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잡았다 (2)
박재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IUPC의 배후에 숨어 있다고 알려진 이세계인.
현재 한국을 커다란 혼란 속으로 빠트린 그들 중 하나가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니.
“그거 확실한 정보에요?”
“확실합니다.”
“만약에 이세계인이 아니면요?”
“저 사람한테 임플란트 박아 주고 영웅 때려치워야죠.”
“…….”
그의 쿨한 대답에 박재경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
이세계인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신체적인 특징만으로는 구분하기가 힘들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계획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시민으로 위장해서 뛰어들었다는 건 충분히 말이 되는 가정이었다.
다만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것이라면 쓰러진 남자가 너무 쉽게 당해 버렸다는 것.
주먹 한 번에 기절한 것을 보면 평범한 사람과 거의 다를 게 없을 정도의 신체 조건이었다.
‘정말 한국인이랑 똑같이 생겼네.’
유지한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토종 한국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얼굴로 기억에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이세계인이라고 확신한 이유는, 마석을 통해 무무의 기억을 들여다봤을 때 이세계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질적인 마력을 그가 똑같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만 느끼는 건가?’
일부러 존재를 감춘 듯이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이었으나.
유지한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안으로 데려갑시다.”
“이쪽으로 오세요. 다른 분들은 여기 정리 좀 해 주시고요.”
유지한은 기절한 남자의 몸을 들쳐 멨다.
다른 사람들이 소란을 정리하는 사이, 박재경은 유지한을 비롯하여 소수의 영웅들과 함께 마트 안에 있는 직원실로 이동했다.
철컥!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남자의 팔에는 마력 수갑이 채워졌다.
외부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직원실에서 남자의 몸은 한 의자에 꽁꽁 묶였다.
“아쿠아. 저 사람 깨워.”
—응!
촤악!
기절한 남자의 머리 위에 정령이 소환한 물벼락이 쏟아졌다.
“허업!”
머리가 흠뻑 젖은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마자 당황하기보다는 침착하게 주변을 쭉 돌아보는 그의 행동은 꽤 놀라웠다.
이내 그의 시선이 자신의 턱을 후려갈긴 유지한에게 향했다.
“다, 당신!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질문을 던진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사람을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웅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담긴 얼굴이기도 했다.
저것이 연기라면 실력파 배우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일 터!
그의 연기에 감탄한 유지한은 순간적으로나마 박수를 보낼 뻔했다.
“…….”
입을 다물고 있던 박재경은 유지한에게 턱짓했다.
네가 일을 벌였으니 직접 취조까지 진행하라는 뜻이었다.
유지한이 그에 응하듯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쪽 이름은?”
“바, 박수택입니다.”
“그거 말고 본명.”
“본명이라니, 무슨 말이신지…….”
“한국 이름 말고 네 본명 말이야.”
“박수택이 제 본명입니다!”
“네가 이세계인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이세계인이라는 말에 남자는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이세계인? 그게 뭔데요?”
“너 같은 놈들을 가리키는 말이지.”
“아니, 난 그런 사람들 몰라요!”
“모른다고?”
“네! 모른다고요!”
무척이나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 남자였다.
유지한은 그 남자의 옆으로 바짝 붙은 뒤.
그의 어깨에 한쪽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얼마 전에 너희 대장이 다쳤잖아.”
“……!”
“아무리 너희 ‘대장님’이라도 1급 영웅들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던 모양이야. 입에서 피까지 쏟아 냈으니 그리 작은 상처는 아닌 것 같던데.”
유지한이 과거의 기억에서 엿보았던 이세계인 중에서도 그들의 리더라고 추정되는 인물.
그에 대한 정보를 언급하자 남자의 몸이 일순간 작게 떨렸다.
대장이 다쳤다는 건 극소수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반응이 있다.’
남자의 어깨를 꽉 잡고 있던 유지한은 그의 떨림을 감지했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띤 유지한이 말을 이었다.
“이런 정보까지 알아낼 줄은 몰랐을 거야.”
“무슨 말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기는 진짜 좋네. 이세계에도 배우라는 직업이 있나 몰라? 네가 좀 알려 줬으면 좋겠어.”
“제발 오해를 좀 풀어 주세요. 으흑흑……!”
남자는 적잖게 당황했음에도 겉으로는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 박수태를 연기하며 서럽게 울음을 쏟아낼 뿐.
눈으로 드러나는 증거도 없이 한 남자를 이세계인으로 몰아가는 것에, 직원실에 함께 들어온 사람 중에서도 그를 안쓰럽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쉽게 입을 열 것 같지가 않아.’
유지한은 눈물과 콧물까지 쏟아가며 애원하는 남자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여기서 이 남자에게 고통을 주며 고문을 하면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을까.
물론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게 유지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방법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의 입을 열지 않고도 정보를 캐낼 수 있는 방법이.
“시후야.”
“네, 형.”
“이 사람 몸에서 마력 좀 뽑아 봐.”
“네?”
“마트에 마석 파는 거 있지? 마력을 뽑아다 거기에 넣어 줘.”
“아, 알겠어요.”
밖으로 달려나간 김시후는 대형 마트에 진열된 하급 마석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속박된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천천히 마력 추출을 시도했다.
“어? 이 사람 진짜로 마력을 가지고 있네요.”
겉으로는 마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긴가민가했던 김시후였지만.
남자가 실제로는 마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척 놀란 얼굴을 했다.
“으아아악!”
자신의 마력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걸 느낀 남자는 몸을 흔들며 저항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육체 능력 자체는 평범한 시민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마력과 비교하면 어때?”
“확실히 느낌이 달라요. 뭐가 더 우위에 있다는 건 아닌데…….”
남자의 마력을 직접 만져 보는 것으로 그 차이점을 알아보는 김시후였다.
곧 손톱만 한 마석 5개에 남자의 마력이 담겼다.
타인의 몸에서 마력을 직접 추출하는 것은 추출하는 양보다도 소모되는 마력이 훨씬 더 크기에 매우 비효율적인 행동.
하지만 유지한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실프.”
하늘에 떠 있던 실프가 유지한의 옆으로 내려앉았다.
유지한은 실프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올리며 말했다.
“할 수 있겠어?”
우웅!
자신 있게 몸을 떨어 대던 실프가 마석을 향해 돌진했다.
이내 마석이 실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유지한의 시야가 암흑으로 뒤덮였다.
‘보인다!’
잠시 후 그의 눈에는 마력을 뽑아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마법사처럼 로브를 두른 남자의 옆으로는 무척이나 다급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일자로 쭉 이어지는 통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샘플링을 발동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느낌이 이상하군.’
몸이 땅 위에 떠 있는 유지한은 그저 사람들을 내려다볼 뿐이었지만.
그의 몸은 달려가는 남자를 따라붙고 있었다.
‘왜 뛰는 거지?’
남자의 동행 중 누군가는 무무의 기억을 엿봤을 때 본 적이 있는 이세계인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커다란 건물 안이나 지하인 것 같은데…….
저들이 여기서 숨을 헐떡이면서까지 달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윽고 통로 끝에서 짧은 계단을 올라간 사람들이 크고 단단해 보이는 문 앞에 도달했다.
—여, 열겠습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남자가 벽의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미닫이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렇게 드러난 문밖의 풍경을 보고서…….
유지한은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구궁!
—쿠구구구구구궁!
드넓은 하늘의 절반을 가려 버릴 정도로 수많은 유성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저거 지금 뭐 하는 거래.”
한창 취조가 진행되던 도중, 유지한이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심지어 그는 명상을 하듯 눈을 감아버렸다.
이해하기 힘든 그의 행동에 직원실로 들어온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아, 진짜 저 좀 풀어 달라고요!!”
덜컹! 덜컹!
의자에 묶여 있는 남자는 온몸을 흔들어 가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저항이 계속 심해지자 몇몇 영웅들은 박재경의 눈치를 살폈다.
오직 그녀의 허락이 있어야만 남자를 풀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재경은 팔짱을 낀 채 땅바닥에 앉아 있는 유지한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와 같은 걸 하려는 거구나.’
실프가 무무의 마력이 담긴 마석을 먹어치웠을 때.
유지한은 윤도하가 어딘가에 살아 있었다는 정보를 안겨다 줬다.
이번에도 그 능력을 사용하려는 것일 터.
박재경은 그에게 다시 한번 기대를 하기로 했다.
똑똑.
그때 누군가 직원실의 문을 두드렸다.
허락을 받고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었다.
“부길드장님. 조금 전에 끌고 왔던 남자의 지인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지인? 지인이라고요?”
박재경은 눈을 꿈틀거렸다.
대체 누가 이세계인의 지인을 자칭한다는 말인가.
“같은 직장에서 1년 이상 함께 일했던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네요. 동료가 얻어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화를 내시는데…….”
“지혜 씨? 지혜 씨 아닙니까?!”
직장 동료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남자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박재경은 냉정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세요.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알겠습니다.”
“지혜 씨! 지혜 씨 저 좀 살려 주세요!”
소식을 전한 사람이 문밖으로 나간 뒤.
영웅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심해졌다.
“야야, 너희 파티장 믿어도 되는 거 맞아?”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유지한의 능력을 알고 있는 김시후는 직접 나서서 주변의 영웅들을 달랬다.
순천까지 내려오면서 몇 번이나 활약했던 인물인 만큼 당장은 믿어 주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한 5분쯤 흘렀을까.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여기 영웅들 한 명도 빠짐없이 싹 다 고소할 거야!”
“가만히 좀 계세요.”
“당신들 내가 우습지? 당장 풀어 주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걸!”
의자에 묶여 있던 남자가 태도를 바꿔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인이나 정부 관계자와도 연이 있다는 그의 발언에 수군거림이 커지는 가운데.
마침내 유지한이 천천히 눈을 떴다.
“형! 괜찮으세요?”
“잠깐 나와 봐.”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한은 묶여 있는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흠칫 놀란 남자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뭐, 뭐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대화를 해야지.”
“허!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해도 소용없어. 당신만큼은 절대로 용서 못 해!”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건 너야. 파라스.”
“헉!”
파라스라는 단어를 듣고 남자가 경악하며 숨을 집어삼켰다.
뒤이어 유지한이 말했다.
“본명 파라스. 나이는 34세. 지구가 아닌 아제시아 출신의 인간으로 환각 마법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
“……!”
“최근 2년 동안에는 위장된 신분을 이용해서 일을 했었지? 자기 적성에 잘 맞지 않는 업무라서 고생깨나 했겠어. 이번에 맡은 위장 임무도 하기 싫어했던 거 같은데.”
“……너, 너, 너 대체 뭐야.”
“아제시아가 처참하게 멸망해 버린 건 유감이다.”
“아가리 닥쳐!”
한순간에 정체가 들통나버린 파라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가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렸으나 손목에 두른 마력 수갑이 그의 마력 운용을 방해했다.
지구인들과 마력의 성질은 달라도 마력의 근본은 다르지 않은 덕분이었다.
“진짜로 이세계인이야?”
“그런가 본데.”
“저 사람 또 한 건 해냈네.”
고소를 운운하며 끝까지 발뺌하던 남자가 고작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크게 흥분했다.
영웅들은 사실상 이세계인으로 판정된 남자를 보며 경계심을 높였다.
이곳에서 동료들이 죽어 나간 원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반면 흥분을 멈출 줄 모르는 파라스는 유지한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너 이 새끼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네가 궁금해할 필요 없어.”
“큭!”
“덕분에 좋은 거 알아간다.”
이세계인들이 가장 방해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건 2급 이상의 최상위 영웅들.
그러나 예상치도 못한 인물에게 발목을 붙잡히게 된 파라스는 개수가 줄어든 이를 꽉 다문 채 씩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