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소몰이 (2)
두두두두두두—!
소떼가 달려가는 길목마다 뿌연 먼지구름이 피어났다.
박치기로 건물이 부서진 자리에서는 돌가루가 휘날렸다.
녀석들의 육중한 몸을 견디지 못한 바닥에는 끊임없이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참새의 발에 매달린 유지한은 일부러 놈들의 앞으로 날아갔다.
“음머어어!”
“음머어어어—!”
가장 앞에서 달리던 젖소와 염소부터 그 뒤에서 달리는 놈들까지.
힘차게 돌진하던 놈들의 눈동자는 조금씩 유지한이 흔드는 붉은 천으로 쏠렸다.
“저쪽으로!”
“짹!”
참새는 넓은 밭을 향해 곡선을 그리며 날았다.
그와 동시에 길에서 돌진하던 소들이 방향을 틀어 그들을 쫓았다.
쾅!!
그때 소 한 마리가 도로 옆에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차 문에 뿔이 박힌 상태로 차를 앞으로 밀고 가던 녀석은 그것이 거슬렸는지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세게 들어 올렸다.
그 충격으로 위로 높게 떠 오른 승용차가 유지한을 향해서 날아왔다.
[윈드 밤]
후우웅!
승용차와 유지한의 사이에서 바람의 폭탄이 터졌다.
한점에 집중되어 있던 세찬 바람이 주위로 해방되고.
유지한과 참새의 몸은 승용차와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짹짹?!”
“괜찮아, 괜찮아.”
바람의 영향으로 참새의 왼쪽 발에 힘이 풀려 버리며 균형이 무너졌지만.
유지한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왼쪽 어깨를 다시 참새의 발에 물렸다.
“음머어어!”
“워! 워!”
유지한은 넓은 밭 위로 넘어오는 소떼의 행렬을 주시했다.
젖소뿐만 아니라 염소들도 밭으로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염소에게도 먹힌다.’
흥분한 염소들도 젖소와 비슷한 행동을 보여 주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예상했던 대로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놈들도 많았다.
밭으로 넘어온 건 전체의 약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
남은 절반은 다른 영웅들이 막아설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은 저쪽!”
“짹!”
유지한은 참새에게 지시하여 밭 위에서 큰 원을 그리며 날았다.
“음머어어어!”
“음머어!”
질척질척한 바닥에서도 쉬지 않고 달려가는 젖소와 염소들.
놈들은 계속 붉은 천을 따라 이동하며 초록색 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스티키 스웜프]
한편, 김시후는 유지한을 따라가지 않고 계속 길을 달려가던 한 염소의 앞으로 끈적한 늪을 생성했다.
염소가 그곳으로 발을 앞으로 내딛자 바닥이 푹하고 꺼지며 녀석의 한쪽 다리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메에에에?!”
파바바박!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염소에게 민유리는 화살을 퍼부었다.
마력이 듬뿍 담긴 화살은 두꺼운 염소의 피부를 찢어내더니 이내 찢어진 부위를 뚫고 박히며 살점에 구멍을 뚫어냈다.
“음머어어어!”
그 뒤에서 달려오던 소들은 늪에 빠진 염소를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서 달려가던 놈들이 먼저 쓰러지더라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끝내 영웅들과 소들의 거리가 좁혀진 뒤에는 탱커들이 앞을 막아섰다.
쿵! 쿵! 쿵! 쿵!
소의 뿔과 방패가 서로 부딪쳤다.
다행히 선두로 나온 2급 탱커 중에 힘으로 크게 밀리는 인원은 없었다.
돌진을 막아낸 뒤에는 전사들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흐아아압!”
“메에에에에!”
회전하며 날아다니는 창이 소떼를 가로지르며 상처를 입히고.
거구의 전사가 양손 도끼로 염소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원거리 딜러들의 지원까지 더해지자 소들은 괴성을 내질렀다.
“맷집 장난 아니네!”
“우와, 징그러워…….”
온몸에 상처를 입고도 콧김을 내뿜으며 투지를 내보이는 젖소.
어찌 된 영문인지 목이 잘리고도 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염소.
3급 영웅들도 녀석들과 맞서 싸우는 것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맷집과 체력이 워낙 좋은 탓에 사냥을 진행하는 속도가 매우 더뎠다.
‘지한 씨가 아니었으면 애 좀 먹었겠어.’
젖소를 처치한 박재경은 밭을 날아다니는 유지한을 바라봤다.
그냥 무작정 맞서 싸우려고 했다면 부담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커졌으리라.
아마 상당수를 뒤로 흘려보내야 했을 것이었다.
‘슬슬 형 쪽을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김시후는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면서도 유지한이 있는 방향을 힐끔거렸다.
밭 위에서는 가장 앞에서 달려가던 젖소가 가장 뒤에 있는 염소를 쫓아가는 구도로, 둥글게 날아다니는 유지한을 따라 소떼가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상황이 유지한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으나 그가 언제까지 버텨 줄지는 알 수 없었다.
“유지한 파티와 3, 4부대는 밭으로 가서 유지한 씨를 도와주세요!”
“네!”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박재경은 길을 막아서던 인원을 분리하여 밭으로 이동시켰다.
유지한 파티를 포함하여 명령을 받은 영웅들은 빙빙 돌고 있는 소떼를 향해 달려갔다.
그때 붉은 천을 흔들며 날아다니던 유지한이 소리쳤다.
“사람들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밭에서 유지한을 따라다니는 소들의 뿔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민간인이 3명 정도 꽂혀 있었다.
무작정 싸움을 시작했다가는 그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터.
영웅들은 유지한의 뜻에 따라 달려가는 소들의 옆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이거 어떻게 들어가야 해?”
“그건…….”
그런데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니는 커다란 소떼 사이에서 생존자만을 빼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유지한이 진행 중인 소몰이의 균형이 깨져 버릴 터.
“찍찍!”
그때 민유리를 등에 태운 칠라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타다다닷!
네발로 땅을 박차며 달려간 칠라는 소들과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더 큰 원을 그리며 달렸다.
녀석의 등 위에서 상체를 들고 활을 꺼낸 민유리는 스킬을 사용했다.
[멀티 샷]
피융!
아티팩트의 효과 덕분에 활과 거미줄로 연결된 1발의 화살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내 소떼가 그리는 원의 중앙에서 총 3갈래로 나뉜 거미줄이 생존자들을 향해 뻗어졌다.
“찍찍!”
끈적한 거미줄이 생존자들의 몸에 닿음과 동시에.
칠라가 몸을 돌려 소들과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그로 인해 3갈래로 뻗어졌던 거미줄이 꽈배기처럼 꼬이기 시작하고.
소뿔에 꽂혀 있는 생존자들의 몸이 거미줄에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하앗!”
꽈악!
민유리는 순간적으로 거미줄의 길이를 짧게 줄이며 거미줄과 연결된 활을 힘차게 휘둘렀다.
그 힘으로 생존자들은 소몰이가 진행되는 구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리 주세요!”
원정대의 모든 힐러는 길에서 다른 영웅들을 지원 중인 상황.
대기하고 있던 김시후는 마력을 이용하여 민유리가 구조한 사람들의 상처를 빠르게 지혈했다.
별도의 지시가 없어도 파티원들이 적절한 대처를 하는 모습에 유지한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몇 분이 더 흘러 하늘을 날던 참새가 조금씩 거친 숨을 내쉴 무렵.
“공격!”
파바바바박!
길가를 정리하고 밭에 몰려든 사람들이 달려가는 소들을 공격했다.
이내 소몰이가 중단되며 모든 젖소와 염소들이 다른 영웅들을 노려봤다.
“수고 많았다.”
“짹짹…….”
몇 분간 수고해 준 참새가 주인의 곁으로 돌아가고.
들고 있던 붉은 천을 내던진 유지한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옆으로 합류한 김시후가 말했다.
“잠깐 뒤에서 쉬고 계시지.”
“걱정 마. 옛날에도 이런 건 자주 했어.”
“크……. 대체 김현태 파티에서 뭘 하고 다니셨던 거예요?”
“이것저것.”
이내 다시 싸움터로 뛰어드는 유지한을 보며 김시후는 혀를 내둘렀다.
*****
거대 길드 스노우볼과 워리어즈의 길드장인 김민정과 강준일.
윤도하와 백강천처럼 실종되어 버린 그들의 마지막 위치는 전라남도 해남이었다.
그에 따라 스노우볼과 워리어즈를 중심으로 원정대가 구성되었다.
거기에 외부인으로서 함께하게 된 파티는 하나같이 실력이 쟁쟁하다고 알려진 파티뿐.
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많은 이들이 케로즈의 김현태 파티를 뽑을 것이었다.
“아이, 씨발. 좆같네 진짜.”
그 김현태 파티의 리더, 김현태는 실시간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정대가 서울에서 출발한 지 9시간을 넘겨서야 공간 왜곡에 빠졌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었다.
“임시연! 너 대체 지금까지 뭐 하고 있었어?”
“나라고 별수 있나, 뭐.”
환각을 눈치채지 못했던 마법사 임시연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열차에 함께 탔던 워리어즈의 영웅들이 심한 장난을 치다가 창문을 깨뜨리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의 영웅들은 아직도 열차 안에서 환각에 빠져 있었을 것이었다.
다른 영웅이라고 해서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모두가 느긋하게 쉬고 있었으니까.
“현태 님. 욕은 조금 자제해 주시면…….”
“아나, 어차피 편집하면 되잖아! 주변에 우리밖에 없는데 욕하는 것도 남들 눈치를 봐야 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한 걸 알면 잘 찍기나 해.”
김현태 파티의 뒤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이 그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는 전직 3급 영웅이자 현재는 방송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인물.
이번에 김현태 파티에서 영화를 촬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진해서 카메라맨이 된 사람이었다.
“후우…….”
처음 미팅에서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김현태는 아주 친절했다.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그의 제안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이번 촬영 제안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성격 졸라 더럽네!’
하지만 막상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함께 들어가 보니.
김현태의 실제 성격은 완전히 개판인 걸 알 수 있었다.
이제껏 언론에 나돌던 그의 건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들이 전부 꾸며진 것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겹다, 지겨워.”
끝도 없이 이어지는 허허벌판.
입구를 찾기 위해 김현태 파티를 비롯한 모든 파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지만.
출구라고 생각될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콰앙!
일행과 조금 거리를 벌린 이미아는 주먹으로 땅을 때렸다.
주먹이 닿은 땅에는 주먹보다 훨씬 큰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쾅! 쾅! 쾅! 쾅!
이미아는 연속으로 땅을 후려갈겼다.
땅 밑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김현태가 표정을 찡그리는 가운데.
고개를 치켜든 탱커 황준호가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럴 때 걔가 있었으면…….”
“걔가 누구야?”
“아, 미안하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
황준호는 무언가 실수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에 김현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준호! 걔가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겠어.”
“누군데?”
“유지한.”
황준호가 내뱉은 이름에 김현태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여기서 갑자기 그 새끼 이름이 왜 나와?”
“걔가 지금 같이 뭐가 막힐 때마다 자기 의견을 냈잖아. 갑자기 그게 생각나서.”
“별 영양가도 없던 걸 가지고 뭘…….”
그때 김현태의 눈치를 보고 있던 김강우가 말했다.
“현태 형님! 그거 유지한 파티의 정령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정령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묻혔을 놈.”
“흠…….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 사람에게 너무 고마워요.”
“왜?”
“그 사람이 많이 모자랐던 덕분에 제가 김현태 파티에 들어오게 된 거잖아요!”
“푸핫! 그것도 그렇긴 해?”
유지한을 낮잡아보는 김강우의 말에 김현태가 실실 웃는 순간.
멀리서 이미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모자란 건 너겠지.”
“음?”
쾅!
김강우는 재차 땅을 후려치는 이미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다시 김현태를 향해 아부를 떨었다.
땅에서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 이미아는 손목을 돌리며 임시연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찝찝한 시선으로 김현태와 김강우를 바라봤다.
‘왜들 그리 뒷담화를 좋아할까.’
그녀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나 파티의 리더인 김현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김현태.”
“왜.”
“너 왜 그렇게 유지한을 싫어하는 거야?”
“…….”
나는 왜 유지한이라는 사람을 싫어하는가.
이미아의 질문에 김현태는 몇 초간 무표정한 얼굴로 멈춰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뭘 싫어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