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22화 (122/300)

122화. 3급 (2)

“지철 씨. 이것 좀 봐주세요.”

“이리 주세요.”

영웅부의 양지철과 그의 선배 직원은 다음 승급 시즌을 앞두고 업무에 한창이었다.

두 사람은 영웅부에서도 승급 최종 심사에 관여하는 중요 인물들.

하얀 서류 뭉치를 뒤적이던 직원이 양지철에게 말했다.

“이번 달은 유독 3급으로 올라가려는 파티가 많네요.”

“기준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으니까요.”

영웅부의 승급을 심사하는 기준은 매년 더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불과 3년 전에 3급에 오른 파티와 몇 달 전에 3급으로 오른 파티의 수준을 비교한다면.

대체로 후자가 더 좋은 활동과 스펙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닫혀 있던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응?”

“누구시죠?”

“차관님의 수행비서를 맡고 있는 광성욱 주무관입니다.”

들어와서 명함을 먼저 건넨 사람은 영웅부 차관의 수행비서였다.

같은 영웅부 소속이긴 하지만 서로 거의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차관님께서 제게 직접 부탁하신 내용이 있어서 전달드리려고요.”

“부탁하신 내용이라면…….”

“혹시 최근에 이 영화에 출현한 4급 파티를 알고 계십니까?”

양지철은 그가 건넨 휴대폰 화면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해당 영화를 찍은 건 유지한 파티.

그가 직접 승급을 부추긴 파티였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만.”

“차관님께서 그분들의 승급을 고려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관님께서 직접이요?”

양지철은 수행비서가 전해 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유지한 파티가 청영사에 합격했고, 영웅 영화가 반짝 인기를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결국 세계적으로 흔한 4급 파티 중 하나.

한 정부 기관의 차관급이나 되는 인사가 직접 언급할 정도의 위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한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게…….”

“영웅부에 내부 추천 제도가 있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3급 이상으로의 승급은 저희도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등급제로 운영되는 영웅 파티의 시스템.

그중에서도 3급은 정말 많은 영웅들이 올라서길 바라는 등급이다.

사실상 현역 영웅 중 절반 이상의 종착지가 3급 파티라고 볼 수 있었다.

그 이상으로 올라가려면 무난함을 뛰어넘는 특별함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유지한 파티가 3급에 오르는 건 시기가 너무 빨라.’

양지철은 유지한 파티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5급일 때는 본인이 직접 추천하기까지 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3급 파티가 된다는 건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단순히 마력을 보유한 것에서 벗어나 마력을 다루기까지 하는 3급 몬스터들!

유지한 파티가 종종 본인들의 등급을 훌쩍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기는 했지만.

아직 데뷔한지 1년도 지나지 않은 파티를 3급으로 올려놓는다는 건 그 자체로 불안한 일이었다.

“차관님께서 자녀분의 추천으로 영화를 시청하신 이후, 그 백화점의 영상도 따로 찾아보셨습니다.”

“……보안 C등급의 영상 말입니까?”

“네.”

유지한 파티가 바바리안들을 쓰러뜨렸던 백화점에서의 일.

영웅부 차관은 그 당시의 무편집 영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영웅부의 DB에서도 관계자 외 열람 제한이 걸려 있긴 하나, 차관의 권한이라면 문제가 없었을 터.

“백화점에서 유지한 파티가 보여 준 활약이 아주 인상적이었다는 평가였습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그 영상 속에서 보였던 건 본인들도 우연히 사용했다는 힘입니다. 재현도 불가능하고요.”

부천시의 백화점에서 바바리안들을 제압하는 유지한 파티의 모습은 분명 3급 이상의 영웅으로 부르더라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4급으로 취급하기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 영상의 편집을 담당했던 직원은 조작된 영상이 아닌지 끝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한치의 조작도 없었다는 사실만 재확인될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힘은 그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것.

영상 속에서 보여졌던 파티의 화력이 그들의 평균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찌됐건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만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차관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수행비서는 사무실을 나섰다.

양지철과 함께 있던 동료 직원은 다시금 업무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양지철은 책상을 내려다보며 홀로 생각에 빠졌다.

‘강요까지는 아닌 모양인데.’

이건 위에서 유지한 파티를 3급으로 올리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자격이 있는지 한번 검토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유지한 파티가 3급이 되면 사실상 최단기간 승급이야.’

지금껏 한국에서 0년차 파티가 3급에 오른 사례는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이미 경력과 실력이 충분한 영웅들이 기존의 파티를 나온 후 새로운 파티를 만들어서 재승급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준 이하의 파티는 심사 과정에서 다 걸러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심사에 오르는 게 유지한 파티라면?

승급 심사관들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것은 심사에 참여하는 양지철 본인조차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

주사위에서 윤도하의 특별 교육이 기다리는 날.

간단하게 짐을 챙긴 유지한이 길드 사무실을 나섰다.

다른 파티원들은 이미 각자의 교육을 위해서 이동한 상황이었다.

“유지한 씨.”

“……?”

그런데 그때 정장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을 불렸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꿀잼 길드의 유지한 씨. 맞으시죠?”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함을 건넸다.

[Happy Time]

- 신 재 우 (Sin Jae Woo)

- 주임 · 인사팀

- 서울특별시 중구 …….

“해피 타임?”

“네. 인사팀의 신재우라고 합니다.”

그는 10대 길드에 속하는 해피 타임 길드 인사팀에 소속된 직원이었다.

‘뭐지?’

유지한은 과거에 해피 타임과 아무런 연이 없었다.

기껏 생각해 봐야 특정 2급 MA에서 해당 길드의 파티와 몇 번 마주친 정도뿐.

그것도 정체를 꽁꽁 숨긴 채 말이다.

“무슨 일이세요?”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여기서 바로 말씀하시죠.”

“자리를 옮길 수는 없겠습니까?”

“제가 지금 일정이 있어서 어렵습니다. 긴 이야기라면 다음에 다시 찾아와주세요.”

“음…….”

주변이 탁 트인 복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던 신재우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혹시 저희 해피타임 길드로 들어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뭐요?”

느닷없는 말에 유지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존 길드를 탈퇴하시고 해피타임에 합류할 의사가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소속된 길드를 나와서 새로운 길드에 합류하라는 인사팀의 직원.

“지금 이거 설마……. 이직 제안입니까?”

“맞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신재우는 정말로 유지한에게 이직을 제안하고 있었다.

유지한은 그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영웅의 이직이란 건 그 무게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저 엄연한 1개 파티의 파티장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안을 주시다뇨. 그리고 청영사 입교생이 길드를 옮기게 되면 지원 사업에서 자동으로 탈락 처리 되는 것도 알고 계세요?”

“그건 저희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연봉과 별도로 충분한 위로금을 드리겠습니다.”

“…….”

청영사에 탈락하는 대신 그에 준하는 돈을 주겠다는 선언이었다.

인사팀 직원이 직접 나와서 말할 정도라면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내용일 터.

살짝 떠보는 식의 발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유지한은 곧바로 거절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아무리 그래도 해피 타임은 무시 못 할 영향력을 가진 거대 길드.

자신을 원하는 이유 정도는 들어보고 싶었다.

“왜 저를 데려가려고 하시는 거죠?”

“그건…….”

“혹시 이번에 개봉한 영화 때문입니까?”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해피 타임 길드는 그 영화를 아주 감명 깊게 본 모양이었다.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답변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건을 들어보시고 천천히 생각을 하신 뒤에…….”

“아뇨!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한들 제 선택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유지한은 이직 제안에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하고 자리를 떴다.

신재우는 안타까운 표정이었으나 바쁘다는 그를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주사위로 가는 차량에 탑승한 유지한은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그 뒤에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가 거대 길드에게 이직 제안을 받았다니.’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케로즈에서 쫓기듯이 나왔던 유지한이었다.

제대로 기록된 경력이 없고 나이만 차 버린 상황이라 대체 어느 길드에서 자신을 데려갈지 의문이었다.

중견 길드는 물론이고 중소 길드에서도 무시받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제는 거대 길드에서 자신을 모셔가겠단다.

‘웃기네.’

지독한 아이러니에 유지한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지한. 뭐 좋은 일 있었어?”

“아, 그게 말이죠…….”

주사위의 훈련소에 도착해서도 들뜬 낌새가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유지한의 기분 변화를 감지한 윤도하는 그 사정을 물었다.

“……해피 타임에서 너한테 이직 제안을 했다고?”

“당연히 거절했지만요.”

유지한은 살짝 으스대며 말했다.

그런데 짧은 이야기를 전해들은 윤도하의 표정은 어째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나도 못 가진 영웅을 거기서 데려가려고 했어?”

“예?”

“감히?”

윤도하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잡혔다.

그로서도 주사위로 데려오지 못했던 정령사를 감히 영입하려고 했다니.

해피 타임의 오만방자한 결정에 화를 내는 그였다.

드드드드——

유지한은 땅이 약하게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진이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정도.

조금 당황한 그는 자세를 살짝 낮췄다.

‘설마…….’

땅의 정령사인 윤도하.

그의 감정 변화로 인해서 지면이 이렇게 흔들리는 것일까.

“해피 타임 길드장이 깝치는 애새끼긴 했는데.”

“…….”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한 거대 길드의 길드장을 대놓고 애새끼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양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윤도하가 포함되겠지.

“나중에 그쪽에 단단히 말해 둬야겠어.”

윤도하가 표정을 풀었다.

그의 이마에 있던 주름이 사라지자 이윽고 지면의 흔들림도 멎었다.

정말로 그로 인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괜히 말했나.’

유지한은 잠잠해진 땅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윤도하는 이전에 꿀잼의 인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사람.

함부로 그것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나저나 엄청나네.’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만으로 자기 주변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힘.

이것이 정말 고위 정령사의 힘이라면.

언젠가 유지한 또한 도달해야 하는 수준일 터였다.

*****

“후욱…….”

교육을 마친 김시후는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덜덜 떨려오는 팔과 다리.

오늘은 마법사도 체력이 중요하다는 명목으로 교육 시간 내내 운동을 한 참이었다.

그때 정영욱이 다가와 그에게 차가운 캔 음료를 건넸다.

“오, 잘 마실게!”

“시후야. 너희가 찍은 영화 잘 봤어.”

“너도 그거 봤어?”

정영욱은 주변의 소문을 듣고 유지한 파티의 영화를 시청했다.

처음에는 별 기대 없이 본 영상이었지만.

그게 생각보다 볼만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는 그였다.

“저번에 치렀던 대련에서도 느꼈지만, 유지한 씨가 굉장히 잘 싸우시더라.”

“그래? 역시 그렇지?”

“영상에서 그분이 쓰던 건……. 분명 마법이었지?”

“맞아.”

“마법을 쓰는 전사. 솔직히 말하면 탐날 정도야.”

유지한이 고평가를 받자 김시후는 슬며시 웃었다.

파티원을 향한 칭찬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그였다.

하지만 김시후는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너 따위에겐 과분한 사람 아닐까?’

정영욱이 속으로 삼킨 말이 있었다는 걸.

“아차! 내가 그거 말했었나?”

“뭘?”

“조만간 내 파티가 3급으로 승급할 거라고.”

정영욱 파티는 슬슬 3급으로의 승급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활동 기간은 1년을 조금 넘기는 정도였지만 충분한 자신감을 가진 그들이었다.

1년 이상 활동했던 3급 파티도 그들에게 한 수 접어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되게 빠르게 올라가는구나.”

“오히려 청영사 활동 때문에 늦춘 감이 있었지.”

“잘 됐으면 좋겠다.”

“뭐, 그리 어려울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해. 길드에서도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승급 심사를 대비하여 주사위 내 상위 파티와 대련을 준비해 주기도 하고.

이전에 3급으로 승급한 파티의 자잘한 노하우를 알려 주기도 하는 등.

주사위 길드는 승급이 유력한 정영욱 파티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우웅—

그때 김시후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영웅부의 양지철이 걸어온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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