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비밀병기 (2)
니로치는 다급하게 물었다.
“유지한이라고 했지? 네가 유크……. 아니, 고유 스킬을 얻은 게 언제야?”
“10대 중반이었던 걸로 기억해.”
고유 스킬.
세상에 최초의 영웅이 등장한 이후로 태어날 적부터 마력과 함께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거나 주로 20살이 되기 이전에 깨우치는 능력.
유지한은 그 중 후자에 해당했다.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기는 했지만, 샘플링이라는 이름의 고유능력을 깨우친 건 10대 시절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어?”
“…….”
유지한의 물음에 니로치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고유 스킬을 감정한 뒤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유지한을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샘플링.”
“……!”
타인의 입에서 샘플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유지한은 숨을 집어삼켰다.
고유 스킬을 감정하기 전, 그는 스킬의 효과를 알려 주되 일부러 이름은 알려 주지 않았다.
정말로 감정이 가능하다면 알려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테니까.
‘이건 진짜군.’
유지한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고유 스킬명을 언급하는 니로치.
그녀가 가지고 있다는 능력은 거짓이 아닌 진짜였다.
“너는 이게 확률을 알아보는 스킬이라고 했지?”
“맞아.”
“평소에는 주로 어떤 식으로 사용해?”
“냉장고에서 상한 음식을 골라내기도 하고……. 보통은 전투에서 내가 다음에 취할 행동의 확률을 검토할 때 사용하지.”
“조금 더 자세하게.”
“<내가 허리를 왼쪽으로 비틀면 상대의 공격을 피할 확률>, 이런 식으로.”
“……음?”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카지미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전투에서 매번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그렇지.”
“경우의 수가 수없이 많을 텐데, 어떻게 그걸 일일이 다 검토하는 거지?”
“행동하기 전에 미리 선택지를 좁혀 둔 뒤 가장 높은 확률을 선택해. 생각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머리 회전이 얼마나 빠르면 능력을 저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카지미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아주 심각한 표정이 된 니로치가 말했다.
“하루에 스킬을 사용하는 건 몇 회 정도야?”
“못해도 1천회 정도.”
유지한은 무의식적으로 샘플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상생활에서 그 횟수를 따지면 천 번에 달할 터였다.
“안 돼.”
“어?”
“이 스킬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면 안 돼! 나 진짜 진지해.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위험해. 내 기준에서 넌 지금 당장 뇌가 터져 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니로치는 유지한이 샘플링을 사용하는 방식이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다.
말투와 태도가 아까 전 카지미르와 장난치던 때와는 달리 너무나도 진지한 덕분에.
유지한은 그녀의 추가적인 설명을 기다렸다.
“단순히 확률을 알아보는 능력? 이건 겨우 그딴 게 아니야. 네 힘은 진리와 맞닿아 있다고!”
“진리?”
“미쳤다, 미쳤어! 대체 왜 ‘이런 게’ 존재하는 거지? 빌어먹을 신 같으니!”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한 니로치였다.
유지한은 그녀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조금 진정하는 게 좋겠는데…….”
“신 개새끼! 씨발 새끼!”
니로치는 어린 아이의 외모로 시원하게 욕을 뱉어 댔다.
이내 그녀가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크으……! 샘플링이라는 단어는 지구로 넘어온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네가 설명한 스킬의 효과와 이름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
스킬 이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유지한은 곧바로 수긍했다.
공감되는 의견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고유 스킬의 이름은 고유 스킬의 효과 그 자체를 대변해. 그리고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샘플링(Sampling)이라는 건 본래 특정한 자료에서 값을 추출하는 걸 뜻하는 단어잖아.”
“맞아.”
“그 단어의 뜻을 중심으로 생각해 봐. 네가 스킬을 통해 얻어 내는 ‘값’을 확률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값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자료’라는 게 필요하겠지. 그런데 그게 뭘까?”
니로치의 질문에 유지한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그런 그를 위해 니로치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진실.”
그 대답에 카지미르가 눈을 꿈틀거렸다.
그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능력이군.”
“엄밀히 말하면 내가 감정으로 얻어 낸 정보를 기반으로 내리는 추측이지만, 거의 확실해.”
“그렇다면 스킬을 사용한 결과가 확률로만 나오는 이유는 뭐지?”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봐야지.”
“다행이라…….”
“후, 그래. 좋게 생각하자. 차라리 이런 힘을 얘 같은 순딩이가 가지고 있는 게 다행이야. 능력 있는 나쁜 놈들에게 주어졌으면 지구라는 세계가 이미 혼돈에 빠졌을지도 모르니까.”
문제의 장본인인 유지한을 내버려 두고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유지한은 잠자코 그들을 지켜보다가.
허공에 실프를 소환했다.
뾰롱!
갑자기 등장한 초록색 구체에 니로치와 카지미르의 시선이 쏠렸다.
“이건 정령이잖아.”
“유지한! 너는 설마 정령사인가?”
“맞아.”
“고유 스킬에 정령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넌 역시 평범한 영웅은 아니군. 그런데 이걸 왜 여기서 공개하는 거냐?”
“어쩌면 정령이 나와 계약한 이유도 고유 스킬과 관련이 있을까봐.”
기왕 고유 스킬의 존재를 내보인 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다면 이곳에서 전부 알아내고 갈 생각인 유지한이었다.
니로치는 머리 위로 둥둥 떠오른 실프를 올려다봤다.
“네 말이 맞아. 정령 같은 고차원의 존재들은 너의 힘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
생명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력 그 자체로 이루어진 정령들.
그들이라면 유지한의 고유 스킬을 알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고차원의 존재들이라면, 그런 게 정령 말고도 더 있는 건가?”
“있겠지! 너 같이 터무니없는 게 존재할 정도로 세상은 넓으니까.”
니로치의 입장에서 ‘터무니없는 것’이 되어버린 유지한이었다.
“스킬을 사용했을 때 확률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
“그것도 추측이 가는 건 있네.”
“어떤?”
“네가 가정한 조건이란 게 성립할 확률이 0%나 100%인 경우.”
“……!”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건 그 2가지 경우에 해당한다는 게 내 추측이야.”
유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은 과거에 언젠가 유지한도 의심했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묻어 둔 것이었는데.
“듣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앞으로는 사용하지 마! 완전히 봉인하도록 해.”
“아무리 그래도 아쉬운데.”
“아쉬워도 내 말을 따라. 그게 네 고유 스킬을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이니까.”
“뭐?”
“너, 샘플링을 얻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루라도 그걸 사용하지 않았던 적이 있어?”
“아마 없을걸.”
냉장고에서 음식을 골라낼 때도.
현장에서 적과 치열하게 싸울 때도.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항상 샘플링을 달고 살았던 유지한이었다.
단 하루도 스킬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았던 날은 없었다.
“지구의 인간들이 스킬이라고 정의한 능력에는 2가지 종류가 있잖아.”
액티브 스킬(Active Skill)과 패시브 스킬(Passive Skill).
직접 사용하는 것과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
몬스터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진 세상에 마력을 지닌 영웅이 등장한 순간.
게임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그들을 위해 게임의 용어를 기반으로 이름이 붙여진 것들이었다.
“감정한 결과 샘플링은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고유 스킬이야.”
“이게 패시브 스킬이었다고?”
“정확히는 액티브와 패시브, 그 2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어. 자존심이 상하게도 정확히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어찌됐건 직접 사용하는 쪽은 너무 위험해.”
니로치는 끝까지 샘플링을 이전처럼 사용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에 유지한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에 지장이 올 수도 있다니, 찝찝해서라도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확률에 너무 얽매였었지.’
유지한이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면서까지 케로즈에서 수년을 버텼던 이유는.
파티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샘플링이 제공했던 확률 때문이었다.
고작 높아 보이는 숫자에 얽매여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반대로 그 덕분에 꿀잼에 들어온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평소에 생각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아마 고유 스킬의 영향이겠지. 하지만 효과가 겨우 그것뿐만은 아닐 거야. 일단 능력을 직접 사용하는 건 그만두고 추이를 지켜보자구.”
뒤이어 니로치는 유지한에게 주기적으로 만남을 갖자는 요청을 건넸다.
워낙 이질적인 능력이니 향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카지미르 오빠! 오늘 들은 고유 스킬의 정보는 절대로 외부에 퍼지지 않도록 해. 누가 알게 되면 아주 귀찮아질 테니까.”
“알겠다.”
“어휴……. 오랫동안 숨겨 왔다고는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감정할 때 힘을 많이 써서 수지 타산이 너무 안 맞아!”
“밥을 사준다고 약속했지 않나.”
“겨우 한 달 사주는 걸로는 부족해. 못해도 반년은 얻어먹어야겠어.”
“반년씩이나? 안타깝게도 내 월급으로는 네 위장을 감당할 수 없다.”
“나한테 밥사주는 게 아까워?! 사달라면 사줘!”
퍽! 퍽!
니로치는 카지미르의 다리를 붙잡고 주먹으로 그를 때렸다.
표정하나 안 변하고 그녀에게 얻어맞던 카지미르는 유지한을 보며 말했다.
“샘플링을 봉인하기 전에 하나 확률을 알아보고 싶은 게 있는데, 가능한가?”
“어떤 걸?”
“내가 언젠가 결혼할 확률을 알고 싶은데.”
“……?!”
뜬금없이 자신이 결혼할 확률을 듣고 싶다는 카지미르였다.
그에 니로치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오빠! 내가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마지막으로 딱 1번 정도는 괜찮겠지.”
“이게 진짜……!”
퍽! 퍽! 퍽!
니로치가 카지미르를 더 세게 때려댔다.
그 웃긴 상황을 끝내고자 유지한은 샘플링을 사용했다.
<—카지미르가 언젠가 결혼할 확률>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좋아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결혼할 확률은 나오지 않았다.
“확률이 안 나오네.”
“흠. 그럼 100%겠군.”
“어째서?”
“나는 지구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말이지.”
확률이 나오지 않은 것에 되레 만족하는 카지미르였다.
*****
한국과 중국을 위주로 음지에서 활동하는 조직 독나비.
그중에서도 한국에 위치한 그들의 본진.
그곳으로 한 무리의 영웅들이 들이닥쳤다.
“으아악!”
“피해!”
건물의 3층.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 안에서 커다란 화염이 독나비 조직원들을 덮쳤다.
조직원들 중에는 마력을 가진 사람도 존재했지만.
2급 마법사가 펼친 마법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쓰러져갔다.
“저놈들이 끝이야.”
“알겠습니다!”
정보를 접수한 영웅부의 주도로 꾸려진 계획.
건물로 들이닥친 영웅 중에서도 가장 앞장 선 인물 중 한 명은 윤도하였다.
땅의 정령사인 그는 독나비에서 보관중인 물건들이 다른 영웅들에 의해 파손되지 않도록 땅속으로 빨아들인 상태.
영웅들의 침입을 깨닫고 중요한 물건들을 빼돌리려던 독나비 조직원들은 아연질색했다.
“재경아, 잠깐만.”
윤도하의 파티원인 박재경의 검에 한 남자의 심장이 뚫리기 직전.
윤도하는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여기서 제일 직급이 높은 사람은 누구?”
“저 사람입니다!”
겁에 질린 나머지 정보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조직원들.
윤도하는 한쪽 손을 주머니에 꽂아넣은 채.
여기서 가장 높은 직급에 해당되는 조직원에게 다가갔다.
“야.”
“…….”
“휴대폰 줘봐.”
“여, 여기 있습니다.”
“사용하는 휴대폰은 이게 끝인가?”
“네…….”
“비밀번호는?”
윤도하가 전달받은 비밀번호로 빼앗은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그리고는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유지한이라는 영웅 알지?”
“……!”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가 눈을 부릅떴다.
괴구리 출몰지에서 묻어 버리라고 지시를 내렸던 영웅의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겁도 없이 내가 가르치는 제자를 건드렸겠다.”
“제, 제자라고요……?”
유지한이라는 영웅은 신생 길드에 소속된 고작 4급 영웅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가 1급 영웅과 친분이 있을 줄이야!
건드릴 사람을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걸 알면 벌을 받아야지.”
“네?”
윤도하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쿠구구구……!
무릎 꿇은 남자의 다리가 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끄아아아악!”
커다란 비명과 함께 천천히 바닥에 먹혀 버리는 남자의 몸.
자리에 남겨진 독나비의 잔당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한편, 휴대폰을 조작하던 윤도하는 거기서 뜻하지 않던 정보를 발견했다.
“이건 또 뭐야.”
서버에 데이터가 저장되지 않는 폐쇄형 메신저.
그 메신저의 채팅 목록에서 IUPC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상대방이 있었다.
“……오호.”
채팅 내역을 천천히 살펴보던 윤도하의 입가에 조금씩 웃음이 걸렸다.
IUPC로부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몬스터의 알을 구매한다든지.
반대로 돈을 받고 IUPC에게 살아있는 인간을 판매한다든지.
아주 수상한 대화 내역이 포착된 덕분이었다.
심지어 두 조직 간의 거래 장소나 물건의 사진 따위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지한이가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네.”
IUPC를 압박할 확실한 명분이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