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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42화 (142/300)

142화. 엘프

“이 무기들은 써 보시고 후기 좀 들려주세요.”

“아, 네!”

민유리는 자신의 새로운 무기를 아주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장비의 성능이 한층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특별한 능력까지 보유하게 되어 크게 만족스러웠다.

‘아티팩트가 아닌 장비들도 하나같이 쓸 만하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장비들을 살피던 유지한은 흐뭇하게 웃었다.

착용감이 일상복을 입은 듯 편하게 느껴지는 게, 썩 쓸 만한 물건들이었다.

이내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호열 씨에 대한 정보는 당분간 숨겨 두는 게 좋겠습니다.”

“확실히……. 그러는 편이 좋겠네요.”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대장장이가 탄생했다는 건.

세상에 새로운 정령사가 등장했다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소식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상황이 안정되기 전까지 그 정보를 철저히 감추기로 했다.

“호열 씨. 당분간은 가족들에게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마시고, 앞으로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얼마든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세요.”

“네!”

“시후야. 이번에 얻은 괴삼은 예정했던 대로 팔자.”

“알겠어요.”

청영사의 보상으로 주어진 6년근 괴삼.

유지한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기로 했다.

이미 한번 복용한 영약은 재섭취하면 효과가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아티팩트의 재료로 사용될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재료값이 만만치가 않지.’

아티팩트는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유지한과의 대련에서 지강석이 소환했던 건틀릿.

그것처럼 자유롭게 소환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려면 장비 제작 시 특정 재료들을 조합하여 첨가해야만 하는데.

그러면 재료값이 필수적으로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들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전속 대장장이로부터 아티팩트의 자체 수급이 가능한 길드.

그런 굉장한 조건을 달성했으니, 필요한 돈이야 얼마든지 벌어다 줄 수 있었다.

*****

“당분간 공부에 매진하겠습니다. 장비 손질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아티팩트의 탄생으로 길드 내부가 한바탕 뒤집어진 이후.

남호열은 하루의 시간 절반 이상을 아티팩트와 관련된 정보의 조사와 연구에 투자하기로 했다.

아직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상황.

유지한이 그에게 가져다준 최신 논문은 물론이고 과거에 밝혀진 모든 정보를 샅샅이 찾아보며 또 다른 아티팩트를 제작하려는 것이었다.

“유리야.”

“네?”

“이쪽으로 와. 네 차례야.”

한편, 청영사에서 교육을 받던 민유리는 교관 이수지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이수지의 교육에서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교관과 긴밀한 면담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민유리의 차례가 된 것이었다.

단 2명뿐인 면담실에서 이수지가 민유리에게 말했다.

“요새 고민이나 따로 힘든 건 없어?”

“있긴 있어요.”

“어떤 거?”

“요새 주변에서 자꾸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아, 어떤 건지 알겠다.”

항상 칠라를 데리고 다니는 민유리는 사람들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받는 때가 많았다.

거기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히는 게 최근 민유리의 고민이었다.

악의가 담겨 있는 요청은 아니었기에 잘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수지는 연예계에 발을 담근 선배 영웅으로서 말했다.

“팬서비스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적정한 선에서만 받아 주고 나머지는 거절해도 돼.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얼굴이 알려진 이상 그 정도는 무시하고 살아야지.”

“음음, 역시 그러는 편이 좋겠죠.”

“혹시 그런 거 말고 다른 고민은 없어? 전투에서 생긴 고민이라든지.”

“당장 생각나는 건 없어요.”

“그래? 그것참 이상하네. 고민을 많이 해야 할 텐데.”

“……네?”

뜻을 알 수 없는 대답에 민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수지는 그런 그녀를 위해서 말했다.

“유리 너는 몸에 보유한 마력이 정말 많아.”

“그런 말은 자주 들었어요.”

“그리고 넌 그걸 알면서도 마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지.”

“……!”

“이게 내가 널 쭉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이야.”

순간, 민유리는 머리를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내용으로 지적을 해 온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마력을 전부 소모했던 적이 있어?”

“없어요.”

“넌 마력의 총량이 큰 것은 물론이고 마력이 회복되는 속도도 무척 빠른 편일 거야. 한 사람의 영웅으로서는 아주 특별한 조건이라고 볼 수 있어. 그런데 평소에 네가 마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굉장히 소극적이더라? 너보다 마력이 적은 영웅들보다 훨씬 더.”

“…….”

민유리는 이수지의 설명을 듣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 자신과 파티원들을 위해서라도 넌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어.”

“네…….”

“당분간 마력을 사용할 때는 마력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압축시켜서 사용해 봐. 그러다 보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올 거야. 아예 마력을 퍼붓는 것도 좋고.”

“마력을 퍼붓는다……?”

이후 짧은 잡담을 더 나누고 교육생 면담이 끝난 뒤.

복도로 나온 민유리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교관 이수지의 직설적인 조언에는 하나같이 틀린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내 방식이 소극적이라고.’

민유리는 이수지가 해 준 조언들을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계속 반복되는 생각은 교육을 끝낸 뒤에도.

그리고 청영사를 빠져나와 동생의 병원을 찾아갈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 딸 왔어?”

“엄마?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이른 저녁의 병실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와 있었다.

민유리는 천천히 어머니의 옆으로 걸어갔다.

“오늘도 파티원들이랑 함께 있다가 온 거야?”

“네.”

“엄마도 언제 한 번 그분들이랑 만나게 해 줘. 영상으로만 봐서 실제로는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

“영화에 나온 거랑 똑같아요.”

여러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의 시선은 곧 침대에 누워 있는 민소연을 향했다.

“며칠 전보다 더 마른 것 같지?”

“…….”

민유리는 말없이 가방에서 카지미르가 선물해 준 로션을 꺼내어 손 전체에 꼼꼼하게 발랐다.

그 손으로 동생의 손목을 만지자, 어머니의 말마따나 전보다 더 마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연이가 깨어날 때까지 몸이 버텨 줘야 할 텐데.”

“제가 아는 소연이라면 버텨 줄 거예요. 반드시.”

동생에 대한 믿음을 보이며 두 손으로 비쩍 마른 손바닥을 포개는 민유리.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어머니가 말했다.

“유리야. 소연이 처음 쓰러졌던 날 기억나?”

“……기억나요.”

“네가 병원에서 소연이 몸을 만졌다가 피부가 새까맣게 변해서 펑펑 울었잖아.”

마력 변색 증후군이라는 병의 존재를 몰랐던 때.

실수로 동생의 몸을 만진 민유리는 자기 때문에 동생이 잘못되는 줄 알고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그날 이후로 네가 조금씩 변했지.”

“…….”

“너무 성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쾌활하고 말괄량이에 가까웠던 소녀.

그녀는 하나뿐인 동생이 쓰러진 뒤부터 성격이 변했다.

쓰러진 동생을 다시 깨우고야 말겠다는 하나의 목표.

영웅이자 홀로 남은 자신이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요소들이 작은 소녀를 짓누르며 지금의 민유리라는 사람이 탄생했다.

“소연이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무리하는 건 안 좋아.”

“알고 있어요.”

“이참에 당분간 병원에 방문하는 횟수도 줄여. 주에 1번 정도로.”

“아니, 왜요?!”

“왜긴? 더 열심히 해서 동생 치료할 방법을 찾아줘야지.”

“……!”

“너 여기 온다고 해서 소연이가 당장 깨어날 것도 아니잖아. 병원에는 엄마가 더 자주 들릴 테니까, 넌 네가 하는 일에 더 집중해. 알았지?”

민유리는 병원에 들르는 횟수를 대폭 줄이라는 어머니에게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의 말투와 얼굴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진지했기에.

“하아……. 알았어요.”

끝내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아 참! 너랑 같은 파티에 지한 씨라는 사람이 되게 멋있어 보이더라.”

“……그래요?”

“그 사람 여자친구는 없대?”

“개인사는 잘 모르지만……. 아마 없을 거예요.”

“없으면 이참에 네가 확 꼬셔 버려.”

“아잇! 엄마!”

어머니가 무심하게 툭 던진 말에 민유리는 발끈하듯 소리쳤다.

“얘가, 얘가 소리 지르기는.”

아주 오랜만에 딸의 신선한 반응을 본 어머니는.

무언가를 깨달은 것마냥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

유지한과 김시후는 서울의 한 카페로 이동했다.

입구를 넘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의 코를 타고 강한 풀내음이 느껴졌다.

“진짜 꽃집 같아요.”

“인기 많을 만하다.”

그곳은 내부 인테리어를 마치 거대한 꽃집처럼 나무와 식물이 가득하게 꾸민 카페였다.

어느 유명 인터넷 블로거에 의하면 한국에 정착한 엘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는 관광지이기도 했다.

“여기 어디쯤 계신댔는데.”

김시후는 휴대폰에 적힌 메시지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늘 이 카페에서 만남이 예정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카페의 한 종업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 혹시……. 김시후 씨 되시나요?”

“엇, 네! 맞습니다. 사인해드릴까요?”

휘리릭!

모르는 사람의 부름에 김시후는 본능적으로 품속에서 볼펜을 꺼내 들었다.

마치 강아지의 조건반사와도 같은 행동.

하지만 종업원은 입가에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안쪽에서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

유지한과 김시후는 종업원을 따라 카페 안쪽으로 들어갔다.

일반 손님들에게는 쉽게 공개가 되지 않는 영역.

카페의 주인이 특별히 허락하는 경우에만 입장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서 오렴.”

“마일리 누나!”

두 사람이 만나기로 했던 3명의 엘프들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시후는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의 지인들을 향해 먼저 다가갔다.

‘죄다 미남미녀들이네.’

유지한은 원탁의 탁자에 앉아 있는 엘프들을 바라봤다.

형형색색의 머리칼을 가진 모두가 당장 패션 화보집에 모습을 비춰도 부족함이 없을 만한 외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 덕분인지 다들 모자를 벗어 둔 상황이었다.

“다들 되게 오랜만이에요!”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진작에 모여서 얼굴 좀 보자고 했잖아.”

“너 시후 요즘 바쁜 거 몰라?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을 어떻게 막 불러.”

“역시 시후는 영화보다 실물이 더 낫구나.”

…….

…….

몇 달 만에 모여서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들.

곧 그들의 시선이 뒤에서 기다리는 유지한을 향했다.

“그리고 이쪽이…….”

“처음 뵙겠습니다. 유지한입니다.”

“불편하게 서 있지 말고 이리와 앉으세요.”

유지한은 김시후를 따라 의자에 앉았다.

지이잉—

3인의 엘프가 자리에 앉은 유지한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이 사람이…….’

‘실프 님의 두 번째 계약자.’

‘정말로 그 특유의 마력이 느껴진다.’

에르나 하스의 죽음으로 계약이 종료된 실프와 새로운 계약을 맺은 정령사.

이미 영웅일보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 정령의 사진을 확인했지만.

그들 중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정령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뾰롱!

유지한은 주저 없이 정령을 소환했다.

그리고…….

드륵!

드르륵!

드르륵!

유지한에게 편히 앉으라고 말한 3인의 엘프는.

하나같이 의자를 뒤로 확 밀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실프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외쳤다.

“위대하신 정령을 뵙습니다!”

“위대하신 정령을 뵙습니다!”

“위대하신 정령을 뵙습니다!”

“……?!”

갑작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유지한이 눈을 껌벅이는 사이.

그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실프는 소리 없이 영롱한 초록빛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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