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영화 배우 (2)
영화 감독 하성태는 유지한 파티로부터 촬영용 드론을 돌려받았다.
보통 영웅들에게 촬영 장비를 빌려주면 자주 망가지곤 하는데, 유지한 파티는 모든 장비를 약간의 흠집도 없이 깔끔하게 반납했다.
그러자 하성태는 되레 불안해졌다.
‘너무 멀쩡하게 돌아오니까 느낌이 영 좋지 않네.’
격한 전투를 치르는 도중에 촬영 장비가 손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안에 있는 메모리 카드만 멀쩡하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지만.
빌려줬던 드론이 이렇게나 멀쩡하다면 둘 중 하나였다.
1. 촬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2. 드론을 제어하는 일에 아주 능숙하다.
당연하게도 보통은 1번의 경우가 많았다.
‘영상 소스가 별로면 재촬영을 해야 할 텐데.’
아무리 뛰어난 편집자가 작업한다고 한들, 영상 편집은 만능이 아니다.
밑바탕이 되는 소스의 질이 떨어지면 결과물의 품질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재촬영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씁……. 확인해 보면 알겠지.”
하성태는 십자 드라이버를 가져와서 드론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기계 안쪽에 꽂혀 있는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내부에 있는 메모리 카드도 깨끗한 외관만큼이나 아주 멀쩡했다.
딸깍!
메모리 카드를 컴퓨터와 연결하자 안에 들어 있는 자료들이 자동으로 모니터에 떠올랐다.
하성태는 그중에서 가장 먼저 촬영된 영상을 재생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메모리 카드에는 시범 작동에서 촬영한 영상까지 남아 있었다.
그는 필요없는 영상들을 바로바로 넘겨가며 괴구리가 등장했다던 생태 공원의 영상을 찾아다녔다.
“이거다.”
공원 앞에서 촬영된 영상이 화면에 떠올랐다.
하성태는 잠시 팔짱을 끼고 영상을 지켜보았다.
“저게 정령이란 말이지.”
유지한의 품속에서 살짝 초록빛을 띄는 물체.
바람의 정령인 실프가 숨어 있는 것이었다.
유지한의 요청 덕분에 정령이 보이는 흔적들은 편집 과정에서 다 제거해야만 했다.
이번 기회에 공개해 버리면 단숨에 관심을 끌 수 있을 텐데.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음?”
드론을 조종하는 역할은 민유리라는 여자 영웅이 맡았다.
그녀는 드론의 스텔스 기능을 활성화한 뒤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서 머무르게 했다.
카메라 각도는 아래로 살짝 기운 것이, 파티원들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 구도였다.
“구도가 제법인데? 이전에 촬영 경험이 있나?”
영상의 시작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드론과 함께 전달했던 촬영 가이드에 적힌 내용만큼이나 훌륭한 구도였다.
하성태는 손으로 턱을 괴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영상에 처음으로 담긴 사건은 공원 입구 근처에서 IUPC의 시위대와 마찰을 빚는 장면이었다.
“아휴, 저런 나쁜 놈들.”
시위대가 경찰을 발로 밟아 대는 장면에서 하성태는 눈을 찌푸렸다.
이후 유지한과 파티원들이 나서서 경찰을 구해 내고 시위대와 대치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건 살릴 수 있겠다.”
하성태는 끌려 나간 경찰을 도와준 것이 꽤 보기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초반부에 삽입한다면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유지한 파티는 공원 안쪽으로 입장하고.
드디어 주요 촬영지인 저수지가 등장했다.
“……낚싯대?”
갑자기 낚싯대를 꺼내는 유지한 파티.
하성태가 조금 당황한 눈으로 그걸 지켜보는 찰나.
그들은 이상한 방법으로 미끼를 매달더니 저수지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개굴?
“헉!”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짜로 괴구리를 낚는 장면이 나왔다.
수면 위로 치솟은 괴구리를 보며 하성태가 입을 떡하고 벌렸다.
황당함을 뛰어넘어서 놀랍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심지어 잘 싸우잖아!”
민유리의 선공격 이후 유지한이 검으로 녀석을 마무리하는 것까지.
잔실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전투에는 상당한 박진감이 있었다.
“잠깐만.”
하성태는 다른 드론의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거기에는 더 근접 거리에서 촬영된 영상이 담겨 있었다.
‘이거 어쩌면……!’
아직 아무것도 건들지 않은 원본 영상임에도 보는 맛이 있었다.
다시금 자리에서 낚시를 하는 유지한 파티를 보며 하성태는 눈을 빛냈다.
촬영된 분량의 반의 반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전에 진석우를 통해 봤던 영상처럼 이번 영상에서도 흥행의 조짐을 보았다.
“오늘 자는 건 포기한다.”
이렇게 좋은 소스를 놔두고 잠을 잔다는 건 사치였다.
하성태는 냉장고에서 타우린과 카페인이 잔뜩 들어 있는 에너지 음료를 꺼냈다.
밤샘 편집 작업의 시작이었다.
*****
김시후는 일본에 있는 아버지 김건오와 통화를 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메시지로만 이야기를 나눴었기에, 말로 직접 안부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뭐?! 침입자를 마주쳤어?
“앗…….”
그런데 통화 중에 자기도 모르게 바바리안과 싸웠다는 언급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는데 들켜 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침입자가 바바리안? 진짜로?
“그렇게 됐네요.”
반복되는 김건오의 물음에 김시후는 조용히 긍정했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내가 그렇게 피하라고 했는데!
“도저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물리력을 갖는 결계가 쳐진 백화점.
그 안에서 인간을 공격하던 바바리안들을 피해 도망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침입자는 너무 위험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지.
김건오 또한 몬스터 연구원 이전에 한 사람의 영웅이었다.
침입자에게 맞서 싸운 김시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싸움이라도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알았다.
김시후의 당찬 선언에 김건오는 결국 참견을 그만두었다.
항상 아들이 어리게만 보였었는데.
어느새 어엿한 성인이자 영웅으로 자라 버린 김시후였다.
—기왕 이런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정보를 전해 주마.
“네?”
—‘몬스터의 발생과 침입자들의 등장은 관계성이 있다’ 라는 주장을 들어 봤어?
“들어는 봤어요.”
—최근에 그게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진짜요?”
몬스터와 침입자들의 관계성.
이제껏 영웅 사이에서 속설로만 취급됐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건오는 그것이 확실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특히 침입자의 경우, 결계에 사용되는 마석과도 관련이 깊어.
결계 설치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마석.
많은 마력을 품은 그 돌이 침입자들을 이끈다는 것 또한 여러 연구 결과로 밝혀지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결계는 사용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럴 수는 없지. 당장 대체할 수단이 없으니까.
몬스터가 발생한 장소를 오로지 인력으로만 막아 내는 건 한계가 있었다.
결계처럼 눈에 직접 보이는 효과가 있어야만 경각심을 느끼는 시민들도 상당수였다.
결국에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계를 사용해야 몬스터를 가둘 수 있는데, 침입자들이 그 결계에 이끌린다는 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네요.”
—앞으로도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남을 거다.
“뭐,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요.”
—무슨 방법?
“제가 누굴 만나더라도 쳐맞지 않게끔 강해지는 거요.”
—허허…….
김시후의 당당한 포부에 김건오는 작게 웃었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더라니.
아들을 통해서 영웅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를 찍는다는 건 어떻게 됐어?
“맞다! 뷰튜브에 영화 트레일러가 올라갈 거라고 하던데…….”
김시후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뷰튜브에 접속했다.
하성태가 운영하는 HST 스튜디오 채널을 클릭하자 채널에 올라온 영상 목록이 보였다.
거기에는 약 2시간 전에 올라온 영상이 있었다.
영어로 괴구리 살해자라는 제목의 트레일러 영상이었다.
썸네일은 낚싯줄에 끌려 올라가는 괴구리의 이미지.
그런데 해당 영상의 조회수가 조금 이상했다.
‘조회수가 11만?’
고작 2시간 전에 올라온 2분짜리 영상이었다.
그런데 그 영상의 조회수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김시후는 황급히 영상을 클릭했다.
‘이거 우리 거 맞는데.’
해당 영상에 담긴 것은 하나 같이 익숙한 장면들.
분명 유지한 파티가 촬영한 영상을 적절하게 편집한 홍보 영상이었다.
화면에 자기 얼굴이 나오는 걸 보니까 김시후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으음…….”
—왜 그래?
영상에 달린 댓글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쓰인 댓글도 있었다.
한국인만 시청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댓글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너무 빠른 거 아닌가?’
김시후는 그것을 두고 조작된 조회수가 아닌지 의심했다.
하성태가 그런 편법을 사용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회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올라오는 댓글을 확인하던 김시후가 이내 영상의 주소를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오! 사람들 반응이 좋구나?
“큰 기대는 안 하려고요.”
기대만큼 실망도 커진다는 건 불변의 진리였다.
옆에 유지한이 있었다면 분명 김칫국을 마시지 말라고 했을 터.
따라서 기대감을 버리고 편하게 생각하는 김시후였다.
하지만…….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첫 공개 후 몇 시간이 지나자 조회수는 60만을 넘겼고.
밤 12시가 되기 전에는 80만까지 올랐으며…….
하루가 지난 다음에는 결국 조회수 100만을 돌파했다.
*****
[인기 급상승 동영상 #27]
의 트레일러 영상은 뷰튜부의 인기 차트에 올라갈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로 조회수를 끌어모은 것도 아닌데.
고작 2분짜리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이 100만 명을 넘긴 것이다.
덕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그들이 언급되곤 했다.
[익명1 : 저 영상에 나온 영웅들 누구야?]
[익명2 : 듣보잡인거 같은데.]
[익명3 : 간만에 대박작 하나 나오려나? 기대중.]
…….
…….
이름조차 모르는 파티에게 쏠리는 이목들.
거의 유명인 못지않은 관심도였다.
그리고 그 영화 트레일러에서 마치 주인공처럼 등장한 유지한은…….
조금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유지한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영웅 학원을 졸업 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던 동기들.
혹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옛 지인까지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으면 머지않아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귀찮게…….”
유지한은 청영사에 들어오기 전 파티가 4급으로 승급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것은 그때의 김시후가 받던 관심과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한동안 휴식기였던 휴대폰의 메시지함은 계속해서 신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메시지와 걸려오는 전화로 인해 휴대폰을 제대로 사용하기가 힘들 정도.
유지한은 결국 진절머리치며 휴대폰을 꺼 버렸다.
‘이게 다 그 영상 때문이라고.’
뷰튜브에서 AI의 추천 영상으로 선정되며 조회수가 폭발해 버린 영화 트레일러.
그것 때문에 갑자기 그에게 연락해 오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아직 진짜 영화가 공개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당분간 휴대폰을 제대로 사용하기는 글렀다.
“역시 지한이 형이 제일 심하네요.”
“저도 계속 메시지 들어오고 있어요.”
“찍!”
영상에 함께 출연한 김시후와 민유리도 비슷한 처지였다.
얼굴이 가장 많이 노출된 유지한만큼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몇 배 이상의 사람들이 연락을 걸어왔다.
전세계에 공개되는 영상의 파급력이란 꽤 무서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