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31화 (131/300)

131화. 3급 (11)

“저건 오러입니까?”

“맞습니다.”

“여기 계신 지한 씨는 오러 사용자가 맞습니다.”

유지한이 오러를 사용한 걸 믿을 수 없다는 지강석의 반응.

하지만 그가 오러 사용자인 것은 같은 면접관인 양지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혹시 저 검이 아티팩트인 건 아닙니까?”

“정 의심되시면 직접 보시죠.”

이번에는 검을 아티팩트로 의심하는 지강석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한은 의심병이 돋은 듯한 그를 위하여 챙겨온 검을 그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낸 지강석은 손으로 날을 만지작거리며 꼼꼼하게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평범한 검이군요.”

특수한 아티팩트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검.

이내 안타깝다는 듯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는 그였다.

“2차 시험도 훌륭하게 통과했군요.”

“던전에서도 가장 먼저 탈출한 거였죠? 대단합니다.”

“다음은 3차 시험입니다.”

마지막 영상은 승급 시험자들간 대련이 치러졌던 3차 시험.

뿔뿔이 흩어진 유지한 파티원들이 대련을 치르는 장면이 하나씩 화면에 잡히고…….

그들이 대련에 기여한 정도에 대해서는 면접관들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전승을 거둘 만큼 깔끔한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저건 머리를 잘 썼네요.”

정영욱과의 콤비로 빙판 위에서 펼쳐진 유지한의 전투!

그것을 본 면접관들은 하나같이 눈을 빛냈다.

그때 지강석이 말했다.

“대련 시작 전에 신발에 마법을 걸어 둔 건 반칙 아닙니까?”

“그런 규정은 없었습니다. 저 정도면 충분히 용인될 만한 수준이에요.”

“큭…….”

지강석이 하나씩 내뱉는 의견은 양지철의 적극적인 반박으로 막혀 버렸다.

어쩌면 이것이 다소 면접자에게 편향된 자세처럼 보일지라도.

어디까지나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노력하는 양지철이었다.

이동호와의 사건에서 교훈을 얻은 건 유지한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험 영상은 여기까지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본 파티 중에서도 단연코 상위권이네요!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유지한 파티가 4급에 오른 지 몇 달 안 됐다고는 정말 믿기 힘들 정도예요!”

어지간하면 면접장에서 면접자들을 향한 칭찬은 나오지 않지만.

유지한 파티에게는 코앞에서 칭찬이 쏟아졌다.

그때 홀로 입을 다물고 있던 지강석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요전에 파티에서 영웅 영화를 찍으셨던데.”

“예.”

“겨우 4급부터 영화를 찍는 건 너무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는 거 아닙니까?”

“먼저 저희 쪽으로 제안이 들어와서 찍었을 뿐입니다.”

“영웅은 어디까지나 영웅일 뿐이지 연예인이 아닙니다! 미숙한 파티가 유명세를 얻기 위해 영화를 찍었다는 게 선배 영웅으로서 보기 좋지는 않군요.”

유지한 파티가 영화를 촬영한 것에 불편해하는 지강석.

그러자 빠르게 머리를 굴린 유지한이 그에게 말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제 기억으로는 나이프의 5급 파티에서도 영웅 영화를 찍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유지한의 지적에 지강석이 순간 당황했다.

영화에는 특별히 관심이 없는 탓에 같은 길드에서 영화를 촬영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저는 다른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곧 다른 면접관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영상으로 본 시험과는 상관이 없는 질문들.

이 자리에는 유지한 파티의 4급 면접에 참여하지 않았던 면접관이 있는 만큼, 그때의 질문과 비슷한 질문들이 여럿 튀어나왔다.

“후, 후!”

팔짱을 끼고 한동안 가만히 질답을 듣고 있던 지강석은 갑자기 자신의 코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바로 직전에 이뤄진 김시후의 답변이 끝난 직후.

칠라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까 전부터 저 괴물한테서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던데.”

“괴물이 아니라 칠라입니다.”

“그거나 저거나 똑같지. 저 친구 목욕은 시켰습니까?”

“매번 규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면접을 앞둔 바로 어제 깔끔하게 목욕을 마친 칠라였다.

냄새가 난다는 식의 발언도 괜한 트집에 불과했다.

“저 녀석이 탱커로 활동한다고 했나?”

“네.”

“말 안 통하는 짐승이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지켜보세요.”

민유리는 칠라에게 뒤로 몇 걸음을 이동하거나 앞으로 구르라는 등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찍! 찍! 찍! 찍!”

칠라는 마치 잘 훈련받은 군인처럼 모범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심지어 방패를 꺼내라고 하자, 녀석은 방패를 앞세워 민유리를 지키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하하…….”

“이렇게 잘 훈련된 펫은 오랜만에 보는군요.”

“쯧.”

귀여운 칠라를 보며 흐뭇해하는 면접관들과 달리, 아쉬운 듯 혀를 차는 지강석이었다.

트집을 잡으려던 것이 되레 평가 점수를 높이는 일이 되어 버렸다.

뒤이어 그가 먹잇감을 노리는 눈으로 김시후를 바라봤다.

“김시후 씨는 하프엘프였죠?”

“네.”

“시민들 중에는 엘프 같은 침입자가 영웅으로 활동하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길드장이라니……. 세상이 참 어떻게 되련지.”

이번에는 김시후의 종족을 걸고넘어지는 지강석이었다.

그러자 양지철이 손에 든 볼펜을 세게 쥐었다.

‘이 사람이 정말……!’

양지철은 면접의 시작에 앞서 지강석에게 면접자의 종족과 관련된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면접에 참여하는 김시후를 위한 조치였는데, 지강석은 결국 그 이야기를 꺼내 버렸다.

그런데 그때 김시후가 말했다.

“대답에 앞서 면접관님의 질문에서 한 가지 정정할 게 있습니다.”

“……?”

“저는 침입자가 아닙니다.”

이세계의 침입자와 지구에 정착한 이종족은 달리 분류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또렷하게 뜨고 지강석을 바라보는 김시후였다.

‘이렇게 나올까봐 미리 대비를 해 뒀지.’

이동호가 참여했던 4급 면접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김시후였다.

당시에는 종족을 걸고넘어지는 것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김시후는 미숙했던 그때의 김시후와 달랐다.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을 하자면, 사람들이 충분히 불편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종족이라도 평화를 수호하는 영웅이 될 수 있다, 그 인식을 심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허, 상당히 거창한 대답이군요.”

“자신감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종족을 언급했음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김시후.

다시금 그의 종족을 언급하려던 지강석은, 어서 뭐든 말해 보라는 표정의 김시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만만치 않은 놈들이다.’

생각 이상으로 유연한 대처에 그는 속으로 유지한 파티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이들은 문경진이 설명했던 허접한 4급 파티와는 결이 달랐다.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충분히 이번 면접을 통과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한 놈이 더 있었지.’

지강석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민유리를 노려봤다.

시선을 받은 민유리가 살짝 긴장하는 가운데.

“민유리 씨는 아픈 가족이 있다고 하셨죠?”

“병원에 입원한 친동생이 있습니다.”

“그 동생분과 관련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

지강석의 입에서 뜬금없이 동생이 언급되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민유리였다.

“어느 날 대량의 몬스터가 결계 밖으로 빠져나왔고, 그때 유리 씨는 주변에 있던 20명의 시민을 보호하는 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것을 가정하고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

영웅 면접에서 드물지 않게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시민들을 데리고 이동하던 중에 민유리 씨는 동생분이 입원한 병원이 몬스터에게 습격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

“현 위치로부터 병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아주 빠르게 달려간다면 10분 정도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몬스터가 계속 밀려오는 상황이라 당장 눈앞에 있는 20명의 안전은 포기해야만 하죠.”

“…….”

“이때 유리 씨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극한의 상황에서 주어진 선택지 중 1개를 골라야 하는 질문.

지강석은 조금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저는…….”

민유리는 쉽게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저것이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버리겠지.

“눈앞에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병원으로 달려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동생을 버리고 20명의 목숨을 구하시겠습니까?”

민유리가 계속 입만 오물거리던 때.

김시후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질문이 있습니다.”

“뭐죠?”

“이거 명확한 정답이 있는 문제인가요?”

동생을 구하겠다고 한다면 다른 시민들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시민들을 구하겠다고 한다면 하나뿐인 동생을 버릴 거냐고 비난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마땅한 정답이 없는 문제.

‘어째 내 면접은 조용할 날이 없구만.’

잠자코 있던 유지한도 입을 열었다.

“저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겠습니다.”

“……?”

“유리 씨는 앞으로도 파티에서 저와 함께할 겁니다. 그러므로 저나 시후가 대신 병원에 가는 것으로 하죠. 아니면 데리고 있는 시민들을 다른 영웅에게 맡겨도 되겠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선택입니다.”

지강석이 범하는 무례는 참을 만큼 참았다.

유지한은 그를 강하게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런 극단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양자택일을 하는 것이 승급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영웅의 판단력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의 정답을 알려 주시죠! ‘후배 영웅’으로서 아주 잘 새겨듣겠습니다.”

면접자의 신분치고는 너무 당당한 태도였지만.

양지철을 비롯한 면접관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들과 그와 비슷한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툭!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지강석은 볼펜을 책상 위로 던지며 말했다.

“후……. 다른 면접관들은 유지한 파티의 승급에 동의하시죠?”

“네?”

“다 알고 있습니다.”

유지한 파티가 이번 시험에서 보여 준 활약이라면.

합격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지강석이었다.

이내 그가 유지한을 바라봤다.

“하지만 오늘 제가 반대한다면 이분들은 승급에 실패하는 거죠.”

“그건…….”

규정에 따라 면접에 파견된 영웅의 권한을 무시할 수가 없는 영웅부였다.

악습(惡習)으로 인한 불합리함에 같은 면접관인 양지철이 이를 깍 깨무는 순간.

지강석이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어이, 유지한 씨. 나랑 내기 하나 합시다.”

“예?”

“내기에서 이긴다면 나는 이번 당신들의 승급에 깔끔하게 동의하겠습니다.”

뜬금없이 파티의 승급을 걸고 내기를 하자는 지강석.

유지한은 그의 옆에 앉은 양지철을 힐끗거리다가 말했다.

“무슨 내기 말입니까?”

“그쪽 파티장인 지한 씨와 내가 1:1로 붙어 보는 겁니다.”

2급 영웅 지강석은 유지한을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사실 이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지강석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렇게 나올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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