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대장장이
“몬스터가 엮여 있어서 경찰이랑 영웅부, 거대 길드들이 합동으로 IUPC에 압수수색 들어갈 거래요.”
“좋은 소식이네.”
유지한과 김시후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IUPC의 소식들을 훑어보는 가운데.
민유리는 여러 기사들 속에서 단 하나의 기사를 주목했다.
[IUPC가 몬스터를 돌연변이로 변이시키는 금단의 기술을 개발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몬스터를 강제로 돌연변이로 변이시키는 기술의 개발.
현장에서 IUPC의 회원으로 추측되는 인물에게 압수한 약물을 평범한 몬스터에게 주입하는 것으로, 해당 몬스터가 돌연변이가 되었음이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
대체 무슨 이유로 의도적인 돌연변이를 만들려고 했을까.
평범한 영웅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기사의 상세 내용을 읽어 내리던 민유리는 손을 뻗어서 칠라의 옆구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찍찍.”
칠라는 익숙하고도 부드러운 주인의 손길을 느끼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어.’
민유리는 그런 칠라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IUPC가 개발했다는 저 금단의 약물을 절대로 칠라에게 노출시키지 않겠다고.
아마 테이머로 분류되는 많은 영웅들이 지금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참에 IUPC가 확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마냥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거대 길드에서 나서니까 믿어 봐야지.”
기사가 올라오기 무섭게 IUPC는 자신들을 향한 의혹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성명문을 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본부에서도 반발이 심한 상황이니 조만간 그들과의 마찰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
하지만 아무리 반발이 생기더라도 명분이 있고 능력 있는 영웅들도 직접 나서게 된 이상, 조만간 상황이 빠르게 정리될 터였다.
유지한은 휴대폰의 화면을 끄며 말했다.
“당분간 이 사람들 볼일 없어서 좋네.”
언론이 IUPC를 대하는 분위기가 확 변해 버린 이상.
그들이 MA에서 시위를 하는 것처럼 대놓고 활동을 펼치는 횟수는 크게 줄어들 터였다.
유지한은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
다음 날.
유지한과 김시후는 민유리의 차를 타고 남호열이 있는 오픈 마켓으로 이동했다.
어떤 장비를 만들고 싶은지 얼추 정리가 된 덕분에 주문을 넣기 위해서였다.
“헛! 유지한 파티시죠?”
“예. 맞습니다.”
“저, 저 영화 보고 정말 팬 됐습니다!”
오픈 마켓 입구에서 이뤄지는 영웅 신분 조회.
신분 조회를 하던 관계자는 유지한 파티의 얼굴을 알아보고서 기뻐했다.
덕분에 아주 빠르게 입구를 넘어간 그들은 주차장에 도착해서 내린 뒤.
대장장이들과 공방이 몰려 있는 거리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거기 유지한 파티! 저희 공방으로 오세요! 정말 싸게 해드릴게요!”
“다른 곳 말고 여기로 오세요! 주인장의 사심을 담은 특별 할인 있습니다!”
“유지한 씨! 지금 가진 검이 어째 낡아 보이는데?”
큰 거리로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유지한 파티를 알아보고 근처로 다가왔다.
유명 공방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부터 자기가 직접 제작한 무기를 직접 들고나오는 대장장이들까지.
유지한 파티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넘쳐났다.
하지만 그들은 다가오는 이들을 보며 계속 손과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어둡고도 더러운 오픈 마켓의 골목길에 들어섰다.
“유지한 파티!”
“진짜로?”
“워메! 저게 진짜 친칠라여?!”
거기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있었다.
유지한은 그들에게 조금 전과 비슷한 대응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김시후 씨! 그런 볼품없는 지팡이 말고 이건 어때?”
“……볼품없는?”
개중에는 최상급 소재인 플로른으로 제작된 아티팩트를 두고 볼품없다 부르는 대장장이도 있었다.
김시후는 부모님의 유품을 욕보인 대장장이를 한번 쓱 바라보고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물건을 보는 눈이 저렇게나 나쁜 대장장이에게는 그 어떤 장비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저기 계신다.”
골목을 더 깊숙이 들어가 목적지인 남호열의 공방이 보일 즈음.
공방의 주인인 남호열은 때마침 가게 앞에 나와 있었다.
“호열 씨!”
“…….”
유지한은 반갑게 남호열의 이름을 불렀지만.
충분히 목소리를 들을만한 거리임에도 남호열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가 공방의 입구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건 뭐야.”
“헉.”
“……!”
유지한 파티는 건물의 상태를 보고 크게 놀랐다.
칼방이라는 남호열의 공방을 상징하는 간판.
칼과 방패가 그려진 그 간판 위에 붉은색의 페인트 같은 것으로 커다랗게 X가 그려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방의 문과 벽에는 형형색색의 낙서가 새겨진 게 보였다.
[이기적인 놈!]
[실력 나쁜 쓰레기]
[영업 정지]
[영웅들은 여기서 물건 사지 마세요]
[제발 여기서 꺼져]
…….
…….
하나같이 이 공방을 운영하는 남호열을 비난하고 욕하는 낙서들.
남호열은 가게 앞에서 아주 멍한 얼굴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까지 누가 다가와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남호열 씨!”
“헛! 네!”
유지한의 외침에 남호열은 몸을 움츠리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어서 김시후가 낙서가 가득한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다 뭐예요?”
“아…….”
남호열은 대답 대신 골목에서 유지한 파티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살폈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그는 세 사람을 공방 안으로 안내했다.
덩치가 큰 칠라는 문밖에 나와 있어야만 했기에.
민유리는 글자가 적혀 있는 종이를 녀석의 손에 쥐여 주었다.
[주인 허락 없이 건들면 뭅니다. 다쳐도 책임 안 짐.]
유지한은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재차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최근에 저희 가게 장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어두운 얼굴로 자신을 방해하는 이들이 생겼다고 말하는 남호열.
벽에 그려진 낙서들은 모두 그들의 소행이었다.
“대체 누가요?”
“아무래도 이 주변 대장장이들의 짓 같습니다.”
평범한 페인트가 아니라 장비에 사용되는 특수 염료로 그려진 낙서들.
이 주변에서 그런 걸 사용하는 사람들은 남호열과 같은 대장장이들밖에 없었다.
민유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같은 대장장이들이 호열 씨를 방해해요? 왜요?”
“그게…….”
남호열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제가 최근 이 주변에서 장사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고…….”
“그리고요?”
“무엇보다 여러분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거부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유지한은 눈을 껌벅거렸다.
“대장장이들이 저희를 소개해 달라고 했어요?”
“네. 잘나가는 파티를 저 혼자만 독점하지 말라며.”
“아니, 우리가 어떤 공방을 갈지는 우리 맘이지.”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따돌림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다고?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유지한은 무척 황당해했다.
하지만 실제로 남호열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유지한은 이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다시금 체감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서로 돕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김시후는 자신이 직접 피해를 본 것처럼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피해를 본 당사자인 남호열도 함께 화를 낼 법하지만.
오늘 말고도 몇 번이나 더 방해를 받았던 그는 이미 크게 체념한 표정이었다.
뒤이어 그는 폭탄선언을 했다.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이제 대장장이를 그만둘까 합니다.”
“예?!”
대장장이를 그만두겠다는 선언.
예전에 방문했을 때도 그가 수입 때문에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말투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것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지낼 바에야 예전처럼 평범한 회사에서 따박따박 월급 받고 일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 와이프도 저한테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아도 솔직히 그쪽이 훨씬 더 편할 거고요.”
“하지만…….”
“때마침 제가 있던 게임 회사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요.”
과거 남호열이 재직했던 게임 회사에서는 그가 회사로 복귀한다면 디자인 팀장 직함을 달았던 예전과 거의 동일한 대우를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 내에 디자인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해당 회사에서 숱한 업무 경력까지 갖추고 있는 남호열이라면 그야말로 아주 적합한 인재에 가까웠다.
“오늘은 장비를 맞추기 위해 오신 건가요?”
“예.”
“원하신다면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주문까지는 받고서 그만두겠습니다.”
자신을 찾아주는 유지한 파티에게 마지막 작품을 만들어 주겠다는 남호열.
유지한은 속으로 큰 결심을 내린 듯한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몇 분 전보다 훨씬 더 후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오늘 자신들이 공방에 방문한 게 그의 선택을 부추겼으리라.
‘허, 어딜 가시려고.’
그때 유지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호열 씨. 회사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고 하셨죠.”
“네.”
“그렇다면 그 월급, 저희가 드리겠습니다.”
“……네?”
유지한의 말에 남호열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시후야, 괜찮지?”
“저야 당연히 좋죠.”
“유리 씨는요?”
“저도 호열 씨라면 괜찮아요.”
모든 파티원들의 동의를 구한 유지한은 다시 남호열을 바라봤다.
“이 공방은 접으시고 꿀잼으로 들어오시죠.”
“그건, 설마…….”
“저희 길드의 전속 대장장이가 되어 주세요.”
개인 대장장이를 벗어나 길드의 전속 대장장이가 되어 달라는 요청.
생각지도 못한 제안인 듯, 남호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계약 조건은 대장장이 업계의 평균보다 더 좋게 쳐 드리겠습니다. 추가로 호열 씨가 이전에 다니셨다는 회사보다는 무조건 더 좋은 대우를 해드릴게요.”
“아니, 왜 고작 뒷골목의 대장장이인 저를…….”
남호열이 처음 유지한 파티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이름 없는 신생 파티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은 최근 영웅계에서 단연코 뜨거운 관심을 받는 영웅들이었다.
유명한 공방을 포함하여 그 어디를 찾아가더라도 대부분 그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반길 터.
그런 그들이 어둡고 칙칙한 뒷골목에서 머무는 대장장이를 영입하겠다니!
“저희가 호열 씨를 믿으니까요.”
“……!”
믿는다.
다른 영웅도 아니고 바람의 정령사이자 지금처럼 떠오르기 전부터 남호열의 검을 애용해 주었던 영웅의 말이었다.
남호열은 그 말에 담겨 있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갑시다.”
유지한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남호열은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손을 바라보며 선 채로 굳었다.
저 손을 잡는 순간.
앞으로 자신에게는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후우우…….”
숨을 길게 내뱉던 그가 유지한에게 말했다.
“배, 배우자 출산 휴가는 있나요?”
“호열 씨가 원하는 만큼 쉬셔도 좋습니다.”
원하는 만큼 휴가를 써도 좋다는 파격적인 대답.
남호열은 이내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으로.
천천히 유지한의 손을 붙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눈시울이 붉어진 듯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남호열.
꽈악!
입가에 미소를 띤 유지한은 거칠거칠한 대장장이의 손을 힘 있게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