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구출 (2)
죽음을 맞이한 인비저블 버드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이 스킬을 사용한 듯 투명하게 변했다.
인비저블 버드가 죽었을 때 보여지는 현상이었다.
“그거 되게 비싼 소재였죠.”
“호열 씨가 보면 좋아하겠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비저블 버드는 죽어서 깃털을 남긴다.
고급 소재로서 상당한 가격을 자랑하는 인비저블 버드의 깃털.
이것으로 아티팩트를 만드는 일에 성공한다면 투명화 스킬이 부여된 장비를 획득할 수도 있었다.
유지한은 녀석의 귀한 사체를 칠라의 보따리에 넣어 둔 뒤.
땅에 뚫려 있는 구멍을 바라봤다.
‘꽤 깊어 보이네.’
특정한 양의 마력을 주입하기에 따라 닫히거나 열리는 형식의 입구.
인비저블 버드는 부리를 통해 땅에 마력을 흘려보낸 것이었다.
“들어가자”
“찍!”
유지한은 앞장서서 땅굴로 진입했다.
예전에 들어갔었던 괴미굴과 다르게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지는 구조였다.
아마도 새가 날아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은 것일 터.
[라이트]
슈웅!
김시후는 빛나는 구체를 땅속 깊이 내던졌다.
잠시 후 그것에 반응하는 놈들이 있었다.
몸집이 커다란 괴미였다.
서걱!
유지한은 괴미가 자신을 인지하기도 전에 머리를 베었다.
죽은 괴미의 턱과 손에는 흙더미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이 땅굴은 괴미들이 파놓은 모양이었다.
“너무 이상한데.”
“뭐가요?”
“괴미랑 새가 여길 함께 사용하는 것 같아.”
날개 달린 몬스터들은 보통 괴미를 먹이로 인식하는 편이다.
인간에게는 영 맛이 없게 느껴지는 괴미여도 새들에게는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그런데 이 땅굴에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오려고 했던 인비저블 버드의 행동을 떠올려보면.
유지한은 괴미와 새들이 서로 협력을 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포식자와 피식자로 나뉘는 놈들이 상생을 한다고?’
예전에 겪었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평범한 몬스터들은 절대로 그 정도의 지능을 가질 수가 없었다.
분명 IUPC에서 사용하는 약물이 강제로 몬스터가 된 동물들의 지능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찍찍!”
“뭘 찾아낸 것 같아요!”
앞쪽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칠라가 네발로 달려나갔다.
일행은 그런 칠라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흐어.”
“미쳤다……!”
무려 5개에 달하는 둥지가 몰려 있는 커다란 방을 찾아냈다.
각각의 둥지는 아쿠아리움에서 발견했던 것보다도 크기가 훨씬 컸다.
“뺙! 뺙!”
“뺙! 뺙! 뺙!”
“뺙! 뺙! 뺙!”
갓 껍질을 깨고 태어난 아기새들은 큰 목소리로 울어 댔다.
10마리가 넘어가는 녀석들의 시선은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인간들이 쓰러져 있는 구역이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와 크고 작은 뼈를 보아하니 이미 몇 명의 인간이 잡아먹힌 듯했다.
[스톤 월]
쿠구궁!
아기새들과 인간들 사이에 김시후가 사용한 돌벽이 솟아올라 접근을 차단했다.
주력 마법은 아니었지만, 다 자라지 못한 아기새를 막아 내기에는 충분했다.
“짹?”
“까악!!”
“꾁꾁!”
그제야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인식한 어른새들은 그들을 무섭게 노려봤다.
둥지에 편히 앉아서 쉬고 있던 놈들도 모두 경계 태세를 갖췄다.
“공간 전체를 밝혀!”
“네!”
유지한의 요청에 김시후는 재빨리 어두운 공간을 환하게 밝혔다.
서로 겹치지 않고 각기 다른 위치로 뻗어 나가는 빛의 구체들.
[스톤 월]과 10개 이상의 [라이트]를 동시에 사용하고도 여유가 넘치는 그였다.
“칠라! 가드(Guard)!”
“찍찍!”
짧은 명령어를 전달받은 칠라는 단단한 방패를 앞세워 김시후와 민유리의 앞쪽에 섰다.
단독으로 움직이는 메인 딜러와 탱커에게 보호받는 원거리 딜러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연습하고 사용했던 공격 진형이었다.
대략적인 지시를 마친 유지한은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엄청 화났나 보네.’
날아오른 새들은 유지한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뛰쳐나간 유지한의 목표물은 성체가 아닌 아기새였다.
뒤늦게 그의 의도를 눈치챈 거위 하나가 그를 막아 내려고 시도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둥지로 들어온 유지한에게는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촤아아악!
낯선 상황에 놀라서 굳어 있던 아기새 2마리가 그의 검에 쓰러졌다.
목이 완전히 뎅겅 잘려나간 덕분에 일일이 생사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짹! 째액—!”
“짹, 짹짹!!”
대처할 시간도 없이 벌어진 선제공격.
이미 다 자란 성체 몬스터들은 크게 울부짖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아이를 잃어버린 어미새들은 앞뒤 재지도 않고 유지한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어림없는 행동이었다.
[스톤 월]
쾅!
유지한에게 직선으로 돌진하던 거위는 그대로 김시후가 소환한 돌벽에 박혀 버렸다.
워낙 세게 충돌한 탓에 곧바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쾅! 쾅! 쾅!
이어지는 새들의 돌격도 곳곳에서 솟아나는 돌벽이 막아 냈다.
그렇게 기절한 새들의 몸에는 민유리의 화살이 하나씩 박혔다.
헤드샷을 노린 즉사의 공격이었다.
“짹……!”
“꾁!”
몇 마리의 죽음을 보고서 학습을 했는지.
무작정 유지한에게 달려드는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다.
놈들은 그 대신 칠라에게 접근했다.
“찍찍찍!”
칠라는 빠르게 접근하는 새들의 발톱과 부리를 방패로 쳐냈다.
1~2번의 공격을 막아 낸 다음에는 민유리나 김시후가 접근한 새들을 처리해 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설령 여러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달려들더라도.
신나게 알을 터트리던 유지한이 빠르게 커버해 주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서걱! 서걱!
콰직!
혼란에 빠진 새들이 머뭇거리는 순간에 아기새를 비롯하여 곳곳에 떨어져 있는 알들은 계속 터져 나갔다.
유지한을 공격하려고 하면 뒤에서 마법과 화살이 날아오고.
반대로 후방의 딜러부터 공격하고자 하면 아기새가 죽어 나갔다.
처음 유지한의 접근을 허용한 것부터 패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퓌요오오오—!”
어디선가 웅장한 목소리를 내며 덩치 큰 새가 튀어나왔다.
캉!
녀석의 몸에 칼을 휘두른 유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칼날이 깃털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기 때문이었다.
다른 새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를 자랑하는 깃털.
발톱을 꺼내 든 새가 얼굴을 할퀴려고 시도하자, 유지한은 마법으로 대응했다.
[루어 오브 브리즈]
유지한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속박 스킬.
‘빠르다!’
그러나 녀석은 재빠르게 마법의 영향권을 벗어났다.
뒤에서 민유리의 지원 사격이 날아왔음에도 전부 피해 내는 모습이었다.
샤아아!
표정을 살짝 굳힌 유지한의 검 위에 오러가 덧씌워졌다.
그에 위협을 느낀 것인지 갈색 새는 아주 높게 날아올랐다.
서둘러 칠라의 곁으로 합류한 유지한에게 김시후가 물었다.
“저게 뭐예요?”
“아마도……. 말똥가리인 것 같은데. 방어력만 보면 돌연변이 같아.”
새로운 적의 등장으로 잠시 대치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날개를 펄럭이던 말똥가리는 갑자기 아래로 돌진했다.
하필이면 어느 남자가 쓰러져 있는 장소였다.
“지한 씨!”
“저 새끼가!”
[윈드 밤]
유지한은 재빨리 말똥가리의 착지 지점으로 날아갔다.
그에 중간에 궤도를 튼 녀석은 다른 사람들을 노렸다.
[윈드 밤]
[윈드 밤]
[윈드 밤]
유지한은 전신이 떨려올 정도로 이동기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자꾸만 목표를 변경하는 말똥가리를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퓌요오오!!”
행동을 방해받자 짜증이 난 말똥가리는 커다란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유지한은 적을 경계하며 주변에 IUPC 회원이 있는지 살폈다.
저런 특별함을 지닌 개체라면 놈들이 가만 놔뒀을 리가 없었다.
“……!”
그런데 곧 바닥 한쪽에 피 묻은 하얀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에 익은 그것은 틀림없는 그놈들의 머리카락.
‘꼴 좋군.’
아마도 말똥가리를 조종하려다가 실패한 모양이었다.
성질이 아주 드센 놈이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내자.”
“퓌요오오오!”
서로 마음이 통한 것인지, 유지한과 말똥가리는 상대방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두 존재가 충돌하기 직전.
위로 살짝 떠 오른 말똥가리의 발톱이 아주 길게 자라났다.
녀석이 마지막까지 숨기고 있었던 회심의 스킬이었다.
“잘 가라.”
유지한은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초록빛 오러는 단단한 발톱을 하나씩 끊어 내며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위협을 느낀 말똥가리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촤악!
칼날이 말똥가리의 몸통을 베어냈다.
작은 상처는 아니지만, 곧바로 즉사에 이를 정도로 큰 상처도 아니었다.
그러나…….
치이이익—!
남호열이 제작한 아티팩트의 발열 스킬이 적용된 검은 유지한이 만들어 낸 상처를 뜨겁게 달구며 살점을 태워버렸다.
오러마저 뜨겁게 달궈진 덕분인지 상처 부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였다.
“퓌요오오오……!”
눈알이 뒤집힐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말똥가리를 덮쳤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한 녀석은 결국 정신줄을 놓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유지한은 아직 열기가 느껴지는 검을 털어 내듯이 흔들며 멈춰 있는 새들을 향해 말했다.
“다음!”
“……!”
“……!”
가장 강한 동료의 죽음에 겁을 집어먹은 새들은 땅굴에서 탈출하고자 했지만.
그 앞은 칠라와 딜러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찍, 찍찍찍!”
칠라는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
모든 전투가 마무리된 건 약 15분 후였다.
둥지와 둥지를 오가며 화려하게 날뛰었던 유지한은 터져 버린 알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싸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무정란이 몇 개 섞여 있었음에도 전부 부숴 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밖에서 사람들을 불러온 그는 가장 중요한 생존자들부터 챙겼다.
“좀 아플 거예요.”
“끄아아아……!”
왼팔을 먹혀 버린 남자는 힐러의 치료를 받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밖에 다친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살아 있었구나!”
무사히 재회한 자매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 모습을 본 민유리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원흉인가 보네요.”
툭!
박재경은 눈도 감지 못한 시체 하나를 발끝으로 건드렸다.
말똥가리를 조종하려다가 되레 반격당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IUPC 회원이었다.
“와……. 이놈 깃털 진짜 단단하다.”
“어지간한 공격으로 끄떡도 안 하겠는데?”
몇몇 영웅들은 말똥가리의 사체를 구경하고 있었다.
2급 영웅들이 보기에도 그 새의 스펙은 대단하게 느껴졌다.
죽은 말똥가리를 꼼꼼하게 살펴보던 박재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지한을 향해 말했다.
“지한 씨! 크게 다칠 뻔하셨어요.”
“안 다쳤습니다.”
“정말 위험할 뻔했다고요.”
“하지만 잡았죠.”
“아니……!”
그의 뻔뻔한 대답에 대강의 사정을 전해 들은 박재경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댔다.
윤도하의 밑에서 수업을 받았다더니, 어째 성격도 그를 조금 닮아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약간의 섭섭함과 아쉬움을 드러낼 뿐.
“미리 저한테 보고라도 해 주시지.”
“진입이 늦었다면 죽는 사람이 더 나왔을 겁니다. 특히 저쪽에 팔을 먹히신 분은 틀림없이 죽었겠죠.”
“지한 씨가 아직 3급이라는 걸 자각이라도 해 주세요.”
“저도 여기서 저런 놈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잘 하셨어요.”
자신을 인정해 주는 말에 유지한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가 박재경에게 말했다.
“이제 다시 내려가는 거죠?”
“네. 여기서 더 지체하기가 힘드니 탐색할 인원을 남기고 출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아……. 다른 지역에서는 트러블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더 이상의 말썽을 바라지 않는 건 유지한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쩐지 사고가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도하. 도하.”
“…….”
“도하. 도하. 도하.”
“…….”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져 버린 듯 어두워진 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벌레 소리가 귀를 괴롭히는 가운데.
윤도하는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도하. 도하. 도하. 도하.”
“무무. 가만히 좀 있어 봐.”
옆에서 재촉하는 정령 무무를 어떻게든 달래준 뒤.
그는 입을 다물고 다시금 사색에 빠졌다.
한 3분쯤 그러고 있었을까.
그가 무무를 향해 말했다.
“너도 저거 보이지.”
“보여. 3개.”
“쩝…….”
하늘을 올려다보는 윤도하는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밤하늘에 서로 색깔과 모양이 다른 달이 무려 3개나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