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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59화 (159/300)

159화. 터널

흥분하며 달려들었던 모든 소들이 바닥에 쓰러진 뒤.

유지한은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주변을 돌아봤다.

임실역 앞쪽은 물론이고 넓은 밭 전체가 젖소와 염소의 사체로 뒤덮여 있었다.

‘그놈들은 없나.’

소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시민들의 머리칼은 모두 평범한 검은색.

머리칼을 다른 색으로 물들인 흔적도 보이지 않고 주로 이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지한 씨,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어디 다친 건 아니죠?”

“멀쩡한데요.”

“후우,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이야…….”

박재경은 유지한에게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을 드러냈다.

그녀가 선발대에 유지한을 데려오기로 결정한 건, 유지한이 실프를 통해 윤도하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결코 그를 전투에 직접 참여시키기 위해서 데려온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는 남들보다도 많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몬불이라고 하셨던 건?”

“……잠깐 착오가 있었습니다.”

“흐음?”

살짝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지한을 바라보는 박재경이었다.

“으윽…….”

“아, 깨어나셨다.”

그때 힐러에게 치료를 받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 눈을 떴다.

박재경과 유지한은 자세한 사정을 듣고자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떤 이상한 놈들이 내 목장에 들어와서 소를 건들고 있더라니까!”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IUPC의 회원들.

다만 주사를 놓는 장면을 들킨 그들은 잽싸게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고 한다.

젖소들은 몬스터로 변해 버린 뒤에도 한동안 얌전히 있는가 싶었지만.

서로 시비가 붙은 놈들이 등장한 뒤, 커다란 흥분이 주변으로 전파되어 난리가 벌어진 것이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지한이 말했다.

“몬스터를 조종하려던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대체 왜…….”

“혼란을 일으키려는 목적이겠죠.”

몬스터를 이용해 한국 각지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

그에 한 여성이 질린다는 듯 말했다.

“그놈들은 대체 뭘 얻겠다고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정말이지…….”

“…….”

왜 IUPC가 한국에서 각종 사건들을 일으키는가.

유지한은 그것을 알 것도 같았다.

“전쟁입니다.”

“네?”

“우리는 지금 몬스터라는 생물 병기를 사용하는 적들과 전쟁을 치르는 겁니다.”

“……!”

“싸우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지, 이건 사실상 한국에서 벌어진 내전(內戰)이에요.”

유지한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함부로 꺼내기가 어려웠던 말.

하지만 이제는 꺼낼 수밖에 없는 말.

“여긴 이미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그 전쟁터에 뛰어든 선발대고요.”

*****

“시작하세요.”

화르르륵!

강력한 마력의 불길에 의해 한곳에 쌓여 있던 젖소와 염소의 사체가 뼈만 남기고 재로 변해 갔다.

영웅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임실에서 발생한 몬스터의 사체 중 절반 이상을 직접 소각했다.

이 근처에는 사체를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뿐더러, 내팽개치고 간다면 사체가 썩으면서 주변에 갖은 악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구조팀 돌아왔습니다!”

“현재까지 임실 지역 생존자 24명입니다!”

“다른 시민들은 이미 대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재경은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체 소각 작업과 남은 생존자들을 구조하는 일까지 끝냈으니 다시 출발할 준비가 끝났다.

“지한 씨, 이리 주세요.”

“예.”

깡! 깡! 깡!

유지한 파티는 남호열에게 장비의 점검을 맡기고 있었다.

당장 손질이 필요할 정도로 장비가 상하지는 않았지만 철저하게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을 터.

그때 손질된 로브를 확인하던 김시후가 말했다.

“지한이 형. 저 갑자기 생긴 질문이 있어요.”

“어떤 거?”

“몬스터 이름에는 왜 이리 ‘괴’가 많이 붙는 거예요?”

“최초의 영웅들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에 아직 몬스터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한국식 이름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

한국에서 등장한 최초의 영웅들은 몬스터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정해 버렸다고 알려진다.

그 때문에 오래전에 출몰한 몬스터의 이름에는 대부분 괴가 붙여졌다는 괴소문이 있었다.

“누가 붙였는지는 몰라도 너무 촌스러워요.”

“그런가?”

“제가 지었으면 조금 더 멋진 이름이 나왔을 텐데.”

“그러면 저 젖소의 이름을 한 번 지어 봐. 뭐라고 지을 건데?”

“꿀소요.”

“…….”

“영어로는 허니 카우(Honey Cow).”

김시후를 바라보는 유지한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대체 꿀이랑 젖소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그냥 귀엽잖아요.”

“혹시 너랑 가까운 사람 중에 양봉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어?”

“없는데요.”

“아, 그래…….”

김시후의 묘한 꿀 사랑에 의문을 느끼는 유지한이었다.

타인의 취향이니만큼 존중해 줄 수밖에.

“정비를 끝낸 파티는 다 모여 주세요!”

임실에서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

원정대는 생존자들을 안전지대까지 안내하기 위해 인원을 분리하고.

다시 아래로 이어지는 선로를 따라서 이동을 재개했다.

“또 터널인가.”

임실역에서 조금 내려오자 등장한 건 커다란 산 밑으로 이어지는 터널.

주변이 죄다 산을 거쳐 가는 지형이었기에 원정대는 산의 경계를 따라서 돌아가는 도로와 터널을 두고 잠시 고민했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건 거리가 조금이나마 더 짧은 터널이었다.

“가능한 빠르게 빠져나갈게요.”

원정대는 임실역까지 내려오는 동안 짧은 터널을 이미 몇 번 거쳐 온 적이 있었다.

터널 내부의 공간이 좁고 협소하다 보니 최대한 빠르게 넘어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라이트]

터널로 진입 후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내부를 밝혔다.

그런 가운데 칠라는 유지한 파티의 가장 앞에서 달려나갔다.

그 등에 올라탄 남호열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녀석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음?”

정면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던 민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출구가 아예 안 보여요.”

“터널이 곡선으로 뚫려 있을 거예요.”

긴 터널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뚫려 있다면 멀리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

유지한의 대답에 민유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약 20분을 쉬지 않고 달려간 후에도.

출구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

“이 터널이 이렇게 길었나?”

이쯤이면 산을 피해 돌아갔더라도 반대편에 도착했을 시간이거늘.

아직 시야에 출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의문을 느끼는 영웅들이 늘어가는 찰나.

“정지!”

선두에서 달리던 박재경은 모두를 멈춰 세웠다.

유지한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한 씨. 설마 아니죠?”

“아까와 비슷한 마법에 걸려든 것 같습니다.”

“아니……!”

설마 했던 대답에 박재경이 입술을 짓씹었다.

여기 모인 원정대 전체가 열차에서의 사건을 겪고서 외부의 마법을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또 함정에 걸려 버렸다니!

“바로 디스펠을 준비하겠습니다.”

“긴 터널 전체에 디스펠을 거는 건 마법사들의 마력 낭비가 너무 심할 것 같습니다만.”

마법사들은 원정대에서 단연코 최고 중요 전력에 해당한다.

임실에서 치른 전투에서도 많은 마력을 사용한 그들이었기에.

이런 곳에서 힘을 낭비하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면요?”

“지금부터 제가 잠깐만 앞장서서 가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금 유지한에게 의지하게 된 박재경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반면 유지한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짜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니구나.’

100명이 넘어가는 영웅들을 2번이나 속여 넘길 정도로 은밀하게 펼쳐진 환각 마법.

정말로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함정 하나하나를 설치하기 위해 절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리라.

하지만…….

‘날 만나지 말았어야지.’

유지한은 터널의 벽 안쪽으로 이어지는 ‘진짜 경로’를 향해서 걸어갔다.

*****

“벌써 공간 왜곡을 빠져나온 인원이 있다고?!”

—지금도 계속 밑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확인되어…….

영웅부의 임원들에게만 제공되는 개인사무실.

그중에서도 위기대응팀을 이끄는 본부장은 휴대폰을 붙잡고서 화를 내고 있었다.

“대체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왔어? 이세계 놈들은 그렇게도 자기들을 믿으라고 하더니만!”

—죄송합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선발대가 아직 안에 갇혀 있다는 건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알았으니까 넌 거기서 빨리 철수해. 괜히 영웅들한테 들키지 말고.”

몇 가지 지시 사항과 함께 통화를 마친 본부장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그는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다.

“이 이상 계획이 틀어지면 곤란한데…….”

그가 입술을 다물고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때였다.

똑똑똑.

밖에서 누군가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황급히 자세를 고쳐 앉은 그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사무실로 열댓 명의 인원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영웅부 소속 영웅들이 포함된 그 무리에서 가장 앞으로 나온 인물은 양지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양지철? 갑자기 무슨 일이지?”

양지철과 본부장은 임원급 회의에서 발표자와 청자로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

개인적인 보고를 주고 받을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심지어 뱀파이어까지 데려와서는.”

“흠. 나도 내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군.

함께 사무실로 들어온 카지미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차관님의 지시로 임원분들께 확인할 게 있어서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뭘 확인하는 건데?”

“니로치.”

양지철의 몸에 가려져 있던 니로치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얼굴을 발견한 본부장은 눈을 작게 좁혔다.

“호오, 그게 소문의 비밀병기인가.”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니로치의 손을 잡고서 질문에 네 또는 아니오로 답해 주시면 됩니다.”

“실험체가 된 것 같아서 거북하군.”

“상황이 상황인 만큼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부장은 표정에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위의 지시를 거부해서 의심을 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렇게 잡으면 되나?”

니로치는 양지철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내 그녀가 본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IUPC나 이세계인들에게 영웅부의 기밀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다.”

“……!”

본부장은 속으로 흠칫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아니오.”

“나는 오늘 출발한 원정대에게 사고가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오.”

“나는 IUPC에서 보낸 스파이다.”

“아니오! 아니오라고! 양지철, 지금 나랑 장난해?!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확인 끝났으니까.”

니로치는 잡고 있던 본부장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양지철을 향해 말했다.

“지철 오빠.”

“말씀하세요.”

“저놈 스파이야. 잡아.”

콰앙!

니로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영웅들은 순식간에 본부장을 제압했다.

“커헉! 다, 당장 이거 놓지 못해!!”

“입 닥쳐, 이 쓰레기야.”

“……!”

사무실 안의 모든 이들이 차가운 얼굴로 스파이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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