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27화 (127/300)

127화. 3급 (7)

커다란 돌이 굴러오는 사고를 겪은 유지한 파티는 빠르게 정비를 마친 뒤 앞으로 계속 이동했다.

부상자는 없었고 체력에 여유가 있는 덕에 속도가 느려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약 2시간 10분 정도 이동한 끝에.

“다 왔다.”

그들은 던전을 빠져나가는 출구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처음 들어온 문과 거의 똑같이 생긴 문.

혹시나 이것도 함정은 아닐까.

유지한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문을 열었다.

“여긴…….”

“아까 대기하던 곳이에요.”

문 뒤에는 던전에 입장하기 전 대기하던 공간이 있었다.

던전은 입구와 출구가 동일한 장소로 이어지는 구조였던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김시후가 말했다.

“아무도 없네요.”

이 장소에 유지한 파티원들을 제외한 영웅들은 없었다.

잘못 도착했거나 벌써 다른 장소로 이동한 걸까.

모두가 의문을 갖던 찰나.

띠리링!

유지한의 휴대폰에서 처음 듣는 알림음이 울렸다.

던전 입장 전에 설치한 [던전 시뮬레이터]에서 보내온 알림이었다.

[던전 탈출 완료]

[소요 시간 : 2시간 10분 24초]

[순위 : 1]

화면에 떠오른 건 던전을 탈출하는 데 걸린 시간과 파티의 순위를 알려 주는 메시지였다.

유지한 파티의 순위는 1위.

즉, 그들이 던전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왔다는 뜻이었다.

도착 장소에 아무도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우리가 일등이에요?”

“그런가 본데.”

“으흠! 별것도 아니구만!”

순위를 전해들은 김시후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 많은 파티 중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운이 좋군.’

유지한은 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그 커다란 돌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부숴 버린 것에 나름 의미가 있던 모양이었다.

“지한 씨!”

긴장을 풀고 숨을 돌리고 있던 그때.

막혀있던 벽에 세로로 긴 출입구가 생기며 양지철이 그 안에서 달려 나왔다.

“지철 씨도 여기 계셨네요.”

“네! 1등으로 탈출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밖에서 카메라로 다 보고 있었어요.”

던전에서 벌어졌던 일을 다 보고 있었다는 양지철.

그에 유지한은 표정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

“하나 여쭤볼 게 있습니다만.”

“그 커다란 돌 때문이신가요?”

“알고 계시네요.”

“네…….”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양지철이었다.

“던전 안에 그런 게 있다는 말은 사전에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희 쪽 설계 미스인 듯합니다.”

“그건 저희만 마주친 겁니까?”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차렷 자세를 한 양지철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 돌덩어리가 사전에 계획된 게 아닌 것임을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괜찮은데 제 파티원이 다칠 뻔한 건 그냥 넘어가기가 힘드네요.”

유지한은 양지철을 조금 쏘아붙였다.

잘못의 책임이 영웅부에게 있는 만큼, 파티장으로서 무언가 보상을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의도를 눈치챈 양지철이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번 사태에 관한 보상안은 반드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그건 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아마 피해 보상금으로 주어질 겁니다.”

“그렇군요.”

돌덩어리로 입은 피해를 돈으로 지급하겠다는 영웅부였다.

3급으로 바로 올려 주는 것이 아닐까, 내심 기대하고 있던 유지한은 속으로 조금 실망했다.

“그리고 그때의 장면은 아마 이후 평가에도 반영될 겁니다.”

“썩 나쁘지 않은 소식이네요.”

유지한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 사고를 겪었음에도 1등으로 던전을 탈출했으니 좋은 모습을 보여 준 것으로 파티의 평가가 오를 거라 여겼다.

‘그 점술가가 말해 준 게 이런 건가.’

위기를 이겨내면 보상이 찾아온다.

지금 같은 상황에 딱 들어맞는 문장이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할 말을 끝낸 양지철은 다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던전에서 다른 파티가 빠져나온 것은 그 즈음이었다.

“끝났다!”

“와!”

문을 열고 나온 영웅들은 양손을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기뻐했다.

그런데 커다란 칠라와 눈을 마주친 한 영웅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엇! 저기 좀 봐.”

“……우리보다 먼저 나온 파티가 있다고?!”

그들은 그들보다 먼저 도착한 유지한 파티를 보고 웅성거렸다.

이내 기다란 창을 들고 있는 여성이 민유리를 향해 걸어왔다.

“유지한 파티 맞죠? 그 영화에 출연하셨던…….”

“아, 네! 맞아요.”

“혹시 몇 분 전에 도착했는지 물어봐도 돼요?”

“15분 전에 도착했어요.”

“15분이나……. 젠장, 알겠습니다.”

여성은 작게 한숨을 쉬며 파티원들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평균 나이가 35세인 파티의 리더.

나름 연차가 있는 4급 파티인 만큼 이번에 정말 단단히 대비하고 도전한 시험이었는데.

더 젊어 보이는 영웅들이 그들을 앞지른 것에 분해하는 것이었다.

“아싸!”

“합격이다!”

2차 시험이 시작된 지 2시간 30분을 넘기자 다른 합격자들이 점차 모습을 비췄다.

개중에는 유지한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같은 청영사 동기인 레드홀의 제임스 강 파티.

그리고 주사위의 정영욱 파티.

“영욱아!”

김시후는 문을 빠져나온 정영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정영욱은 손을 흔드는 김시후를 보고 똑같이 손을 들어주었지만.

뒤돌아선 다음에는 김시후보다 늦게 빠져나온 걸 자책하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합격자가 예상보다 많은 관계로 20분 후 시험을 종료합니다.

시험을 조기 마감하겠다는 영웅부의 알림이 떨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파티들은 서둘러 출구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마감 1분 직전.

“커허억!”

“끝났다! 끝났다고!”

온몸에 끈끈이가 잔뜩 붙어있는 영웅들이 마지막으로 문을 빠져나왔다.

놀랍게도 그들 또한 유지한 파티의 청영사 동기인 민주용 파티였다.

“주용 씨?”

“유, 유리 씨…….”

민유리를 발견한 민주용은 힘없이 웃었다.

*****

2차 시험 종료 후 주어진 휴식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던전을 통과한 파티를 대상으로 3차 시험이 예고되었다.

—3차 시험은 대련입니다.

“대련이다!”

“드디어 왔군.”

모든 승급 시험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대련.

시험을 앞둔 영웅들은 하나 같이 고조된 분위기였다.

벌써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촤라라락!

기다란 벽 한쪽에 하얗게 빛나는 숫자들이 떠올랐다.

—호명하는 인원은 1번 줄에 일렬로 서 주십시오.

뜬금없이 줄세우기를 하겠다는 영웅부였다.

영웅들은 수군거리면서도 스피커로 들려오는 음성의 안내를 따랐다.

—김온태 파티의 이호동.

—유지한 파티의 김시후.

—박상철 파티의 박상철.

…….

…….

—다음부터 호명하는 인원은 2번 줄에 일렬로 서 주십시오.

한 명씩 호명되는 인원을 따라 여러 개의 줄이 완성되었다.

7번 줄에 서게 되어 파티원과 나뉜 유지한은 설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임시 파티 배정 완료.

—3차 시험은 소속 파티가 아니라 현재 같은 줄을 선 사람들과 함께 치르게 됩니다.

“……지금 뭐라고?”

“진짜로?!”

“말도 안 돼.”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적게는 몇 개월부터 몇 년간 함께해 온 파티원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대련을 치르게 되다니!

그것도 시험관과 대련을 치르는 게 아니라 승급 시험에 지원한 사람들과 서로 싸우는 구도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에 영웅들은 모두 동요했다.

—대련 중에는 전문가들이 실시간으로 개인의 기량을 측정할 예정입니다.

—대련의 승패는 평가 요소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원에 비례하여 절반 이상의 파티원이 기준에 들지 못한 파티는 시험에 탈락합니다.

—30분 후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영웅들은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각종 불만을 뱉어냈지만.

그럴수록 시간만 흘러갈 뿐이었다.

‘파티로서의 화력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치도 평가하겠다는 거군.’

3급 승급 기준이 듣던 것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는 것을 깨닫는 유지한이었다.

잠깐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뒤쪽에 일렬로 서있는 임시 파티원들을 바라봤다.

“망했다, 망했어……!”

자신의 파티원과 떨어져서 안절부절못하는 남자 영웅이 1명.

등산용 지팡이처럼 기다란 지팡이를 든 마법사 포지션의 영웅이었다.

“어, 어…….”

그 뒤에는 크게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여자 마법사가 1명.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지 들고 있는 작은 지팡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그리고 맨 뒤에 서 있는 건 김시후의 지인인 마법사 정영욱이었다.

따라서 유지한을 제외하곤 3명 전부 마법사뿐.

‘조합이 썩 좋진 않네.’

시작부터 밸런스가 심하게 무너져 있는 파티였다.

유지한에게 자신을 바라보는 정영욱을 향해 시선을 돌려주었다.

‘이중에서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다.’

마법사 2명이 안절부절못하는 가운데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정영욱이었다.

유지한은 마법사들을 한쪽으로 불러모은 뒤에 말했다.

“다들 상황은 이해하셨죠.”

“……네.”

“대련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까, 그냥 최선을 다합시다.”

“하, 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면 어떡해요?”

질문을 던진 마법사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평가 요소에서 승패를 제외한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걱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걱정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어떻게 싸울 건지 논의나 해보죠.”

유지한은 먼저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한 뒤, 다른 파티원들의 주특기와 능력을 전해 들었다.

대련에 앞서 임시 파티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이다.

인원이 마법사에 집중된 극단적인 성향의 파티로 유일한 전사인 유지한에게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

최소한 마법사들이 분담할 역할이라도 발 빠르게 맞춰 놔야만 했다.

“제, 제가 후방에서 공격 마법을 쏠게요!”

“저도요! 맡겨 주세요!”

여자 마법사와 남자 마법사는 자신들이 파티의 딜러를 맡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파티에서 담당하던 역할을 벗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는 공격 대신 방어 위주로 가면서 지한 씨를 서포트할게요.”

“가능하겠어요?”

“맡겨 두세요.”

반면 정영욱은 공격을 최대한 다른 파티원에게 맡기고 방어 위주로 대련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어쩌면 유지한과 더불어 이중에서 가장 어려운 역할이 될 수 있겠지만.

그와 한 차례 대련을 치러 봤던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

“유리 씨는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아, 네…….”

민유리는 5번 파티에서 민주용과 만났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몇 분째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민주용이었다.

같은 파티에서 민유리와 함께하는 것!

그는 그 목표를 잠깐이나마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급조된 것치고는 괜찮네.’

민주용을 포함한 전사 2명에 궁수 1명과 탱커인 칠라까지.

랜덤으로 배정된 파티 중에서도 밸런스가 썩 훌륭하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중에서 전사 1명은 경력이 4년 이상인 영웅이었다.

어쩌면 대련에서 승리를 자신해도 될 정도.

‘지한 씨는 고생하시겠다.’

민유리는 고개를 돌려 유지한을 바라봤다.

그는 생각에 깊게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배정된 7번 파티는 마법사가 무려 3명인 파티.

랜덤으로 배정된 파티 중에서도 인원 조합이 가장 곤혹스러워 보였다.

‘2명만 통과하면 되니까.’

인원이 4명인 파티는 최소 3명이 기준점에 들어야 하지만.

인원이 3명인 파티는 1명이 기준점에 들지 못해도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다.

유지한을 제외한 민유리와 김시후만 시험에 통과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련에서 합격점을 받기에는 이쪽의 조건이 훨씬 더 좋은데.

‘……저기로 가고 싶다.’

민유리는 유지한이 포함된 7번 파티의 자리가 탐났다.

당장 저 마법사들과 자리를 바꾸라고 한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차라리 나랑 지한 씨만 있는 것도 괜찮겠어.’

심지어 민유리는 다른 사람 없이 유지한과의 듀오, 2인 파티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유지한이라는 영웅은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동료로 인식되었다.

“찍.”

“너도 그래?”

유지한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칠라 또한 비슷한 마음인 듯했다.

“저만 믿으세요, 유리 씨!”

“…….”

“끄흐흐—!!”

바로 옆에서 허세를 부리는 민주용이 있는 탓인지.

유지한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민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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