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짜잔 (4)
케로즈 본사에 위치한 구내식당.
점심시간이 되자 여러 부서의 직원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미역국이네?”
“제육도 있다.”
“김 하나만 더 주세요!”
각자 음식을 받은 직원들은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중에서도 CS팀, 고객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초록색 미역국을 한 숟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이게 뭔 맛이야.”
음식 맛을 본 직원은 아주 떫은 표정으로 식판을 내려다봤다.
너무나도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밥은 다 떡졌고, 소시지는 밀가루 맛이 나요…….”
“국 좀 드셔 보세요. 완전 싱거워요.”
“싱거운 것보다 국에 건더기가 하나도 없잖아. 무슨 한강인 줄 알았네.”
“오늘 밥 역대급으로 맛없다.”
직원들은 하나씩 불만을 토하며 식당의 주방을 들여다봤다.
하얀색 위생 복장을 착용한 주방 사람들이 보였다.
개중에는 장갑과 마스크를 벗고서 휴대폰으로 떠들썩하게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맛도 없는 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욱여넣던 직원들은 그들을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저 사람들 음식 진짜 못하는 거 같아요.”
“길드에서 식당 업체를 바꾼 게 3년 전쯤이었나?”
“딱 그때부터 밥 맛이 떨어졌어요.”
“대체 왜 바꾼 건지…….”
“차라리 군대 밥이 낫겠네.”
케로즈는 단체급식 업체와 계약을 맺고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약 3년 전까지는 맛이 제법 괜찮았지만, 업체가 변경된 이후 음식의 수준이 확 낮아졌다.
그걸 주제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
테이블에 함께 앉은 직원 중에서도 케로즈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했던 중년의 남성이 말했다.
“지금 길드랑 계약한 급식 업체의 사장님이 길드장님과 사적으로 친한 사람이야.”
“어? 진짜요?”
“확실해. 예전에 밖에서 두 분이 대화하는 거 들었어.”
케로즈의 밥맛이 없어진 이유.
바로 길드장인 박중섭이 구내식당을 개편하며 급식업체를 지인의 회사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었다.
“길드장님은 구내식당에서 안 드시고 매번 나가서 사드시던데.”
“본인도 맛없는 걸 아는 거지.”
“와, 치사하다! 그러고서 뒷돈으로 빼먹는 거 아니에요?”
식당이 개편된 것은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길드장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의심하는 직원들이었다.
탁!
끝내 한 남직원은 밥을 절반 넘게 남긴 채 식사를 종료했다.
편의점의 삼각김밥보다 맛이 없는 밥을 더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는 밥 대신 물을 들이켜며 말했다.
“저는 오늘 들어오는 전화 때문에 피곤해 죽겠어요.”
“나도. 그놈의 유지한이 뭐라고…….”
“휴우…….”
한숨을 토하는 직원들.
새로운 3급 영웅이자 정령사로 밝혀진 영웅 유지한의 이전 소속이 케로즈로 알려진 뒤.
그들은 외부에서 밀려 들어오는 유지한과 관련된 문의로 인해 곤욕을 겪고 있었다.
“점심시간 직전에 걸려온 전화에서도 유지한 씨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묻더라고요.”
“그 양반이 영화로 조금 떴을 때도 비슷한 문의가 들어왔었어.”
“그때랑은 많이 다르지. 오늘은 아예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니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저 같아도 궁금할 것 같긴 해요. 케로즈에서 7년이나 있었으니까.”
“하긴.”
꽤 흥행한 영웅 영화에 출연한 주인공.
거기에 더해 본인은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이고.
같은 파티에 소속된 영웅은 영웅 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마법사와 커다란 친칠라를 데리고 다니는 테이머.
그 유지한 파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케로즈 내부에서도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별 볼 일 없는 영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근데 있잖아. 이 정도의 잠재력을 가졌으면서 그 사람은 왜 케로즈에서 7년이나 가만히 있던 거야?”
“우리가 영웅들 속내를 알 리가 없죠.”
“본인은 나름대로 뜻이 있지 않았을까요?”
유지한이 아직 케로즈에 있던 시절.
직원들은 김현태 파티와 비슷할 정도로 길드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음에도 아무런 명성이나 이름 없이 활동하는 유지한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봤었다.
그에 따라 능력 없는 영웅이 길드에 빌붙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현장에 지원으로 따라나서는 내 친구는 그 사람이 김현태 파티랑 같이 2급 MA에도 들어갔다고 했었어. 그것도 꽤 자주.”
“2급 MA에서 살아남을 정도면 꽤 실력이 있는 거 아닌가?”
“그건 또 모르는 일이죠. 단순히 짐꾼으로 따라다니는 경우도 있으니까.”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져 버린 유지한의 입장.
대화의 주제가 그에게 맞춰지자 그의 과거에 대한 여러 추측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가 왜 케로즈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지냈었는지, 대다수의 직원들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유지한이 케로즈를 나간 이유가 뭘까?”
“현장에서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대요.”
“내가 아는 거랑 다르네. 나는 그 사람이 재계약에서 길드에 너무 큰 돈을 요구했다고 들었어.”
“어? 내가 듣기로는 김현태 님이 내린 지시라고 하던데?”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직원들이 유지한과 관련된 추측을 늘어놓는 가운데…….
케로즈의 길드장인 박중섭은 식사를 하지 않고 아직 사장실에 머무르고 있었다.
탁. 탁. 탁. 탁.
박중섭이 손에 쥔 볼펜의 끝이 책상과 반복적으로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그의 얼굴.
그 앞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직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길드장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탁!
박중섭이 볼펜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파티가 언제쯤 안정될런지…….”
조만간 안정될 거라고 생각했던 김현태 파티.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지금까지도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 탱커인 황준호가 부상을 입은 것이 치명타였다.
탱커인 그가 며칠간 자리를 비운 기간에는 파티의 다른 영웅들에게 외부 활동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김현태 파티원들의 요청 사항을 정리해 왔습니다.”
“읊어 봐.”
“첫째는 아티팩트. 위급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아티팩트가 필요하다는 김강우 님의 요청입니다.”
“흠! 강우가 필요하다고 하면 당연히 사 줘야지.”
박중섭은 김강우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쓸 만한 아티팩트 한두 개쯤 구매하는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오며 항상 똘똘하다고 여겼던 강우의 요청이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강우라면 어떤 아티팩트든 아주 잘 사용해 줄 거야. 예산 넉넉하게 잡고 요청대로 뭐든지 다 준비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현태 님의 요청입니다.”
“현태가?”
“파티에서 영웅 영화를 촬영하고 싶으시다고…….”
김현태의 요청을 전해 들은 박중섭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한번 영화를 찍어 보자는 내부 의견이 나왔을 때는 김현태가 귀찮다며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안 될 거 없지. 이참에 동기부여도 되고 좋겠어.”
“특별 요청 사항으로는 라는 영화보다 무조건 더 스케일이 큰 영화를 원하셨습니다.”
“그건……. 유지한 파티에서 제작한 영화였나?”
“네.”
김현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영화가 유지한 파티에서 촬영한 영화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박중섭은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우리가 제대로 나서기만 하면 그런 걸 뛰어넘는 건 일도 아니지! 외부에서 괜찮은 감독이나 한 명 섭외해봐.”
“알겠습니다.”
“유지한이 그놈은 어디서 운 좋게도 정령을 얻어서는…….”
“…….”
“정령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시끄러워지지는 않았을 텐데.”
박중섭은 쯧쯧 혀를 찼다.
케로즈에서 사실상 영웅이 아니라 편하게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했던 유지한.
그가 지금처럼 주목을 받게 된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추가로 홍보팀에게는 유지한이 언론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예의주시하라고 해. 만약에 케로즈와 관련된 발언이 나오는 그 즉시 반박 기사 준비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직원은 이후에도 영웅들의 의견을 정리한 내용을 박중섭에게 쭉 보고했다.
길드의 핵심 영웅들이 건넨 의견이니만큼 대부분 존중받고 받아들여지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들고 온 서류에서 별도로 모아 놓은 의견들만이 남아 있던 순간.
“…….”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직원은 서류를 덮으며 보고를 마쳤다.
“이상입니다.”
“오늘 지시한 내용들은 각 담당자들에게 전해 줘.”
“네.”
보고를 마친 직원은 사장실을 빠져나왔다.
이후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그는 손에 쥔 서류를 내려다봤다.
그 서류의 끝부분, 마지막에 적혀 있는 건 바로 이미아가 길드에 전하는 의견이었다.
[파티에서 유지한이 빠진 이후 생긴 전력 감소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이번 황준호의 부상은 파티에 서브 탱커가 사라짐으로써 발생한…….]
하나같이 김현태 파티에서 추방된 유지한을 언급하는 내용들.
파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꼬집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내용의 결론 또한 서포터로 활동하던 유지한에게 도달하고 있었다.
‘이미아 님이 이렇게나 장문의 글을 쓰실 줄이야.’
평소 이미아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길드에 개인적인 의견을 전달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설령 할 말이 생기더라도 대부분은 한두 문장으로 끝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상당히 날카롭고도 장문의 의견을 전달해 온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걸 말할 수는 없어.’
직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지한을 깎아내리던 박중섭에게 이런 보고를 올렸다가는.
쓸모없는 의견을 왜 미리 잘라내지 않았냐며 한바탕 욕을 얻어먹을 것이었다.
특히 중간에 포함된 문장들은 문제가 많았다.
[김강우의 신체 능력은 출중한듯 싶지만, 현재 김현태 파티에서 그의 역할이 무엇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여러 번 지적했으나 개선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파티장인 김현태가 그를 감싸기만 하는 것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
김강우를 아끼는 박중섭이 이런 내용을 전해 듣는다면 분명 화를 내겠지.
그리고 그 화를 감당해야 하는 건 이미아가 아니라 보고를 올리는 직원이었다.
차라리 이미아가 직접 길드장에게 의견을 전달한다면 또 모를까.
“하…….”
자신의 자리가 있는 사무실에 도착한 그가 곧장 서류 파쇄기 앞으로 다가갔다.
갈갈갈갈—
들고 있던 서류를 파쇄기에 넣자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하며 종이가 잘게 갈렸다.
이미아가 길드로 전해 온 의견들은 그렇게 바스라져 갔다.
직원은 남은 종이를 파쇄기로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나중에 빠뜨린 내용을 지적하거든……. 실수로 빼먹었다고 하자.’
한낱 직원으로서는 그저 윗사람이 듣고 싶은 말만 해 주면서 조용히 지내면 된다.
괜히 조직을 위한답시고 듣기 싫은 말을 했다가는 좋지 못한 꼴을 볼 수 있었으니까.
*****
3급으로 올라온 유지한 파티.
이전처럼 4급 MA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려워진 그들은 주변에서 몰려오는 관심을 뒤로하고 사무실에 한데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첫 번째로 나온 주제는 장비 교체였다.
유지한은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선 저를 포함한 모두의 장비를 바꾸겠습니다.”
“네!”
“내일 남호열 씨에게 가기 전에 각자 원하는 옵션을 고민해 주세요.”
전용 지팡이가 있는 김시후를 제외하고 유지한과 민유리는 무기에만 최소 2억 이상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장비에 이전보다 돈을 더 투자하는 만큼 선택의 폭이 늘어나서 그들이 원하는 옵션도 추가하여 주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청영사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이 더해지는 덕분에 부담도 적었다.
한편, 자신의 첫 장비를 구매한 이후 주로 손질만 해왔던 민유리는 고민이 되는 얼굴이었다.
“음……. 옵션을 정하라니까 딱 떠오르는 게 없어요.”
“그러면 제가 추천해드릴게요.”
많은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지한.
그는 파티의 원거리 딜러인 민유리에게 무슨 장비가 필요한지 꿰뚫고 있었다.
“칠라의 갑옷에는 안쪽이랑 겉에 마력 코팅을 몇 겹 더하는 거로 하자.”
“찍!”
모두가 장비를 바꿀 생각에 들떠있는 상황.
김시후는 휴대폰을 조작하며 새로운 장비에 부여할 옵션을 검색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어?”
“왜 그래?”
“지금 한국 언론들이 죄다 IUPC를 공격하고 있어요.”
“……?!”
놀란 유지한과 민유리가 황급히 김시후의 옆으로 다가갔다.
[세움중학교와 한강대학교를 피로 물들인 IUPC……]
[주사위, IUPC서 인신매매의 정황을 포착]
[IUPC가 몬스터를 돌연변이로 변이시키는 금단의 기술을 개발……]
[영웅부 “IUPC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해야 한다”]
휴대폰 화면 속 최신 뉴스에 IUPC를 저격하는 기사들이 마치 이때만을 기다린 듯 쏟아져 내렸다.
평소 그들이 단체로 봉사 활동을 나가는 등 호의적인 기사가 올라오던 것과는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그것들을 눈으로 읽어 내리던 유지한은 속이 후련한 듯 말했다.
“이게 옳게 된 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