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괴구리 (4)
생태공원의 푸른 하늘을 절반 가량 가려 버린 괴구리들.
저수지의 수위가 살짝 낮아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녀석들이 잠시나마 만들어 낸 그늘 아래에서 민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개굴!”
“개굴개굴!”
“개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황소괴구리들이 주변의 영웅을 에워쌌다.
유지한 파티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로 등을 맞댄 파티원들은 자신들을 보며 울어 대는 괴구리를 노려봤다.
“어우, 이게 다 괴구리라니!”
팔뚝에 소름이 돋아난 김시후가 당장이라도 마법을 사용할 것처럼 지팡이를 치켜 든 가운데.
유지한은 침착하게 녀석들의 숫자를 셌다.
‘이쪽으로 나온 것만 따져도 20마리인가.’
당장 유지한 파티를 에워싼 황소괴구리는 약 20마리 가량.
다른 파티를 노리고 떨어진 것까지 합치면 그보다 많았다.
낚시를 통해 한두 마리씩 건져올리던 상황과는 대조적이었다.
‘이것들이 다 저수지 밑에 숨어 있었다고?’
유지한조차 이렇게나 많은 괴구리를 한 번에 마주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넓은 바다와 연결된 것도 아닌 이 저수지에서 이만큼의 몬스터가 동시에 등장하다니.
사실상 누군가가 의도한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한 씨!”
“형! 어쩌죠?”
“…….”
유지한은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고민에 빠졌다.
파티 등급을 넘어서는 몬스터를 이렇게나 대량으로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든 도망치는 편이 옳다.
바깥에 이 소식을 이 전달하고 상급 파티가 도착할 때까지 결계 주변에서 대기하는 것.
그것이 지극히 정석에 따르는 판단이었다.
“전부 해치운다.”
하지만 유지한은 정면에서 부딪히는 선택지를 택했다.
제법 싸워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와는 달라.’
그는 골프장에서 괴들레를 피해서 도망치던 날을 떠올렸다.
시기상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장비를 교체한 것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변화를 겪은 그들이었다.
“수비 태세로! 칠라와 내가 보호한다!”
“찍!”
촤악!
촤아악!
사방에서 여러 개의 붉은 혀가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마치 생체 미사일처럼 느껴지는 공격들.
붙잡히기 이전에 두꺼운 혀에 얻어맞는 걸 먼저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퉁! 퉁! 퉁! 퉁!
칠라가 앞쪽에서 날아오는 혀를 방패를 막아 냈다.
혀가 방패에 닿을 때마다 충격으로 몸이 뒤로 살짝 밀려났으나, 칠라는 땅에 발을 박아 넣으면서 버텼다.
“개굴!”
“개굴!”
끈적끈적한 혀는 마치 문어의 빨판처럼 방패 표면에 달라붙었다.
황소괴구리들은 먹잇감을 낚아채듯 혀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찌익! 찍!”
양손으로 방패의 손잡이를 꽉 하고 쥔 칠라는 아예 몸을 뒤로 눕혔다.
총 5개의 혀가 앞에서 방패를 당기고 있음에도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윈드 커터]
그때 칠라에게 보호받는 김시후가 마법으로 방패에 달라붙은 혀를 공격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의 칼날에 의해 황소괴구리의 혀 위에 수많은 생체기가 그어졌다.
통증을 견디지 못한 괴구리들은 결국 하나 둘 방패를 놓아주고야 말았다.
“유리 씨. 제 뒤로 붙어요.”
“네!”
칠라의 바로 뒤쪽에서는 유지한이 선전했다.
그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혀를 신들린 움직임으로 쳐냈다.
‘실프!’
검날이 혀와 닿는 찰나의 순간에는 실프의 도움으로 검 위에 초록빛의 오러가 서렸다.
그리고 검이 두꺼운 혀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오러를 거두었다.
유지시간을 최대한 짧게 하여 극한의 효율을 누리는 것이었다.
서걱!
오러를 씌운 검은 두꺼운 황소괴구리의 혀를 말랑한 두부 썰 듯 잘라냈다.
최대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계속해서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끄아아악!”
주변 어디선가 다른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황소괴구리의 혀를 피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영웅들이었다.
유지한은 머리부터 통째로 먹혀 버리는 여성을 보고 인상을 썼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저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개굴! 개굴!”
유지한의 얼굴을 향해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혀!
쫘아아악—!
그는 오러가 실린 검을 세로로 들고 혀를 반으로 갈라 냈다.
뱀의 것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버린 혀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와 그의 몸을 적셨다.
그리고 어느덧 하늘에는 민유리에 의해 마력 화살로 이루어진 구름이 생성되었다.
[애로우 레인]
투두두두두둑—!
완성된 구름에서 화살로 이루어진 화살비가 오로지 황소괴구리만을 노리며 떨어져 내렸다.
민유리는 떨어지는 화살을 보충하듯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마력 화살을 쏘아 냈다.
스킬 사용에만 집중한 탓에 자칫 잘못하면 공격을 쉽게 허용할 수도 있는 상황.
파티원을 완전히 믿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지켜 주세요!”
“맡겨 둬요!”
유지한은 그렇게 공격에만 몰두한 그녀를 철저히 보호했다.
그녀가 보여 준 믿음에 보답해 주는 것이다.
“개굴! 개굴!”
“개굴—!!”
화살 세례를 맞던 괴구리들이 분노에 찬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들은 혀를 발사하며 전투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민유리를 처리하고자 했지만.
유지한이 앞에서 지키고 있는 한, 절대로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
유지한 파티가 저수지에서 솟아난 황소괴구리의 무리와 전투를 치르는 시각.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복면의 2인조가 있었다.
“야야. 저거 보이지?”
“보고 있어.”
망원경까지 동원하여 커다란 나무 위에서 유지한을 바라보는 그들은 몸 위에 나뭇잎 무늬가 그려진 모포를 두르고 있었다.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작업까지 끝내둔 것이다.
“저거 진짜 4급 파티 맞아?”
“확실해. 4급이 된지 얼마 안 된 파티야.”
“그런데도 저렇게 선전한다고…….”
말끝을 흐린 남자가 망원경을 다른 방향으로 옮겼다.
괴구리를 피해 도망다니거나 공격당하는 파티들이 보였다.
역시나 같은 MA 안의 다른 파티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유지한 파티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황소괴구리를 너끈히 무찌르는 모습이었다.
이곳에 있는 게 같은 등급의 파티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서로 다른 장면이었다.
“실력을 보니까 저놈들이 우릴 방해한 게 맞나 본데.”
“그러니까 우리까지 불려온 거겠지.”
“쯧!”
대화 중인 그들은 모두 독나비 소속의 조직원들.
얼마 전 조직의 아랫놈들이 이종족 거래를 방해했던 유지한이라는 영웅을 찾아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윗선의 명령을 받은 두 사람은 유지한에 대한 간단한 조사를 마쳤고, 오늘은 그를 처리하기 위해 똑같은 MA로 찾아온 참이었다.
“마침 MA로 방문하길래 쉽게 가나 했더니…….”
영웅을 죽이기 위해서는 MA만큼이나 좋은 장소가 없었다.
죽음을 몬스터에 의한 것으로 넘겨 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저것만으로는 부족할 거 같네.”
“아무래도.”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괴구리를 강하게 자극시킨 뒤, 유지한을 파티 채로 담궈 버린다는 계획은 아무래도 실패한듯 했다.
어렵게 가져온 황소괴구리의 알을 공원에 일부러 풀어 두었는데도 녀석들을 상대하기에는 모자랐다.
그들은 상대를 상당히 얕봤음을 인정해야했다.
“직접 나서야겠군.”
“빨리 끝내.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니까.”
철컥!
남자는 모포 속에 감춰 뒀던 커다란 석궁을 꺼냈다.
정확도와 위력 보정은 물론이고 다량의 마력을 한점으로 압축시켜서 쏘아 낼 수 있는 소형 마력 압축기까지 달린 무기.
조금 조잡하기는 하나 그것은 무려 아티팩트에 해당하는 물건으로 결코 평범한 시민들이 소유할 수 있는 장비는 아니었다.
“헤드샷 나올 거니까 잘 보고 있어라.”
두꺼운 가지 위로 석궁을 걸친 남자가 앞쪽을 겨냥했다.
우우우웅—
압축기로 푸른색의 마력이 몰려들었다.
마력이 소용돌이치던 압축기가 이내 살짝 파랗게 빛났다.
“발사 준비 완료.”
남자는 석궁에 달린 스코프를 조절하며 유지한의 얼굴을 쫓았다.
하지만 괴구리를 상대하는 그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탓에 조준하기가 쉽지 않았다.
‘딱 한번만 멈춰라.’
남자는 호흡을 멈추고 조준에 집중했다.
자리에 멈추는 순간이 저놈의 제삿날이 될지어니…….
그렇게 3분 정도를 기다리던 때였다.
“온다.”
주변의 괴구리가 어느정도 정리되자 유지한이 자리에 멈췄다.
다른 파티원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아디오스.”
석궁으로 유지한의 머리를 조준한 남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
유지한 파티의 주변을 에워쌌던 괴구리가 모두 쓰러졌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던 유지한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주변 경계 늦추지 마. 또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네.”
“칠라는 어때?”
“멀쩡해요. 생각한 것보다 잘 버텨 주더라고요.”
“찍!”
칠라가 자기만 믿으라는 듯이 가슴에 오른쪽 주먹을 얹었다.
그 모습이 귀엽게만 보였던 파티원들은 전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여유가 남아 있으니까…….”
유지한이 말을 이어 가던 그때였다.
부웅—!
그의 품에 있던 실프가 위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품속에만 있으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빠져나온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유지한의 눈이 급하게 실프를 쫓았다.
‘……?!’
그러자 파랗게 빛나는 점 같은 것이 바로 근처까지 도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게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발견은 했으나 반응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번쩍!
그때 실프의 구체가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밝은 빛을 뿜어내더니.
유지한의 앞에서 아주 강력한 바람이 불었다.
후우웅——!
저수지의 물결이 반대로 일고, 바닥의 풀들이 절을 하듯 납작 엎드리는 가운데.
짧은 순간이나마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 유지한을 덮쳤다.
“커헉!”
바람에 떠밀린 유지한의 몸이 크게 뒤흔들렸다.
그리고 파란 빛이 그의 볼을 살짝 스치며 지나갔다.
“지한 씨!”
“형!”
“오지 마! 일단 숨어!”
유지한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파티원들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나무 뒤에 몸을 숨길 것을 명령했다.
오른쪽 볼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
정체모를 빛에 닿은 피부가 깔끔하게 찢겨졌다.
‘위험했다.’
찢어진 볼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물렁한 인간의 살은 물론이고 뼈까지도 충분히 부숴 버릴 수 있는 힘.
영웅의 몸이라고는 해도 피하지 못했다면 최소 중상을 입었으리라.
“실프!”
순식간에 거친 바람을 일으킨 실프는 탈진 상태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아무래도 가지고 있던 힘을 한꺼번에 터트린 모양이었다.
계약자를 구하기 위해 무리를 한 것이다.
‘침입자?’
유지한은 침착하게 조금 전 공격의 원인을 생각했다.
혹시 MA에 침입자가 나타난 것일까.
<—이 생태공원에 오늘 침입자가 등장할 확률>
<2% 미만>
하지만 샘플링을 통해 확인한 확률은 너무나도 낮았다.
몬스터의 공격이었을 확률도 그것과 거의 비슷했다.
그 2% 미만의 확률에 당첨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전 공격이 인간의 짓일 확률>
<98%>
적어도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
표정을 바짝 굳힌 유지한은 볼에 생긴 상처를 검지 손가락 끝으로 훑었다.
그리고 자신이 공격에 맞는 순간 어떤 자세를 취했었는지 떠올렸다.
‘저쪽이다.’
공격의 궤적을 파악하는 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가 파란 빛덩이가 날아온 방향을 무섭게 노려봤다.