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동물원 (2)
물 위에서 거위를 잡아내는 데 성공한 유지한은 다시 이동기를 이용하여 땅으로 내려왔다.
피가 묻은 검을 제외하면 신발에 작은 물방울조차 묻지 않은 그였다.
공격을 이어 가던 주위의 영웅들은 칠라의 곁으로 합류하는 그를 힐끔거렸다.
‘와, 저게 뭐야?’
‘치고 빠지는 속도가 대단하다.’
‘전사가 정령을 얻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무슨 서커스인 줄.’
물 위를 날아갔던 전사가 원하는 목표만을 잡아내고 다시 자리로 복귀했다.
그 일련의 행동이 마무리되기까지의 시간은 단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여유마저 느껴지는 그의 행동에 모두가 놀라는 순간.
평점심을 유지하는 건 유지한의 곁에서 자주 함께했던 김시후뿐이었다.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시네.’
김시후가 알려 준 공용 마법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마법을 골라 익숙해지는 일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인 유지한.
그가 실프와 함께했던 훈련의 결과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그때그때 가장 적절한 마법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판단력 또한 갖추고 있으니.
김시후는 유지한이 단독 행동에 나서더라도 어지간해선 걱정이 들지 않았다.
‘지한이 형은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늘어나는 것 같아.’
괴아리를 처음 사냥하던 때만 하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던 전사가.
이젠 실전에서 묘기와도 같은 움직임으로 적을 해치운다.
김시후는 옆에서 함께하는 동료로서 그의 성장에 매우 즐거워했다.
“꽥꽥!”
“꾁……!”
물새장을 날아다니던 몬스터들은 조금씩 영웅들의 공세를 이겨 내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탱커들이 철저하게 딜러들을 지키고 있으니 피해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죽은 새들의 사체가 물 위로 둥둥 떠 오르고, 녀석들의 시체가 수면을 가득 메울 무렵.
피융!
민유리가 쏘아 낸 한 발의 화살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흑고니가 쓰러졌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영웅들은 물새장 안으로 진입했다.
죽어있는 몬스터들은 무시하고 바위 뒤의 공간이나 물속을 살폈다.
“찾았습니다.”
“윽…….”
물속에는 팔다리가 뜯겨 나간 시체가 몇 구 있었다.
모두가 밝은 밤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
이 동물원에서 사육사나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이 관리하던 동물들에게 먹혀 버리다니.’
물에 닿아서 불어 버린 시체를 발견하고 다들 난감해하는 가운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유지한은 시체들을 직접 밖으로 꺼내어 땅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시체가 더 훼손되는 것이라도 막기 위함이었다.
펄럭!
민유리는 어디선가 커다란 천을 가져와 시체 위를 덮었다.
그때 다른 사육장으로 갔던 박재경과 몇몇 2급 영웅들이 그쪽으로 다가왔다.
“죽은 사람들인가요?”
“여기 직원들 같아요.”
“하아…….”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는 그녀를 향해 유지한이 물었다.
“곰은 찾으셨나요?”
“아뇨. 이미 곰사를 빠져나간 모양입니다.”
불곰들이 거주하는 곰사에는 단 한 마리의 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서 발견한 것이라곤 산산조각이 난 강화 유리와 무너진 돌벽뿐이었다.
그에 김시후는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물원을 빠져나갔다면 큰일인데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7개 파티가 동물원 주변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곰은 세부 종류에 상관없이 몬스터로 변하면 2급 몬스터로 취급된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덩치가 최소 2배 이상으로 불어나고 근력 또한 크기에 비례하여 상승하기 때문에, 몬스터로 변한 곰은 인간을 찢을 수 있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모자를 정도였다.
결계를 쳐 놓기도 애매한 상황에 녀석들이 민간 지역으로 이동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잠시 시체를 내려다보던 박재경은 유지한을 보며 말했다.
“여긴 얼추 정리된 거 같으니까, 유지한 파티는 저와 함께 이동하시죠.”
“저희만요?”
“네.”
3급 파티 중에서 유지한 파티만을 데려가겠다는 박재경.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하던 그녀가 유지한에게 다가가 조용하게 말했다.
“지한 씨는 제 근처에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잖아요.”
기묘한 능력으로 윤도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준 중요 인물을 곁에서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정령사인 그가 또 새로운 정보를 가져다주는 걸 기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명령에 따라주세요.”
“알겠습니다.”
결국, 홀로 떨어져 나온 유지한 파티는 박재경을 비롯한 2급 파티 행렬에 합류했다.
거기서 그들의 위치는 정중앙이었다.
가능한 위험한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고 보호해 주겠다는 박재경의 의지 덕분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려나.’
크게 인정받는 길드에서 충분한 경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는 인재들.
민유리와 김시후로서는 뒤에서 이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어서 와요, 늑대의 숲>
10분쯤 걸어서 도착한 장소는 늑대 서식지.
흙바닥 위에 크고 넓적한 돌들이 곳곳에 깔려 있고 불규칙한 간격으로 나무들도 심어져 있었다.
자연의 숲과 비슷하게 꾸며 놓은 사육장으로 동물원에서도 제법 넓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는 장소였다.
‘빠져나가지 않은 건가.’
숲 전체를 감싸는 철조망과 울타리는 훼손되지 않고 멀쩡했다.
어쩌면 늑대들이 몬스터로 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을 터.
유지한 파티는 철조망을 뛰어넘는 사람들을 뒤따라 숲 안으로 진입했다.
“아! 저기 있다.”
2마리의 황색 털을 가진 늑대가 철조망 근처에 있었다.
영웅들은 평범해 보이는 그 늑대들을 향해 다가갔다.
“낑낑!”
“끼잉……!”
늑대들은 겁을 집어먹은 듯 철조망 근처로 바짝 달라붙었다.
영웅들이 근처까지 오기 전부터 계속 겁에 질려 있던 상태였다.
“아우—!”
“아우우——!”
뒤이어 뒤쪽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린 유지한은 못해도 30마리가 넘어가는 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쏜 울프(Thorn Wolf). 오랜만이네.’
털 대신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기다랗고 뾰족한 가시가 자라난 늑대.
여러 개의 털이 뭉쳐서 단단한 가시 형태로 변이된 2급 몬스터가 인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대기하십시오.”
“예.”
박재경을 비롯해 그녀와 함께하는 영웅들이 무기를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유지한은 박재경의 지시에 따라 뒤에서 전투를 구경했다.
[아이스 브레스]
푸화아악—!
어느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차가운 냉기에 의해 쏜 울프들의 다리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옴짝달싹 못하는 녀석들을 향해 근접 딜러들이 달라붙었다.
[초승달 베기]
박재경이 검을 한번 휘두르자 그녀의 오러가 초승달의 궤적을 그리며 주변에 흩뿌려졌다.
적들과 2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이뤄진 단 1번의 공격.
그것으로 3마리의 쏜 울프가 반으로 갈라졌다.
[광전사의 부름]
“우어어어어—!”
안구가 붉게 변한 전사는 쏜 울프 사이에서 괴성을 지르며 커다란 도끼를 휘둘렀다.
그 도끼가 닿는 곳마다 늑대의 몸통이 쪼개지고 있었다.
거기에 원거리 딜러들과 멀티캐스팅을 활용하는 마법사들의 지원까지 이어지니.
쏜 울프들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렸다.
‘대단하다.’
민유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같은 포지션에 해당하는 원거리 딜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전투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는 지가 그녀의 최대 관심사였다.
‘저건 우리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반면 김시후는 전투를 치르는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 결과 착용한 장비의 질과 사용하는 스킬이 조금 다를 뿐.
전투가 진행되는 구도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게 없다고 여겼다.
[마그마 밸리]
다만 늑대들을 휘감는 광범위 마법이 사용됐을 때,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은 2급 마법사와의 격차가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꾸준한 성장을 통해 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니.
조만간 저들을 따라잡겠다는 열의를 불태울 뿐이었다.
“낑! 낑!”
한편, 쏜 울프가 죽어 나가는 상황에도 울타리에 바짝 달라붙은 늑대들은 불안을 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영웅들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눈치도 아니었다.
그에 유지한이 의문을 느끼는 찰나.
“……!”
유지한은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라는 물체를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발견한 영웅들이 빠르게 옆으로 흩어졌다.
쿠웅!
땅으로 떨어져 내린 것은 은색 털을 가진 거구의 늑대였다.
“……이건 뭐지?”
“모르겠어.”
“처음 보는 놈인데.”
고개를 완전히 뒤로 꺾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몸체.
붉은 빛깔의 눈동자와 기름이라도 바른 듯 윤기가 도는 은색의 털.
팍 인상을 쓴 입가에는 뾰족한 이빨 사이로 투명한 침이 새어 나왔다.
“더 큰 놈이 있었구나!”
녀석을 발견한 박재경은 황급히 유지한 쪽으로 달려오고자 했지만.
똑같이 생긴 늑대가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쏜 울프가 아니라 저쪽이 진짜였네.’
유지한은 울타리 근처에서 덜덜 떨고 있던 늑대들을 바라봤다.
녀석들은 겁에 질리다 못해 바닥에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쾅!
거구의 늑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앞발을 휘둘렀다.
“큭!”
앞발이 휘둘러진 곳에 있던 탱커는 방패로 공격을 막았지만.
그 충격으로 신발의 밑창이 흙땅에 박혀 버렸다.
“그대로 붙잡아 둬!”
[드래곤 애로우]
콰과과과—!
궁수 한 명이 커다란 용 모양의 화살을 늑대에게 쏘아 냈다.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는 필살기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공격 스킬.
하지만 늑대는 높게 점프하여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을 피해 냈다.
“아.”
허공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도는 늑대의 등에서 유지한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풍성하게 자라난 은색 털 뭉치 사이에 약간 볼록한 부위가 있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유지한은 묘하게 거북함이 느껴지는 그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유리 씨! 저기 등에 있는 거 봤어요?”
“뭔가 희미하게 보이긴 했어요.”
“화살로 맞출 수 있겠어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럼 잠시 대기.”
다른 영웅들이 늑대와 전투를 이어 갈 때.
유지한 파티는 유지한의 지시에 따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2급 영웅들이 커다란 늑대 하나를 사냥하는 건 사실상 시간 문제겠지만.
유지한은 다른 해결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지금!”
“엄호할게요!”
“찍찍!”
거구의 늑대가 속박 마법을 피해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순간.
온몸에 버프를 휘감은 유지한이 [윈드 밤]을 통해 위로 날아올랐다.
[윈드 랜스]
[윈드 랜스]
그와 비슷한 속도로 몇 개의 공격 마법을 쏘아 낸 김시후는.
늑대를 노리는 대신 유지한의 몸에 닿을 만한 공격들을 쳐내는 데 집중했다.
츄와아아악—!
아티팩트의 효과가 적용된 민유리의 화살은 끈적한 거미줄을 뿜어내며 늑대를 향해 나아갔다.
[형태 변화 - 원]
화살에서 커다란 원의 형태로 변한 거미줄이 늑대의 눈가에 달라붙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늑대의 시야가 가려진 사이, 유지한은 녀석의 등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늑대를 처치할 생각이 없었다.
“일어나, 이 새끼야.”
“끄아아악—!”
그저 죄 없는 동물을 몬스터로 변이시킨 개자식을 잡아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