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소집령 (2)
한국의 모든 길드가 소집령으로 인해 시끌벅적할 무렵.
한국의 공항에서는 국내선을 위주로 각종 항공편이 잇따라 취소되고 있었다.
특히 기존에 IUPC의 움직임이 관측된 곳과 인접한 지역의 공항은 영업을 전면 중단하라는 권고까지 내려졌다.
다만 소통 과정에서의 문제와 몇 가지 사정으로 권고가 늦어진 탓에.
이미 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여럿 있었다.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그중 하나였다.
권고가 내려진 당시 김포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상황.
비행기는 서둘러 김해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까악!”
“까악!”
“까악!”
빠르게 날아가던 비행기 근처로 까만 깃털을 가진 거대한 새들이 몰려들었다.
그것들을 발견하고 크게 당황한 비행기 기장은 황급히 관제탑에 비상상황임을 알렸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비행기 근처에 몬스터가 출현했습니다!”
비행기에 손님으로 탑승하고 있던 영웅들은 창문을 통해서 새들의 정체를 알아봤다.
바로 까마귀가 몬스터로 변한 괴마귀였다.
다만 그 괴마귀들의 크기는 영웅들조차 경악할 정도로 커다랬다.
“까악, 까악!”
괴마귀들은 비행기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마력이 담긴 뾰족한 부리로 비행기의 몸체를 두들겼다.
두꺼운 마력 코팅이 둘러진 비행기는 그 공격을 버티는가 싶었지만.
집중적으로 공격당한 부위부터 코팅이 서서히 깨져 나갔다.
“까악—!”
전문가들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부여한 마력 코팅이 절반 이상 깨져 버린 직후.
취약한 비행기의 엔진 부위마저 괴마귀들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다.
그와 동시에 녀석들은 서로 약속한 것마냥 엔진을 향해 돌진했다.
카가가가가각——!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빠르게 돌아가던 팬은 귀마귀들의 테러에 의해 크게 망가졌다.
동력을 잃은 비행기는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흐아악!”
비행기의 기장은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고자 했지만.
조종석의 창문에는 괴마귀들이 뿜어낸 검은색의 깃털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82명이 탑승한 비행기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도 못한 채 인근 상가에 추락해버렸다.
*****
[익명33 : 진짜로 큰일 났네.]
[익명25 : 이러다 한국 망하는 거 아니냐?]
[익명7 : 한국 멸망 한 시간 전.]
[익명8 : 거대 길드에서 어떻게든 해 주겠지.]
[익명2 : 그쪽 길드장들도 전부 나가리됐잖아.]
…….
…….
비행기가 추락한 사고는 소셜 미디어와 언론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 비행기와 충돌을 이겨 내지 못하고 골조까지 드러난 5층짜리 상가.
비행기 탑승객 182명 중 사망자는 152명으로 30명의 생존자는 모두 영웅들과 함께 비즈니스석에 타고 있던 승무원과 승객들이었다.
‘100명이 넘게 죽었다고.’
유지한은 뉴스를 보며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과거에도 비행기 근처에 몬스터가 등장했던 사건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한국에서 몬스터로 인해 실제 추락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함께 그 뉴스를 보던 김시후가 중얼거렸다.
“그놈들이에요.”
비행기를 쫓아서 날아다니는 것부터 단단한 마력 코팅을 깨뜨리고 엔진을 망가뜨리기까지.
커다란 괴마귀를 직접 눈으로 본 영웅들은 녀석들이 매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고 말했다.
평범한 몬스터들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행동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몬스터를 조종하는 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항공편은 전면 중단됐군.’
이번 사고로 인해 국내선은 물론이고 한국의 모든 항공편이 일시 중단되었다.
추가적인 사고의 발생을 막아 내기 위함이었다.
“날개 달린 몬스터가 있다는 걸 알면서……. 다들 너무 안일했어요!”
“찍찍!!”
민유리는 드물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주인의 감정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칠라 또한 눈을 매섭게 치켜뜨고 있었다.
[익명77 : 해남에 사는 친구가 집밖에 몬스터가 돌아다닌대.]
[익명9 : 가족들이 목포에 갇혔다.]
피난 행렬이 이어지던 지역에서는 몬스터들의 등장으로 인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거주 지역에 갇혀 버린 상황.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금방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결계 밖으로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한국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지금쯤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있을 터.
우우웅!
때마침 유지한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박재경이었다.
“유지한입니다.”
—지한 씨. 소집 시간이 정해졌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일 오전 8시. 주사위는 레드홀과 함께 여수로 내려갑니다. 거기에 동참해 주세요.
백강천과 윤도하가 동시에 사라져 버린 여수.
두 길드는 이전과 같은 지역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10대 길드 중 다른 8개 길드도 길드장을 잃어버린 지역으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여수에 남겨 두고 온 영웅들과 합류하여 지역 안정화를 최우선으로 두고 움직이겠습니다.
“이동 수단은요?”
—피난으로 인한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열차를 이용할 겁니다.
“저희는 아시다시피 칠라가 있어서 입구가 넓어야 하는데.”
—그건 걱정 마세요.
“대장장이를 비롯한 지원팀은…….”
여러 질답이 오간 뒤 박재경과의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유지한은 파티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까지 짐 쌉시다.”
*****
다음 날.
유지한 파티는 하성태에게서 퀵 서비스로 전달받은 카메라들을 확인했다.
유지한은 바디캠을 몸에 매달며 말했다.
“유리 씨, 드론은 어때요?”
“전에 쓰던 거랑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괜찮겠어요?”
“문제없어요.”
민유리는 새로운 촬영용 드론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드론들은 그녀의 마력에 반응하여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성태의 제안으로 드론을 이용한 촬영 기법까지 찾아봤던 그녀였다.
“호열 씨는 좀 괜찮으세요?”
“어우! 아까부터 계속 긴장이 돼서…….”
남호열은 본인의 의지로 이번 원정에 따라오게 되었다.
파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했을뿐더러.
대장장이로서 현장 경험을 쌓고 싶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아내분이 적극적인 게 의외였지.’
매우 의외인 건 남호열의 아내가 남편이 이번 원정에 참여하는 걸 독려했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내 가족이 위험한 현장에 가는 걸 크게 만류했을 텐데 말이다.
게임 디자이너에서 대장장이로 직업을 바꿨던 남호열만큼이나 독특한 사람이었다.
“시후야. 청심환 가져온 거 있으면 호열 씨 하나 드려.”
“여기요!”
대장장이를 비롯한 지원팀은 주사위와 레드홀을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의 보호를 받는 덕분에 직접 싸움에 휘말릴 걱정은 없었다.
오픈 마켓의 골목길에서 남호열을 시기하던 대장장이들과 다르게 원정에 참여하는 대장장이들은 평균 이상의 실력이 검증된 인재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대장장이들과 친목을 쌓아 두는 것도 남호열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준비됐으면 갑시다.”
각자 간단한 짐을 짊어진 유지한 파티는 민유리의 차에 탑승했다.
목적지는 열차에 탑승할 예정인 용산역이었다.
“차가 많네요.”
용산역 근처 주차장에는 영웅들의 차량으로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여러 장비 따위를 싣고 다녀야 하는 영웅들의 차량은 일반 차량과 구분하기가 쉬웠다.
주차장에서 내린 그들은 용산역 내부의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수많은 영웅들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커다란 칠라를 발견한 영웅들은 저들이 최근 유명세를 얻은 유지한 파티임을 알아보았다.
‘유지한 파티인가?’
‘쟤들이 여기 왜 왔지?’
‘굉장한 신인이 따라오네.’
‘친칠라 귀엽다.’
같은 3급뿐만 아니라 그 위의 2급 영웅들 또한 유지한 파티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불의 정령사다.”
“유명한 사람들도 많네요.”
“찍, 찍찍…….”
몸이 투명한 물로 이루어진 물의 정령과 실시간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의 정령.
걸어 다니는 해바라기, 온몸이 근육질인 토끼, 칠라의 절반 크기쯤 되는 참새까지.
각양각색의 존재들이 즐비한 광장에서 유지한 파티는 고개를 돌려가며 그들을 구경했다.
주로 10대 길드에 속하는 영웅들이 많이 보였다.
다만 길드의 대표가 사라져 버린 탓일까.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요란하게 떠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지한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엄숙한 분위기.
그나마 떠드는 건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휴대폰으로 영웅들을 촬영하는 시민들이었다.
“영욱아!”
“지한 씨, 안녕하세요.”
유지한 파티는 친분이 있는 정영욱 파티의 곁으로 다가갔다.
주사위와 레드홀의 영웅들이 따로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잠시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그들의 앞쪽으로 사람 2명이 걸어 나왔다.
한 명은 주사위의 부길드장 박재경.
다른 한 명은 레드홀의 부길드장인 정기준.
주사위와 레드홀의 길드장이 사라진 상황에서 길드를 통솔하는 권력자들이었다.
“레드홀의 정기준입니다.”
정기준의 낮고도 묵직한 목소리가 용산역 내부에 울려 퍼졌다.
아주 두꺼운 목과 바위처럼 크고 단단한 몸.
설명이 필요 없는 레드홀의 2인자로 한국 최고로 손꼽히는 탱커 중 한 사람이었다.
“우선 여기 모인 여러분께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
“……?”
“……?”
정기준이 수백 명에 달하는 영웅들을 향해서 허리를 깊게 숙였다.
옆에 있는 박재경은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
다른 사람들은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정기준을 바라봤다.
이내 허리를 편 그가 말했다.
“제가 백강천 님과 윤도하 님의 곁에 있었음에도 그분들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고로 저번 일은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기준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음에도 정기준은 고개를 저었다.
비록 백강천과 윤도하가 평소 탱커에게 지켜지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가장 앞에서 파티원들을 보호해야 하는 탱커가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파티원을 잃어버렸다.
그에 이번 사태를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이요?”
“저희는 실종된 1급 영웅들과 관련된 정보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헛!”
“무슨 정보 말입니까?”
“그건…….”
주변을 둘러보던 박재경은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서 칠라를 발견했다.
그녀가 이내 이번 일에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던 유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안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실종된 분들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번 일에 이세계인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정말로 이세계의 인간이 한국에 넘어온 겁니까?”
“네. 그뿐만 아니라 IUPC의 배후에 그들이 있다는 의혹도…….”
이세계인의 존재를 긍정하는 말에 영웅들의 눈빛이 변했다.
영웅부가 괜히 헛소리를 한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여수 지역의 안정화 및 실종된 영웅들의 수색입니다.”
“순천역까지 열차를 타고 내려간 뒤에 파티를 여러 개로 나누어 움직일 예정이며…….”
영웅들에게 간략한 작전 설명이 진행되고.
고개를 돌린 박재경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발대는 30분 후 출발하겠습니다. 모두 준비하세요.”
지방 원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