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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66화 (166/300)

166화. 공항 (3)

“내,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야!”

제리는 몹시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햇빛에 살짝 그을린 피부와 묶은 노란 머리가 조화롭게 이루어진 외모.

확실히 그녀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미인으로 불릴 법한 여성이었다.

‘이런 싸구려 도발이 먹히네.’

하지만 유지한은 제리의 관심을 다른 이들에게서 떼 놓고자.

일부러 그녀 이상의 미인인 민유리를 슬쩍 바라보는 행동을 취한 뒤에 말했다.

“아줌마.”

“아저씨! 내가 아줌마면 넌 아저씨야!”

“그래, 아줌마.”

“죽인다! 넌 죽여 버린다!”

아줌마라는 말이 치명타였는지.

제리는 버럭 화를 내며 유지한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도발]스킬에라도 걸려든 듯한 행동이었다.

챙!

검과 단검의 충돌.

유지한은 검에 자신의 무게를 실으며 제리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세계인 중에 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날아갈 듯 가벼운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단검에 실린 힘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까딱했다가는 그가 뒤로 밀려 나갈 정도.

[세계수의 축복]

다만 버프를 사용한 뒤에는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김시후가 개량을 거듭하고 있는 버프가 점점 더 좋은 효과만을 보여 주는 덕분이었다.

그런 유지한을 보며 제리가 눈을 좁혔다.

“너 요전에 나왔다던 정령사구나?”

“그래서?”

“쓸만한 영웅이라고 생각했는데! 싸가지가 너무 없다!”

“경박한 아줌마의 칭찬은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윈드 블래스트]

김시후의 바람 마법이 유지한과 대치하는 제리를 노렸다.

그러나 제리의 움직임을 쫓아가지 못하고 빈자리를 휩쓸 뿐이었다.

후속 마법들이 모두 빗나가거나 제리의 오러에 의해 찢겨나가자 김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쪽은 됐으니까 칠라를 도와!”

“찍!”

민유리와 김시후는 유지한을 돕고자 기회를 엿봤지만.

칠라가 노려지는 걸 알고 있었기에 칠라에게 달라붙는 몬스터들을 먼저 처리해야만 했다.

캉! 캉!

유지한의 내려치기가 제리의 단검에 막혔다.

조금 화가 난듯한 그녀의 시선은 유지한의 얼굴에 고정된 상황.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격한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 다수의 2급 몬스터를 부리는 여유까지 가지고 있다니.

이제껏 마주친 IUPC 회원들을 훌쩍 뛰어넘는 능력이었다.

‘오러가 왜 이래?’

반면 제리 또한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유지한과 공격을 나눌 때마다 자신의 오러가 깎여 나갔기 때문이었다.

마력을 태우다시피 하여 공격력을 높이는 만큼 장시간 오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데.

지금 제리의 마력은 무서우리만치 쭉쭉 깎여 나가고 있었다.

‘정령이 문제구나!’

챙!

유지한의 검을 튕겨 낸 제리는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목표를 실프로 바꿔 위로 뛰어올랐다.

정령 또한 커다란 타격을 입으면 일정 시간 동안 정령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후웅!

다만 실프가 자신의 몸 크기를 구슬처럼 작게 줄이는 것으로 제리의 단검은 허공을 갈랐다.

판단은 나쁘지 않았지만, 회심의 공격이 실패한 그녀는 혀를 찼다.

[루어 오브 브리즈]

[에어 러쉬]

제리가 허공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

그때를 놓치지 않은 유지한이 그녀의 다리를 속박했다.

뒤이어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검을 찔러넣었다.

촥!

하지만 제리는 허리를 뒤로 크게 튕기는 것으로 치명상을 피했다.

땅으로 내려와 뒤로 덤블링을 하며 거리를 벌린 그녀가 속상한 얼굴로 찢어진 바지를 매만졌다.

“아, 이거 꽤 아끼는 옷이란 말이야…….”

그녀는 허벅지에 생긴 상처와 흘러내리는 핏물보다 옷에 생긴 칼자국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찌지직!

잘려나간 부위를 과감하게 아래로 뜯어내자 제리의 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그녀는 햇빛에 반사되어 강조되는 자신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외쳤다.

“이거 봐! 아줌마 다리가 이렇게 탱탱하고 매끈한 거 봤어?”

“관리를 잘 했네.”

“그렇지?”

“아줌마치고는.”

유지한이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자.

제리의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크아악! 너 가만 안 둬!”

캉! 캉! 캉!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의 무기가 교차했다.

서로의 칼날이 부딪힐 때마다 오러의 불똥이 튀어나왔다.

제리의 기세가 조금 더 날카로워지자, 유지한은 방어를 우선으로 두고 검을 움직였다.

“얍!”

“……!”

그때 제리가 품속에 숨기고 있던 단검을 한 자루 더 꺼내어 유지한을 압박했다.

서로 모양이 같은 쌍단검의 연격이 오로지 그 하나만을 노리고 쏟아졌다.

쉭! 쉭! 쉭! 쉭!

차마 다 막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게 날아드는 단검들.

인간의 살을 쉽게 도려낼 수 있는 오러가 유지한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력이 소모되는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짧은 시간 내에 승부를 내기 위함인지.

제리는 쉴 새 없이 단검을 휘두르기에 바빴다.

‘무슨 야생동물 같군.’

조금씩 공격에 익숙해지는가 싶으면.

제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턴으로 압박해 왔다.

뒤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한 패턴의 공격.

질서가 없는 야생동물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그러나…….

‘대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유지한은 제리의 공격을 눈으로 보고 쳐냈다.

빠르게 공격한다면 그에 맞춰 빠르게 막아 낼 뿐.

그러다 보면 반드시 상대가 지치거나 실수를 하는 순간이 온다.

‘바로 지금처럼!’

촥!

제리의 공격이 실패한 직후.

유지한의 카운터가 그녀의 옆구리를 베어냈다.

찌직!

그러나 거리를 벌린 그녀는 몸에 생긴 상처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자신의 옷을 뜯어내어 복근이 새겨진 하얀 배를 드러냈다.

“키헷!”

제리는 옆구리에 흐르는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로 쪽 빨았다.

상처를 입고도 무척 즐거워 보이는 그녀의 반응에 유지한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기쁜 거야?”

“왜 기쁘냐니? 우리가 지금 칼을 맞대며 싸우고 있잖아!”

“그게 어쨌다고.”

“이 시시한 세상에서 싸움보다 재밌는 게 어디 있겠어?”

광기 어린 눈빛으로 유지한을 바라보는 제리.

유지한은 그제야 제리라는 1명의 인간을 알아보았다.

삶의 목적 자체가 전투인 전투광.

싸움을 위해서 살아가는 부류.

언젠가 한 번쯤 마주친 적이 있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너 이름이 뭐야?”

“유지한.”

“유지한. 유지한. 유지한…….”

유지한의 이름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제리가 히죽 웃었다.

“날 부르는 호칭 빼고는 아주 마음에 들었어.”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은데.”

“에이, 튕기지 말고! 자기도 내 컬렉션에 들어오지 않을래?”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거부한다.”

“미안하지만 자기한테 거부권은 없는걸!”

쒜애애액!

제리가 앞으로 던진 2개의 단검이 유지한의 복부를 향해 날아왔다.

유지한은 검을 휘둘러 단검을 좌우로 흘려보낸 뒤.

맨손이 되어 버린 제리에게 돌진했다.

우웅!

그때 실프의 초록빛이 점멸했다.

계약자에게 무언가를 경고하는 것이었다.

뒤에서 위험을 감지한 유지한은 몸을 뒤로 돌렸다.

‘무기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었나!’

몸에서 떨어져 나왔음에도 오러가 유지되는 단검이 그에게 다시 날아오고 있었다.

캉! 캉!

급하게 쳐낸 단검은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더니.

제리의 손아귀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제자리에서 단검을 회수한 그녀는 놀랐다는 듯 말했다.

“공격을 피하고 쳐내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네?”

“칭찬이냐?”

“당연하지!”

슉!

그녀의 손에서 날아간 단검이 유지한의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정면에서 공격하는 제리와 함께 유지한을 양쪽에서 압박했다.

얇은 오러의 실로 이어지는 단검은 제리가 손으로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치 등 뒤에 제리가 한 명 더 나타난 느낌에 유지한은 더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으핫!”

다만 제리가 웃음을 흘릴 정도로 여유를 부리는 것과 달리.

상황은 그녀에게 좋게만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퓌요오오오……!”

그녀가 데려온 골리앗 이글은 벌써 5마리가 사냥당했고.

설상가상으로 민유리와 김시후의 견제로 칠라는 계속 안전을 보장받고 있었다.

여유가 생긴 김시후는 유지한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야!”

김시후의 마법을 피해 물러난 제리는 그를 째릿 노려봤다.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우자!”

“시끄러워요! 아줌마!”

김시후에게조차 아줌마라는 단어를 듣자 다시 화를 내는 제리였으나.

그때 그녀가 착용한 반지에서 하얀빛이 발생했다.

제리는 손으로 반지를 매만지며 외쳤다.

“지금 한창 재미 보고 있는데 왜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목소리.

토라진 표정으로 침묵하던 제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에잉! 알았어요. 확인은 대충 끝났으니까.”

반지의 빛이 사라진 직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제리는 손가락을 입속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퓌요오오오!”

윤도하 파티와 대치 중이던 골리앗 이글을 포함하여 활주로의 모든 몬스터가 그녀의 앞으로 날아왔다.

제리가 한 골리앗 이글 위로 올라타며 말했다.

“미안! 내가 지금 바빠서 가 봐야겠어.”

“누구 마음대로!”

[파이어 돔]

[스톤 월]

[헤비 훅]

…….

…….

그녀의 도주를 차단하기 위해 가지각색의 마법들이 여수 공항의 활주로를 수놓았다.

길드원을 해친 제리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박재경의 의지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고작 이걸로 날 막으려고?”

하지만 제리는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해 내고.

활주로에 남은 몬스터들을 전부 마법과 영웅들에게 처박았다.

모든 몬스터가 생명을 불살라서라도 명령에 복종하니 그 저항이 매우 심했다.

“커몬!”

공항 바깥에서 날아온 괴둘기와 괴마귀 무리까지 자살테러를 감행했다.

그 충격으로 제리를 막아서던 마법의 차단벽은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다가 그만 깨져나갔다.

끝내 하늘로 솟아오른 제리는 땅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지한을 보며 말했다.

“자기야! 어디 가서 죽지 말고 꼭 나한테 와야 해!”

“도망가는 거냐?”

“더 큰 승리를 위한 일시 후퇴! 거기 귀여운 햄스터, 넌 내 거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찍찍…….”

제리는 오로지 자기 할 말만을 남겨 둔 채.

날갯짓하는 골리앗 이글과 함께 멀어져 갔다.

“부길드장님!”

“이거 놔!”

길드원의 죽음에 분노한 박재경은 제리를 쫓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주사위 길드원들이 그녀를 만류했다.

팔다리를 붙잡혔음에도 박재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누군가가 외쳤다.

“고작 이런 곳에서 능력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부디 길드장님을 생각해서라도……!”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 둬야만 하는 박재경의 고유 스킬.

좁은 터널에 열차가 들이닥치는 순간에도 그것의 사용을 자제했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작은 점으로 변해 가는 제리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

“아얏!”

제리는 통증이 올라오는 옆구리를 살폈다.

유지한에게 베인 상처는 생각보다 더 따끔했다.

검이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갔다면 치명상이 되었으리라.

“으하, 내가 너무 흥분했나?”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주특기는 어디까지나 강력한 몬스터를 부리는 능력.

근처에 대기하던 몬스터들을 공항에 진작 투입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지한과 검을 몇 번 맞댄 이후…….

제리는 본능을 이겨 내지 못하고 싸움에 흠뻑 취하고 말았다.

“그래도 재밌었어.”

그녀는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조금 전의 전투를 회상했다.

비록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르고 다리와 옆구리에 상처까지 입힌 놈이지만.

유지한과 검을 부딪쳤던 찰나의 순간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단검이 이렇게까지 손에 쫀득하게 달라붙는 날은 처음이야.”

무기를 인간의 입술에 비유한다면.

공항에서 유지한과 자신이 나눈 것은 격렬한 딥키스가 아니었을까.

“……또 붙고 싶어.”

제리의 볼이 옅은 빨간색으로 달아올랐다.

아제시아에서 태어난 31살의 그녀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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