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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34화 (134/300)

134화. 비밀병기

“히야……. 이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실 줄은 몰랐네요.”

양지철은 대련장을 빠져나오는 유지한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영웅부는 승급 면접에 참여할 영웅을 선발할 때 기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영웅들을 후보로 올려놓고 결정한다.

그런 가운데 선택받은 2급 영웅과의 대련.

유지한은 거기서 5분을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반격까지 날렸다.

장비를 완전히 갖추고 스킬을 사용하는 등 아무런 제한 없이 싸운다면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유지한의 완승이었다.

“지한 씨 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평범한 영웅입니다만.”

“평범한 4급 영웅이 이름 있는 2급 영웅을 상대로 이렇게 선전할 수 있어요?”

“…….”

“지나가는 개가 듣고 웃겠네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머리를 긁적이는 유지한이었다.

양지철은 무척 수상하다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아무튼 승급 발표는 이틀 내로 이뤄질 것 같고요. 부디 대비해 두시길 바라겠습니다.”

“대비라뇨?”

“3급쯤 되면 여기저기서 접근해 오는 일이 많이 생기거든요. 아, 영화에 출연하셨던 여러분은 이미 겪고 계실 수도 있겠죠.”

영웅 영화가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둔 이후 꿀잼으로 들어온 여러 연락들.

각종 인터뷰나 업무적인 연락 외에도 귀찮은 전화들이 지금까지도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에 이어서 3급 승급까지 겹쳐 버린다면, 아주 성가신 일들이 벌어질 터.

‘휴대폰 번호를 바꿔야겠군.’

유지한은 귀찮은 연락을 피해서 아예 휴대폰 번호를 변경할 계획을 세웠다.

길드장인 김시후에게는 업무용 휴대폰을 따로 만드는 걸 권할 생각이었다.

“조만간 프로필 사진 촬영도 도와드릴 건데요.”

3급 영웅부터는 한국이 아니라 국제 영웅 협회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제부터 그들은 신분증이나 여권과는 별개로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한 국가를 벗어나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것이었다.

“……아!”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묘한 탄성을 내뱉은 유지한이 고개를 돌려 지강석이 빠져나간 문을 바라봤다.

‘이제야 생각났다.’

어째 처음부터 익숙한 얼굴이라더니.

그는 과거 김현태 파티에 있던 시절 지강석과 같은 현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멀리서 봤는데 움직임이 꽤 괜찮으시네. 당신 이름이 뭡니까?

심지어 지강석 본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었다.

신분을 꽁꽁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축하한다.”

“고맙다.”

퉁!

유지한은 하얀색 가운을 두른 카지미르와 캔음료를 부딪혔다.

조금 세게 부딪힌 탓인지 캔에서 음료가 조금 흘러나왔지만, 그냥 웃어넘겼다.

카지미르는 하얀 휴지로 손에 묻은 음료를 닦으며 말했다.

“이번 승급 시험은 꽤 어렵다고 들었는데. 잘도 통과했군.”

“음, 사실 막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

던전에서 돌이 굴러오는 사고나 지강석과의 갈등을 제외하고.

유지한으로서는 승급에서 그렇게까지 어려운 점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쉽게 끝나버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네 승급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아.”

“응?”

“2급 파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웅이 소속을 옮겼다고 해서 실력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겠지.”

“그런가.”

“네 파티원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으니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거다.”

눈썰미가 좋은 뱀파이어의 말.

절대로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뭐랄까……. 마음이 되게 개운하네.’

김현태 파티에서 추방당하고 꿀잼의 새로운 파티에 합류한 뒤.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파티의 등급은 3급까지 수직으로 상승했다.

이전처럼 신분을 감추지도 않고 떳떳하게 이름을 알리고 활동하는 상황.

이쯤되니 파티에서 추방되었던 과거는 딱히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에 제발로 김현태 파티를 나오는 거였는데.

“내일 휴대폰 번호 바꿀 건데, 바뀌면 너한테 문자 보내 둘게.”

“알겠다.”

“그나저나 이 시간까지 일하는 거 보면 바쁜가 보다.”

유지한은 대련이 끝난 뒤 이곳에서 근무하는 카지미르에게 간단한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늦었지만 혹시 아직 회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보낸 문자였는데.

카지미르는 정말로 연구소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바쁜 시기는 못해도 한 주에 4일은 야근을 해.”

“4일이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야간 수당은 쏠쏠하게 들어오니까 문제 없다.”

“…….”

뱀파이어가 야간 수당을 언급하니 묘한 기분이 드는 유지한이었다.

“그……. 마력 변색 증후군은 좀 어때? 연구에 진척이 있나?”

“없다.”

“없어?”

“없어.”

작은 여지조차 주지 않는 카지미르의 확답이었다.

그는 민트 초코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말했다.

“네 파티원의 일도 있고 해서 개인적으로 신경을 더 쓰고 있긴 하지만……. 당장 무슨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신경이라도 써 준다니까 고맙다.”

“그 건에 대해서는 해외의 여러 연구소와도 정보를 나누고 있다. 다른 연구소도 우리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더군.”

해외의 마력 변색 증후군 환자 중에는 어느 재벌가의 가족 또한 포함되어 있다.

현재 그들이 그 병과 관련된 연구에 많은 자금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커다란 진척은 없었다.

단순히 좋은 인력들과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으면 나도 도울게.”

“참고하지. 그리고 환자에게 괴삼을 먹이는 일은 여전히 반대다.”

유지한은 동생에게 괴삼을 먹여 보고 싶다는 민유리의 요청으로 카지미르에게 의견을 물어봤었다.

그에 카지미르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역 영웅마저도 섭취 후 잠시나마 몸에 부담을 느낄 정도의 영약을 병약한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괴삼에 다른 것들과 섞어서 희석시키면?”

“부담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

“아쉽네.”

운좋게 귀한 영약을 구했는데 효과가 몸에 부담이 될 정도로 좋아서 쓰질 못하다니.

아쉬움이 남는 유지한이었다.

“요새 바쁘다고 했지?”

“많이 바쁘다.”

“뭐가 그렇게 바쁘길래…….”

유지한과 카지미르가 대화를 이어 가던 그때였다.

“카지미르으으!”

“응?”

타다다닷—!

어디선가 달려 나온 여자 아이가 카지미르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앙증맞은 목소리와 작은 키.

늦은 시간에 영웅부에 있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

그런데 카지미르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은 그녀의 이마 중앙에는 세로로 긴 붉은 보석 같은 것이 박혀있었다.

저 어린 나이에 몸에 피어싱을 착용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그 보석이 너무 깊게 박혀있었다.

“오빠! 왜 이렇게 안돌아오는 거야?”

“잠깐 지인을 보고 오겠다고 말했을 텐데.”

“10분이 잠깐이야? 잠깐이라는 단어는 3분까지만 허용된다구!”

“그걸 누가 정한 거지?”

“내가.”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아주 뻔뻔한 표정으로 카지미르를 올려다보는 아이.

유지한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카지미르. 이쪽은 누구?”

“이름은 니로치. 한국의 비밀병기다.”

“……비밀병기?”

한국의 비밀병기라니.

다소 뜬금없는 말에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고로 니로치의 나이는 57살이다.”

“뭐?”

“아니, 오빠! 여자의 나이를 함부로 밝히면 안 되지!”

“항상 말하지만, 난 네게 오빠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젊다.”

“나보다 키 큰 남자는 다 오빠야.”

서로 말로 투닥거리는 카지미르와 니로치.

유지한은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말했다.

“비밀병기라는 게 뭐야?”

“궁금한가?”

“오빠! 그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 남자는 믿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

“흐응? 그래?”

작게 콧소리를 낸 니로치가 눈을 좁히고 유지한을 올려다봤다.

나름 인재가 많다는 연구소 내에서도 카지미르가 이렇게 후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니로치는 근래 한국에 도착한 이종족이다.”

“인간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한 가지 특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무슨 능력?”

카지미르는 니로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타인의 고유 스킬을 감정할 수 있는 능력.”

“……?!”

유지한은 눈을 아주 동그랗게 떴다.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유 스킬의 보유자조차 몰랐던 내용까지 감정할 수 있다는 듯해.”

“……그게 정말이야?”

“그래! 과거 우리 차원에서 살던 종족들은 모두가 유크를 가지고 있었다구.”

“유크?”

“한국에서 고유 스킬이라고 부르는 거 말이야.”

한 차원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가 고유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지구의 고유 스킬 보유자가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걸 생각해 보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유크를 감정하는 유크를 가지고 있지. 엣헴!”

타인의 고유 스킬을 감정할 수 있는 고유 스킬의 보유자.

적어도 지금껏 지구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능력이었다.

유지한은 그녀를 내려다보는 채로 얼어붙었다.

‘……어쩌지?’

지금,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항상 의문으로만 남아 있는 고유 스킬을 감정해 보고 싶다고.

그럴 경우 오랜 기간 숨겨 왔던 샘플링의 존재를 외부에 공개해야만 했다.

망설여지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니로치라고 했죠?”

“응. 존댓말은 쓰지 마.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니까.”

“저도……. 아니, 나도 고유 스킬을 감정 받아 보고 싶어.”

그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

유지한은 니로치와 카지미르를 따라 창문이 없는 좁은 방으로 이동했다.

평소에는 작은 창고 같은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공간이었다.

“설마 네가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카지미르는 유지한은 바라보며 매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평생 고유 스킬을 숨기고 살아온 유지한.

이제껏 그런 부류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각종 트러블이나 사건 사고에 얽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승낙할 줄은 몰랐어.”

고유 스킬 감정은 다소 즉흥적인 요청이었다.

비밀병기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인물이라면 요청을 거부하거나 깐깐하게 굴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니로치는 카지미르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감정을 받는 자리에 카지미르가 함께하는 조건으로 유지한의 요청을 수락했다.

“공짜는 아니야! 카지미르 오빠가 한 달간 밥을 사주기로 했으니까.”

“그래……. 내 야근 수당은 이때를 위해 모아 둔 것일지도 모르지.”

얼떨결에 야근하는 공무원의 지갑을 털어먹게 된 유지한이었다.

직접 돈을 주겠다고 말해도 거부하는 니로치.

유지한은 나중에 카지미르에게 별도로 사례금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률을 알아보는 능력이라면, 로또를 사 본 적은 없나?”

“아무리 시도해도 로또는 확률이 안 나오더라.”

샘플링은 로또에 대해서는 절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지한은 이제껏 로또에서 조그마한 소액이라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

“감정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거야?”

“물리적인 접촉. 잠깐 손 좀 줘봐.”

작은 의자에 앉은 유지한은 니로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도록 돌린 니로치는 양손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30초면 끝날 거야.”

말을 마친 니로치가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녀의 이마에 있는 붉은 보석같은 것이 희미한 빛을 내뿜었다.

역시 저건 단순한 피어싱은 아니었다.

‘과연.’

처음으로 타인에게 샘플링의 존재를 공개한 지금.

의문으로만 남아 있던 고유 스킬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유지한은 조금 긴장한 채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집중하는 니로치를 바라봤다.

“으응?”

그런데 약 30초가 흐르고.

니로치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눈가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인상을 썼다.

무언가 잘 진행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꽈악!

그녀는 이내 유지한의 손목을 더 세게 쥐었다.

이마의 보석에서 발생하는 빛의 세기도 조금 더 커졌다.

이미 30초는 지났지만, 유지한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녀를 기다렸다.

“에잇! 진짜!”

5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확 짜증을 낸 니로치가 유지한의 손목을 아주 강하게 쥐었다.

흡사 마른 걸레를 쥐어 짜는 듯한 감각.

일반인이었다면 손목이 저릿했을 정도였다.

“……문제가 있는 건가?”

옆에서 지켜보던 카지미르마저 이상함을 감지한 가운데.

화아악—!

니로치의 이마에 박힌 보석에서 눈이 부실만큼의 빛이 터져 나왔다.

천장의 조명을 훌쩍 뛰어넘는 광량에 유지한은 눈을 찡그리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슈우우…….

약속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니로치의 보석에서 뿜어지던 빛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마침내 유지한의 손목을 놓아준 니로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너……. 대체 뭐야?”

“뭐?”

“어떻게 한낱 개인이,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강한 경계심, 혹은 두려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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