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3급 (5)
김시후는 유지한이 결계를 넘어오는 장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결계를 넘어가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마법을 사용해서라도 그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마법을 쓰지 말라는 경고는 없었으니까.’
영웅부는 결계에 들어가서 버티라고 지시했을 뿐.
그밖에 특별한 제한을 걸어 두지는 않았다.
맨몸으로 결계에 달려들다가 반발력에 의해 물러나는 영웅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여기서는 마력을 활용하는 게 용인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사들이 다른 파티원을 도와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유지한의 몸이 결계에 닿는 순간.
김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유지한의 피부와 맞닿은 결계에서 저항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직전에 김시후나 민유리가 들어올 때보다 훨씬 낮은 강도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4급 전사들은 아직도 결계 밖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유지한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저건 대체…….’
김시후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마법사인 자신보다 훨씬 안정적인 진입이라니.
‘전에는 안 그랬는데.’
김시후는 괴들레가 등장했던 골프장에서 유지한과 함께 결계를 넘어갔던 전적이 있었다.
당시 보고 느꼈던 결계의 저항감은 일반적인 정도였는데.
지금의 유지한은 까다롭게 개량된 결계를 상대로 그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별거 없네?”
유지한은 두 손을 몇 번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이내 제자리에서 뜀박질까지 하는 그였다.
결계를 넘는 것은 물론이고 안에서 움직이는 것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이다.
“형. 잠시만요.”
궁금증을 참지못한 김시후는 유지한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꾸준한 실전과 훈련으로 적당한 근육이 잡혀 있는 팔.
그 위를 감싸고 있는 무형의 마력이 느껴졌다.
‘이건……!’
잘 느끼기도 힘들 정도로 얇은 마력이지만.
그것은 김시후로서는 익숙할 수밖에 없는 기운.
다름 아닌 실프의 마력이었다.
“형! 지금 실프 소환했어요?”
“아니.”
유지한의 주머니나 품속에도 실프는 보이지 않았다.
정령이 소환되지 않았는데도 정령의 마력을 끌어다 쓰다니!
어지간히 연차가 쌓인 정령사가 아니라면 힘든 일이었다.
“마력은 언제 몸에 두르신 거예요?”
“내가 마력을 사용했다고?”
“……!”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유지한의 표정.
그는 자신이 마력을 사용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이것이 그가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김시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내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2가지 가정.
1. 유지한이 무의식중에 실프의 마력을 사용했다.
2. 위협을 감지한 실프가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의로 마력을 사용했다.
이전의 생태 공원에서는 실프가 유지한의 명령을 들은 게 아니라 임의로 행동하여 장거리 저격을 막아 냈었다.
따라서 가능성이 높은 건 후자였지만…….
정답이 어느 쪽이든 0년차 정령사가 보여 줄 만한 퍼포먼스라기에는 도무지 믿기 힘든 것이었다.
*****
유지한이 결계 안으로 진입 후 약 25분이 흘렀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시간을 확인하던 유지한은 결계 바깥쪽을 살폈다.
아직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노력하는 영웅들이 보였다.
‘절반 정도인가.’
처음 이 장소에 도착한 영웅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아직도 바깥에 있었다.
얼굴을 보면 대부분 나이가 어려 보이는 영웅들이었다.
4급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3급으로의 승급을 시도하는 부류.
빠른 승급을 원했겠지만, 이 결계가 미숙한 영웅들을 걸러내는 거름망이 된 것이다.
‘고생이 많네.’
유지한 파티는 여러 파티가 모인 이 자리에서 단연코 가장 늦게 4급에 오른 파티다.
그걸 생각해보면 유지한 또한 바깥에서 고생을 하고 있어야 했지만.
이미 결계 안으로 들어온 그는 시간이 흐르는 걸 기다리다 못해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민유리와 김시후도 칠라에게 기대어 꿈뻑꿈뻑 졸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잠시 후 1차 시험을 종료하겠습니다.
“아, 안 돼!”
“5분만! 딱 5분만 더 주세요!”
—1차 시험 종료.
—아직 모든 인원이 결계에 들어오지 못한 파티에게는 탈락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메시지를 받은 파티는 자리에서 완전히 떠나주십시오.
“아나…….”
“젠장, 망했네.”
결계 안에 들어와 있던 영웅 중 일부가 밖으로 나갔다.
아직 진입하지 못한 파티원이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공존하는 파티.
아마 저들은 오늘을 기점으로 훈련에 더욱 매진하거나, 혹은 사이가 조금 나빠질지도 모른다.
—아직 결계 진입 후 20분이 지나지 않은 파티가 존재합니다.
—먼저 시험에 합격한 파티의 각 파티장에게는 별도의 메시지를 전송해드리겠습니다.
우웅!
유지한은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래의 링크에서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주세요.]
[https://www.hero.go.kr/app/…….]
영웅부의 공식 번호로 전송된 메시지에는 모바일 앱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유지한은 해당 링크에서 앱을 다운 받아 실행했다.
그러자 화면에 잠시 후 2차 시험을 시작하겠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5분 정도가 더 흘렀을까.
—2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2차 시험을 알리는 목소리와 함께 하늘을 덮고 있던 결계가 사라졌다.
쿠구구구궁—!
곧 땅이 크게 흔들리더니, 주변의 바닥이 서서히 좌우로 벌어지며 아래로 이어지는 기다란 계단이 생겨났다.
—자리의 모든 영웅들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와 주십시오.
눈치를 보던 영웅들이 하나둘씩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깊게 이어지는 계단.
땅 속 지하는 벽에 걸린 마력 조명 덕분에 어둡지 않고 밝았다.
‘준비를 되게 많이 했네.’
예상치도 못했던 결계도 그렇고.
유지한은 이번 시험에 생각보다 많은 노고가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다 왔다.”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평평한 바닥에 도착한 영웅들.
그들은 막다른 그곳에서 단 하나의 커다란 문을 마주쳤다.
그때 벽에 걸려있던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2차 시험은 던전 돌파입니다.
“던전?”
“게임에서 나오는 그거?”
던전이라는 말에 영웅들이 의문을 표하는 순간.
각 파티장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곧 그들의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는…….
[던전 시뮬레이터]
—2차 시험은 공간 왜곡 마법으로 구성된 가상의 던전(Dungeon)에서 탈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먼저 던전을 탈출하는 파티가 시험에 합격하게 되며, 1차 시험을 통과한 파티 중에서 절반 이상의 탈락자가 발생할 예정입니다.
—파티장들이 휴대폰에 설치한 어플리케이션은 던전 진행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도 등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가이드를 확인해주세요.
—10분 후 호명하는 파티부터 입장하겠습니다.
“허어…….”
“시험 스케일 되게 크네.”
“얘들아! 이쪽으로 모여!”
단순히 결계를 넘어가는 것과 전혀 다르게 진행되는 2차 시험.
파티장들은 재빨리 각자의 파티원을 자기쪽으로 불러모았다.
유지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던전이라면……. 게임 같은 거죠?”
“아마도요.”
유지한은 파티원들과 함께 던전의 가이드를 확인했다.
진짜로 어느 게임과 비슷하게 제작된 설명서였다.
스피커로 들려온 목소리의 말마따나 최종 목표는 던전에서 탈출하는 것.
[던전에는 공략을 방해하는 각종 함정과 장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부상자가 발생해도 안심하세요! ‘포기하기’ 버튼을 클릭하여 중도 탈락 선언 시 의료팀이 여러분을 도와드립니다.]
부상자가 생기더라도 시험 탈락 선언을 해야만 치료를 해 주겠다는 영웅부.
요컨대 시험에 통과하고 싶거든 작은 부상 정도는 감수하라는 것이었다.
“아, 지금 컨디션 너무 안 좋은데.”
“나도…….”
1차 시험의 결계에서 고생했던 영웅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개량형 결계로 인한 부작용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2차 시험을 치르려니 걱정이 되는 그들이었다.
“빨리 들어가고 싶다……!”
반면에 김시후는 던전이라는 걸 잔뜩 기대하는 모양새였다.
공간 왜곡은 마법사 영웅 중에서도 적합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
그것으로 단순히 공간을 확장한 게 아니라 하나의 미궁을 만들었다고 하니, 마법에 관심이 많은 그로서는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
—지금부터 던전에 진입하겠습니다.
—호명하는 파티는 문으로 입장해주세요.
시간이 되어 자리에 모인 4급 파티들은 안내 음성에 따라 하나둘 문 너머로 이동했다.
—정영욱 파티.
먼저 입장하는 파티 중에는 정영욱 파티도 있었다.
그제서야 정영욱을 발견한 김시후가 그를 바라봤지만.
정영욱은 김시후를 힐끔 바라보고는 말없이 지나쳐갔다.
—다음. 유지한 파티.
차례가 되자 유지한 파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트 마법을 띄워도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유지한은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처럼 주변을 경계했다.
화아악—!
그런데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며 주변 풍경이 드러났다.
천장과 좌우가 동굴처럼 전부 돌으로 막혀있고 앞쪽으로 쭉 이어지는 공간.
유지한이 뒤를 돌아봤지만 조금 전에 열었던 문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오!”
던전에 들어온 김시후는 돌벽에 걸린 촛불 근처로 다가갔다.
기계가 아니라 마법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공간.
거칠게 깎여 있는 돌을 쓰다듬으며 감탄사를 표하는 그였다.
“이 정도 규모의 공간 왜곡이라면 개인이나 길드에게는 허가를 내주지 않을 텐데…….”
“나라에서 진행하는 거니까 문제 없지.”
“조금 치사하네요.”
유지한의 휴대폰 화면에는 현 위치를 기반으로 던전의 지리가 표시되고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던전에서는 휴대폰 배터리를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다더니,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배터리가 충전되고 있었다.
휴대폰이 방전될 염려는 없는 것이었다.
“칠라는 내 옆으로 와.”
“찍!”
“진형은 이대로 유지하자.”
유지한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일행 중 가장 앞장서서 이동했다.
그때 김시후가 말했다.
“뛸까요?”
“아니. 뛰는 것보다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유지한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앞에서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달릴 수는 없었다.
만약 이 던전이 단순히 뛰는 것만으로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런 걸 승급 시험으로 내놓은 영웅부의 의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형을 믿고 있긴 해도…….’
‘더 빨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은 시각, 다른 파티가 열심히 뛰고 있는 것과 달리 신중한 움직임.
끝을 모르는 던전 안에서 김시후와 민유리마저도 조바심이 드는 상황이었지만.
유지한은 절대로 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앞쪽에 갈림길이에요!”
“오른쪽으로 가자.”
“……고민하고 결정하시는 거 맞죠?”
“물론이지.”
<—이 길을 따라가면 던전을 탈출할 확률>
<14%>
이럴 때 크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