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짜잔 (2)
유지한이 이완과 인터뷰 약속을 잡은 장소는 청영사 근처에 있는 촬영 스튜디오였다.
돈을 내면 일정 시간 동안 개인에게 대관해 주는 공간.
이전에 인터뷰를 진행했던 카페가 어떻냐는 이완의 제안에는 거부했다.
다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들어가시죠.”
유지한과 김시후는 스튜디오 앞에서 이완과 만났다.
예약한 공간으로 입장하자, 조금 뒤에는 민유리와 칠라도 자리에 도착했다.
“영웅일보의 이완입니다.”
“민유리라고 해요.”
“이쪽 분도 반갑습니다.”
“찍?”
이완은 민유리와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칠라에게도 마치 악수를 권하듯 정중하게 손을 뻗었다.
“찍찍…….”
이완이 내민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칠라.
녀석은 곧 민유리와 똑같이 손을 뻗어서 이완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앞서 주인이 했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칠라와의 악수에 성공한 이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귀여워라! 지한 씨가 말씀하셨던 대로 상당히 똑똑하네요.”
“흠흠! 칠라가 똑똑하긴 하죠.”
칠라를 무척 대견스러워하는 민유리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영약을 섭취한 덕분인지, 아니면 괴냥이만 찾아다니던 예전과 달리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을 하는 덕분인지.
요즘 따라 칠라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횟수는 부쩍 늘어나기도 했다.
“여러분의 영화 정말 재밌게 시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키아! 그 괴구리가 하늘을 덮는 장면은 다시 봐도 정말……!”
파티의 모든 인원이 자리 모인 뒤 그들이 촬영한 영화를 언급하는 이완이었다.
그는 아직 유지한 파티가 3급으로 승급했다는 내용을 알지 못했다.
정식으로 발표되는 건 내일이기 때문이었다.
“기자님.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하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어떤 거요?”
“오늘 인터뷰의 주제를 영웅 영화가 아니라 파티 승급으로 가져갔으면 합니다.”
“……승급이요?”
이완은 지금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들과 4급 승급 인터뷰를 진행한 게 벌써 몇 달 전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유지한이 파티원들을 힐끔 바라보고는 말했다.
“저희 이번에 3급으로 승급했습니다.”
“뭐, 뭐라고요?!”
“보시죠.”
유지한은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꺼냈다.
[파티 등급 확인서]
[꿀잼 - 유지한 파티]
영웅부에서 공식적으로 등급 확인을 위해 제공하는 서류.
오늘 출력한 그 서류에는 유지한 파티가 4급이 아닌 3급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허억!”
서류를 받아들고 읽던 이완은 입을 떡하고 벌렸다.
위조 방지 마크가 새겨진 그것은 틀림없이 등급 확인서가 맞았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되더군요.”
“…….”
“공식적으로는 내일 발표될 예정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유지한이었지만.
소식을 접한 이완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도 내일쯤 공개되었으면 해요.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자,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3분이면 됩니다.”
이완은 재빨리 품속에서 수첩을 꺼냈다.
파라라락!
수첩의 종이가 빠르게 뒤로 넘어가고.
유지한 파티에게 던질 질문을 정리해 놓은 페이지에 도착했다.
주로 그들이 촬영한 영화와 관련된 질문들.
‘버린다!’
이완은 준비해 놓은 질문 리스트를 버리고 볼펜으로 새로운 질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자로서 승급 인터뷰는 이미 여러 차례 진행해 온 경험이 있었기에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거의 특종이군.’
영화로 유명세를 얻은 것에 더해 최단 기간 승급이라니!
이런 파티와의 단독 인터뷰라면 특종 기사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터였다.
“준비됐습니다.”
딸깍!
휴대용 녹음기의 전원이 켜지고.
순식간에 주제가 바뀌어 버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승급 정말 축하드립니다.”
“예.”
영화 흥행에 이어서 승급 축하까지.
축하 인사를 2번이나 건네게 된 이완이었다.
“짧은 기간 내 승급에 성공한 비결이 뭡니까?”
“운이 좋았죠. ……아니, 나빴다고 봐야 하나.”
파티장인 유지한과 이완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질문과 답변들.
오고가는 여러 대화 속에서 칠라는 홀로 느긋하게 배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
유지한은 이완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이번 인터뷰를 반드시 특종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특종감이에요!”
“아니요! 이걸로는 부족해요.”
“네?”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완이었다.
유지한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뾰롱!
허공에 실프를 소환했다.
“……?”
멍하니 초록빛 구체를 올려다보던 이완이 말했다.
“이건 뭡니까?”
“이름은 실프. 바람의 정령입니다.”
“……정령?”
“저는 정령사입니다.”
툭.
소스라치게 놀란 이완이 왼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끝내 오늘의 목적을 달성한 유지한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유지한이 인터뷰를 진행한 다음 날.
오전 11시가 되어 영웅부 홈페이지에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4급 파티를 대상으로 실시한 3급 승급 심사 발표였다.
[1. 레드홀 - 제임스 강 파티]
[2. 주사위 - 정영욱 파티]
[3. 해피 타임 - 강수영 파티]
…….
…….
[6. 꿀잼 - 유지한 파티]
…….
…….
해당 공지는 올라오자마자 빠르게 조회수가 상승했다.
주로 기자들이나 인터넷에서 각종 커뮤니티로 정보를 퍼다 나르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익명1 : ㅋㅋㅋㅋㅋ 얘들아! 승급 공지 봐라!]
[익명4 : 유지한 파티? 이거 영화 출연한 영웅들이잖아. 얘네도 3급으로 올라감?]
[익명13 : 거기 4급으로 오른 게 엊그제 아님?]
[익명32 : 와 씨, 미쳤다! 진짜 신예 하나 나왔네.]
……
…….
승급에 성공한 파티 목록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고.
영웅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모두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큰 화제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유지한 파티였다.
이미 영웅 영화를 통해 이름이 언급된 적 있는 그들은 커뮤니티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익명55 : 저거 길드 이름 누가 지었냐? 존나 촌스러워.]
[익명46 : 왜? 기억하기 쉬워서 좋구만.]
[익명27 : 오늘부터 이곳은 칠라가 지배한다.JPG]
[익명23 : 칠라가 뭐임?]
약 2시간가량.
특정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유지한 파티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자꾸만 이름이 보이니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관심은 원영국이 생성한 팬카페로도 이어졌다.
[회원수 : 721]
며칠 전까지 100명 안팎이었던 팬카페의 회원 수는 순식간에 700명이 넘어갔다.
승급 발표 후 실시간으로 회원이 늘어나는 상황.
[꿀잼 오피셜 팬카페]
[유지한 파티 공식 인증 팬카페]
…….
…….
심지어 이때다 싶어 유사 팬카페들이 하나씩 등장하기도 했다.
“건방진 것들.”
팬카페 회장을 맡은 원영국은 콧방귀를 뀌며 카페의 대문에 커다란 칠라의 사진을 걸어 놓은 뒤.
사진 게시판에 자신과 유지한 파티가 계양산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을 박아 두었다.
새로운 회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게시물 작성 규칙 따위를 올려놓기도 했다.
한편, 비슷한 시각.
영웅일보의 기자 이완은 승급 발표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는.
미리 작성해 둔 유지한 파티의 단독 인터뷰를 세상에 공개했다.
[꿀잼 - 유지한 파티 단독 인터뷰]
[“세상을 놀라게 할 영웅들이 등장했다.”]
인터뷰의 업로드와 동시에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해당 기사의 링크가 빠르게 펴져 나갔다.
영웅부의 공지사항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던 도중에 타이밍 좋게 인터뷰가 나왔으니,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이 부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그 인터뷰에 담긴 충격적인 내용은.
기존의 불길과는 다른 새로운 불길을 만들어 냈다.
[바람의 정령 실프, 그의 계약자인 영웅 유지한]
새로운 정령사의 등장.
그리고 그 정령사의 정체는 오늘 3급으로 승급한 파티의 파티장!
바람의 정령사가 등장했다는 사건은 승급 인터뷰와는 별개의 화제로 다뤄지며.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익명33 : 새로운 정령사가 탄생했다!!]
[익명33 : 새로운 정령사가 탄생했다!!]
[익명33 : 새로운 정령사가 탄생했다!!]
[익명33 : 새로운 정령사가 탄생했다!!]
[익명18 : 아놔. 도배 자제좀.]
[익명33 : 새로운 정령사가 탄생했다!!]
[익명35 : 새로운 정령사가 탄탄했다!!!!!]
[익명103 : 새로운 령정사가 생생했나????]
…….
…….
그 여파로 대한민국의 여러 인터넷 영웅 커뮤니티가…….
폭발했다.
*****
“뭐야. 지한, 3급으로 올라갔어?”
“그렇게 됐습니다.”
주사위의 훈련소.
오전부터 유지한의 교육을 진행하던 윤도하는 그의 승급 소식을 접했다.
“이제 해외 나갈 때 편하겠네.”
“예?”
“어딜 가든 여권이 없어도 신분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그가 3급으로 승급한 것에 대한 윤도하의 감상은 해외여행이 조금 편해지겠다는 정도에서 그쳤다.
과연 1급 영웅다운 감상이었다.
“정령사라는 것도 알렸구나.”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이젠 실프를 감출 필요도 없겠어. 나중에 정령사 모임에도 갈 수 있겠다.”
“그런 것도 있었어요?”
“해외의 정령사들과 함께 운영 중인 게 있어.”
정령사라는 것을 알린 이상.
어딜 가서든 당당하게 실프를 내보일 수 있게 된 유지한이었다.
“오늘 교육은 여기까지만 하자.”
교육을 끝낸 유지한은 윤도하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내가 너한테 참 고마워.”
“제가 뭘 했었나요?”
“그런 게 있는데……. 나중에 따로 말해 줄게.”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유지한은 주사위에서 준비해 준 차량을 타고 청영사로 복귀했다.
그런데 그가 청영사의 입구를 들어섰을 때였다.
“유지한이다!”
“……!”
“……!”
건물 1층에 있던 모르는 남성이 유지한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입구로 들어오는 유지한을 향했다.
1층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
로비에서 개인적인 통화를 하던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대화를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서커스장에 들어온 코끼리가 된 기분이구만.’
도서관처럼 조용해져 버린 청영사의 1층.
영화로 이목을 끌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확실한 건 그때보다 지금의 주목도가 훨씬 더 높다는 것.
유지한은 부담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피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사무실이 위치한 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근처에 있는 김시후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청영사 내에서 근무하는 일반 직원들이었다.
그때 김시후가 유지한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지한이 형!”
“헛! 정령사다.”
“와!”
김시후에게 사인을 받던 직원들은 유지한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이내 그들은 유지한의 앞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사인, 사인 좀 해 주세요!”
“저도요!”
“아, 예예.”
사인 요청에 한글로 정직하게 이름을 적어 주는 유지한이었다.
“실프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안 돼요?”
“에이! 그건 너무 실례잖아.”
“눈치 좀 챙겨.”
유명인을 만난 것처럼 서로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그들은 각자 사인을 들고서 어디론가 떠나갔다.
마침내 유지한과 김시후, 두 사람만 남은 복도에서 유지한이 말했다.
“대놓고 사인 요청을 받은 건 처음이네.”
“아까 저쪽에서 유리 누나랑 칠라도 사진 찍어 주고 있었어요.”
“그래?”
“네. 그리고 형! 우리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해졌어요.”
탁!
김시후는 주먹과 손바닥을 소리 나게 마주치며 선언했다.
“앞으로는 그 누구도 우릴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