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21화 (121/300)

121화. 3급

김시후는 휴대폰으로 꿀잼 길드의 메일함을 열었다.

분명 얼마전까지만 해도 악성 스팸메일을 제외하면 조용하기만 하던 메일함.

하지만 이제는 며칠 사이에 쏟아진 새로운 메일들이 그를 반겼다.

[유지한 파티 인터뷰 요청 드립니다…….]

[YC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내드립니다. 방송 활동에 관심이 있으신지 의견을 묻고자…….]

[들리는 라디오 ‘히어로 사운드’입니다. 유지한 파티를 다음 라디오 게스트로 섭외하고 싶습니다…….]

…….

…….

1분 뒤에 새로고침을 하니까 또 못 보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하나하나 대응하기가 힘들 정도로 메일이 쏟아지는 것이다.

메일을 보낸 이들의 의도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이것이 개봉된 영화의 효과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김시후는 어느 언론사에서 보낸 인터뷰 요청 메일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영화 효과가 죽여주네요.”

“그러게.”

이것은 유지한의 예상을 뛰어넘는 주목도였다.

그는 과거 김현태 파티가 무명이었던 시절, 케로즈에서 10명이 넘는 홍보팀이 열심히 뛰어다닌 뒤에야 김현태 파티가 얻었던 관심을 기억했다.

그런데 파티의 홍보만을 담당하는 인력을 통해서 얻었던 그때의 관심보다 지금 영웅 영화 하나만으로 발생한 관심이 더 큰 듯했다.

‘장난이 아니구나.’

유지한은 이제 슬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파티가 생각 이상으로 유명해져 버렸다는걸.

시범삼아 찍어 본 영화의 효과는 너무 대단했다.

“저희 부모님도 영화 잘 보셨다고 하셨어요.”

“찍찍!”

민유리의 부모님은 를 시청하고 딸에게 감상평을 남겼다.

그것도 상당히 재밌게 봤다는 평가였다.

해당 영화가 영웅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거북하지 않게끔 잘 만들어진 덕분이었다.

“길드 메일로 들어온 제안이……. 언론사 인터뷰 요청만 7건이 넘어요. 진짜 너무 많네.”

“일단 길드명으로 SNS 계정을 하나 파자.”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꿀잼의 이름으로 영웅 전용 SNS 계정을 하나 만들도록 했다.

나라에서 인증받은 영웅들만 계정을 만들 수 있는 특수한 서비스였다.

“계정 만들었어요.”

“첫 게시물로 간단하게 인사 문구 적고……. 그 뒤에 길드로 좋은 제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답변을 드리는 게 늦어질 거 같다는 식으로 써서 올려.”

꿀잼에는 현재 유지한, 김시후, 민유리 딱 3명의 영웅만이 소속되어 있다.

길드와 파티로 들어오는 각종 제안에 답변을 하고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는 인력 따위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들어온 제안들에 답변하는 것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가는 일.

하루종일 메일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미리 공지를 해 두는 것이다.

이어지는 유지한의 지시를 듣고 있던 민유리가 말했다.

“대처가 능숙하시네요.”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요.”

김현태 파티가 조금씩 유명해지는 시점에서 케로즈는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하도 바빠진 탓에 정체를 숨기고 있던 유지한까지도 길드장 박중섭의 요청으로 길드의 잡일을 조금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변에서 배운 것들이 있었다.

영웅 활동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었으나 그 당시의 경험이 지금에 와서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역시 뭐든 경험이 중요하지.’

경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유지한이었다.

*****

“점심 먹고 합시다!”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뭐였지?”

“카레!”

오후 12시. 많은 회사들의 점심시간.

그것은 길드 케로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2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던 케로즈 매니지먼트 부서의 직원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부서의 총괄팀장 이현재는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팀장님은 안 가세요?”

“난 오늘 점심은 패스. 아침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럼 저희만 다녀오겠습니다.”

“맛있게들 먹고 와.”

그의 부하직원들은 식사를 위해서 아래층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사무실은 매우 한적해졌다.

홀로 남은 이현재는 의자의 등받이를 뒤로 쭉 기울이며 그 한적함을 즐겼다.

가끔은 이렇게 조용한 사무실도 나쁘지 않았다.

“이참에 그거나 봐야겠네.”

이현재는 뒤로 기울인 등받이를 유지한 채 손을 뻗어서 책상을 더듬었다.

책상 위에 있던 휴대폰이 곧 손에 잡혔다.

이내 휴대폰의 화면을 조작하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웅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

그곳의 인기 차트를 클릭하자 원하던 결과가 보였다.

유지한 파티가 주연으로 촬영했다는 영웅 영화!

2급과 3급 파티가 주연인 영웅 영화 사이에서 당당하게 실시간 인기 순위 5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였다.

“역시 지한 씨가 괜찮은 영웅이었다니까.”

이런 방식으로 인기를 얻을 줄은 몰랐지만.

이현재는 예전부터 유지한이라는 사람을 썩 괜찮은 사람으로 여겼다.

케로즈에 있던 당시, 그는 매니지먼트 부서에서 전해주는 각종 소식이나 정보들을 항상 귀담아서 들어주었던 몇 안 되는 영웅.

귀찮은 협조 요청에도 정말 어려운 상황이 아니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추방될 사람은 아니었어…….’

이현재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유지한 파티의 영화가 공개된 직후 케로즈 내부에서 유지한을 알던 사람들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길드에서 내쫓기듯 나갔던 영웅이 외부에서 상당한 관심을 얻게 되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일부는 그가 길드를 나간 게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너무 늦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이현재는 곧바로 영화를 구매했다.

듣자하니 최근에는 영화나 소설 따위를 불법으로 공유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던데.

취미 생활에 사용할 돈도 아까워서 그런 걸 찾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시작한다.’

화면에 HST 스튜디오의 로고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약 30분.

파티가 시위대를 제압하는 장면부터 황소 괴구리의 떼를 사냥하기까지.

무선 이어폰까지 착용한 이현재의 눈은 휴대폰 화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후우……!”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영화를 감상하던 이현재.

그는 영화의 끝에서 엔딩 스크롤이 올라오자 한숨을 토했다.

“지한 씨가 원래 이런 영웅이었나?”

김현태 파티에서 항상 묵묵히 서포터 역할만을 맡았던 유지한이었다.

매니지먼트 부서의 사람으로서 김현태 파티가 촬영한 영상을 본 적 있는 이현재도 그가 딜러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데?”

전에는 보지 못했던 스킬을 쓰기도 하고, 동료들과 능숙하게 연계를 보여 주기도 하고.

영상 속 유지한은 그 누구보다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과거의 이현재가 알던 사람과 동인인물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그는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주인공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영상 속에 나온 게 4급 MA라고는 해도…….’

영웅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유지한이 선보인 실력은 4급 영웅의 것을 훌쩍 뛰어넘었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전과는 확연히 완전히 달라져 버린 유지한의 존재감.

길드에서 나간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변화가 일어난 걸까.

제3자의 입장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지금까지 김현태 파티에서 억눌려왔던 것일지도…….

“미아 씨한테도 알려 줘야겠다.”

이현재는 이미아에게 영화의 링크를 메시지로 공유했다.

유지한과 친분이 있었던 그녀라면 아마 이 영화를 보고 꽤 기뻐하리라.

하지만 같은 시각.

김현태 파티의 화보를 촬영 중인 그녀는 메시지를 곧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다리를 가볍게 꼬아 주시면……. 아, 지금 자세 좋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원색의 배경지를 뒤로 두고 커다란 조명들과 함께 이뤄지는 촬영.

분홍색 자켓을 걸친 이미아는 사진작가의 요청에 따라 어색하게 포즈를 취했다.

패션 잡지사의 제안으로 들어온 김현태 파티의 인터뷰 겸 화보 촬영.

데뷔 7년차의 영웅이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이런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다음은 김현태 님과 이미아 님의 동시 촬영 진행하겠습니다!”

검정 가죽 자켓을 착용한 김현태가 이미아에게 다가왔다.

선남선녀가 한데 모인 그 장면은 어떤 화보집에 실리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조금 더 바짝 붙어서 다정한 모습으로 갈게요!”

“네!”

힘차게 대답한 김현태가 한쪽 팔을 뻗어서 이미아의 반대쪽 어깨를 감쌌다.

일순간 미간을 찌푸린 이미아가 몸을 옆으로 빼려고 했지만.

김현태는 붙잡은 그녀의 어깨를 놓아주지 않고 되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전히 카메라를 바라보는 김현태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일하는 중이니까 협조 좀 하지?”

“…….”

김현태는 끝까지 웃는 얼굴로 촬영을 이어 갔다.

흡사 프로 모델과도 같은 태도였다.

“미아 님 표정이 너무 딱딱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친근한 모습으로…….”

우여곡절 끝에 2인 화보 촬영이 끝나고.

김현태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미아를 한번 쏘아본 뒤에 탈의실로 이동했다.

탁! 탁!

여성 탈의실로 들어온 이미아는 김현태의 손길이 닿았던 어깨를 불쾌한 듯이 손으로 털어댔다.

김현태의 말마따나 이것이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은 파티의 마법사 임시연이 그녀에게 말했다.

“미아야.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너 이런 활동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아는데,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이미아와 달리 임시연은 이번 촬영을 즐기고 있었다.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명품과 유명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어볼 수 있었으니까.

원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니,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강우는 파티에 합류한지 얼마 안됐는데도 즐기면서 찍잖아.”

유지한의 빈 자리를 대신 차지한 김강우.

그는 이미아와는 다르게, 그가 형제처럼 지내는 김현태와 마찬가지로 능숙하게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었다.

“너도 강우 찍는 거 보면서 참고해 봐.”

“관심 없어.”

이미아는 굳이 김강우의 촬영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최근 들어 김강우가 그녀에게 부쩍 말을 걸어오거나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같은 파티원이기는 하지만 썩 가깝게 지내고 싶은 인물은 아니었다.

‘지금 이런 걸 찍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이미아의 생각에 김현태 파티의 현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유지한의 탈퇴 이후 사냥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고, 탱커인 황준호는 지금껏 활동하면서 몇 없던 부상을 입기도 했다.

김현태 파티의 여러 장점 중에서도 안정성이 적잖게 떨어졌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외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그녀로서는 썩 달갑지 않았다.

“휴대폰 여기 있습니다.”

“아, 고마워요.”

매니저 역할로 따라온 케로즈의 직원은 이미아에게 휴대폰을 건네 주었다.

한동안 의미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이내 도착한 신규 메시지를 확인했다.

매니지먼트 부서의 이현재가 보낸 메시지였다.

‘아, 이건…….’

메시지에 포함된 링크를 클릭하자 유지한 파티가 촬영했다던 영화의 정보가 나왔다.

과거의 유지한이 몇 년 전에 김현태 파티에서 제안했었던 괴구리 사냥법.

이미아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따가 봐야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불편한 촬영으로 인해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편하게 풀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