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동물원
유지한 파티가 포함된 선발대는 공간 왜곡을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왜곡의 입구가 전개된 위치는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대로 고속 열차의 선로 위였다.
“후! 끝났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마법사들은 힘을 합쳐 공간 왜곡의 입구를 파괴했다.
그 여파로 왜곡된 공간에 놓여있던 열차가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동일한 위치에 입구를 생성하지 않는 한, 누군가가 그 초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은 없을 터였다.
“여긴 전주였네요.”
“생각보단 멀리 내려왔습니다.”
현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탑승했던 열차는 전주역에 도달하기 전 마법에 휘말린 것이었다.
“신호가 왜 이리 약하지.”
김시후는 휴대폰을 높게 치켜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신호가 들어오긴 했으나 그 세기가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휴대폰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네? 뭐라고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서울에 있는 후발대와 연락을 취하던 박재경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이내 표정을 굳힌 그녀가 통화를 끝내며 말했다.
“여러분! 현재 각 지역에 선발대로 출발한 영웅들과 연락이 전혀 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건, 설마…….”
“공간 왜곡에 갇혀 버린 건 저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각각의 방식으로 목포와 해남 등의 지역으로 이동하던 선발대들.
그들 모두가 공간 왜곡에 갇혀 버렸다는 소식이었다.
“기관사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그 사람이 스파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찰에 실종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데, 아무래도 일반인들까지 말려든 모양입니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군요.”
“그림자 길드는 논산 쪽에서 연락이 끊겼답니다!”
“논산이면 그리 멀지 않으니 저희 쪽에서 사람을 보내는 게…….”
박재경은 선발대 인원 중에서 일부를 차출하여 다른 길드를 도울 계획을 세웠다.
현실에서 공간 왜곡의 입구를 강제로 파괴하여 사람들을 현실로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부탁드릴게요.”
“다녀오겠습니다!”
구조 계획을 명령받은 영웅들은 선로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향했다.
한편, 선로 주변을 계속 둘러보고 있던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이 안 보인다.’
여러 아파트 단지가 존재하는 구역.
사람들이 꽤 있을 만한 곳이지만, 아무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기다란 도로에는 차량이 한 대조차 지나다니지 않았다.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가더라도 도로가 혼잡해야 정상일 터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지한 씨!”
“예?”
“저쪽!”
민유리의 다급한 외침에 유지한은 고개를 돌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저 멀리 고층 아파트 13층쯤 되는 곳의 창문이 깨져 있었다.
잠시 후 그 안에서 거대한 괴둘기가 빠져나왔다.
발톱으로 사람의 몸통을 붙잡고 있는 놈이었다.
탓!
빠르게 활을 꺼내든 민유리는 마력 화살을 시위에 물렸다.
그때 유지한이 외쳤다.
“더 세게!”
“……!”
——넌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어.
유지한의 외침을 듣고 교관 이수지의 조언을 떠올린 민유리는.
순간적으로 화살에 보다 많은 마력을 흘려보냈다.
퉁!
준비를 끝낸 화살이 활에서 발사되고.
거의 직선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구국?!”
날갯짓을 하던 괴둘기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몸을 한껏 비틀었다.
하지만 화살이 녀석의 몸 근처에 도달한 순간.
[형태 변화 - 큐브]
얇은 화살 모양의 마력이 두꺼운 큐브의 형태로 변했다.
괴둘기의 몸통은 그 큐브의 면적만큼이나 크게 잘려나갔다.
과할 정도로 진한 마력이 담긴 큐브는 닿는 범위 내의 모든 걸 잘라 내는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짹짹!”
뒤늦게 날아간 어느 테이머의 참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성을 낚아챘다.
“나이스 샷!”
“마력이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거 봤어?”
“저런 걸 실전에서 쓰는 게 신기하다.”
흔치 않은 장면을 보고 호기심을 느낀 원거리 딜러들이 민유리에게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같은 영웅으로서 그녀의 전투 방식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 사이 참새는 구조한 여성을 영웅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으흑…….”
박재경은 혼란에 빠진 시민을 달랬다.
곧 정신을 차린 여성은 눈가의 눈물을 닦아 내며 소리쳤다.
“모, 몬스터들이 이 근처 사람들을 다 납치하고 있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제 가족들이랑 친구들도 전부 다 끌려갔다고요! 경찰은 계속 연락이 닿지도 않고!”
“납치된 분들과 연락은 해보셨나요?”
“몰라요! 모른다고요. 흐아앙……!”
여성이 주저앉아 통곡하며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말없이 그녀의 등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박재경이 말했다.
“순천으로 내려가기 전에 여기서 발생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사라진 길드장 님부터 빨리 찾아내야 하는 게 아닌지.”
“제가 아는 길드장 님이라면, 자기는 신경 쓰지 말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건……. 그렇네요. 분명히 그러셨겠죠.”
윤도하의 성격을 알고 있는 주사위의 길드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재경은 선발대의 공동 리더인 정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준 씨! 저희는 전주에서 발생한 문제를 처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연락을 위한 인원을 남겨 두죠. 여기 남겨진 분들은 모두 박재경 씨를 따라주세요.”
*****
정기준이 미리 선별해낸 인원들을 데리고 사라진 직후.
자리에 남은 인원들은 괴둘기가 등장했던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찾아다녔다.
그 결과 해당 아파트 단지에서만 약 10명 정도를 구조할 수 있었다.
모두가 몬스터의 위협을 피해 집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짹짹!”
“부탁할게!”
테이머들은 동물적인 감각이 뛰어난 펫들을 풀어서 주변을 수색했다.
덕분에 적지 않은 수의 시민들을 찾아냈을 뿐더러.
날개가 달린 펫들은 하늘에서 새로운 정보를 가져왔다.
“몬스터들이 한쪽에 몰려 있는 것 같다고요.”
“네! 이쪽인 것 같습니다.”
한 테이머가 휴대폰 지도 위에서 특정한 위치를 가리켰다.
다른 테이머들이 가져온 정보도 비슷한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박재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동물원이 있는 방향입니다.”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동물원의 동물들이 몬스터로 변했다면…….”
“울타리나 철창은 쉽게 깨지고도 남겠죠.”
식물원이나 동물원처럼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지역은 국가에 의해 매우 엄중하게 관리된다.
만에 하나라도 몬스터가 등장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같은 순간에 그런 규칙이 지켜지기란 쉽지 않은 일.
“출발합니다.”
원정대는 이동 속도가 느린 지원팀과 시민들을 보호할 인력을 따로 분리한 뒤 동물원을 목표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목적지의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
처참하게 부서져 버린 동물원의 입구를 마주했다.
누가 보더라도 인간이 아닌 몬스터의 소행이었다.
“칠라!”
“찍!”
파티 별로 행동에 나서게 되자 2급 영웅들은 곰이 머무는 곰사나 사자, 호랑이가 있는 사육장으로 이동했다.
남호열을 지원팀에 남겨 두고 온 유지한 파티 및 3급 파티들은 그 외의 다른 구역을 조사했다.
‘개판이군.’
부러진 나무들과 여기저기 가득한 건물의 잔해. 거리를 어지럽히는 쓰레기들이 유지한의 눈에 담겼다.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도 동물원 내부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물새들이 머무는 물새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새들을 가둬 두는 우리가 부서지고 완전히 물바다가 되어 버린 물새장에는 그 어떤 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푸확!
“꽉!”
“꾁! 꾁!”
인간들의 접근을 감지한 것인지, 갑자기 물속에서 커다란 물새들이 단체로 튀어나왔다.
유지한은 그 녀석들을 발견하자마자 검을 들어 올렸다.
하얀 뼈가 드러난 인간의 팔과 다리를 주둥이에 물고 있는 놈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둥오리랑 거위 아니야?”
“저것들도 몬스터로 변했다고?”
청둥오리와 거위, 그리고 흑고니 외 다수의 물새들까지.
물새들의 덩치는 평균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놈들이군.’
흔한 동물임에도 오늘날까지 몬스터가 된 기록이 없던 동물들.
영웅들은 잠깐 탐색전을 벌이며 적들을 노려봤다.
알려진 정보가 없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꽉—!”
먼저 행동에 나선 건물 위에 둥둥 떠 있던 커다란 청둥오리였다.
초록색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변을 경계하던 녀석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라 소리 지르며 영웅들을 위협했다.
[일렉트릭 미사일]
한 마법사는 그 청둥오리를 향해 전기 속성을 띠는 마력의 미사일을 날렸다.
물가에 사는 생명체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공격.
그러나 청둥오리는 노란 부리를 활짝 벌려 그 미사일을 집어삼켰다.
잠깐이나마 전기가 온몸을 휘감았음에도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퓻!
심지어 녀석은 살짝 벌린 부리 끝에서 물대포를 쏘아 냈다.
텅!
재빨리 앞으로 나온 탱커의 방패와 물대포가 충돌하며 둔탁한 소리를 만들었다.
방패로 막아 내지 않았다면 미사일을 쐈던 마법사가 단번에 기절할 만한 위력이었다.
퓻! 퓨퓻!
이어서 다른 새들도 영웅들에게 물대포를 쏴 댔다.
비행과 수중 호흡이 가능하고 전기 내성을 보유했을 뿐더러 원거리 공격 스킬까지 보유한 몬스터.
3급 중에서도 제법 까다롭게 여겨질 만한 놈들이었다.
“찍!”
앞으로 나온 칠라는 날아오는 공격을 방패로 막아 냈다.
“꽉! 꽉!”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몇몇 물새들이 불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하나둘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단, 인간의 신체를 입에 물고 있는 녀석들은 제외였다.
무언가를 눈치챈 유지한은 말했다.
“먹이를 갖지 못한 녀석들만 공격에 나서고 있어.”
“켁! 우리를 먹이로 바라보는 거네요.”
김시후는 인간을 먹잇감으로 바라보는 적들을 보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곧 한꺼번에 날아오른 녀석들을 향해 영웅들이 소리쳤다.
“쏴서 떨어뜨립시다!”
“앞에서 엄호해 줘!”
“맡겨 둬!”
전사와 탱커들이 앞을 막아 내는 사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딜러들은 날갯짓하는 새들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피융! 피융!
슉! 슈슉! 슉!
화르륵!
딜러들이 발사한 공격들이 물새장의 하늘을 뒤덮었다.
날아다니는 물새들은 그것들을 피하면서 물대포를 쏘아 냈다.
그러다가도 위험해질 때면 아예 물속으로 숨어 버리곤 했다.
“빠르다!”
“침착하게! 조금 더 침착하게 공격해!”
물새들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장소에서 놈들을 사냥하기란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칠라와 함께 파티원들을 보호하던 유지한은 하얀색 거위를 노려봤다.
“칠라. 저놈 보여?”
“찍찍……!”
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여유롭게 인간의 팔에 붙은 살점을 뜯어먹고 있는 녀석이었다.
적들 중에서도 제법 계급이 높은 개체 같았다.
“잠깐 다녀올게.”
“찍!”
칠라의 대답과 동시에 유지한은 물새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윈드 밤]
[윈드 밤]
등 뒤에 윈드 밤을 중첩으로 사용.
실프의 마력이 만들어 낸 거친 바람을 타고 여유를 부리는 거위에게 순식간에 도달했다.
“꽉?!”
당황한 거위는 입에 물고 있던 팔을 놓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윈드 웨이브]
하지만 유지한의 마법에 의해 물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파도가 일어남과 동시에.
거위가 뛰어든 지점의 수위가 확 낮아졌다.
푹!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모습을 드러낸 하얀 거위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갔다.
완벽한 즉사였다.
‘간단하네.’
상당히 까다로운 능력을 보유한 몬스터였지만.
마법을 활용한 전투에 익숙해진 유지한에게는 괴아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