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공항 (2)
꿀꺽!
유지한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호열은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그에게는 언제나 친절함을 보여 주었던 영웅이.
적에게는 한없이 차가운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저런 인물을 적으로 돌린 적들에게 동정심이 생기는 그였다.
잠시 후 IUPC 회원들은 하나둘씩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뭐, 뭐가 궁금하십니까? 말씀만 하세요!”
상당히 협조적인 자세로 나오는 사람들.
누군가는 그들을 배신자라고 부르짖으며 화를 냈지만.
서걱!
그렇게 협조성이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니.
마지막에는 뭐든지 다 알려 줄 수 있다는 3인방만 살아남았다.
신기하게도 그들에게는 머리카락 일부가 하얗게 물들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저쪽입니다.”
길 안내를 자처하는 남성이 황급히 여수 공항으로 입장했다.
유지한을 비롯한 영웅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
“이 풀떼기들은 뭐야?”
공항의 바닥과 벽에는 넝쿨 같은 것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마치 오랜 기간 방치된 폐허에나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그, 여기서 식물을 크리처로 바꾸는 시도도 하고 있었습니다만…….”
“다 태워 버리죠.”
화르르륵!
마법사들은 불마법을 동원하여 공항 내부에 널려 있는 식물들을 태웠다.
이미 몬스터화가 진행된 것들은 심하게 반항하기도 했지만 이미 붙은 불이 꺼지지는 않았다.
다량의 식물이 타들어 가는 냄새에 영웅들은 표정을 찡그리고, IUPC 회원들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으! 조, 조금만 남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꽤 공을 들였는데…….”
“헛소리하지 말고 다음 장소로 안내해.”
“하지만……”
“당신도 불에 타고 싶어?”
“히익!”
김시후가 불덩이 하나를 앞으로 내밀자 IUPC 회원들은 기겁했다.
이내 계속해서 남성을 따라간 끝에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공항의 활주로였다.
“저건…….”
“전부 다 몬스터군.”
기다란 활주로에는 비행기를 대신하여 비행형 몬스터들이 가득했다.
공항 앞에 있던 괴둘기와 괴마귀를 비롯하여 이름 모를 크고 작은 새들.
그뿐만 아니라 몬스터로 변하기 전의 수많은 새가 철창 속에 갇혀있기도 했다.
주변에서 보이지 않던 새들은 전부 여기에 잡혀 온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저희는 주로 비행형 크리처를 만드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얼마 전에 비행기 추락 사태도 너희 짓이야?”
“……아마도 맞을 겁니다.”
“아마도?”
“그, 그 계획은 저희가 주도한 게 아닙니다! 단지 거기에 사용된 까마귀를 만들었을 뿐…….”
땀을 삐질 흘리는 남자는 IUPC 내부에서도 회원들마다 역할이 나뉜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새로운 몬스터를 생산하는 역할을.
누군가는 그렇게 탄생한 몬스터에게 기본적인 명령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또 누군가는 그 몬스터를 전달받아 실제로 조종하는 역할을.
그들 나름대로 체계가 갖춰져 있는 것이었다.
“내가 만났던 놈들은 따로 훈련을 받은 것 같지는 않던데.”
“무작정 나섰다가 당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지금의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여기 말고 몬스터를 만드는 곳이 얼마나 있지?”
“저희가 알고 있는 것만 6곳 정도 됩니다.”
“이 지도에 전부 다 표시해.”
IUPC 회원들은 박재경에 내밀은 지도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위치를 표시했다.
한편, 유지한은 활주로에 대기 중인 새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한치의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은.
숨을 쉬며 살아 있는 생명체보다는 무생물인 인형을 더 닮아 있었다.
생각에 빠져 있던 그가 한 IUPC 회원에게 말했다.
“당신도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나?”
“저는 최대 3마리까지 조종할 수 있습니다.”
“저기 앞에 있는 괴마귀들 보이지?”
“네.”
“죽으라고 명령해 봐.”
“…….”
유지한에 말에 잠시 쭈뼛거리던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곧 괴마귀를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죽어.”
“까악!”
“까악!”
명령을 받은 3마리의 괴마귀들이 제자리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머리를 바닥으로 향한 채 땅을 향해 세게 곤두박질쳤다.
콰직!
콰직!
콰직!
땅에 충돌한 괴마귀들의 머리뼈, 또는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총 3마리가 한 번에 죽음을 맞이했다.
“세상에…….”
“…….”
“…….”
자살하라는 명령조차 아무런 거부감 없이 따르는 몬스터들.
그에 영웅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인간에게 복종하는 저 몬스터들은 정말로 살아 있는 병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코앞에서 동족들이 죽어가는 상황에도 다른 몬스터들은 미동조차 없이 서 있었다.
민유리는 그 광경을 보며 섬뜩함마저 느꼈다.
‘이딴 게 공생이야?’
IUPC에서 주장하던 몬스터와의 공생이란.
자신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인형을 만드는 것이었나.
그들의 이념에 의문을 갖는 유지한이었다.
“몬스터로 변한 것들은 전부 다 죽으라고 명령해.”
“……알겠습니다.”
살아남은 IUPC 회원 모두가 나서자 활주로에 있던 몬스터들이 가장 앞줄부터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꼬라박기를 반복했다.
놈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반복해서 죽어가는 모습은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모습과도 같았다.
어차피 퇴치할 몬스터였음에도 기분이 조금 불쾌해진 민유리는 고개를 돌려 철창 속에 갇힌 새들을 바라봤다.
“꽥꽥!”
“까아악!”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놀란 것인지 새들은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민유리는 철창 속에서 난리를 치는 녀석들을 보며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저런 행동이야말로 정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갇혀있는 애들은 풀어 줘도 될까요?”
“그럽시다.”
퍼드득!
퍼드드득!
잠겨있던 철창을 부수자 그 안에 갇혀있던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생각보다 그 양이 많은 탓에 허공에서 수많은 깃털이 흩날렸다.
명령에만 따르는 몬스터들과 달리, 자유를 얻은 새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크읏!”
“우욱…….”
연속해서 자살 명령을 내리던 IUPC 회원들은 약하게 신음을 냈다.
그것이 마냥 쉬운 작업은 아닌 모양이었다.
박재경은 그들을 멈춰 세운 뒤 직접 나서서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활주로에서 약 90%의 몬스터를 해치운 그때였다.
“저쪽에 뭐가 옵니다!”
하늘에서 유독 커다란 새가 몇 마리 등장하는가 싶더니.
그 위에서 무언가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쿵!
잠시 후 활주로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건 노란 머리의 여성이었다.
영웅들이 난데없이 등장한 그녀와 거리를 벌리고 경계하는 사이.
그녀를 알아본 IUPC 회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헉!”
“제리님?”
하늘에서 맨몸으로 떨어지고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인간.
이세계인들이 존칭을 사용하는 인물.
유지한은 파라스와 똑같이 이질적인 마력을 보유한 그녀가 이세계인임을 알아보았다.
“뭐야,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제리는 싱긋 웃는 얼굴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직 몬스터가 되지 못한 평범한 새들이 도망가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활주로에는 대부분의 몬스터가 죽어 있기까지!
비행형 몬스터가 이동 수단으로 사용되는 걸 고려하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셈이었다.
“이거 너희가 그런 거지?”
“그렇다면?”
“오옷!”
영웅들 사이에서 박재경을 발견한 제리의 눈이 초승달처럼 곱게 휘었다.
“나 당신 알 것 같아! 박재경! 박재경 맞지?”
“……?”
“개성이 부족한 윤도하 파티의 홍일점!”
윤도하 파티원들은 움찔했다.
1급 영웅인 윤도하와 부길드장인 박재경을 제외하면 아주 특출난 인물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서 대놓고 저런 말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니.
“우와! 뉴스에도 얼굴이 잘 안 나오던데. 싸인이라도 받아 두고 싶은걸!”
좋아하는 연예인을 마주한 팬처럼 호들갑을 떠는 제리의 말투에 박재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혀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어디서 한번쯤 본 사람들 같은데……. 역시 위로 올라오길 잘했어.”
혼잣말하는 제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영웅들을 하나씩 훑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으응?”
그녀의 시선이 방패를 든 칠라에게 고정되었다.
신기한 걸 발견한 듯한 얼굴이었다.
“귀여운 동물이네. 내가 저걸 어디서 봤더라?”
“찍찍…….”
“울음소리도 귀엽다! 너 내 동료가 되고 싶지 않니?”
제리가 칠라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자 민유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
“에베베! 싫은데!”
상대를 조롱하듯 붉은 혀를 내뱉는 제리였다.
다만 민유리가 그에 딱히 반응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원정대의 리더를 만나서 다행이야. 조금 전에 마주친 놈들은 영 별로였거든.”
“뭐?”
“이건 필요 없으니까 돌려줄게.”
쿵! 쿵! 쿵!
제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무거운 물체들이 활주로로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물체를 경계하던 박재경은 붉은 핏자국이 묻은 그것들을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다름 아닌 주사위의 마크가 새겨진 길드원들의 장비였기 때문이었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방금 죽인 놈들한테서.”
제리가 싱긋 미소 짓자 모두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쾅!
분노한 박재경이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하여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제리의 손에서 등장한 단검이 그녀의 일격을 막아 냈다.
‘이걸 막아? 그리고 오러까지…….’
진심을 담은 공격이 막히자 박재경은 한쪽 눈을 꿈틀거렸다.
가벼워 보이는 언동과는 달리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었다.
박재경의 뒤에 있던 원거리 딜러들은 제리에게 공격을 날렸다.
“우옷!”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크게 물러나는 제리.
그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나도 내 친구들 있거든?”
“퓌요오오!”
“퓌요오오오—!”
하늘에 떠 있던 새들이 제리의 옆으로 내려앉았다.
독수리가 몬스터로 변한 사례 중에서도 유독 크기가 큰 골리앗 이글 11마리과 그 외 잔당들.
그중 일부는 원정대가 거쳐 온 동물원에 있던 것으로 추측되는 놈들이었다.
“잠깐 저쪽이랑 놀고 있어.”
골리앗 이글들은 모두 박재경에게 달라붙었다.
“부길드장님!”
주사위의 영웅들은 일제히 박재경을 도왔다.
반면 유지한 파티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제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가 욕심이 가득한 눈으로 칠라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얘, 거기 단발머리야! 나 그거 너무 갖고 싶은데 주면 안 돼?”
칠라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제리의 말투에 민유리는 활을 움켜쥐었다.
“칠라는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야.”
“쩨쩨하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직접 뺏는 수밖에.”
팡!
제리가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지간한 사람은 반응하기조차 쉽지 않은 속도였다.
쾅!
하지만 어느새 칠라의 앞으로 나온 유지한이 그녀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어지는 그의 반격을 피해 제리가 뒤로 물러났다.
“저돌적인 남자네? 나 그런 남자 싫지 않아.”
“말이 많아, 아줌마.”
“……아줌마?”
빠직!
한국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들어본 호칭.
유지한의 도발로 여유가 넘치던 제리의 표정에 균열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