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짜잔
“와우.”
김시후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짧은 감탄사를 냈다.
현재의 그의 휴대폰에 떠오른 건 길드 계좌가 존재하는 은행의 어플리케이션.
그리고 계좌 조회 화면에서 보이는 금액은…….
[1,601,021,080원]
총 16억.
기존에 벌어 둔 금액과 근래 들어온 모든 수입의 합산이었다.
4급 몬스터 괴구리와 3급 몬스터 황소괴구리의 판매금.
괴구리를 사냥한 영상을 기반으로 하성태가 제작한 영화 의 조회수에 따라 지급된 출연료.
청영사 홍보 영상에 그 영화의 장면 일부를 넣기로 하여 지급받은 돈.
거기에 더해 승급 시험에서 발생했던 사고로 영웅부에서 지급해온 사고 보상금까지…….
그 외에도 여러 잡다한 수입이 더해져 10억 이상의 금액이 들어간 계좌가 탄생했다.
‘영화 출연료가 상당히 쌔구나.’
들어온 수입 중 가장 큰 금액은 바로 영화 출연료였다.
영화 결제 금액에서 각종 수수료를 제외하고 약 70% 가량이 유지한 파티에게 출연료로 지급되게 되어 있는데.
거기서 들어온 금액이 생각보다 더 컸던 것이다.
“형. 저 태어나서 한번에 10억 이상 들어간 계좌는 처음 봐요.”
“아버지가 3급 영웅 아니셨어?”
“아빠 계좌는 제가 볼일이 없죠.”
3급 영웅 정도만 되더라도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10억 이상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 김건오의 돈이지, 아들인 김시후의 돈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장비를 업그레이드해도 되겠어요.”
“음.”
장비를 교체하자는 의견에는 이제 유지한도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었다.
3급 이상의 MA에서 마력을 다루는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으니까.
“호열 씨한테 제대로 보답할 날이 오긴 왔네.”
“그러니까요! 돈으로 혼쭐 좀 내드려야지.”
남호열.
돈도, 인지도도, 아무것도 없던 영웅들에게 선뜻 장비를 제공했던 대장장이.
지금까지는 그저 인터뷰에서 언급하거나 적당한 장비를 주문 제작한 정도였지만.
10억 정도의 금액이라면 썩 괜찮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
“형에게 드릴 돈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번처럼 벌어들인 돈을 무식하게 나눌 게 아니라 앞으로는 지분에 비례한 배당으로 드릴게요.”
“그게 좋겠네.”
“후후……. 그나저나 내일 아빠가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요.”
두 사람은 이후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3급 승급에 성공한 파티의 발표를 하루 앞둔 지금.
길드의 수입을 정리하고 기타 잡무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아! 오늘 중요한 일이 하나 있어요.”
“중요한 일?”
“형한테 정령 마법 가르쳐드릴게요. 쓸 만한 건 전부 다.”
“……?!”
불과 하루 전.
지강석과의 대련을 앞두고 [세계수의 축복]이라는 새로운 마법을 배운 유지한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에 마법을, 그것도 여러 개를 가르쳐 주겠다니.
“전에 한번 말했지만 나는 버프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저도 그 버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그래도 다른 걸 알아둬서 나쁠 건 없죠.”
“예전에 네가 ‘마법도 음식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어제 형을 보고 마음을 크게 바꿨어요.”
기존에 정형화된 마법을 유지한이 수월하게 배운 것까지는 김시후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새롭게 연구 중인 버프 마법까지 단 몇 분만에 익혀 버린 이후.
도저히 그에게 마법사의 기본을 강조할 수 없었던 김시후였다.
*****
개인 훈련실에 입장한 김시후가 유지한에게 첫 번째로 가르친 마법은 윈드 애로우였다.
사출계열의 마법의 대표적인 마법.
민유리가 합류한 이후로는 사용량이 크게 줄었지만.
김시후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고, 또 자신 있는 마법이기도 했다.
[윈드 애로우]
유지한은 자신이 생성한 윈드 애로우를 바라봤다.
김시후의 것과 비교하면 표면이 매우 거칠고 형태까지 조금씩 뒤틀려 있는 마법이었다.
화살보다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더 닮아 있었다.
“모양은 상관없어요. 어차피 오늘 제가 알려 준 것 중에 형이 원하시는 것만 골라서 익숙해지면 되니까.”
사사삭!
김시후는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의 손바닥을 비볐다.
기왕 마음을 바꿔 먹은 김에 오늘 한번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못해도 5개는 배우지 않을까?’
재능이 충만한 한 명의 정령사가 한번에 마법을 몇 개까지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윈드 애로우]
[윈드 커터]
[윈드 웨이브]
[에어 러쉬]
[루어 오브 브리즈]
…….
두 사람뿐인 개인 훈련실.
그곳에서 김시후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바람 계열의 마법들과 세계적으로도 널리 퍼져 있는 공용 마법들의 향연이 이어졌다.
유지한은 김시후의 설명을 들으며 그 마법들을 따라하기 바빴다.
“이거 은근히 힘들다.”
처음에 생성했던 윈드 애로우는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었다.
마력의 운용을 돕는 지팡이 따위의 장비 없이 연속으로 마법을 펼치는 탓인지, 마법의 형태는 점점 뒤틀려 갔다.
당장 그가 사용하는 마법들은 하나같이 실전에서 써먹기 힘들 정도로 부족함이 많았다.
“지금부터 형을 마법사라고 불러도 되겠는데요?”
“농담은.”
“아니, 진심인데…….”
김시후의 기준에서 지금은 유지한이 정령의 마력으로 마법의 형태를 이루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결과는 단 1시간 만에 7개의 마법을 익힌 유지한이었다.
그는 점점 평범한 영웅의 기준에서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찌됐건 당장은 훈련을 위해서 시행착오를 겪는 거고, 앞으로는 실프를 믿고 의지하는 것도 고민해 보세요.”
“예를 들면?”
“마법의 연산을 오롯이 실프에게 넘기는 거예요. 형은 그 과정을 통해 나오는 결과물만 사용하시면 되고요.”
평소 전사 계열의 영웅으로서 실프가 보유한 마력을 빌려서 사용하기만 하는 유지한이었다.
하지만 본래 정령사의 힘은 정령 그 자체.
이전에 실프가 스스로의 의지로 유지한을 구해 주었던 것처럼.
정령은 지금보다 더 중요한 일을 담당할 수 있었다.
‘그 시기가 너무 빠르긴 해도……. 괜찮겠지.’
유지한이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김시후에게는 그 믿음이 있었다.
“독일의 1급 영웅인 주리안 와이스 아시죠?”
“그 불마법을 사용한다는 마검사?”
“아마 언젠가는 형도 그 영웅처럼 마검사로 불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평범한 전사임에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에 마검사라는 타이틀로 유명한 1급 영웅.
시간만 주어진다면 유지한이 그에게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김시후였다.
그리고 1시간이 더 흘러.
유지한이 열댓개의 마법을 익혔을 즈음, 김시후가 말했다.
“여기까지! 형이 쓸 만한 공용 마법들은 다 알려드렸어요.”
“수고 많았어, 실프.”
우웅!
놀랍게도 실프는 1시간 동안 탈진하지 않고 버텼다.
마법을 몇 번 사용했다는 이유로 탈진하던 과거와는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조금만 더 마력을 소모하면 상태가 나빠질 것도 같았지만 말이다.
슥슥.
유지한은 고생해준 실프를 칭찬하듯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기분이 좋은듯 몸을 부르르 떠는 실프였다.
‘역시 실프에게도 감정이란 게 있어.’
비록 말을 하지 못할 뿐이지.
정령인 실프는 인간과도 비슷한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알려 준 마법 중에 괜찮은 게 몇 개 보이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마법만 집중적으로 연습하시면 돼요.”
언제나 그렇듯 마법 스킬을 익히는 것에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필요 없는 것은 무시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취한다.
어설프게나마 마법을 익혀 둔 유지한에게는 그 과정이 한결 수월할 것이었다.
“딱 하나만 더 배워 보실래요?”
“뭔데?”
“이건 제 고유마법이에요.”
교과서에 적힐 만큼 정형화된 마법이 아닌, 김시후가 만들어 낸 고유마법.
그는 나무 지팡이 끝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에어 슈트]
솨아—!
김시후의 앞머리가 세차게 흔들리고.
그의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의 막이 등장했다.
신속의 마법 헤이스트와는 비슷해보이면서도 결이 다른 마법이었다.
“잘 보세요.”
김시후는 공중으로 최대한 높게 점프했다.
떠오른 그의 몸은 아주 느릿한 속도로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유지한에게 보란 듯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레비테이션]을 응용한 마법이에요. 체공시간을 늘리는 것과 더불어, 바람을 이용하여 공중에서 몸을 조금 더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어요.”
“이거 멋진데!”
“아직 개발 단계이지만, 충분히 쓸만하죠?”
레비테이션을 가공해서 새로운 고유마법을 만들어 낸 김시후였다.
유지한은 감탄한 표정으로 회전목마처럼 빙빙 돌아가는 그를 바라봤다.
언젠가 자신이 중력 마법에 미숙하다고 소리 질렀던 마법사는 이제 없었다.
우우웅!
그때 유지한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왔군.’
유지한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지도 않고 누가 걸어온 연락인지 알아챘다.
오늘 아침에 번호를 바꿨기 때문에 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었다.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입니다. 기자님.”
—유지한 씨!
예상대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영웅일보의 기자, 이완.
유지한 파티가 4급으로 올라갔을 때 승급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던 사람이었다.
—저한테 먼저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의 흥행 이후 정말 많은 기자들이 그들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유지한이 선택한 건 과거의 인연이 닿아있는 이완이었다.
“기왕이면 한 번 만나 뵀던 기자분이 편해서요.”
—크흐흐! 그때 인터뷰를 진행해두길 정말 잘했네요.
“오늘 오후에 만날 수 있으시죠?”
—얼마든지요! 설령 어두운 새벽이라도 총알처럼 달려가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든든합니다.”
약 3분간 이완과 잡담을 나누던 유지한은 오늘 만날 장소를 정한 뒤 통화를 끊었다.
그의 옆에서 대기하던 김시후가 말했다.
“진짜로 실프를 공개하실 거예요?”
유지한이 이완에게 먼저 연락한 이유.
3급으로의 승급 기념 인터뷰와 더불어.
마침내 정령을 공개하기 위해서였다.
“슬슬 때가 됐어. 더는 감출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흠……. 그럼 저도 공개할까요?”
김시후는 손으로 머리에 착용한 검은색 비니를 만지작거렸다.
정령의 공개와 함께 종족의 공개 여부를 고심하는 것이었다.
길드장이 이종족이라는 건 정령만큼이나 파급력이 큰 사안이 될 터였다.
“그건 온전히 네 의지로 결정하는 게 좋겠다.”
“네.”
김시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유유히 날아다니는 실프를 올려다봤다.
그와 함께 실프를 바라보던 유지한은 생각했다.
‘아무리 빨라도 1년이나 2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든든한 배경도 없는 작은 길드에 소속된 영웅으로서 번거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걸 피하고자.
실프를 공개하기까지의 기간을 넉넉하게 잡아뒀던 유지한이었다.
하지만 영웅 영화를 통해 예상치도 못했던 인지도를 얻고.
매우 이른 시기에 3급으로 승급하게 된 이상.
길드와 파티의 이름이 널리 퍼지는 건 당연한 수순.
기왕 이렇게 된 김에 기세를 몰아서 가장 화끈하게 공개하자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실프가 아직 지구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엄마의 지인들께서 좋아하시겠어요.”
“지인들? 그게 누구야?”
“저희 엄마와 함께 플로른을 관리하던 분들은 지금도 현역에 계시거든요.”
에르나 하스와 함께 아티팩트의 소재로 사용되는 플로른이라는 이름의 나무를 관리하던 엘프들.
그들은 정령 실프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같은 세계에서 넘어오셨다는 분들도 있어요. 저랑 가끔 연락도 하고.”
“흐음……. 진작에 한번 만나 뵐 걸 그랬나.”
“원하시면 나중에 자리 마련해볼게요.”
실프는 본래 인간이 아닌 엘프와 계약한 정령.
같은 엘프라면 계약자인 유지한보다 실프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정령사로서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놓치고 싶지 않은 유지한이었다.
“그분들과는 언제 한번 만나 보기로 하고. 여긴 슬슬 정리하자.”
마법으로 혼잡해진 훈련실을 정리하는 두 사람.
그렇게 훈련을 마친 뒤 약 4시간 정도가 더 흐르고…….
어느덧 기자 이완과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20분 쯤 남았나.’
실프가 공개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