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영화 배우
“어서 오세요! 칼방입니다!”
오픈 마켓의 후미진 거리.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탓에 주변보다 저렴한 월세로 들어올 수 있는 그곳에서.
대장장이 남호열은 손님 맞이에 한창이었다.
공방에 들어온 한 남자 영웅이 벽에 걸린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뭘로 만든 거예요?”
“그건 아이언 터틀의 등껍질을 기반으로…….”
“저 갑옷은 디자인이 정말 예쁘네요!”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얼마 전까지 방문객들의 목적은 무기 수선 정도에서 그쳤으나.
최근에는 완성된 장비를 구매하는 숫자가 조금씩 늘었다.
진열대나 창고에 재고로 남아 있던 장비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장면은, 남호열로 하여금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이 양손도끼 구매할게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커다란 양손 도끼를 든 남자가 카드로 값을 치렀다.
남호열은 떠나가는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또 오십쇼!”
남자가 문밖으로 나서자 남호열은 허리를 폈다.
뒤이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조금 전에 팔린 도끼가 걸려 있던 진열대.
완성된 직후 2년 내내 손질만 반복하던 악성 재고가 드디어 팔려 버렸다.
“어후!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네.”
평소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남호열이었지만.
그는 오늘 뭘 먹어도 소화가 잘 될 것 같았다.
그만큼 후련한 기분이었다.
‘다른 것도 꺼내와야겠다.’
공방 안쪽의 창고로 이동한 그는 도끼와 마찬가지로 계속 보관만 하고 있던 창을 가져와 빈 진열대에 전시했다.
그것 또한 구매자가 나타나길 바라면서.
“……잘 풀리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남호열은 손으로 턱의 수염을 매만졌다.
물가도 오르고, 공방의 월세도 오르고, 공방의 매출 빼고 전부 다 오르는 와중.
지금처럼 물건이 팔린다는 건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어도, 공방을 유지하면서 먹고 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생활이 안정되고 있었다.
매번 허탕만 치고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끼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손님 중 절반 이상이 유지한 파티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었지.’
이렇게 공방의 상황이 반전된 것은 모두 유지한 파티의 덕분이었다.
최근 손님 중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5급과 4급 파티에 속한 영웅들.
그중에 청영사에 합격한 유지한 파티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방문하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럴 때 주식이 떡상했다고 표현하던가?’
2명뿐인 5급 파티에 검 하나를 선물한 것으로 시작된 인연.
이 정도면 초기 투자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유지한 파티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남호열이었다.
“다음에 오시면 서비스라도 해드려야겠네.”
말로만 하는 감사 인사는 남호열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도움을 준 은인에게는 뭐라도 손에 쥐여 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장갑이나 신발을 만들어 드리는 것도 좋겠지.’
남호열은 영웅들과 관련된 장비라면 가리지 않고 제작하려 드는 편이었다.
검, 도끼, 창, 활, 방패, 수리검 따위의 무기들.
단단한 판금 장비와 가죽 또는 천을 자르고 엮어서 만드는 각종 방어구까지.
보통 단체에 속하지 않은 개인 대장장이는 여러 종류의 장비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몇 가지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는 홀로 다루기 어려운 것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장에 나서는 영웅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그였다.
똑똑.
유지한 파티를 떠올리며 생각에 빠져 있는 그때.
누군가 공방의 문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남사장 있어?”
“어? 김사장님 안녕하세요!”
“잠깐 들어가도 괜찮지?”
“물론이죠.”
그는 이 근처에서 남호열과 비슷한 공방을 운영하는 대장장이였다.
속칭 김사장으로 불리는 그는 이곳저곳 비어 있는 진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걸려 있던 대검은 어디 갔나? 그 묵직하게 생긴 거.”
“오늘 오전에 팔렸어요.”
“오호라. 그것도 1년 전에 만든 거였지? 요새 장사가 잘 되나 봐?”
“어찌어찌 먹고 살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는 남호열.
나름 여유가 생긴 것이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남사장. 나한테도 비결 좀 알려 줘 봐.”
“네? 비결이요?”
뒷짐을 진 김사장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모르는 척 하긴! 갑자기 잘 나가는 걸 보면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거잖아.”
“딱히 비결은 없는데……. 굳이 하나 꼽자면 될성부른 영웅들에게 장비를 투자했었죠.”
“그래? 그러면 나한테도 그 사람들 소개시켜 줄 수 있나?”
“네? 그건…….”
남호열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김사장의 말은 손님을 자기한테 내어 달라는 뜻이었으니까.
아무리 비슷한 처지의 대장장이라도 충성도가 높고 변화의 기반이 된 고객을 대뜸 넘겨달라니.
들어주기 힘든 요청이었다.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혼자만 재미 보겠다 이거야?”
“김사장님은 주로 검이랑 방패를 만드시잖아요. 저와 제작하는 게 겹쳐서 큰 효과는 보지 못하실 겁니다.”
“거, 우리 사이에 너무하네.”
“차라리 다른 영웅들에게 투자를 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
남호열과 대화를 나누던 김사장은 곧 가게를 빠져나왔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그의 표정에서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
‘남사장이 요새 싸가지가 없어졌단 말이지.’
최근 남호열의 공방에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김사장은 은연중에 그를 부러워했다.
자기는 파리를 날리는 와중에 바로 옆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등장했으니…….
같은 대장장이로서 질투심마저 들었다.
“이봐 김사장! 남사장이 뭐래?”
“그 유치한인지 유재한인지 뭔지, 나한테 절대로 못 넘겨 주겠대.”
김사장은 주변의 다른 대장장이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주로 남호열에 관련된 것이었다.
“동업자끼리 손님 몇 명쯤 공유할 수 있는 거 아냐?”
“솔직히 말하면 남사장 가게 위치가 영 별로야. 영웅들이 굳이 거기까지 찾아가는 걸 보면 분명 숨겨 둔 전략이 있을 걸.”
“자기 혼자서 돈 좀 만져 보겠다는 거네?”
“남사장 진짜 못됐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 오픈 마켓.
그곳에서 대장장이 남호열에게 좋지 못한 이야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
“다음에 또 보자.”
“수고해.”
지인과의 점심 식사를 끝낸 유지한이 서울의 시내로 나왔다.
오후 2시의 거리는 1시나 12시보다 사람이 적고 한적했다.
유지한은 휴대폰으로 다음 날의 일정을 검토하다가, 문득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어제 발표도 평가가 좋았지.’
괴구리 사냥에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지한 파티는 교관 진석우의 만족스러운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발표 도중에 일부 선보였는데, 현장의 정보가 담긴 생생한 영상 자료가 꽤 높은 점수로 반영된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촬영은 아니었으나 덕을 본 것이다.
‘길드에 촬영용 드론을 하나 마련하는 것도 괜찮겠어.’
괴구리 사냥 시 대여했던 드론은 영화감독 하성태에게 반납했다.
청영사에 있다 보면 지금처럼 영상 자료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을 테니, 길드 자금으로 드론 구매를 고려하는 유지한이었다.
그런데 그가 여러 생각에 빠져 길을 걷던 그때였다.
“저기요!”
“……?!”
갑자기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유지한이 자리에 멈춰섰다.
뒤를 돌아보자 약 2m 거리에 기다란 녹색 로브를 두른 누군가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통이 큰 로브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덕분에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제부터 내 뒤에 있었던 거지?’
유지한이 놀란 부분은 상대가 인기척을 전혀 내지 않고 근처까지 접근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쉽게 뒤를 내주다니.
생각에 너무 빠져 있던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흐으음.”
여성으로 추측되는 상대가 입으로 묘한 소리를 내며 유지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근래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시네요?”
“……!”
유지한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김현태 파티와 케로즈에서 추방된 것은 물론이고, 꿀잼에 합류한 이후 돌연변이를 마주치거나 위험한 상황에 여러 번 놓이기까지…….
유지한은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를 겪었다.
그리고 이 여성이 뱉은 말은 최근에 생긴 그의 고민거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딱히 어두운 얼굴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잡상인인가.’
하지만 형식적인 멘트겠거니, 하고 넘길 뿐이었다.
“혹시 점에 관심 없어요?”
“딱히요.”
평소 샘플링을 통해 확률을 점치는 유지한이었다.
모든 조건에 답을 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재미로 보는 점보다는 더 확실한 효과가 있는 능력.
차라리 그가 점집을 차렸으면 모를까, 남에게 돈을 내고 점을 본 적은 없었다.
“제가 저기서 일하는 사람이거든요.”
여성은 손으로 어느 건물의 1층을 가리켰다.
[카산드라의 동굴]
연보라색 글씨가 적혀 있는 간판이었다.
‘유리 씨가 말한 가게가 저기였나.’
일본에서 시작되어 요새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서도 화제로 떠오른다는 인기 점집 브랜드.
고유 스킬을 통해 미래예지를 할 수 있다는 일본의 영웅이 설립한 길드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민유리도 지나가다 한 번쯤 언급했을 정도의 인지도를 보유한 점집으로, 일본을 넘어 한국까지 들어왔을 정도면 실제로 장사가 꽤 잘 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오늘 저녁까지만 특별히 무료 행사 중이에요. 점치는 시간도 15분 내외로 짧은데, 잠깐만 들렀다 가지 않을래요?”
무료로 점을 봐 줄 테니 잠깐 가게에 들려 달라는 여성.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유지한은 말없이 가게를 바라봤다.
드라마나 소설 따위에 나오는 건 종종 봤지만, 살면서 직접 점집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저건 1급 영웅이 설립했다는 점집.
아예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아주 잠깐이라면…….”
그렇기에 그는 여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입가에 미소를 띤 여성이 점집 앞으로 유지한을 안내했다.
굳게 닫힌 가게의 문을 잡아당기자, 해가 떠 있는 오후임에도 무척 어두운 내부가 그들을 맞이했다.
보라색과 남색의 조명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
가게 이름처럼 동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리로 들어오세요.”
보라색 커튼을 걷어낸 여성이 유지한을 더 안쪽으로 데려갔다.
보자기가 깔린 책상 위에 축구공만 한 유리구슬이 놓여 있는 좁은 방 안.
유지한을 의자로 안내한 그녀는 유리구슬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보는 위치에 앉았다.
자신을 점술가라고 칭한 그녀가 고개를 살짝 들어서 유지한을 바라봤다.
“무료 행사는 올해의 운세로만 진행되고 있어요. 괜찮으실까요?”
“예.”
공짜로 점을 쳐주겠다는데 뭘 봐주든 불만은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점술가가 유리구슬에 손바닥을 올렸다.
우웅—
유리구슬의 중심부에서 하얀색 빛이 발생했다.
점술가가 손을 꼼지락거리자 그 빛은 구슬 내부를 빙빙 돌면서 하나의 고리 모양을 만들었다.
저 유리구슬은 본래 데스티니의 길드장이자 카산드라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1급 영웅이 소유한 아티팩트.
여기서는 점집이라는 컨셉에 맞게 그 아티팩트의 복사본을 만들어서 시각적인 효과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저거 되게 잘 만들었다.’
구슬은 점술가의 손길에 따라서 진동하기도 하고, 색깔을 완전히 바꿔 버리기도 했다.
마치 진짜 아티팩트인 것마냥 말이다.
“으으음…….”
점술가는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며 유리구슬을 조작했다.
그렇게 약 2분 정도가 지나고 구슬 속의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가 구슬에서 손바닥을 떼며 말했다.
“조금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예?”
“안타깝게도 손님에게는 앞으로도 많은 위기와 시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요?”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요. 언젠가는 분명 지금 이 시기가 아주 편했다고 생각하실걸요?”
“…….”
“이렇게 다사다난한 운명이라니…….”
진심이 느껴지는 점술사의 말에 유지한은 괜히 기분이 찝찝해졌다.
이 점집은 손님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을 해 주는 곳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공짜로 보는 점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돈을 내면 좋은 소리만 해 줄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기를 이겨 내면 충분한 보상이 따라올 거예요.”
“위기 없이 보상만 얻을 수는 없어요?”
“그런 걸 보통 전문 용어로 날먹이라고 하죠?”
“……그렇죠?”
“손님!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
장난삼아 던져 본 질문에 훈계를 듣는 유지한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저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금 친 점에 대해 샘플링을 사용했다.
‘……이거 왜 이래.’
그리고 스킬을 사용한 걸 곧바로 후회했다.
<—눈앞의 점술가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일 확률>
<98%>
*****
어둠이 내려앉은 밤.
카산드라의 동굴 서울 지점에서 로브를 착용한 점술가가 빠져나왔다.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정장의 남성은 점술가의 유리 구슬을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카산드라님. 한국인들은 어떠셨습니까?”
“일본인과 비슷했어요. 원래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만요.”
점술사의 정체는 일본의 1급 영웅 카산드라.
남들 몰래 한국으로 여행을 온 그녀는 재미삼아 정체를 숨기고 한국인들의 점을 봐주었다.
평소에 한국을 좋아해서 공부했던 한국어가 이런 때 도움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말이죠…….”
“네?”
“오늘 방문한 손님 중에 딱 한 명. 아주 ‘재밌는’ 운명을 가진 남자가 있었답니다?”
“……!”
오모시로이(おもしろい)라니.
일본어로 내뱉는 카산드라의 말에 정장의 남성은 흠칫하고 놀랐다.
그녀가 누군가의 운명을 두고 재밌다고 말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입에서 재밌다는 표현이 나온 건, 일본의 1급 영웅인 와타나베 요스케의 운명을 점칠 때였다.
“제 능력으로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운명! 함부로 들여다 본 게 아주 무서울 정도였어요.”
“대체 어떤 사람이었길래…….”
“조만간 한국에 대단한 인물이 등장할지도 모르겠어요.”
카산드라는 남성에게 맡긴 자신의 아티팩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