린 손길 덕분에 유지한 파티의 장비는 새것 같은 자태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지원팀의 도움을 통해 모두의 장비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돌아간 뒤.

원정대는 다시금 인원을 나누어 뿔뿔이 흩어졌다.

추적이 붙은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현장 지휘도 지한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굳이 주시겠다면야. 거부하진 않겠습니다.”

박재경으로부터 모든 지휘권을 양도받은 유지한.

그는 순천부터 함께 이동했던 영웅들과 함께 은밀하게 움직였다.

“몬스터다.”

“숨어!”

도중에 마주치는 몬스터와 IUPC 회원들은 굳이 상대하지 않고 넘어갔다.

적들에게 동선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소리마저 죽이고 가능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끔 이동하길 2시간.

그리하여 도착한 장소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거북선의 모형이 세워진 광장이었다.

비교적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수색을 진행하던 그때.

“……지한 씨!”

거북선의 모형을 살펴보던 민유리가 유지한에게 손짓했다.

그녀가 가리킨 전시용 거북선의 몸체 옆에는 아주 미세한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공격 대기.”

“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입구의 위치는 근처에 설치된 CCTV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유지한이 접근을 방해하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조심스럽게 손으로 거북선을 더듬자.

달칵 소리와 함께 배의 안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열렸다.

‘빙고.’

사방이 뻥 뚫린 광장에 이런 걸 만들어 놓았을 줄이야.

이세계인들의 대담함에 조금 놀라는 찰나, 김시후가 말했다.

“그 안쪽에 공간 왜곡이에요!”

“몇 분 남았지?”

“7분이요.”

“아슬아슬했네.”

다른 장소로 이동한 영웅들과 동시 습격을 계획한 시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유지한 일행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왜곡된 공간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슈와아악!

세상이 뒤흔들리는 효과가 멎자 유지한의 눈에 평범한 회사의 사무실 같은 공간이 보였다.

커다랗던 거북선은 온데간데없고 그 어디에도 창문이 달려 있지 않은 건물만이 그들에게 보여지고 있었다.

끼이익!

“이 시간에 누가…….”

사무실의 문 하나가 열림과 동시에 성인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지한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앞으로 돌진해서는.

문을 닫음과 동시에 한 손으로 그의 입을 세게 틀어막았다.

“으읍?!”

“쉿.”

상대가 영웅이라는 걸 눈치챈 남자는 저항하듯 몸을 버둥거렸으나.

그럴수록 그의 목을 쥔 유지한의 손아귀에 힘이 더 들어갈 뿐이었다.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반대로 몸에 힘을 풀었다.

“아제시아의 인간. 맞지?”

“……?!”

아제시아라는 단어를 듣고 남자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유지한이 재차 묻자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상대에게서 협조의 의지가 보였기에, 유지한은 손아귀의 힘을 살짝 풀며 말했다.

“소리치면 죽는다. 대답을 거부해도 죽는다. 죽어도 곱게 죽진 않는다. 이해했어?”

“……어.”

“파라스라는 남자를 알고 있나?”

“알고 있어. 그렇다면 설마 당신들이…….”

“질문은 이쪽에서만 한다.”

“…….”

“이 공간에 있는 이세계인은 총 몇 명이지?”

“날 포함해 11명.”

유지한은 사로잡은 이세계인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런 곳에서 죽기는 싫었던 모양인지 그는 들어오는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주는 분위기였다.

“제리라는 여자를 알아?”

“그 미친년 말이야?”

미친년이라는 호칭을 듣자 하니.

제리는 같은 편에게도 특별한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여기에 있는 건가?”

“아니. 여기엔 없어.”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세계인들은 지구에서 나름대로의 계급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여수 공항에서 마주쳤던 제리는 위에서 내려온 별도 지시로만 움직이는 엘리트에 해당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유지한은 제리 같은 인물이 이세계인의 평균이 아닌 것에 안도했다.

그녀만 한 적들이 무수히 많다면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

“살려 줘.”

남자는 대뜸 자기 목숨을 살려 달라고 말했다.

“먼저 우릴 공격해 놓고 목숨을 구걸하는 건가?”

“나, 나는 처음부터 이 계획에 반대했어! 아제시아의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라고.”

IUPC와 몬스터를 이용하여 한국을 점령한다는 계획.

이세계인 내부에서도 그 계획에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식이었다.

박재경과 잠깐 시선을 교환한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컥!”

목덜미를 얻어맞은 남자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나마 그를 죽이지 않는 것에 리더들이 합의한 것이었다.

유지한은 기절한 그를 뒷사람에게 맡긴 뒤 남자가 넘어왔던 문으로 입장했다.

“누, 누구야!”

“덮쳐!”

문을 넘어간 이후에는 날 선 목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몬스터를 들여놓지 않은 공간에 존재하는 건 이세계인들 뿐.

유지한 파티를 비롯한 모든 영웅들은 적들을 향해 공격을 쏟아 냈다.

“흐아앗!”

그러나 이세계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이 왜곡된 공간을 제작한 이들답게 주변 사물이나 땅을 자유롭게 움직여서 날아오는 마법들을 피하거나 받아쳤다.

[퀵 일루전]

[임파서블 드림]

“다, 다들 어디로 사라졌어?!”

“갑자기 무슨……!”

심지어는 착시와 환각 마법으로 영웅들의 눈을 속이려 들기도 했다.

난데없이 눈앞을 가로막는 벽 따위를 본 영웅들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러나 단시간에 만들어 낸 환각은 자세히 살펴보면 육안으로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함이 떨어졌으며.

“실프!”

우웅!

유지한이 실프와 연계하여 정확히 적들의 위치를 찾아내니.

그에 힘을 얻은 영웅들은 거침없이 공격을 이어 갔다.

“커헉!”

“끄으윽……!”

처음부터 전투에 나서는 인원이 아니었던 듯.

순식간에 제압당한 이세계인들은 신음을 토했다.

유지한은 민유리의 화살로 인해 어깨에 구멍이 난 남자의 등을 짓밟으며 말했다.

“너희 윗대가리는 어디 있냐?”

“……몰라.”

남자는 유지한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에 유지한이 남자에게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안 돼!!”

그 모습을 본 이세계인 여성이 절규했다.

박재경에게 팔다리를 제압당한 그 여성은 창백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인인가?’

유지한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이 남자와 깊은 관계인 것을 알아보았다.

고심하던 그가 검 끝을 남자의 뒤통수에 올려놓은 채 그녀에게 말했다.

“이 남자를 살리고 싶으면 묻는 질문에 대답해.”

“이익!”

마치 삼류 악당이나 뱉을 법한 대사.

하지만 여성은 이를 악물고 유지한을 노려보았다.

그야말로 약점을 잡아낸 듯한 광경.

그렇다면 반대로 이용해도 먹히겠지.

“지금부터 대답을 거부하면 네 여자를 죽이겠다.”

“이런 잔인한……!”

상대방을 서로 마주 보게 두고서 협박을 던지자 두 남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지한은 분노를 드러내는 그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무 화내지 마. 내가 너희 같은 나쁜 놈처럼 보이잖아.”

*****

영웅들은 사로잡은 이세계인들을 심문했다.

먼저 파라스에게서 얻어 낸 기억과 대조해 본 결과.

그들의 대답에 거짓이 섞여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로를 그렇게 아끼는 놈들이 죄 없는 사람들을 공격해?”

“아제시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럼 지구는 어떡하고?”

“…….”

“이런 쌍놈들 같으니라고.”

자신들의 선택이 이기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침묵했다.

한편, 유지한은 안쪽 방에 설치된 한반도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각 은신처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는 특수한 지도로서 영웅들을 추적하고 현황을 알아보는 데 용이한 물건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건 아직 우리밖에 없나.’

목포, 해남, 고흥 따위로 향했던 영웅들은 아직도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실제 목적지에 도달한 건 유지한이 포함된 여수 원정대뿐.

정해진 시간에 여수의 다른 구역을 공격하기로 한 영웅들의 표식이 비치고 있었다.

‘이걸 떼어 갈 수 없는 게 아쉽군.’

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기능이 정지하는 물건인 모양이었다.

함께 지도를 보던 김시후가 이세계인들에게 말했다.

“영웅들을 추적하는 원리가 뭐죠?”

“거대 길드에서 공방에 장비를 주문할 때……. 장거리 추적이 가능한 소재를 몰래 추가했어.”

“허, 정말 치밀하게 준비했었구나.”

주사위에서 공방에 마지막으로 장비 발주를 넣었던 건 2달 전.

예상치도 못한 그들의 준비에 놀라움마저 느끼는 박재경이었다.

화아악!

그때 어디선가 빛이 반짝였다.

이세계인에게서 빼앗은 반지로부터 발생하는 빛이었다.

유지한은 보석에서 하얀 빛을 내뿜는 그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화가 걸려온 건가?”

“그래.”

적들이 휴대폰 대신 이용하는 아티팩트.

유지한은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하고 받아.”

“…….”

“만약 우리가 여기 있다는 티를 낸다면…….”

스릉!

유지한은 반지를 건네받은 여성이 아니라 그녀의 연인에게 검을 가져갔다.

검날을 타고 흐르는 연인의 피를 보며 여성의 표정이 굳었다.

“우와. 진짜 비겁해 보인다.”

“찍, 찍찍…….”

그런 유지한의 행동에 김시후와 칠라가 수군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