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실종 (2)
“흠…….”
가슴팍에 임시 교관 배지를 매단 김시후는 학생들과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프란 페이저를 바라봤다.
기초 체력 수업에서 주변 학생들이 함께 짝을 지어 운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둔 프란은 홀로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드워프의 작은 체구에서 느껴지는 탄탄함은 예비 영웅치고도 훌륭한 수준.
그런데 그는 수업의 취지에 맞게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도 좀처럼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엇비슷한 색깔의 물감들을 짜놓은 팔레트 위에, 홀로 다른 색의 물감이 놓인 듯한 느낌.
같은 반 학생들도 지금처럼 프란을 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옆에서 함께 그걸 지켜보던 민유리가 말했다.
“왕따는 아닌 것 같은데…….”
“저런 경우에는 은따죠.”
은근한 따돌림, 혹은 은둔형 왕따.
겉으로 보기에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언 따위는 일어나지 않지만.
마치 대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우에 부르는 말.
“그나마 성격이 활기찬 녀석이라 다행이에요.”
하늘보호소에서 인연을 맺고 프란과 때때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김시후였다.
평소 프란의 성격이 그리 어두운 성격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은따를 당하더라도 본연의 성격은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종족 때문에 그런 걸까?”
“아무래도 그렇죠.”
성격도 괜찮고 평소 수업 태도도 좋은 녀석을 무시하는 이유라면.
역시 종족 말고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같은 이종족인 김시후인 만큼 녀석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대련에서 꽤 잘 버티던데.”
프란은 유지한과 민유리와의 대련에서도 홀로 나섰다.
그리고 대련에서 그가 공격을 막아 내면서 보여 줬던 맷집은 이 영웅 학원의 학생 중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탱커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때 옆에 있던 유지한이 말했다.
“마음에 들면 데려오지그래?”
“네?”
“졸업하면 길드로 영입하자고. 길드 내에 다른 파티를 만들면 되잖아.”
“그것도 괜찮겠네요.”
김시후는 유지한의 의견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모든 수업이 마무리된 오후.
임시 교관 배지를 반납한 김시후는 프란에게 다가갔다.
프란을 그를 보자마자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시후 형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너도 수고 많았다.”
“오늘 학원에 찾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경험이었어. 수고비도 꽤 챙겼고.”
“지한 형님과 유리 누님에게는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참 아쉽습니다.”
“…….”
대련에서의 패배를 언급하는 프란.
김시후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 나중에 졸업하면 들어가고 싶은 길드는 있어?”
“어, 아직 그런 건 없습니다만…….”
“갈 곳 없으면 우리 길드로 와.”
“네에?!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하지만 이 제안이 네가 졸업할 때까지 유지되려면 앞으로도 네 기량과 실력을 갈고닦아야 할 거야.”
“아,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프란은 김시후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김시후는 과하게 긴장한 그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려주며 응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한민국 영웅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
[스노우볼, “길드장 김민정 님과 연락이 두절됨”]
[레드홀,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백강천 님을 수색 중.”]
[속보! 현재 한국의 모든 1급 영웅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목포, 해남, 고흥, 여수 등지에서 1급 영웅들이 자취를 감춰…….]
10대 길드를 대표하는 10명의 1급 영웅들.
그들이 모조리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뉴스와 미디어 따위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특정 길드에서 정보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워낙 큰 사안인 만큼 정보가 새는 걸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허, 대체 무슨 일이…….”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해외 언론들도 이번 일에 대한 속보를 쏟아 냈다.
아침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유지한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주사위의 윤도하의 지도 아래 교육을 진행했던 그였다.
그런데 다른 1급 영웅은 물론이고 그 윤도하마저도 실종 명단에 올라가다니.
‘적에게 당한 건가?’
잠깐이나마 윤도하가 정체 모를 적에게 밀리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유지한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땅의 정령사인 그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누군가에게 밀리거나 죽임당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뭔가 있다.’
IUPC를 처리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갔던 거대 길드들.
그 길드를 이끄는 1급 영웅들이 집단으로 실종되었으니.
힘의 차이와는 별개로 무언가 다른 문제가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
유지한은 윤도하가 마지막으로 건네주었던 초대장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이번 정령사 모임에는 한국의 모든 정령사가 모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청영사도 분위기 안 좋겠는데.’
1급 영웅들이 실종된 여파는 레드홀이 주관하는 청영사까지도 전해졌다.
유지한이 들어선 건물 입구에서부터 평소와는 다른 정적이 깔려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대화 내용 또한 모두 1급 영웅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형, 오셨어요.”
“오늘 소식 들었지.”
“네.”
김시후의 표정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좋지 않았다.
뒤이어 도착한 민유리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국가의 최고 전력이라고 취급받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건 그만큼 영웅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절대로 이렇게 쉽게 당해 버릴 사람들이 아닌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찍찍…….”
정해진 시간이 되어 강의실에 들어가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많은 영웅들이 거대 길드에 소속된 만큼 동요가 그치지 않았다.
강의실로 들어온 교관 진석우 또한 레드홀 소속된 영웅으로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러분. 다들 소식은 접하셨겠지만, 어제쯤 한국의 1급 영웅들이 모조리 실종되었습니다.”
“…….”
“이번 일로 인해 저희 교관들과 관계자들도 당분간 길드로 돌아가 상황을 살필 예정입니다. 그에 따라 청영사 활동은 잠시 중단될 수도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진석우는 입교생들에게 윗선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전했다.
이번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교육 진행이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길드장이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체계가 갖춰진 거대 길드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지만.
1급 영웅들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위협이란 게 한국에 존재한다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문경진이 손을 들며 말했다.
“조만간 예정되어 있던 대련도 취소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쳇…….”
문경진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지한을 곁눈질했다.
*****
진석우의 교육이 공지사항을 전하는 것으로 짧게 마무리되고.
유지한 파티가 사무실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던 도중.
주사위 길드에서 꿀잼의 사무실로 사람을 보내왔다.
“박재경 씨가 저를 찾으신다고요?”
“네. 2시간 정도만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무실로 찾아온 남자는 유지한에게 고개를 숙이며 협조를 구했다.
윤도하의 실종으로 인해 실종된 장소 주변의 수색은 물론이고 최근 그와 접촉했던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응한 유지한은 차량에 탑승하여 주사위 본사로 이동했다.
“아, 오셨군요.”
부길드장 박재경은 주사위에 도착한 유지한을 맞이했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된 그녀는 세상 피곤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쁘신데 불러서 죄송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재경 씨 눈이 너무 붉은데…….”
“제가 어제 잠을 못 자서.”
수준 높은 영웅의 체력으로 하루 정도 밤을 새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아무래도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피로가 더 크겠지.
같은 현장, 바로 눈앞에서 윤도하가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을 테니 그 충격은 남들보다 훨씬 더할 터였다.
“윤도하 씨가 정말로 사라진 겁니까?”
“……네. 제가 분명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박재경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지간히 분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유지한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최근 저희 길드장님과 만났을 때 뭘 했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짧게 설명 부탁드릴게요.”
“음, 그러니까…….”
유지하는 며칠 전 윤도하와 함께 진행했던 교육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와 나눴던 사소한 대화까지 떠올리며 박재경에게 전달했다.
그것을 아주 소중한 정보처럼 경청하는 박재경은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정령사 모임의 초대장을 선물 받았다는 말에 그녀는 황급히 그 초대장을 받아서 확인해 봤지만.
그저 마력에 반응하는 평범한 종이임이 확인될 뿐이었다.
“달리 특별한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나요?”
“IUPC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것 외에는 따로 들은 내용이 없습니다.”
“하아…….”
유지한이 기억하고 있던 모든 대화 내용을 전달 한 직후.
박재경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었지만 역시나 이번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었다.
“윤도하 씨와 백강천 씨가 사라진 현장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는 건가요?”
“무무가 땅에 남긴 극소량의 마력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박재경은 주머니에서 손톱만 한 마석을 꺼내 들었다.
여러 마법사들의 도움으로 땅에서 채취한 윤도하의 정령 무무의 마력이 담긴 마석이었다.
레드홀과 주사위의 2급 영웅들이 나섰는데도 그 외에는 무엇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겨우 이것만으로는…….”
박재경은 마석을 세게 움켜쥐었다.
고작 이 정도의 단서만으로는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그런데 그때였다.
부웅—!
둘 사이의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유지한의 뒤쪽에서 얌전하게 대기하던 실프가.
유지한과 박재경의 사이로 날아올랐다.
“실프?”
정령의 돌발적인 행동에 유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
실프가 박재경이 손에 쥔 마석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그리고…….
쏙!
손톱만 한 마석은 이내 동그란 실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녀석의 행동을 본 박재경과 유지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그걸 네가 먹어 버리면 어떡…….”
두근!
마석을 먹어치운 실프를 야단치려는데.
갑자기 유지한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어?’
몹시 당황한 그가 황급히 손바닥을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이미 검게 변해 버린 시야에는 손바닥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지한 씨? 갑자기 왜 그러는…….”
바로 앞에서 들려오던 박재경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파앗!
새까맣던 시야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이내 유지한의 눈에 담긴 것은 몇 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여긴…….’
그리 넓지 않은 정육면체의 방.
작은 출입문조차 보이지 않아서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그 공간에.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윤도하와 백강천, 그리고 맞은 편에는 붉은 중절모를 쓴 누군가가 있었다.
유지한은 하늘에서 그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