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괴구리 (5)
유지한이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우릴 저격한 놈을 쫓는다. 상대는 아마도 인간이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뱉은 말에 파티원 모두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MA에서 인간이 같은 인간을 공격하다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후야. 지금부터 마력 아끼지 말고 실드는 상시 유지해.”
“네.”
“최대한 엄폐물에 몸을 숨기면서 이동한다. 칠라는 몸을 숨기기 힘들면 방패 들고 최대한 빠르고 어지럽게 움직여.”
“찍!”
“다들 각오해. 오늘 사람을 죽여야 할 수도 있으니까.”
유지한 파티원들 중에서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을 가진 건 아직 유지한 밖에 없었다.
같은 인간을 죽일 각오로 공격을 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터.
“따라와.”
유지한은 나무를 빠져나와 앞으로 달렸다.
상체를 최대한 낮게 숙인 채 움직이며, 멀리서 눈에 보이지 않도록 모습을 숨겼다.
다른 파티원들은 그런 그의 뒤를 따라서 빠르게 이동했다.
탕! 탕!
달려가는 방향에서 직전의 공격과 비슷한 것이 날아왔다.
급하게 쏘아 낸 것인지 위력은 첫 번째 공격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편으로, 두꺼운 나무라면 충분히 막아 낼 수준이었다.
자리에 잠깐 멈춰 선 유지한이 공격에 의해 작게 패인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후야. 잔여 마력 추적 가능해?”
“이미 시도 중인데, 2분 정도 더 필요해요.”
“오케이.”
유지한은 속으로 2분을 세며 이동을 계속했다.
탕!
이어서 날아온 4번째 공격이 엉뚱한 땅바닥을 때렸다.
적들이 유지한 파티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저격에 능숙한 원거리 딜러라도 상대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공격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적이 쏘는 총알 비슷한 공격은 공격 범위가 매우 좁았다.
그만큼 명중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글 아이]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민유리가 말했다.
“반격할까요?”
“여기서 상대가 보여요?”
“짐작만 하고 있어요. 저쪽도 저희를 피해서 뒤로 이동하는 것 같아요.”
“일단 대기하세요.”
사사삭!
유지한 파티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약 2분이 지났을 무렵.
준비를 마친 김시후가 지팡이를 앞으로 뻗었다.
파아아앗—!
지팡이 끝에서 뿜어진 마력이 점차 넓어지는 부채꼴 모양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직전의 공격에서 추출해낸 마력의 패턴을 감지하는 추적망이었다.
그리고 몇 초 뒤, 김시후가 지팡이를 살짝 움직여서 특정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헤이스트]
유지한은 대답을 들은 즉시 버프와 함께 앞으로 치고 나갔다.
상대측의 마력을 감지한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공격이 멈췄군.’
적들은 쫓아오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더 이상 저격을 날리지 않았다.
어쩌면 공격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완전히 도망치려는 것일 터.
하지만 그들과의 거리는 이제 충분히 가까워졌다.
“찾았다.”
마침내 2명의 인간이 민유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계속 뒤를 힐끗거리면서 앞으로 달리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도망치는 모양새였다.
곧 유지한의 눈에도 그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절대로 안 놓친다.’
유지한은 눈에 불을 켜고 놈들을 쫓았다.
*****
유지한을 죽이는 것에 실패한 저격수는 동료인 전사와 함께 부리나케 도망치고 있었다.
“헤드샷을 맞춘다면서?”
“분명 완벽했을 텐데……!”
그의 동료는 연신 뛰어다니면서도 저격 실패를 놀려 댔다.
수치심에 물든 저격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도 봤잖아! 그 새끼 몸에서 갑자기 이상한 게 튀어나와서 공격을 막았다고!”
뒤쪽을 힐끔대는 동료 전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유지한이라는 영웅은 그들이 예상치도 못했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전 그의 품에서 튀어나온 초록색 덩어리가 무엇이든 간에, 아티팩트를 동원한 저격을 막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목표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 했다.
지금껏 4급 이하의 영웅을 대상으로는 실패한 적이 없었던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계속 쫓아오는 모양인데. 어쩔래?”
“당연히 여기서 죽이고 가야지.”
지금 도망치는 것은 적당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함일 뿐.
저격에는 실패했지만, 유지한을 이곳에서 죽인다는 그들의 계획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 임무에 실패하는 순간 조직의 처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저 새끼들 속도가 빠른데…….’
유지한 파티의 추격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다.
특히 저격을 회피한 유지한의 속도가 크게 돋보였다.
이대로라면 곧 따라잡힐 상황이었다.
“시간 더 끌면 방해꾼들이 도착할 거다.”
“나도 알고 있어. 저 건물로 가자!”
두 사람은 생태공원 내에 존재하는 공원 안내 센터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 저격수가 커다란 창문을 깨부수고 밖으로 석궁을 겨눴다.
철컥!
아티팩트의 압축기로 마력이 모여들었다.
첫 저격만큼이나 강력한 공격을 날릴 셈이었다.
‘와라!’
그리고 건물 2층에서 유지한의 모습이 보인 순간.
탕—!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저격수의 마력 탄환이 날아갔다.
마력이 한껏 압축된 탄환으로, 이번에는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끝났군. 잘 가라.’
저격수는 꽤 끈질겼던 상대에게 속으로 이별의 인사를 전했다.
그 나름대로의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다.
지금과 똑같은 공격으로 죽어 간 영웅의 수만 해도 5명이 넘었기에, 유지한의 죽음을 의심치 않는 그였다.
그런데…….
파앙!
이번에는 유지한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검으로 탄환을 쳐냈다.
“……!”
그 모습을 본 저격수가 눈을 크게 떴다.
분명히 제대로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담긴 마력이나 속도를 고려했을 때, 고작 4급 영웅 따위가 막아 낼 공격이 아니었거늘!
‘일이 제대로 틀어졌군.’
옆에 있던 동료는 결국 검을 꺼내들었다.
*****
“후우……!”
유지한은 안내 센터의 2층을 노려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2명의 인간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탕!
또다시 날아오는 마력의 총탄.
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유지한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검을 이용하여 그것을 쳐냈다.
첫 저격은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던 순간이었기에 반응이 어려웠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번에는 달랐다.
날이 잔뜩 서 있는 그의 감각은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피슝! 피슝!
자세를 낮춘 민유리는 적들을 향해 마력 화살을 연속으로 쏘아 냈다.
같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임에도 그녀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2층의 두 사람은 다른 창문을 빠져나와 뛰어내리면서 화살을 피했다.
[스티키 스웜프]
그때 그들의 착지하는 흙바닥이 김시후의 마법에 의해 끈적한 늪으로 변했다.
한번 빠지면 탈출이 쉽지 않은 함정 마법이었다.
“큭!”
석궁을 든 저격수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자기 신발을 버리면서 늪을 빠져나왔다.
반면 그의 동료는 안내 센터의 돌벽을 발로 차면서 늪에 빠지는 걸 피했다.
유지한은 돌벽을 차며 옆으로 착지한 남자를 바라봤다.
작은 단검을 들고 있는 그의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대화는…….”
“…….”
“딱히 필요 없겠군.”
저들과 나눠야할 것은 오로지 검의 대화뿐.
유지한은 단검을 든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챙!
유지한의 검이 단검과 충돌했다.
그러자 단검을 든 전사의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
순수한 힘의 대결에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이게 4급 영웅이라고?’
예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유지한의 힘!
이정도면 저격수의 저격이 실패할 법도 했다.
복면의 전사는 웃음기를 싹 뺀 얼굴로 단검을 휘둘렀다.
챙! 채앵! 챙!
검날이 부딪히며 불꽃이 연신 튀어 올랐다.
단검을 든 전사는 힘보다는 빠른 속도를 앞세우며 유지한을 압박했다.
짧은 검날의 길이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계속 몰아치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단검에 익숙한지 잘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기에 유지한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말해 봤자 넌 이해 못해.”
그는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든 단검이 유지한의 얼굴을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유지한이 그것을 쳐내려는 순간.
[스네이크 쓰러스트]
단검의 딱딱한 날이 마치 뱀의 몸처럼 기이하게 휘었다.
‘죽어라!’
전사는 S자를 그리며 휘어지는 검으로 유지한의 오른쪽 눈알을 노렸다.
오른쪽 다음에는 왼쪽 눈.
모든 시야를 차단한 다음에는 목을 그어 버릴 예정이었다.
어둠속에서 찾아오는 죽음만큼 두려운 것은 없는 법이었으니까.
“……!”
하지만 그는 이내 경악하고 말았다.
끝까지 검을 노려보던 유지한이 몸을 크게 회전시키면서 휘어지는 검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윽!”
회심의 공격이 빗나간 전사는 이내 손등을 베이고 말았다.
검지부터 약지까지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큰 상처였다.
떨리는 손을 애써 붙잡은 그가 말했다.
“대체 어떻게……!”
“비슷한 스킬을 쓰는 사람을 본적이 있어서.”
과거의 유지한은 비록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스킬을 찾아다닌 적은 많았다.
그들을 따라한다면 하나쯤은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국 못 배웠지만 말이지.’
안타깝게도 거기서 그가 원했던 결과물은 없었지만.
그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정말 다양한 스킬들에 익숙해졌다.
검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스킬은 그중에 하나였다.
“제기랄!”
전사는 끝까지 단검을 놓지 않고 저항했다.
하지만 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계속 버티기란 무리였다.
서걱!
“끄흐으윽……!”
유지한은 단검을 놓친 그의 무릎을 검으로 깊게 베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그의 상처들을 잘근잘근 밟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의 상처라면 당장 어디로 달아날 걱정은 없었다.
“아악!”
김시후와 민유리, 그리고 칠라의 합공으로 저격수는 이미 제압당한 상황.
유지한은 두 사람의 무기를 전부 빼앗아 뒤로 치웠다.
그리고 저격수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네가 날 처음 공격한 놈이구나.”
“으…….”
“이제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우릴 공격한 이유는?”
저격수와 전사, 둘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 겨우 이정도로 입을 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서걱!
유지한은 저격수의 오른쪽 다리를 검으로 베었다.
“끄아악!”
“대답을 하지 않으면 한번씩 베겠다. 다시 묻지. 우릴 공격한 이유는?”
“네가, 우리 거래를 방해했으니까……!”
“야 이 새끼야! 입 닥쳐!”
고통을 견디지 못한 저격수가 입을 열자, 전사는 노발대발하며 소리 질렀다.
저격수 쪽이 조금 더 협조적인 모습이었다.
유지한은 전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후야. 저거 닥치게 해.”
“네.”
“그래서, 무슨 거래를 방해했다는 건데?”
“…….”
서걱!
대답이 늦어지자 이번에는 저격수의 왼쪽 다리가 베였다.
양쪽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조금씩 바닥을 적셨다.
“꺼허억!”
“말해!”
“이종족! 이종족 매매, 이 개새끼야!”
“……!”
그의 말에 김시후는 눈을 꿈틀거렸다.
근래 이종족과 연관된 일이라면 딱 하나밖에 없었다.
하늘보호소 소속의 릭시스 오르야라는 수인이 납치되었을 때 구해냈던 것.
‘그 일 때문이었나.’
이 두 사람은 그때의 일을 방해받아서 앙갚음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쟤 입 열어봐.”
김시후는 마력을 이용하여 강제로 다물어둔 전사의 입을 다시 열었다.
“따로 할 말 없어?”
“…….”
전사는 끝까지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상당히 비협조적인 그의 태도를 두고 유지한은 고민에 빠졌다.
제압해둔 이 두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두 명씩이나 필요는 없다.’
영웅부에 넘기는 건 한 사람으로 족하다.
그렇게 판단한 유지한은 전사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푹!
“컥!”
날카로운 검끝이 단단한 갈비뼈를 부셔 버리며 깊게 박혔다.
심장이 반으로 쪼개짐과 동시에 전사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흘러나왔다.
“살려…….”
홀로 뭐라 중얼거린 전사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동그랗게 벌린 입과 하늘을 올려다보며 정지해 버린 눈동자.
그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촥!
유지한은 피가 뿜어지는 가슴에서 검을 뽑았다.
가능한 살인은 피하자는 주의인 그였지만, 암살을 시도했던 적에게 자비를 내려 줄 정도로 선인은 아니었다.
그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으로 저격수를 가리켰다.
“부디 너는 조금 더 협조적이길 바란다.”
“뭐, 뭐든지 물어만 보십쇼.”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저격수의 말투가 고분고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