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구출
민유리가 원정대의 힐러를 호출하러 간 사이.
유지한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둥지 밖으로 꺼내어 놓았다.
절반가량은 의식이 없고 숨만 쉬는 상태였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상처 입혔군.’
그들의 몸에는 양쪽 팔다리와 목 부위에 날카로운 물체로 찢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
전신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목을 다쳐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유지한은 그것이 새의 발톱과 부리로 인한 상처임을 알아보았다.
인간을 가장 싱싱하게 보관하기 위해 죽이지 않고 이런 짓을 벌였으리라.
츠즈즈즈—
김시후는 마력을 동원하여 심한 상처를 위주로 지혈을 했다.
회복까지는 무리여도 벌어진 상처를 좁히는 등 간단한 응급 처치는 가능했다.
잠시 그걸 지켜보던 유지한은 둥지에 보관되어 있는 알로 다가갔다.
‘이렇게나 멀쩡한 몬스터의 둥지를 보게 될 줄이야.’
증식이라고 부를 만큼 머릿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고 알려지는 몬스터들.
놈들 중 대부분은 번식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새들도 둥지를 만들긴커녕 땅속이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알을 낳아 놓고 사라지는 일이 빈번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태어난 순간부터 성체로 자라나는 속도도 아주 빠르기 때문이었다.
“알은 다 깨 버려야겠어.”
유지한은 검을 뽑아 들고 사람 몸통만 한 알을 세로로 크게 베었다.
알의 껍질이 깨져 나감과 동시에 안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부화하기 직전의 알이었던 모양이었다.
공간을 메우고 있는 알들도 마찬가지로 하나씩 베어 나갔다.
“찍찍…….”
칠라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몬스터가 되었음에도 다른 결말을 맞이하는 새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일까.
유지한이 조금 궁금해하는 찰나.
“찍!”
쾅!
칠라가 방패의 모서리를 이용하여 알 하나를 통째로 찍어 눌렀다.
‘어떻게 공격할지 고민하고 있던 거였나.’
어이가 없어진 유지한은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그런데 둥지에 남은 알을 계속 파괴하던 때였다.
“음?”
김시후의 [라이트] 마법이 비춰 주는 알 중에서.
껍질 안쪽에 핏줄이 보이지 않는 알이 있었다.
‘무정란?!’
새들이 낳은 알들 가운데 생명이 잉태되지 못하는 무정란도 섞여 있던 것이었다.
몬스터의 무정란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영양분 섭취를 위해 먹어치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이거 상당히 비쌀 텐데.’
경매에 가져갈 수만 있다면 섭섭지 않은 금액을 건질 수 있으리라.
“칠라! 잠깐 멈춰 봐.”
“찍?”
유지한은 신나게 알을 깨뜨리던 칠라를 멈춰 세운 뒤 무정란의 개수를 확인했다.
그 결과 4개의 무정란을 찾아냈다.
“여기 있었군요.”
“바로 치료하겠습니다!”
그때 민유리가 박재경과 힐러를 데리고 돌아왔다.
박재경은 알을 살펴보고 있는 유지한을 향해 말했다.
“뭐하시는 건가요?”
“이거 무정란입니다.”
“……!”
박재경은 눈을 크게 떴다.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했던 그녀조차 처음 보는 무정란이었다.
“원정 도중에 획득하는 부산물은 처음 발견한 파티가 가져가는 규칙이었죠?”
“맞습니다.”
“재경 씨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알 하나를 주사위에 넘겨드릴 테니, 남은 3개의 알을 보관해 주세요.”
주사위를 비롯한 거대 길드는 지방에도 작게나마 거점을 두고 있다.
몬스터를 보관하는 대형 창고도 있을 테니 알을 보관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터.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요.”
박재경은 그 제안을 곧바로 승낙했다.
윤도하가 언젠가 원했던 물건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최소 몇억은 건질 수 있겠어.’
유지한은 알의 가격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3개나 얻었으니 하나쯤은 직접 먹어 버려도 문제가 없겠지.
“아얏!”
“정신이 드세요?”
둥지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은 치료를 받으며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살아남은 8명의 인간 중 5명은 동물원의 직원, 다른 3명은 동물원 근처에서 납치당했던 이들이었다.
박재경은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혹시 다른 사람들은 못 보셨나요?”
“처, 처음에 둥지에 있던 건 15명이었어요!”
15명의 인간 중 7명은 이미 몬스터에게 먹혀 버린 듯했다.
실제로 아쿠아리움에서 사냥한 새들의 몸속에서는 잘게 부서진 인간의 뼈가 다수 발견되었다.
“다른 사육장에서는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1명도요?”
“네.”
멀리서 달려온 남자 영웅은 다른 파티에서 보고한 내용을 박재경에게 전달했다.
그에 박재경은 찜찜한 반응을 드러냈다.
“수가 너무 적은데…….”
동물원에서 발견된 생존자와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동물원 관계자였다.
밖에서 유입된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앗!”
치료받던 인원 중에서 한 여성이 갑자기 화들짝 놀란 목소리를 내더니.
아직 치료가 덜 끝난 손으로 액정이 깨진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받아라, 제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여성.
그러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기절하기 전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었어요! 그쪽에도 몬스터가 나왔다고 했는데!”
“동생분이 계시던 곳이 어디죠?”
“한옥마을이요! 제발 저희 동생 좀 구해 주세요……!”
여성은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던 건 약 2시간 전쯤.
그녀가 재차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휴대폰의 신호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
유지한은 마찬가지로 통신 기능이 마비된 자신의 휴대폰을 보며 생각했다.
‘누가 방해 전파를 쏘는 건가.’
왜곡된 공간에서 신호가 닿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주변에 기지국이 존재하는 장소에서까지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
“인원을 나눠서 이동하겠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펫을 보유한 테이머들이 주변을 조사할 목적으로 펫들을 날려 보낸 이후.
박재경은 수색이나 지원팀을 보호하는 등의 목적에 따라 파티들을 여러 팀으로 나누었다.
유지한 파티는 그중에서 박재경을 따라 한옥마을로 이동하게 되었다.
“저 여기 처음 와 봐요.”
약 20~30분을 달려 네모난 빌딩을 넘어서자 보이는 기와집들.
한옥마을에 도착한 김시후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관광지에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이야…….”
“구경은 나중에 하자고.”
“찍!”
모두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생존자와 몬스터를 찾아다니는 사이.
칠라는 어느 기와집 지붕으로 뛰어 올라갔다.
유지한도 주변에서 가장 높은 기와집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높은 곳에 서자 비교적 낮은 층수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실프! 여기서 알려 줄 건 없어?”
드르륵!
유지한은 실프가 새로운 정보를 알려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실프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탓! 타앗!
유지한은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마을의 컨셉에 맞게 지어진 기와집들이 눈에 담겼다.
그리고 10분쯤 뛰어다녔을까.
길 한쪽에 와르르 무너져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틀림없는 몬스터의 소행이었다.
‘팔?’
그런데 건물 잔해 밖으로 빠져나온 사람의 팔이 있었다.
황급히 그 앞으로 달려간 유지한이 소리쳤다.
“괜찮으십니까!”
“으으…….”
다행히 얼굴을 빗겨가 하반신이 깔려 있는 사람은 아직 의식이 남아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계셨던 겁니까?”
“2, 2시간은 넘었습니다.”
“……!”
유지한은 영웅 학원에서 교육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크러쉬 증후군(Crush syndrome).
사람의 몸이 무거운 물체에 오랫동안 깔려 있다가 압박을 가하던 물체가 사라지면 발생할 수 있는 현상.
자칫하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 현상은 예비 영웅들이 필수적으로 받게 되어 있는 인명 구조 수업 내용의 일부였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유지한은 재빨리 근처에 있던 치유계 영웅, 속칭 힐러를 무너진 건물 쪽으로 데려왔다.
납치되듯 끌려온 힐러는 심하게 변색된 환자의 피부를 보며 말했다.
“건물 잔해는 건드리지 않으신 거죠?!”
“예.”
멋모르는 사람들이 건드렸다면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졌을 터.
힐러는 황급히 응급 처치를 진행했다.
마력을 이용하여 다리에 뭉쳐 있는 독소를 빼내는 것이었다.
“이제 치우셔도 됩니다.”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칠라와 유지한은 남자의 몸을 압박하는 물체를 치워 냈다.
깔려 있던 남자는 갑자기 전신에 피가 통하는 탓인지 잔뜩 인상을 썼지만, 이내 다리를 절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의 상태를 살피던 힐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예전에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살리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살릴 수 있었군요. 정말 잘 하셨습니다. 유지한 씨.”
“저야 딱히 한 것도 없는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지한은 요란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남자를 보며 빙긋 웃었다.
한편, 뒤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김시후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유리 누나. 저쪽에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
“흐릿하게 뭐가 있는데.”
옆에서 함께 주변을 경계하던 민유리는 눈을 껌벅거렸다.
김시후가 가리킨 곳이 아무것도 없는 돌벽이기 때문이었다.
[이글 아이]
뭔가를 놓쳤나 싶어서 스킬까지 사용하는 순간, 민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돌벽 위에 붙어 있는 커다란 새가 보인 덕분이었다.
놀랍게도 그 새의 몸은 돌벽과 거의 동일한 색을 띠고 있었다.
벽에 붙은 것이 몬스터임을 확신한 민유리는 손바닥에 마력 화살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짹!”
좋지 못한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것인지, 이름 모를 새가 위로 떠 올랐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치켜든 유지한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녀석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인비저블 버드!’
주로 마력을 얻은 제비 중에서 낮은 확률로 탄생하는 개체.
전신을 투명하게끔 바꿀 수 있는 투명화 스킬을 보유한 희귀 몬스터였다.
벽에서 떨어진 뒤 하늘로 뛰어오른 녀석은 맨눈으로 아예 식별이 불가능할 만큼 투명해졌다.
날갯짓 소리마저 아주 조용한 인비저블 버드의 위치를 놓치지 않은 것은 민유리와 칠라뿐이었다.
“유리 씨. 잠깐 스톱.”
“네?”
“화살 도로 집어넣으시고 새가 보이지 않는 척 해보세요.”
민유리는 유지한의 요청에 따라 생성했던 마력 화살을 없애 버린 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 행동했다.
그러자 그들의 위에서 머무르고 있던 인비저블 버드가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데요?”
“천천히 따라가 보죠.”
“찍!”
유지한 파티는 인비저블 버드와 거리를 벌린 채 녀석을 추격했다.
중간중간 녀석에게 들키지 않게끔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렇게 마을을 수색 중인 영웅들을 지나쳐서 넓은 언덕에 도착했다.
“찍찍!”
“그쪽이야?”
새를 눈으로 쫓기 힘들어진 뒤에는 칠라가 길을 안내했다.
유지한은 야생의 동물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는 칠라를 따라 나무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모든 일행이 나무 뒤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을 때.
인비저블 버드는 어느 순간부터 투명화 스킬을 해제하고 맨땅에 내려앉아 뒤뚱뒤뚱 걸었다.
“뭐 하는 걸까요?”
“쉿.”
인비저블 버드가 고개를 숙이더니 부리로 땅바닥을 몇 번 두드렸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결과는 꽤 놀라웠다.
평범한 돌바닥에 지름이 1m쯤 되는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팍!
녀석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민유리의 화살이 녀석의 날개에 꽂혔다.
“짹?!”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간 유지한이 쓰러진 인비저블 버드의 발을 낚아챘다.
“길 안내 고맙다.”
“짹! 짹짹! 짹짹—!”
감춰진 비밀 기지로 안내해 줬을 뿐더러.
아티팩트의 고급 소재로 사용되는 깃털까지 제공해 줄 몬스터!
유지한은 손으로 붙잡은 인비저블 버드를 위아래로 흔들어 대며 칭찬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만큼이나 마음씨가 따뜻한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