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3급 (12)
지강석의 대련 제안.
파티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유지한과 지강석의 1:1 대련이었다.
“파티는 결국 파티를 이끌어 가는 파티장이 가장 중요하죠. 제가 그 파티장인 유지한 씨와 직접 맞붙는 것으로 3급으로 올라갈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하지만 양지철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대했다.
지강석은 나이프라는 중견 길드를 대표하는 2급 파티의 일원.
아직 4급에 불과한 유지한이 지강석과의 대련을 통해 승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련 심사는 이미 3차 시험에서 끝났습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
“참고로 어디까지나 내기입니다. 날 완전히 쓰러뜨리라는 뜻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지 않는……!”
“지철 씨. 잠깐만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지한은 격한 반응을 보이는 양지철을 막아섰다.
양지철이 설마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유지한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말했다.
“내기에서 제가 승리하는 조건은요?”
차분하게 승리 조건을 묻는 유지한.
면접에서 어떻게든 유지한과의 대련을 추진하려던 지강석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한테서 딱 10분……. 아니, 5분만 버티세요.”
“5분이요?”
“5분 내에 지한 씨가 먼저 항복을 선언하거나, 기절하거나, 대련 속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입지 않으면 지한 씨의 승리입니다.”
“흠…….”
“어때요? 할 만하지 않나?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날 피해서 도망만 다니면 돼! 나는 공격 스킬도 사용하지 않을 거라니까?”
내기의 조건을 들은 유지한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지강석은 그를 바라보며 도발하듯 깐족거렸다.
“형…….”
김시후와 민유리는 조금 걱정하는 얼굴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제한 시간이 몇 분이 되었든, 이건 동료로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런데 그때 유지한이 말했다.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뭐죠?”
“강석 씨가 쓰러진다면요?”
“……뭐?”
“제가 강석 씨를 쓰러뜨리는 것도 승리 조건에 해당되는 겁니까?”
제한 시간을 도망치며 버티는 게 아니라.
지강석이 완전히 패배하는 걸 가정하고 하는 질문이었다.
‘요놈봐라?’
감히 날 쓰러트리겠다고?
아주 맹랑한 도발이 날아오자 지강석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제껏 지강석에게 저런 태도를 보였던 4급 영웅은 없었다.
아니, 3급 영웅까지 전부 포함하더라도 처음이었다.
“으하핫! 그거야 물론이지!”
“그러면 하겠습니다.”
담담하게 대련을 받아들이는 유지한이었다.
양지철은 그를 만류하듯 소리쳤다.
“지한 씨! 정말로 하시겠다고요?”
“어차피 저분이 거부하면 저희는 승급에서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건 맞지만…….”
“확실한 승급 기회를 주시겠다는데, 까짓거 한 번 해보죠.”
그렇게 대답한 유지한이 지강석을 노려봤다.
마찬가지로 면접관 자리에 앉은 지강석 또한 유지한을 노려봤다.
교차하는 두 시선에는 서로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
면접장에서 유지한 파티의 면접이 중단된 뒤.
유지한과 그 일행은 기존의 대기실과는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뒤에 다른 파티의 승급 면접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면접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괜찮겠어요?”
“예.”
“…….”
민유리는 여전히 그를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2급 파티에 소속된 영웅의 힘이라면 그녀 또한 영상으로 보거나 멀리서 직접 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건물을 포함한 주변 일대가 형체도 없이 파괴될 만큼 무서운 장면도 포함되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홀로 싸우겠다는 유지한이었으니.
크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5분이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유지한은 남호열이 제작한 검을 만지작거렸다.
과거 신분을 감춰야만 했던 그의 입장 상, 종종 다른 길드와 공식적인 친선 대련 기회가 생기더라도 참여하는 건 불가능한 일.
침입자와의 전투 외에 수준 높은 영웅과의 대련을 경험해 본 건 그에게 협조적이던 이미아가 유일했다.
“제가 버프라도 미리 걸어드릴까요?”
“그건…….”
대련 시작 직전에 버프를 걸어 주겠다는 김시후.
확실히 5분 정도라면 버프가 유지될 수도 있을 터.
“그럴 게 아니라 네가 나한테 마법을 알려 주면 되겠다.”
“네?”
“새로운 마법을 배울 시기도 얼추 됐었지. 어디 괜찮은 버프 없어?”
“음…….”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새로운 버프를 요구했다.
바닥을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하던 김시후가 말했다.
“하나 있긴 해요.”
“어떤 거?”
“바바리안을 쓰러뜨렸을 때 형에게 사용했던 버프가…….”
“그걸 벌써 완성했다고?”
“아니, 아니요! 아직 미완성이긴 한데, 그래도 쓸만해서요.”
조금 걱정이 들긴 했지만.
당장 김시후에게 보다 좋은 마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마법, 이름이 뭐야?”
“꿀버프요.”
“…….”
“영어로는 허니 버프(Honey Buff).”
새로운 마법의 이름을 전해들은 유지한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꼭 그 이름이어야 해?”
“아니면 ‘세계수의 축복’이라는 이름도 있어요.”
“오! 그게 한결 낫다.”
“꿀버프가 훨씬 더 귀여운 거 같은데…….”
“아니야! 무조건 후자가 더 좋아. 그렇죠 유리 씨?”
“……그렇죠?”
민유리마저 고개를 끄덕이자 아쉽다는 표정으로 수긍하는 김시후였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마법 지팡이 끝에 배움의 구슬을 생성했다.
그 구슬 안에 버프에 필요한 정도의 마력이 흘러들어갔다.
사아아—
구슬 속으로 들어간 마력이 이내 빠르게 요동쳤다.
눈으로 하나하나 쫓아가는게 버거울 정도로 어지러운 마력의 흐름!
그것은 분명 바바리안과 싸웠을 당시 그가 사용했던 강력한 버프의 일부였다.
‘꽤 복잡하네…….’
유지한은 배움의 구슬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 마력의 패턴을 외우려고 노력했다.
이전에 배웠던 신속의 마법 헤이스트보다도 훨씬 난이도가 높고 복잡한 패턴이었지만.
그의 눈은 구슬 속에서 움직이는 마력의 아주 작은 변화조차 놓치지 않았다.
‘엄청난 집중력이다.’
구슬 속 마력에 완전히 빠져 버린 듯한 유지한.
다소 빠른 시간 내에 마법을 배워야하는 탓인지 그는 평소보다 훨씬 높은 집중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에 살짝 놀라는 김시후였다.
“오케이. 됐어.”
“네? 벌써요?”
“……?”
준비가 됐다는 유지한의 말에 김시후가 눈을 껌벅였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민유리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아직 몇 번 반복 안 했는데요.”
배움의 구슬 속에는 김시후가 시각화된 마력으로 버프 사용에 필요한 패턴을 반복하여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패턴은 5번 밖에 반복하지 않았다.
하나의 마법을 배우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한 시간이었다.
“이거 아니야?”
유지한은 자신이 파악한 마력의 패턴을 전신에 둘렀다.
[세계수의 축복]
후웅—!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유지한의 전신을 빠르게 덮어가는 무형의 힘!
알맹이가 빠져있는 미완성임에도 충분히 효과적인 마법이었다.
“오호, 느낌이 꽤 좋다?”
“엇!”
갑자기 유지한의 기세가 확 바뀌자 김시후는 재빨리 그의 팔을 낚아챘다.
“이건……!”
팔뚝 위로 솟아난 혈관은 평소보다 더 선명했고, 팔근육은 철근처럼 단단했다.
피부 위를 덮고 있는 얇은 마력은 분명 미완성인 세계수의 축복을 이루는 마력의 패턴!
버프의 효과로 신체가 강화된 걸 확인한 김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거 참……. 다른 마법사들이 알게 되면 형을 무지 싫어하겠는데요.”
“왜?”
“자기들보다 마법을 더 빨리 배우는 전사를 보면 어떻겠어요. 자괴감이나 들겠지.”
다른 마법사가 유지한을 본다면 자괴감을 느낄 거라는 김시후였다.
민유리마저 조금 어이가 없었는지 김시후를 향해서 말했다.
“시후야. 마법이란 게 이렇게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거였어?”
“그럴 리가요! 이건 지한이 형이 너무 특별한 거예요. 아무리 정령사라고는 해도 이런 건 들어본 적이 없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 흔한 스킬조차 사용하지 못했던 전사 유지한.
실프와의 계약 이후 그는 시간이 갈수록 꽉 막혀있던 통로가 시원하게 뚫린 것마냥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찍찍!”
칠라가 축하하듯 소리 없는 박수를 치는 가운데.
김시후는 칭찬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유지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두려운 재능이다.’
이전에 마법을 사용한 적 없다는 전사 유지한의 배경을 고려하여.
항상 기본을 지키며 천천히 마법을 가르치려 했던 김시후였다.
천재 소리를 듣던 마법사 김시후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재능.
완벽하다고 말하기에는 어렵지만, 적어도 새로운 마법을 습득하는 속도는 지나칠 정도로 빨랐다.
‘아무래도 지한이 형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계획은 전면 수정해야겠어.’
김시후는 조금 복잡한 얼굴로 유지한의 얼굴을 바라봤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마법을 빨아들이는 이 사람이라면.
마법의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만 다듬으면 되겠어요.”
“어디를?”
“오른쪽 다리를 감싼 마력을 더 얇게…….”
김시후가 유지한의 마력을 교정해주는 사이.
면접장에 입장한 다른 파티의 면접이 하나씩 끝나갔다.
*****
모든 면접이 마무리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양지철이 유지한을 찾아왔다.
“지한 씨. 그만 둘 생각은 없으시죠?”
“예.”
“……바로 대련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지한 파티는 양지철을 따라서 영웅부에 마련된 대련장으로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지강석은 대련장 안에서 목을 꺾고 있었다.
뚜둑! 뚜둑!
“찌뿌둥했는데 잘 됐네.”
대련장에 들어간 지강석은 맨몸이었다.
4급 영웅을 상대하는 것에 도구를 사용하는 건 사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그의 태도에 유지한은 잠시 대련장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가.
가지고 있던 검을 김시후에게 맡겼다.
“잠깐 맡길게.”
“네.”
이내 그가 대련장 안으로 입장했다.
보란듯이 무기를 놓고 온 그를 보며 지강석이 말했다.
“진심이야?”
“예.”
“정신이 나갔군.”
“글쎄요.”
진심을 다해서 싸워도 모자를 만한 상대를 두고 여유를 부리다니.
‘건방진 새끼.’
그것이 유지한에 대한 지강석의 평가였다.
“대련 시간은 총 5분. 그 시간동안 제대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유지한 씨의 승리입니다.”
아까 전 면접에 참여했던 면접관들까지 대련에 참관하는 상황.
대련장 안에서 거리를 벌린 두 사람을 주시하던 양지철이 말했다.
“준비되셨습니까?”
“예.”
“그럼……. 시작!”
띡!
5분이 예약된 타이머가 돌아가고.
마침내 대련이 시작되었다.
“흐음.”
시작은 조용했다.
손바닥을 부드럽게 매만지던 지강석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맞은 편에 있는 유지한을 바라봤다.
1초, 2초, 3초.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이대로 시간이 모두 흐른다면 유지한의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지강석은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하는 거지?’
대련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의문을 갖던 그 순간.
마침내 지강석이 다리를 움직였다.
팡!
그가 발을 뗀 자리에서 강력한 파열음이 발생했다.
대련장의 바닥이 살짝 패일 정도로 강하게 치고 나간 것이다.
‘이때만을 기다렸다!’
지강석은 처음부터 유지한을 그냥 두고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나이프의 길드장이자 그의 파티장인 문경구가 큰 돈까지 안겨주면서 부탁을 했으니.
받은 만큼의 결과는 보여 줄 작정이었다.
‘어떻게 요리해 줄까.’
한쪽 다리를 잃을 정도로 몸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문경진.
그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유지한에게는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선사할 계획이었다.
대련의 과정에서 두 번 다시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상처를 입히는 ‘실수’를 범하더라도.
영웅부에서 치러지는 대련 도중에 일어난 사건에다가 본인이 승낙했던 일이었던 만큼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우선 허리부터 꺾어 줘야겠군.’
커다란 대포알처럼 튀어나간 지강석의 몸이 순식간에 유지한과 가까워졌다.
꽈드드득!
이내 두꺼운 다리에 폭발적인 마력이 집중되고.
그가 유지한의 옆구리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뼈가 단단한 몬스터의 두개골도 단번에 깨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앗!”
범상치 않은 힘을 감지한 민유리가 소리를 질렀다.
이내 두 사람이 충돌했다.
콰아아앙——!!
대련장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
거기서 발생한 충격파가 공기를 타고 대련을 구경 중인 모두의 몸에 전달되었다.
덜컥 놀란 김시후는 무심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
대련장 안에서는 유지한이 양손으로 지강석의 정강이를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도 위협적이던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어디에도 작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그였다.
발을 뻗은 채로 굳어 버린 지강석이 중얼거렸다.
“……너 뭐야.”
“유지한입니다.”
그 태연한 대답에 지강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