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사고
“네가 민유리구나!”
“아! 안녕하세요.”
“저번에 청영사 면접 들어갔던 파티원에게 이야기 들었어.”
민유리는 용산역에 모인 사람 중에서 진용학이라는 이름의 영웅과 인사를 나눴다.
그는 레드홀 소속 영웅이자 거북이가 몬스터로 변한 괴북이를 데리고 다니는 테이머.
레드홀의 영웅 중에서도 유명인사에 속하는 부류였다.
“찍…….”
“끡.”
칠라는 부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괴북이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매우 단단한 등껍질 위에 등껍질 전체를 감싸는 형태의 갑옷을 착용한 부기.
갑옷 안쪽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진 덕분에 녀석이 팔다리를 등껍질로 집어넣고 칼날을 밖으로 뺀 뒤 회전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찍찍!”
“끡끡.”
두 마리의 펫은 서로 울음소리를 내며 대화하는 듯 보였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몬스터들은 평범한 동물들보다 울음소리를 더 많이 내곤 한다.
서로 전혀 다른 동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펫이랑 대화는 잘 통해?”
“네. 최근 들어 부쩍 제 말을 잘 알아듣는 것 같아요.”
“좋은 징조네. 지금처럼 애정을 많이 주면 소통 능력도 크게 늘어날걸.”
진용학은 부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기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한국어를 95% 이상 이해하는 데 성공한 펫 중 하나.
전세계의 똑똑한 펫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려놓은 기특한 괴북이었다.
“부기가 말을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맞아. 알지도 모르겠지만 거북이는 목에 성대가 없어서, 그걸 대신하는 장치를 제작하려고 노력 중이야.”
“꼭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이미 절반은 성공했어! 이걸 봐봐.”
진용학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민유리에게 보여 주었다.
부기의 울음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실행되어 있었다.
“현재 번역 정확도는 약 80% 정도야.”
“우와…….”
“부기의 몸에 스피커를 달아 놓으면 실시간으로 음성을 출력하는 것도 가능해.”
부기와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계획 중인 진용학이었다.
민유리는 크게 감탄하며 칠라를 바라봤다.
저런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언젠가 칠라와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민유리가 다른 테이머들과 대화를 나누는 한편.
같은 시각 유지한은 주변에 모인 영웅들을 가만히 살피고 있었다.
‘어째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네.’
유지한은 과거의 현장에서 종종 마주치던 얼굴들을 이곳에서 여럿 발견했다.
언젠가 김현태 파티를 몇 번씩이나 스쳐 지나갔던 영웅들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지한 씨.”
“괴구리 영화 인상 깊게 봤습니다.”
“당장 2급 타이틀 다셔도 되겠던데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주변에서 유지한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걸어온다는 것.
심지어 여러 2급 영웅들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다가왔으며, 꽤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의 인지도를 보유하게 된 유지한.
그만큼 그를 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유난 떨긴…….”
“역시 잘 나가려면 쇼를 찍어야 한다니까.”
“저런 애들 실력 뽀록나는 것도 한순간이야.”
떠오르는 3급 파티를 대표하는 리더이자 정령사.
외부에서 그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만한 조건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현 위치에 오른 영웅들은 빠르게 이름을 알린 그를 보며 불편해하기도 했다.
‘저런 게 최고의 칭찬이지.’
유지한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기분이 나쁘긴커녕 되레 즐거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쿠아. 인사해.”
—안녕!
근처에 있던 물의 정령사도 유지한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질 것 같은 물의 정령은 작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으응?
그런데 아쿠아라는 이름의 정령은 유지한을 바라보며 이상한 목소리를 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막 싫은 느낌은 아닌데……. 아무튼 이상해!
“…….”
아쿠아의 말에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윤도하의 무무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다른 정령을 처음 만날 때마다 정령들은 유지한을 향해 묘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네가 새로운 정령이야?
유독 사람과의 대화가 능숙한 아쿠아는 실프의 곁으로 날아가 물방울을 흩뿌렸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첫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휘잉!
하지만 실프는 구체 주변에 바람을 내뿜어 물방울을 튕겨 냈다.
그에 조금 뾰로통해진 아쿠아가 소리쳤다.
—얘 너무 까칠하다!
드드드드!
소리치는 아쿠아에 대항하듯 몸을 진동하는 실프였다.
유지한은 그런 실프의 행동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계약자와 그 주변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생각보다 더 까탈스러운 녀석이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열차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한자리에 모여있던 영웅들은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곧 열차 도착을 알리는 멜로디와 함께 고속 열차가 다가왔다.
바퀴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마력을 이용하여 공중에 뜬 채로 이동하는 마력부상열차였다.
“정말 멋지네요…….”
남호열은 가까워지는 열차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냈다.
마공학 기술로 제작된 열차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 중 하나였다.
“여러분은 저기에 타시면 됩니다.”
길게 늘어선 열차에서도 가장 뒤에 있는 칸.
유지한 파티는 유독 커다랗게 제작된 출입문이 달린 그곳으로 들어섰다.
“귀가 닿는구나.”
“찍!”
칠라의 귀가 입구에 살짝 걸리는 느낌이었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
비어있던 열차의 좌석이 빠르게 영웅들로 채워지고.
박재경이 포함된 윤도하 파티 또한 유지한 파티의 근처로 다가왔다.
“유지한 파티는 당분간 저희와 같이 움직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이세계인을 알고 있는 유지한 덕분에 여수로 내려가서도 모든 행동을 함께하게 된 두 파티였다.
곧 열차가 출발한다는 음성과 함께 열려있던 문이 닫혔다.
바퀴가 없는 마력부상열차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속도를 높였다.
“카메라는 계속 켜둘게요.”
“그러세요.”
민유리는 열차의 천장에 드론을 붙여 두었다.
새로운 드론에 탑재된 기능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니 열차에 타는 건 오랜만인가.’
유지한은 이제껏 개인적인 여행을 갔던 적이 드물뿐더러 지방에 사는 가족이나 지인도 없었다.
그나마 열차를 탔던 건 김현태 파티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정도일까.
열차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몇 년 전이었던 그는 한동안 창문 너머로 빠르게 흘러가는 배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소집된 영웅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지방으로 내려오던 때.
이세계인들은 원격에서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넓은 벽 전체에 그려진 지도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작은 점들.
그것들은 몇몇 영웅들의 현 위치를 가리키는 표식이었다.
“참 뻔하게도 움직이는군.”
“계획대로만 가면 되겠어요.”
한반도 위에 보이는 점들은 서울이나 경기도를 비롯한 지역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이세계인들의 태도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따로 움직이는 놈들은 어떡할까요?”
“그 정도는 무시해도 됩니다. 머릿수도 얼마 안 될 거고. 그렇죠? 임민수 씨.”
“자잘한 영웅들은 저희 회원들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세계인들의 사이에서 유일한 지구인.
IUPC의 부장 임민수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IUPC 해외 본부에서는 뭐라던가요?”
“한국에서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흠, 당장은 그 정도로 만족해야겠군요.”
“저희가 한국을 장악한 뒤에는 대화가 훨씬 편해질 겁니다. 영웅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벌써부터 기분이 달아오르는군요.”
임민수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무슨 원한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이상할 정도로 영웅들을 싫어하는 지구인.
그런 그를 보며 이세계인들은 조금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정체를 밝혀낸 건 의외였지.”
“정보가 어떻게 새어나간 걸까?”
“흥!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범위야. 어서 준비나 해.”
“알고 있어.”
남자 하나가 책상 위에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한쪽 면에 화려한 모양의 마법진이 새겨진 마법 스크롤이었다.
“시작한다.”
그는 지도를 바라보며 양손으로 스크롤을 쥐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영웅들이 지도에서 특정 영역 위로 넘어갔을 무렵.
찌지직!
마법 스크롤을 거칠게 찢어 버렸다.
*****
칠라는 열차의 바닥에 커다란 배를 깔고 드러누웠다.
“찍…….”
눈이 감겼다가 떠지길 반복하는 걸 보니 졸음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이내 눈을 완전히 감아 버린 녀석을 향해 주변 사람들은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어쩐지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되자, 유지한의 옆에 앉아있던 김시후가 말했다.
“여행 가는 느낌이네요.”
“그러게.”
유지한은 정말로 졸고 있는 칠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음료수 필요한 분 계세요?”
“저 오렌지 주스 주세요.”
누군가가 먹거리가 담겨있는 카트를 밀면서 다가왔다.
마침 입이 심심했던 영웅들은 카트로 몰려들었다.
유지한은 김시후가 가져온 콜라를 받아들며 생각했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휴식.
그래. 휴식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맨날 일만 하면서 지내겠는가?
매번 거친 싸움을 반복하는 영웅들도 때로는 이런 여유를 부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치익!
콜라의 캔을 따서 한 모금을 들이켰다.
마치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듯이 시원한 콜라였다.
유지한은 눈을 감고 몸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청량감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열차에 왜 탔더라?’
오늘 다른 영웅들과 함께 열차에 탄 이유가 무엇일까.
순간적으로 생겨난 그 의문은 곧 지우개로 지워 버린 것마냥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뭔 상관이야.’
열차에 탑승한 목적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유지한에게는 늘어지게 쉬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게 진짜예요?”
“진짜라니까요?”
“아하하!”
주사위의 박재경 또한 파티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얼마 전 한숨도 잠에 들지 못했다던 영웅에게도 휴식이 찾아온 것이다.
역시, 세상에는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없다.
아무리 저들이 길드장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쿵!
“……?!”
여러 잡생각을 하다가 실종된 윤도하까지 떠올린 유지한은.
갑자기 온 세상이 뒤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프가 마석을 먹어 버렸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황급히 실프를 찾았지만, 녀석은 칠라의 등 위에 내려앉아 쉬고 있었다.
텅.
잠시 후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캔콜라가 의자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닥이 콜라로 젖어가는 걸 본 민유리가 말했다.
“앗, 휴지 드릴까요?”
휴지를 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유지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유리 씨.”
“네?”
“열차가 지금 어디쯤까지 온 거죠?”
“잘 모르겠어요.”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세요?”
“글쎄요, 그게 중요한가요?”
“…….”
현재 마력부상열차에 탑승한 약 1천 명의 영웅 중에서.
창문 밖에 계속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는 걸 깨달은 사람은 오로지 유지한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