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3급 (3)
“그쪽 차관님의 의견이다, 이거죠?”
—맞습니다.
꿀잼의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진 유지한의 휴대폰은 영웅부의 양지철과 연결되어 있었다.
3급으로의 승급 요청 건에 관해서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지철 씨도 같은 의견인가요?”
—저는 조금 빠르다고 생각중입니다만.
“그래요?”
—어디까지나 시기적으로 본다면 말이죠.
양지철은 유지한 파티의 3급 승급에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4급에서 3급으로 오르는 간격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실력이 있는 파티가 위로 올라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기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끼리 의견을 나눠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지철과의 통화가 모두 끝나고.
유지한은 이제 맛이 조금 옅어진 괴냥이 수염차를 마시며 말했다.
“우리가 처음 파티를 만든 지가…….”
“2달 조금 넘었죠.”
꿀잼이라는 길드에서 첫 파티가 탄생한 지 언 2개월.
유지한이 처음으로 파티의 메인 딜러가 되어 괴아리를 사냥한 것도 약 2개월 전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5급이었던 파티는 영웅부의 요청으로 4급 승급에 도전했고.
한 달조차 되지 않아서 4급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영웅부에서는 유지한 파티에게 또다시 승급을 권해 왔다.
그것도 이번에는 4급이 아닌 3급으로의 승급을.
“2달 만에 3급에 오른 파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일반적으로 3급에 오르는 영웅 파티는 1년 이상의 활동 경력을 가진다.
그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 검증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1년 이상 활동한 파티라고 해서 모두가 3급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2년, 4년 넘게 활동한 파티가 실력의 부족으로 그 아래 등급에 머무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저희가 평범한 4급 파티는 아니긴 하죠.”
“음.”
자만심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김시후의 말.
하지만 유지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장 파티원들의 면모를 하나씩 훑어보면 그의 파티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유리 씨는 3급이 올라도 무리가 없지.’
눈송이 길드에서 홀로 몇 년 간 괴냥이를 사냥해 온 민유리.
영웅계에서 1인 길드로 살아남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녀는 충분히 4급 이상의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칠라라는 든든한 파트너까지 데리고 있었으니.
본인이 원했더라면 진작에 3급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시후도 신인의 범주를 넘어섰고.’
꿀잼의 길드장이자 훌륭한 마법사인 김시후.
그가 영웅으로서 활동한 시간은 다른 평범한 신입 영웅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 많거나 비슷한 정도.
하지만 실력과 지금까지의 활약상은 결코 신인들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영웅 학원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마법사.
바바리안을 상대할 때 보여준 기이한 마법까지 고려한다면, 그는 3급은 물론이고 2급 마법사와도 능히 견줄 수 있으리라.
“솔직히 지한 씨만 두고 보자면 저희를 4급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걸요?”
“예?”
생각지도 못한 민유리의 말에 유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법으로 하늘을 휙휙 날아다니고, 오러도 사용하시고, 몬스터나 침입자를 상대할 때도 항상 앞장서서 활약하는 영웅을 누가 4급으로 보겠어요.”
“심지어 형은 정령까지 가지고 계시잖아요! 요새 영화 반응도 되게 뜨거운데, 실프가 공개되는 순간 진짜 난리 나겠죠.”
“제가 같은 파티원이 아니라 외부인이었어도 지금과 비슷한 반응이었을 거예요.”
민유리에 이어서 김시후까지.
유지한의 파티원들은 그를 크게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그에 유지한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쪼끔 감동입니다.”
“제가 누구 덕분에 꿀잼에 들어왔는데요.”
“찍!”
칠라 또한 같은 생각이라는 듯 손을 들어보였다.
녀석이 이 대화를 이해하긴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3급에 오르면 세상에 실프를 공개하는 것도 괜찮겠지.’
유지한이 실프를 두고 잠시 생각에 빠진 순간.
김시후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어쩔까요?”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진짜요?”
“내가 지철 씨한테 말해 둘게.”
유지한은 쿨하게 승급에 도전하기로 했다.
떨어진다고 한들 파티에 큰 불이익은 없었으니까.
뭐가 됐건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었다.
*****
청영사에서 입교생 전용 사무실이 모여 있는 층.
나이스 길드의 민주용은 벽 뒤에 숨어서 어느 사무실의 유리창을 바라봤다.
“끄으응…….”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유리.
그는 그 너머의 형체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사무실은 유지한 파티가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유리창에 비치는 커다란 회색의 덩어리는 칠라의 것.
그렇다면 그 옆에 있는 형체는 민유리가 분명했다.
‘최근에 유리 씨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
어떻게든 민유리를 나이스 길드로 데려오고자 했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민주용은 아직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길드와 파티에 소속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견우와 직녀!’
서로 다른 소속의 영웅으로서 활동 중이지만.
민유리를 향한 민주용의 관심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
그때 불투명한 형체가 한쪽으로 움직이더니, 닫혀있던 사무실의 자동문이 열렸다.
이내 사무실 밖으로 나온 사람은 민주용이 애타게 기다리던 민유리였다.
‘온다!’
그녀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본 민주용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뒤로 몸을 뺐다.
그리고 그녀가 가까워지는 타이밍에 맞춰 마치 평범하게 이동 중인 것처럼 앞으로 걸었다.
“어? 주용 씨?”
“이게 누구야, 유리 씨! 안녕하세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주용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나이스 길드는 자체적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청영사의 사무실이 모인 곳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주용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서 답변을 떠올렸다.
“저, 저는 잠깐 다른 파티 사무실에 들렀어요.”
“그러셨구나.”
“유리 씨 파티도 여기 입주하신 거예요?”
“맞아요.”
“잠깐 봤는데 이쪽 사무실이 생각보다 깨끗하고 좋더라고요.”
“정말로요! 공짜로 이용하기가 미안할 정도예요.”
“맞다. 유리 씨가 나온 영화는 잘 봤어요! 정말 멋지게 나오셨던데요?”
“고마워요.”
영화를 칭찬받은 민유리가 작게 미소 지었다.
민주용은 그런 그녀의 웃음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마 전에는 에 나온 민유리의 얼굴까지 캡쳐해서 비밀 폴더에 저장해둔 그였다.
“요즘 파티 활동은 어때요? 혹시 같은 파티원 때문에 힘드시진 않고요?”
민주용은 유지한의 꼬투리를 잡고자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작은 여지라도 있다면, 언제든지 유지한 파티에서 그녀를 빼내올 생각이 있는 그였다.
“활동은 상당히 잘 되고 있어요. 그 영화에 나온 것처럼요.”
“…….”
하지만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 민유리였다.
“아마 저희는 조만간 승급에 도전할 거 같아요.”
“……네? 벌써요?”
그녀의 말을 듣고 민주용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거 4급 교류회에 참석했던 민주용 파티와 유지한 파티는 승급한 시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3급으로 승급을 도전하다니.
“영화가 꽤 잘 됐다고는 해도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어차피 떨어질 거 같은데.”
“떨어지다뇨?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에요.”
짧은 대화를 마친 민유리는 이내 민주용을 지나쳐 갔다.
조금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던 민주용은 무척 아쉬운 눈빛이었다.
‘3급으로 승급을 하겠다고…….’
자리에 남은 그는 민유리가 남기고 간 말을 곱씹었다.
만약 그녀가 3급으로 올라간다면.
물리적 거리 뿐만 아니라 심적인 거리 또한 훨씬 더 멀어져 버릴 터.
‘나도……. 나도 승급하면 되잖아.’
민주용이 주먹을 꽉 하고 쥐었다.
한 사람을 향한 연심이 승급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괴아리가 4급으로 등급이 변경될지도 모른다는 소식 들었어요?”
“해외 여론만 보면 거의 확실시 되는 분위기던데.”
“두 분 잠시만 비켜 주세요! 책상에 서류 좀 올려 둘게요.”
쿵!
영웅부의 승급지원실.
접수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마감시간까지 들어온 승급 희망 건을 프린트하여 책상에 올려놓았다.
어느 여직원이 자신의 눈높이까지 올라올 정도로 높게 쌓인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방금 들어온 2급 서류죠?”
“네.”
“키아, 오늘 퇴근은 글렀네요.”
여직원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몇백 장을 넘어가는 그 서류는 모두 2급 승급을 희망하는 3급 파티의 서류들.
서류 1장이 파티 1개의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최근 몇 달간 접수된 서류 중에 가장 많은 양이었다.
“그냥 다 컴퓨터로 처리하면 안 되나.”
“위에서 까라면 까야죠.”
“하여간 이런 부분은 꼰대 같아서…….”
원칙상 승급과 관련된 서류는 실제 종이로 출력해서 담당자의 사인을 적은 후 보관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직원들은 주기적인 야근이 필수적이었다.
“이건 3급 서류.”
쿵!
누군가가 바로 옆 책상에 3급 승급을 희망하는 4급 파티의 서류를 올려놓았다.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양이었다.
“다들 이번 달에 무슨 일이 있나?”
“승급 기준이 더 강화되기 전에 올려놓으려는 거 아닐까요?”
“하여간 눈치들은 빨라서.”
돌연변이 발생 따위의 이상 현상이 늘어감에 따라 영웅부는 승급 기준의 강화를 위해서 밑작업을 준비 중이었다.
실력이 부족한 파티가 상위 등급으로 오른다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게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서둘러 승급에 도전하는 파티가 많았다.
“이중에 5분의 1은 쳐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욕 안 먹으려면 정신 차려야죠.”
최종적으로 승급에 성공하는 파티는 영웅부 내 최종심사관으로 임명된 이들이 결정하지만.
특정 기준 이하의 파티는 서류 심사에서부터 걸러지게 된다.
그 담당자 중 한 명은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 달에 승급한 인원으로 이번 달의 합격자를 추정해 본다면.
아마도 매우 많은 파티가 고배를 마시게 되리라.
서류 탈락 뒤에 들어오는 이의 제기 또한 여기 모인 직원들의 몫이었다.
“이번 승급은 정말 치열하겠어요.”
“자자, 이제 다시 일 합시다! 12시 전에는 퇴근하는 걸로!”
직원들은 쌓인 서류 뭉치를 나누어 자기 자리로 가져갔다.
자리에 앉은 어느 남직원은 받은 서류들을 모니터 앞쪽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바닥을 비비며 맨 위에 있는 서류를 살폈다.
“그 영화 찍은 사람들도 지원했구나.”
맨 위에 있는 서류는 유지한 파티의 것이었다.
영화 덕분에 조금은 익숙해진 얼굴들.
남직원은 그들의 유명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영웅부 시스템에 파티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모니터에는 그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3급 승급에서 서류 합격 내정자로 지정된 파티입니다.]
[자세한 문의는 아래의 번호로 연락 바랍니다.]
[……]
4급이면 모르겠지만, 3급 서류 심사에 합격 내정자가 있다니?
다소 파격적인 소식을 접한 남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말했다.
“재희 씨! 이번에 서류 합격 내정자가 있다는데요?”
“아! 그거 저도 들었어요.”
“이전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나요?”
“있긴 있었죠. 그, 예전에 케로즈의 김현태 파티도 그랬고.”
“오……. 그러면 이 사람들이 과거의 김현태 파티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
밤늦은 시각.
김시후는 홀로 사람이 드문 청영사의 훈련소로 입장했다.
유지한이나 민유리는 진작에 집으로 돌아간 상황.
사람이 거의 없는 훈련소에서 김시후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이 예약한 개인 훈련실에 입장했다.
“후우.”
그는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들어오자마자 편하게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보물인 마법 지팡이를 들고서 훈련실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느낌이 좋아.’
그가 동료들에게 말도 없이 훈련소에 온 이유.
다름 아닌 개인 마법 연구를 위해서였다.
“어제 어디까지 했더라.”
김시후는 휴대폰을 조작했다.
메모장 앱을 열자 빽빽하게 적혀 있는 글자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어제까지 작성한 그 메모의 내용은 전부 버프 계열 마법과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백화점에서 바바리안과 마주쳤을 당시.
유지한에게 사용했던 마법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해.’
3급으로의 승급에 도전하기로 한 입장.
최근 들어 파티가 영화를 통해 유명세도 얻고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김시후는 앞으로 마주칠 적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속 갈증을 느꼈다.
“쓰읍, 느낌을 알 것도 같은데.”
당시 사용했던 버프 마법은 약 10% 가량을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도 현존하는 버프와 비슷한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유지한에게 알려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김시후였다.
‘어떻게든 지한이 형을 강하게 만든다!’
김시후는 최근 들어 자신의 성장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최우선 목표는 유지한이 강해지도록 지원하는 것!
파티의 전위가 강해진다면 그 혜택은 자연스럽게 마법사인 김시후에게도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역시 엘프의 마법이구나.’
몇 차례의 검토를 통해 이 의문의 버프가 엘프의 마법이라는 건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과거를 떠올려 봐도 엘프의 마법이라는 건 전혀 배운 적이 없는 김시후였다.
‘역시 엄마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겠지.’
김시후의 어머니, 에르나 하스.
어쩌면 이 마법은 과거 이세계의 왕족이었다던 엄마와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김시후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