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3급 (4)
—지한 씨. 영화 흥행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임 씨.”
유지한이 몬스터 처리 경과를 묻기 위해 장사임에게 전화를 걸자, 장사임은 그에게 먼저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 또한 유지한 파티가 촬영한 영웅 영화를 본 것이었다.
—괴아리를 잡으시던 게 엊그제인데, 벌써 유명인이 되시다니……!
장사임은 조금 감격한 듯한 목소리였다.
제대로된 사업의 시작을 꿀잼의 첫 사냥과 함께했던 몽땅.
파트너 업체와도 다름없는 곳이 빠르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에 장사임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에 유지한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유명인이라뇨. 그냥 화면에 잠깐 얼굴비춘 거뿐인데.”
—유명해지셨다고 절 버리시는 건 아니죠?
“버리긴커녕 앞으로 더 바빠지실 겁니다.”
—그거 듣기 좋네요.
유지한과 장사임은 전화기 너머에서 함께 웃었다.
유지한 파티는 일전에 사냥한 괴구리들도 몽땅에 처분을 맡긴 상황이었다.
이제와서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할 생각은 없었다.
‘연락이 왔던 건 사실이지만.’
가 조회수를 얻기 시작하면서 길드 메일로 들어오는 제안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몬스터 처리를 자기들이 맡아 주겠다는 제안을 해오는 업체들도 존재했다.
그것도 평범한 제안이 아니라 다른 업체에 비해 수수료를 훨씬 더 싸게 해 주겠다든지.
일정 기간 동안에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도 않고 몬스터를 처리해 주겠다는 업체도 있었다.
업체들이 그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해 오는 이유는 단 하나.
유지한 파티가 얻는 유명세에 탑승하기 위한 시도였다.
떠오르는 영웅들이 이용하는 몬스터 처리 업체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먹음직스러운 것이었다.
‘고작 몇 푼 더 벌자고 그럴 수는 없지.’
유지한은 파티원들과 함께 몇 개의 제안을 검토한 후 모두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수료를 깎아주겠다는 미끼가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기존에 거래하던 장사임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람과의 신뢰는 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소 괴구리는 어떻게 됐어요?”
—어제 한 대학교 담당자분이 물건을 보고 가셨는데 구매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해부용으로 쓰신다는 모양이에요.
“모쪼록 잘 처리 부탁드립니다.”
장사임과의 통화가 끝나고.
유지한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우우웅!
곧바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유지한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또 귀찮은 전화인가.’
영화 공개의 여파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지인 중에는 어떻게든 그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을 본 유지한은 표정을 풀었다.
영웅부 양지철의 연락이었기 때문이었다.
—지한 씨! 서류 발표 결과는 보셨어요?
“예. 봤습니다.”
유지한 파티의 승급 서류 심사 결과는 합격.
영웅부 차관이 직접 내렸던 지시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일정 안내해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말씀하세요.”
—그런데 조금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먼저 사과부터 하고 말을 시작하는 양지철이었다.
—이번 달에 승급을 요청한 파티가 너무 많은 관계로 내부에서 서류 검토와 동시에 관계자끼리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나온 결론으로, 3급 승급 절차에 커다란 변경 사항이 생겼어요.
“그게 뭐죠?”
—이번에 3급에 도전하는 파티는 새로운 시험을 치러야 하실 것 같습니다.
“시험이요?”
양지철은 유지한에게 새로운 시험에 대해 설명했다.
파티의 화력이나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력 등 3급으로서 적절한 자격을 검증하는 절차로서, 이전부터 그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고위 등급으로의 승급에 있어서 단순한 방식의 심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진 관계로 이전부터 준비해 오던 그것을 이번에 처음 실시하게 된 것이다.
“무슨 시험인데요?”
—아직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장소 섭외도 됐고 사실상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2급 이상의 검증된 영웅들과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까지!
이번 시험을 위해서 모인 인력들이 많았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니만큼 합격 기준이 상당히 높게 잡혀있습니다. 아마 많이들 승급에 실패하실지도 몰라요.
아무리 4급에서 루키로 떠오르는 영웅이더라도 쉽지 않은 시험이 되리라고, 양지철은 생각했다.
*****
영웅부에서 비밀리에 준비한 3급 승급 시험.
서류 합격자들에게도 정체를 감춘 그 시험의 날이 도래했다.
그동안 유지한 파티는 개인 훈련이나 청영사 활동에만 집중했다.
길드에 자금적인 여유도 생겼겠다, 다소 거친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승급 시험을 치르기 전에 부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몸을 최대한 아낀 것이다.
“도착했어요.”
메시지로 안내받았던 주소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평지였다.
거기에는 다른 차량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다른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행색을 보아하니 일반인이 아니라 장비를 갖춘 영웅들이었다.
[승급에 도전하는 파티는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와 주십시오.]
유지한 파티는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약 5분을 걸었다.
곧 상당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다들 승급에 도전하는 파티인 듯했다.
“여기서 뭘 하겠다는 거야?”
“곧 알려 주겠지.”
“아직 시간 안 됐어?”
“5분 정도 남았어.”
“어라? 예지야! 너도 왔구나!”
…….
…….
자리에 모인 인원만큼이나 꽤 시끌벅적한 분위기.
유지한 파티는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듯 바닥에 하얀 선이 그어져 있는 그 복잡한 대열에 합류했다.
“우와.”
“그 영화에 나왔던 사람들이다.”
“진짜네.”
“저거 되게 귀엽지 않아?”
다가오는 유지한 파티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영화로 인해 파티원들의 얼굴이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무엇보다 칠라의 존재감이 돋보인 덕분이었다.
“찍찍?”
거대한 친칠라를 데리고 다니고, 영화로 이름을 알린 4급 파티.
그것이 현재 외부에서 유지한 파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사뭇 달라져 버린 그들의 위상!
하지만 이번 승급 시험의 경쟁자로 보는 탓인지,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다 저희랑 경쟁하는 사람들이죠?”
“그렇죠.”
민유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등급 선별을 위해서 새로운 시험을 도입하겠다는 영웅부의 의도가 이해될 만큼 많은 수의 영웅들이었다.
[2:00 PM]
그리고 정확히 오후 2시가 된 순간.
유지한의 귀에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승급 시험을 시작합니다.
“응?”
“뭐라고?”
“방금 누가 말한 거야?”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영웅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샤라라락—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의 바로 옆에 투명하고도 푸르스름한 막이 생성되었다.
현대인이라면 매우 익숙할 수밖에 없는 결계였다.
—자리의 모든 영웅들은 결계 안으로 입장해 주셔야 합니다.
결계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자는 곧장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결계로 손을 뻗는데…….
파지직!
“앗, 따가!”
“……!”
손가락이 결계와 닿은 남자가 호들갑을 떨며 팔을 뒤로 뺐다.
그 남자의 행동을 본 영웅들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너 왜 그래?”
“야, 이거……. 평범한 결계가 아니야.”
잠시 후 다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의 앞에 펼쳐진 결계는 현장에서 사용되는 3급 결계의 개량형 버전입니다.
—이 결계를 통과하여 안쪽에서 20분 이상 머무르면 1차 시험 합격으로 처리됩니다.
—모든 파티원이 결계를 통과해야만 시간이 측정되며, 단 한 명이라도 합격 기준에 모자르다면 해당 파티는 시험에 탈락합니다.
개량형 결계를 통과해서 20분을 버티는 것.
그것이 1차 시험의 합격 기준이었다.
—시험에 탈락한 파티에게는 자동으로 휴대폰에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탈락 메시지를 받은 파티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 주시면 되겠습니다.
탈락한 파티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라.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조금 매정하기까지 한 말이지만.
최소 기준에 들지 못하는 영웅들을 걸러내기에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암만 그래 봤자 결계일 뿐이잖아.”
“얘들아, 뭐해! 들어가자!”
이 자리에 모인 영웅들은 5급과 4급 결계를 여러 번 드나들었던 경험자들.
결계로 다가가는 그들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와, 이씨! 진짜 따가워!”
“끄윽! 이거 너무 아픈데.”
“손등 위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거 같아……!”
영웅들은 두께가 손가락 한뼘 길이를 넘어가는 두꺼운 결계를 두고 크게 당황했다.
평소에 접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결계!
일부러 반발력을 높이고 불쾌감을 증폭시킨 개량형 결계를 넘어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끄아악!”
생각 없이 결계로 돌진한 남자 영웅은 온몸에 충격을 받고서 비명을 질렀다.
재빨리 몸을 뒤로 뺐지만, 큰 상처라도 입은 것마냥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였다.
“그렇게 아파요?”
“진짜로, 너무 아파요!”
그나마 결계를 먼저 넘어가는 건 각 파티의 마법사들이었다.
영웅 중에서도 마력에 아주 친숙한 그들에게는 결계로부터 돌아오는 반발력이 적었다.
“우웁…….”
“나 토할 거 같아.”
“어지러워.”
그럼에도 결계 안쪽에서 느껴지는 거북함은 마법사들에게도 전해졌는데.
그 감각을 이겨내지 못한 영웅들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바깥에 의료팀과 치유계 영웅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속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영웅은 임의로 탈락 처리 될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웅부의 판단으로 탈락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먼저 결계로 입장한 영웅들의 표정이 변했다.
당장 안에 들어간 사람들도 끝까지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난리 났네.’
유지한은 결계 밖에서 잠시 상황을 지켜봤다.
어떻게든 개량형 결계를 뚫고 들어가는 사람들!
신음과 기합까지 질러대는 그들의 열기가 후끈 전해져 오고 있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김시후는 유지한과 민유리를 한번 슥 바라보고는 결계로 다가갔다.
파지직!
김시후의 팔다리가 두꺼운 결계를 뚫고 들어갔다.
이내 머리까지 결계에 닿자 차분하던 머리칼이 정전기가 생긴 것처럼 위로 곤두섰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안으로 진입하고는.
뒤로 돌아서 파티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몸은 괜찮아?”
“마력 조금 두르니까 멀쩡한데요?”
제자리에서 점프도 하고 표정까지 아주 밝은 김시후였다.
저 멀리 주저앉은 영웅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유지한은 민유리를 보며 말했다.
“칠라는 괜찮을까요?”
“음……. 적어도 지금까지 결계가 방해된 적은 없었어요.”
“그러면 괜찮겠죠.”
“제가 먼저 갈게요. 칠라! 가자.”
“찍!”
민유리가 칠라와 함께 결계로 입장했다.
파지지직!
푸르스름한 막에 닿자 고슴도치가 된 듯이 곤두서는 칠라의 털.
결계 안으로 진입한 뒤에는 모든 털이 다시 가라앉았다.
옆의 민유리 또한 정전기가 일어난 머리칼만 손으로 정리할 뿐.
둘 다 특별한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슬슬 가 볼까.’
다음은 유지한의 차례.
검지 손가락으로 결계를 툭툭 건드려 보던 그가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재능이 넘치는 파티원들은 멀쩡했지만 그에게는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법.
파티에서 유일하게 승급의 걸림돌이 된다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 될 터였다.
지직.
“엥?”
그런데 유지한은 거의 아무런 저항감도 느끼지 않고 결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전기가 일어난 것 같이 머리털이 곤두서지도 않았다.
결계 바깥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몸이 매우 멀쩡한 덕분에, 크게 각오했던 그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뭐가 이렇게 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